[송영옥박사 기독문학세계] 악마적인 초인 스타브로긴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도스또옙스끼 문학을 찾아서(15)

▲송영옥 교수(기독문학 작가, 영문학 박사, 영남신대 외래교수).

▲송영옥 교수(기독문학 작가, 영문학 박사, 영남신대 외래교수).

군주정치가 끝날 무렵의 제정 러시아에서는 청년들을 중심으로 혁명을 목적으로 한 비밀결사대가 우후죽순으로 결성된다. 때문에 네자예프 사건을 만든 혁명 비밀결사대 역시 그중 하나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결사대로부터 탈퇴하고려는 당원을 사형시킴으로서 살인을 정당화한 것 때문에 충격을 주고 사회적 문제로 부각된다.

문제의 핵심은 살인사건은 무신론을 바탕으로 한 사회주의 혁명운동이었고, 이는 러시아정교의 기독교 사상과 대결되는 것에 있었다. 즉 러시아정교회의 유신론적 신앙이 무신론에 입각한 사회주의 혁명운동이라는 현실과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러시아 사회의 이 같은 대립과 갈등에 충격을 받은 도스또옙스끼가 2년에 걸쳐 고민하면서 연구하여 쓴 작품이 <악령>이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악령>에 나타나는 작가적 의도를 우선 단순하게 설명을 붙이고 이야기를 이어갈까 한다. 성경 누가복음에 나오는 귀신들린 돼지 떼들은 호수로 돌진하여 스스로 익사한다. 소설은 우선 무신론 혁명사상을 악령으로 보고 그 사상에 홀린 사람들을 돼지떼에 비유하면서 광기로 인한 파멸을 그려 나간다. 때문에 소설은 당시 두 가지 측면에서 정치적 문제를 던졌는데 하나는 러시아의 현실 정치에 대한 비판이었고, 또 하나는 스탈린주의적 전향을 예견한 정치적 비전 제시라는 점이었다.

그러나 외형적 묘사와는 다르게 심리적으로는 악마적인 초인 스타브로긴이라는 인물을 창조하여 악덕에서 느끼는 감각적 희열을 리얼하게 표현한다. 스타브로긴은 악을 행함에 있어 열정과 진정성을 가지고 행위의 예술적 정당성을 추구하지만 결국 허무에 사로잡힌다. 작가는 허무 속에서 살 수 밖에 없는 스타브로긴이 자신의 생명을 끊음으로 신을 죽이고 자유를 얻으려는 인신(인간=신)관을 나타내려 한다. 이 때문에 소설은 난해해지고 독자는 스타브로긴의 의식 흐름을 쫓아가느라고 긴장하다 끝내 지치다가 문득 정신을 차린다. 그래서 <악령>을 다시 또 다시 손에 잡게 되는 것이다.

<악령>에서 만약 작가가 정치적으로 네자예프사건을 사실적으로 그리려 했다면 <악령>은 그처럼 난해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도스또옙스끼는 이 난해성을 즐기면서 인생의 난해한 문제만큼 불가사의성을 리얼리티로 작품세계를 구상했다. 이처럼 난해한 인생과 난해한 세상을 있는 그대로 어렵게 묘사한것이 그의 문학세계에 매력을 더한 것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악령>은 첫번째보다 두번째, 두번째보다 세번째 읽을 때가 더 재미있다. 스타브로긴이라는 인물의 매력과 그의 고백의 장을 읽을 때마다 더 깊이 압도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도스또옙스끼의 인물들 가운데 가장 독특한 스타브로긴은 어떤 사람인가.

“머리칼은 새까맣고 엷은 빛깔의 눈은 너무나 침착하게 맑았고 안색은 지나치게 희고 부드러웠고 양볼의 홍조가 선명했다. 이빨은 진주, 입술은 산호, 한마디로 말하면 그림으로 그린것 같은 미남자라고 해야 할 것인데 동시에 왠지 상스럽고 메스꺼운데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의 얼굴이 가면을 닮았다고 했다.”

이러한 그의 외모와 함께 스타브로긴은 상류계급에 속하는 신분을 가지고 있다. 경제적 여유를 지니고 삶을 즐기는 반면 명석한 두뇌와 비범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어 적어도 겉보기에는 빛나는 지성의 소유자 같다. 한 마디로 말해 그는 세속적으로 행복한 생활을 향유할 수 있는 충분한 소양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환경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흔히 말하는 큰 인물, 출세하는 인생을 살 수 있는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독자는 작품을 읽어나가면서 나름대로의 스타브로긴을 또 다시 만들어간다. 그렇게 공범이 되도록 도스또옙스끼는 우리를 이끌고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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