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옥박사 기독문학세계] 스타브로긴, 그 하나의 상황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도스또옙스끼 문학을 찾아서(17)

▲송영옥 교수(기독문학 작가, 영문학 박사, 영남신대 외래교수).

▲송영옥 교수(기독문학 작가, 영문학 박사, 영남신대 외래교수).

예수께서 갈릴리 맞은편에 위치한 거라사인의 땅에서 만난 귀신 들린 사람은 악령에 사로잡혔으므로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가치도 스스로 지킬 수 있는 힘이 없었다. 그런데 예수의 명령에 따라 악령은 사람에게서 나와 돼지떼에게로 옮겨지는데 돼지들 역시 악령에 붙잡히는 순간 스스로의 광기로 파멸해 버린다.

소설 <악령>은 스스로의 힘으로 최소한의 인간됨의 조건조차도 지닐 수 없는 인간의 무력함을 보여준다. 악한 영의 쇠사슬과 고랑에 채이어 끌려다니는 사람들은 늪에서 빠져나오려고 허우적거리는 사람들과 같다. 스스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치면 칠수록 점점 더 깊이 빠져 들어간다.

스타브로긴의 다양한 삶과 그로 포장된 이면의 광기들을 보자. 그는 이집트와 아이슬랜드 탐험에 참가한다. 독일의 한 대학에서는 청강생으로 등록하여 지적 훈련도 쌓는다. 그러나 이러한 모험심과 지적 열망과는 달리 그의 내면은 악한 것들의 지배를 받는다. 음주와 호색을 일삼고 그 수렁에 빠져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악을 저지른다. 그 예가 어린 소녀를 강간하고 그후의 환각 체험을 통한 희열이다. 이는 전체주의의 광란의 세계를 의미한다.

좋은 소질과 조건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인간 본연의 악한 죄성이 문명이라는 독을 마시면 잠시의 희열을 느끼게 되지만 그 결과는 허무감이다. 허무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놀라웁게도 그 허무감 때문에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도 없는 악을 저지르고 아무런 가책도 없이 그 상황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 상황은 일종의 늪과 같다. 스스로 구원을 행할 수 없다는 뜻이다. 스타브로긴은 이 상황을 대변한다.

악령의 영향처럼 스타브로긴의 영향력은 지대하다. 그와 접촉한 모든 사람들은 각각 다른 사상으로 큰 영향을 받는다. 그 중의 한 사람이 샤토프이다. 특히 샤토프는 스타브로긴의 내면 갈등을 통한 신에 대한 관점을 나타내 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스타브로긴이 악으로 치닫는 과정에서 그가 얼마나 몸부림치며 애타게 신을 통한 구원을 갈망했는지를 샤토프를 통해 보여준다. 이 때문에 우리는 스타브로긴의 파멸을 두고 그가 신을 부정한 무신론자였다고는 볼 수 없을 것 같다.

우리가 알고 있듯 인간의 내면에는 누구나 하나님의 존재를 알 수 있는 양심이 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악이라고 하는 것은 그 하나님의 존재를 선택하지 않음으로 오는 것이다. 그래서 파스칼은 ‘신앙은 선택이다’라고 했다. 참으로 역설적이게도 스타브로긴은 파멸하지만 그가 갈등하면서 구원의 길을 애타게 찾았던 과정은 다른 인물들에게 성서적 영향을 크게 미친다.

스타브로긴으로부터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샤토프를 보자. 샤토프는 신과 국가와 그리고 국민에 대한 자신의 사상을 이렇게 고백한다. 그리고 자신의 사상이 스타브로긴의 영향이었음을 밝히고있다.

“어떤 국민도 과학과 이지를 기초로 나라를 건설한 경우는 없다. 있어도 그것은 일시적 우연에 불과하다. 백성은 성당에서 이른바 생명의 흐름에 의해 성장한다. 이것은 신을 구하는 마음이다. 민족 운동의 전 목적은 어떤 나라 어떤 시대에 있어서도 신의 탐구에 있었다. 그 신을 자기의 신으로 해야 한다.”

나는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처음으로 러시아 땅을 밟았을 때의 기억이 참으로 생생하다. 러시아 사회가 페레스토로이카로 비전과 혼란 속에서 몸살을 앓던 당시였다. 어느날 레닌그라드의 데카브리스트 광장의 남쪽에 있는 성 이삭 성당을 방문하였다. 평일 한낮이었는데도 성당 내부에는 촛불을 밝힌 수많은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나처럼 방문객도 많았을 터이지만 기도는 시간마다 이어지고 촛불은 24시간 동안 꺼지지 않는다고 했다.

텅텅 비어있는 유럽의 성당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기도하는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을 자신의 신으로 만든 것인지 아닌지는 나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솔로비요프의 말처럼 “도스또옙스끼가 도달한 사회적 이상을 한마디로 말해서 교회”라고 한다면 정녕 이 성당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을 자신의 신으로 만들고 있다고 믿고 싶었다. 자유의 종소리가 울릴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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