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배 교수, 연세대 미래교회 컨퍼런스서 강조
“탈세속화는 전체를 부정하고 차이를 강조하는 포스트모던 사조와 같으면서 다르다. 차이를 소중히 여기나 지켜야 할 보편적인 가치를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아가 신적 사랑에 근거한 윤리적 보편성의 긍정 또한 탈세속화 시대의 종교가 지향하는 바라 해도 좋을 듯하다.”
감리교신학대학교 종교철학과 이정배 교수가 설명한 ‘탈세속화’의 특징이다. 이 교수는 27일 서울 신촌 연세대학교 대강당에서 열린 ‘2011 미래교회 컨퍼런스’ 첫 번째 강사로 나서 ‘탈세속화 시대의 디아코니아(봉사)’를 주제로 강연했다.
이 교수는 지금을 바로 세속화 이후, 곧 탈세속화 시대로 정의하고, 교회를 포함한 종교가 탈세속화 시대에서 그 나아갈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교회의 디아코니아를 “총체적 상황에서의 삶의 양식”으로 정의한 이 교수는 “교회의 존립 여부 및 그 정당성이 디아코니아에 달려 있다”고 했다.
그는 “‘차이의 축제’를 선포한 탈근대성과 달리 ‘불가능한 것을 향한 열정’, 즉 탈세속적 영성은 차이들을 하나로 묶고자 했다. 이는 근대적 체계로 회귀하자는 것이 아니라 열정으로 하나, 곧 보편의 길을 추구할 목적에서다”라며 “탈세속적 영성이 맞선 것은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제국’(Empire)이자 그것이 부추긴 생태적 종말이었다. 이에 대한 신학적 성찰이 향후 디아코니아의 본질을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처럼 탈세속화의 특징 중 하나로 ‘보편성’을 꼽은 이 교수는 “지구적 가난(정의)의 주제를 비롯해 자연 생태계와의 보편적 공감이 요청되는 시기가 되었기에 디아코니아의 향방 자체도 역시 달려져야만 한다”며 “이런 변화의 징조가 이미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음에도 현실의 교회는 아직 이런 조짐을 온전히 느끼고 있지 못하는 듯싶다”고 지적했다.
탈세속화 시대의 디아코니아에 대해 이 교수는 몇 가지 예를 들어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시인이자 노동운동가인 박노해는 정부, 기업의 보조 일체 없이 순수 후원금만으로 전쟁지역 아이들을 위해 도서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이 일의 가치를 알고 대학을 졸업한 30명 가까운 젊은이들이 연구원이란 이름으로 ‘나눔 문화’에 자신의 삶을 헌신하고 있는 것도 예사롭지 않다고 이 교수는 덧붙였다.
학생들의 이런 행동에 “세상을 섬기고 바꾸기 위해서 무엇보다 영성을 강조한 박노해의 영향력이 컸다”고 말한 이 교수는 “여기서 영성은 자신의 일과 삶이 자본주의 잣대로 평가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자 돈에 종속되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삶의 양식의 창출을 뜻한다. 최근 등록금 반값 투쟁의 물꼬를 튼 김예슬의 대학 포기선언 역시 불가능한 것을 향한 열정의 표현으로서 ‘나눔 문화’가 낳은 귀한 결실”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이처럼 종교와 세상을 하나로 보나 그 속에서 세상 이상의 가치를 찾고 실현하는 것이 탈세속화 시대의 특징인 한, 이 시대의 디아코니아는 세상 안에서 세상 밖을 사는 수도원적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다”고 역설했다.
“하지만 오늘의 교회 안에는 이런 열망도 찾을 수 없고 세상을 거스르는 삶의 양식도 실종됐다”고 비판한 이 교수는 “그렇기에 세상 안에서 세상 밖을 살았던 수도원 공동체는 자본주의화 된 오늘의 교회가 결코 대신할 수 없다. 물론 과거와 같은 수도원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의 여부는 토론될 주제이다. 하지만 우리의 관심사는 세상 안에서 세상 밖을 사는 교회의 삶의 양식이 실종됐다는 데 있다”고 말했다.
‘2011 미래교회 컨퍼런스’는 이날 이 교수의 강연을 시작으로 오는 30일까지 다양한 강사들이 참여한 가운데 진행된다. 김종생 목사(한국교회희망봉사단 사무총장), 한완상 박사(전 대한적십자사 총재), 이영훈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 정석환 박사(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원장) 등이 강사로 나설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