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금욕·순결… 개신교에도 ‘수도원’ 필요할까

김진영 기자  jykim@chtoday.co.kr   |  

한국교회 위기에 대한 대안으로 최근 주목

새벽 기상, 기도·침묵·노동 후 취침

▲수도원적 삶은 보다 경건한 신앙을 추구한다는 측면에서 환영받기도 하지만 그 기원이 가톨릭이라는 점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크리스천투데이 DB

▲수도원적 삶은 보다 경건한 신앙을 추구한다는 측면에서 환영받기도 하지만 그 기원이 가톨릭이라는 점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크리스천투데이 DB

올해로 25년째 신앙생활을 이어오고 있는 이영민 씨(37·부산 은항교회)는 지난 4월 강원도 태백시 ‘예수원 공동체’에서 3개월 과정의 수련생활을 시작했다. 최근 ‘하산’한 이 씨는 “나 자신의 소명을 발견하고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회복하고 싶었다”며 “신앙에 힘을 얻었고 도전하고 싶은 목표도 생겼다”고 했다.

이 씨가 체험한 예수원에서의 생활은 이랬다.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6시부터 예배를 겸한 침묵기도를 드린다. 오전 7시 20분부터 20분간 아침을 먹은 뒤 오전 8시 30분부터 11시 50분까지 오전 노동에 투입된다. 노동은 전기배선, 가전제품수리, 보일러수리, 문서자료입력, 농작물 재배 등 다양하다. 노동이 끝나면 정오부터 30분간 경건의 시간을 갖고 오후 12시 40분부터 20분간 점심을 먹는다. 이후 오후 2시부터 5시 40분까지는 오후 노동시간이다. 노동이 끝나면 오후 6시부터 20분간 저녁을 먹은 뒤 오후 7시 30분부터는 예배를 드린다. 밤 10시부터는 침묵의 시간으로, 이 때부터 다음 날 새벽 6시까지 예수원은 고요해진다.

일과는 결국 기도와 예배, 침묵과 노동으로 요약된다. 도시의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기도하고 예배하며, 침묵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해 노동한다.

이 씨는 “나같은 경우 선교단체에서 훈련을 받았던 경험이 있어 수련생활이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일과에 힘들어 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며 “평소 도시생활에만 익숙하던 사람들이라 기도과 예배, 침묵과 노동으로 짜여진 하루에 다소 어려움을 느꼈던 것 같다”고 했다.

이 씨는 이같은 수련생활이 한국교회의 신앙적 성숙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매일 세 번 예배를 드렸던 것이 내가 회복될 수 있었던 가장 큰 바탕이 됐다”며 “침묵을 통해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되새길 수 있었고, 이전의 막막하고 두려웠던 생각들로부터도 벗어날 수 있었다”고 했다.

개신교, 기도원 많지만 수도원은 없어
‘수도원적 영성’의 의미 명확히 해야

▲프랑스에 있는 어거스틴파 수도원. 칼빈은 13세기 말 지어진 이 수도원에서 말씀을 증거하고 수사학을 가르쳤다. ⓒ크리스천투데이 DB

▲프랑스에 있는 어거스틴파 수도원. 칼빈은 13세기 말 지어진 이 수도원에서 말씀을 증거하고 수사학을 가르쳤다. ⓒ크리스천투데이 DB


이른바 ‘수도원적 삶’ 혹은 ‘수도원적 영성’에 대한 한국교회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최근 윤리의식 저하가 한국교회의 문제로 지적되면서 금욕과 경건을 강조하는 수도원적 삶이 새로운 대안으로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2011 미래교회 컨퍼런스’ 강사로 나선 이정배 교수(감리교신학대학교 종교철학)는 “이 시대의 디아코니아는 세상 안에서 세상 밖을 사는 수도원적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다”며 “물론 과거와 같은 수도원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의 여부는 토론될 주제이다. 하지만 우리의 관심사는 세상 안에서 세상 밖을 사는 교회의 삶의 양식이 실종됐다는 데 있다”고 했다.

‘수도원적 삶’에 대한 관심은 근래 신학계를 중심으로 일기도 했다. 각종 신학 세미나 등이 ‘영성’과 ‘관상기도’, ‘이머징 예배’ 등 수도원적 삶과 관계된 다양한 주제로 열리면서, 한국교회의 새로운 삶의 양식을 모색했다. 이러한 것들 역시, 한국교회의 위기를 직시하는 과정에서 생겨났다.

의견은 서로 엇갈린다. 세상적 가치에 바탕을 둔 기복적 기도와 정형화된 부흥회식 집회에 대한 대안으로, 조용히 내면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분과의 신비적 합일을 강조한다는 측면에서 지지의 대상이 되는가 하면, 그 기원이 가톨릭이고 무엇보다 성경적이지 않다는 이유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수도원적 삶을 지향하는 국내 개신교 공동체는, 가장 대표적인 예수원을 중심으로 동광원, 한국 디아코니아 자매회, 그나라공동체 등 몇 개가 존재한다. 해외에는 프랑스의 떼제 공동체, 독일의 기독교 마리아 자매회 등이 있다. 이 중 한국의 동광원은 ‘맨발의 성자’라 불린 故 이현필 선생이 세운 한국교회 최초의 토착적 수도공동체로, 최근 관련 논문과 책이 출판되는 등 주목을 받고 있다. 청빈의 삶을 강조하고 순결과 생명외경 등을 핵심적 가치로 삼고 있는 공동체다.

故 이현필 선생의 전기를 펴낸 엄두섭 목사는 과거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개신교에 기도원은 많지만 수도원은 없다. 가톨릭에는 40개의 남자수도회와 100개의 여자수도회가 있고 불교·원불교에도 수도원이 많다”며 “종교분야에서 수도원이 없는 곳은 개신교 뿐이다. 천주교와 정교회의 경우 수도원이 영성의 발원지인데, 정작 영성적 흐름이 필요한 교회에는 수도원이 없다”며 개탄한 바 있다. 엄 목사는 지난 1979년 경기 포천군 화현면에 은성수도원을 설립했다.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배본철 교수(성결대 성령론)는 “세속적 영성과는 구별된 경건, 혹은 신앙인의 삶에 있어 수도사적 깊이를 갖춰야 한다는 의미의 수도원적 영성이라면 환영할 만하다”면서도 “수도원적이라는 말에는 굉장한 함정들이 있다. 수도원적 영성이라는 말은 중세 가톨릭 영성을 총칭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칫 가톨릭 영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말로 오해될 수 있다. 개신교 영성은 엄연히 가톨릭 영성과는 구별되므로 수도원이라는 말을 쓸 때는 반드시 그 명확한 의미를 전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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