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옥박사 기독문학세계] 키릴로프의 신관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도스또옙스끼 문학을 찾아서(19)

▲송영옥 교수(기독문학 작가, 영문학 박사, 영남신대 외래교수).

▲송영옥 교수(기독문학 작가, 영문학 박사, 영남신대 외래교수).

키릴로프의 신관

도스또옙스끼의 기독교적 편력은<악령>에서 또 하나의 인물 키릴로프를 통해 이어진다. 그토록 맹렬하게 샤토프에게 신의 존재를 가르쳤던 스타브로긴은 키릴로프에게 전혀 다른 신관을 주입한다. “신은 이미 죽고 없으니 인간이 곧 신이 되어야 한다”고. 이에 대한 키릴로프의 반응을 보자.

“나는 요 며칠 전 누런 나뭇잎을 보았어요. 푸른 덴 없고 언제라도 말라 있었지요. 바람에 불려 떨어진거지요. 나는 열 살쯤 되었을 때의 겨울, 일부러 눈을 감과 푸른잎이 선명한 나뭇잎을 상상해 보았지요. 태양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소, 그리고 눈을 떠 봤죠. 뭐라고 형언 할 수 없을 정도로 좋더군요. 또 눈을 감았죠.”

“무슨 소리요 그게 무슨 비유를 하고 있는거요?”

“아 아니 왜 비유를 말하겠소. 나는 그저 나뭇잎 얘길 하고 있을 뿐입니다. 나뭇잎은 좋거든요. 뭐든지 좋거든요.”

“뭣이건?”

“그렇소. 사람이 불행한 것은 자기가 행복한걸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 뿐이죠, 단연코 그 뿐이죠. 단연코! 이걸 자각하게 된 사람은 모두 곧 행복하게 됩니다. 일순간도 말요. 저 여자가 죽고, 어린 아이가 혼자 남게 되어도… 그것도 좋소. 나는 홀연히 이 진리를 발견했었죠.”

이어 키릴로프는 이 진리를 자각한 사람은 결단코 죄를 범할 수 없다는 것과, 그 안에 신이 존재한다는 것, 뿐만 아니라 만약 신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허무감 때문에 스스로 자살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아무래도 나는 납득할 수가 없어, 이때 까지의 무신론자들은 신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찌 자살하지 않을 수 있을까.”

키릴로프는 인간이 신의 존재를 인정하든지 아니면 스스로 신이 되었다는 자각을 갖든지 해야만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신이 되었다고 자각하는 사람은 제왕으로 살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면서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못하는 그 누군가는 한 사람 반드시 자살을 해야만 신의 존재를 확인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즉 그는 인간의 삶의 의미와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일을 동일선상의 가치로 본 것이다.

<악령>의 난해성과 그 논란이 끊임없는 것은 이처럼 인간 의식의 모순과 갈등을 전제로 한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인간이 만든 사상이나 정치적 제도나 심지어는 어떤 이상향이라 하더라도 그 자체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신의 가르침을 이용한다면 그 결과는 필연적으로 악을 수반할 수 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기독교적 사상이 사상 자체로 존재 할 때는 절대로 해를 끼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사상이 정치적 목적을 위하여, 어떤 집단의 이데올로기를 위하여, 또는 한 개인의 사상을 위하여 이용당할 경우에는 원래의 기독성에서 일탈되어 악이 될 수 밖에 없음을 암시해 준 것이다.

우리, 잠시 작품 <악령> 속에서 나와 현실로 돌아와 보자. 스타브로긴과 샤토프, 그리고 키릴로프는 부분적으로 크리스천들의 의식과도 매우 닮아있음을 알 수 있다. 진리를 인식함에 있어 우리의 의식과 지성이 겪는 갈등과 대립, 그리고 혼돈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악령>을 대하면서 깊이 받아들인 성경 말씀이 성령에 관한 설명이 아니었는가 싶다. 기독교의 진리를 아는 것도, 진리로 인해 자유케 되는 것도 성령의 도움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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