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기 목사 설교] 사랑과 헌신 (롬 8:35-39)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사랑과 헌신”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사랑하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하게 됩니다. 희생하라고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랑 그 자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희생인 것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가 어머니의 사랑을 잊지 못하는 것은 어머니의 사랑은 조건 없는 헌신적인 사랑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저는 이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 천사를 불러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가져오너라 그렇게 했는데 세 천사가 지구를 돌아다니면서 아름다운 것을 찾았는데 한 천사는 꽃이 너무나 예뻐서 한다발의 꽃을 안고 하늘나라로 올라가고 두 번째 천사는 엄마 품에 안겨서 방실방실 웃고있는 어린 아이의 웃음이 너무나 귀여워서 그 웃음을 갖고 천국에 올라갔는데 세 번째 천사는 어머니의 사랑에 감격해서 어머니의 사랑을 갖고 천국에 올라갔습니다. 올라가는데 시간이 걸리니까 꽃을 가지고 간 천사는 꽃이 다 시들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어린 아이의 방실방실 웃는 모습을 가지고 간 천사는 시간이 걸리니까 어린아이가 자라면서 아주 짖꿎고 사나운 녀석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가도 어떤 형편에도 변하지 않는 어머니의 사랑을 가지고 간 천사는 하나님의 찬양을 받고 칭찬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가 왜 부모님의 사랑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으로 생각합니까? 그것은 부모님의 사랑은 위선적이거나 말로만 하는 사랑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의 사랑은 그 어떤 조건도 없이 변치 않는 헌신적인 사랑인 것입니다. 저는 어제 아버지, 어머님 묘지에 성묘하러 갔는데 마음에 만감이 사무쳤습니다.

부모님 살아있을 때는 부모님의 사랑을 느끼고 감사를 못했는데 이제 떠나시고 난 다음에 무덤에 와서 그것을 느끼고 마음에 감동을 느낀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어버이 살았을 때 섬기기를 다하여라. 죽고나면 애달프다 어찌하리 평생에 고치 못할 이것밖에 없다는 어느 시인의 말과 같이 여러분, 여러분 우리 부모에 대한 사랑과 감사를 살아있을 때 더 많이 하시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본론>

1. 아브라함의 하나님 사랑

우리는 성경적으로 보면 첫째로, 아브라함의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읽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아들을 얻었습니다. 70세에 얻은 것도 아니에요. 100세에 아들을 얻었습니다. 그러니 그 아들이 얼마나 귀하고 귀합니까? 그런데 이삭이 이제는 10대 소년이 되었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잠자리에 들어가고 아버지 팔다리도 만져주고 아버지 수염에 붙은 먼지도 털어주고 아버지의 큰 친구였습니다. 아버지는 아예 사라는 뒷전에 있어요. 아들이 너무 좋아서 아들과 같이 지낸다고 사라는 어디 있는지 정신도 차리지 못했습니다. 그랬는데 하나님께서 하루 청천 벽력 같은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에 대한 시험인 것입니다.

창세기 22장 1절로 2절에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야훼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우리가 글로써 읽으니 그렇지 실제로 당하는 아브라함은 얼마나 충격적이겠습니까? 그 사랑하는 아들을 모리아 산에 가져가서 그냥 제물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번제라는 것은 죽여서 각을 떠서 장작불에 얹어서 태우는 것이 번제인 것입니다. 하나님 명령입니다. 그러나 그 명령에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자기가 필요할 때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이 거대한 희생을 요구하실 때 거기에 과연 아브라함이 응할 것이냐 우리는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남의 일이니까 쉽게 생각하지만 자기가 아브라함의 처지에 있다고 생각할 때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창세기 22장 9절로 10절에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이삭과 함께 모리아산으로 올라가는데 이삭이 장작을 걸머지고 손에 칼을 들고 횃불을 가지고 아버지와 함께 올라가면서 물었습니다. “아버지, 장작도 내가 걸머지고 있고 칼도 가지고 있고 불도 가지고 있는데 제사드릴 어린양은 어디 있나이까?” 아버지가 털썩 주저앉을 지경 아니겠습니까? 나 같으면 주저 앉았을 것입니다. 아버지가 아들 이삭을 쓰다듬으면서“야, 제물은 오늘은 특별하다. 하나님이 예비하신다.” 이상하다.. “그래요? 하나님이 예비하세요?” 그래서 둘이서 재단을 만들고 함께 장작을 깔고 그 다음에 “아버지 누가 제물입니까? 어디가 제물이 있습니까? “너를 잡아서 제물로 드리라고 한다. 팔 내놓아라.” 아버지가 묶었습니다. 다리를 묶고 재단에 묶어 놓았습니다.

내가 볼때 아브라함만 하나님을 절대 순종하고 사랑한 것이 아니라 이삭도 보통 아들이 아닙니다. 10대 쯤 되면 아브라함에게 “아버지 미쳤군요. 정신병원에 가야 되겠습니다. 나 못죽어요.” 발버둥치고 반항할 것 아닙니까? 아무말도 안하고 아브라함이 제물로 바치려고 할 때 아브라함에게 몸을 내놓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칼을 들고 잡으려고 높이 들어 칠려고 할 그 때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서 말했습니다.

“야훼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 22:11-12)

하나님 사랑한다고 말은 굉장히 쉽지만 그 사랑이 증명되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 세상에 살면서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남편이 아내보고 나 당신 사랑합니다. 아내도 남편보고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그 사랑은 증명되지 않는 사랑인 것입니다. 증명이 되면 진짜 사랑인 것입니다. 그런데 증명된 사랑을 한다는 것은 굉장히 희생이 따라야 되는 것입니다. 희생없이 사랑을 증명할 수가 없습니다. 부모님은 자식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자식을 위해서 부모님은 있는 힘을 다해서 희생을 하는 것입니다. 아끼지 않습니다. 그러나 부부간만 하더라도 서로 아낍니다. 형제간은 더 아끼구요. 이웃은 계산해보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것은 증명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2. 룻의 시어머니 사랑

오늘 우리가 성경에 보면 룻의 시어머니 사랑을 보면 감동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오미라는 이스라엘 여인이 큰 흉년이 다가오니까 흉년을 피하기 위해서 그 남편과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땅으로 살러 갔습니다. 성경에 보면 나오미는 사사시대에 흉년이 들자 남편과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을 데리고 모압땅으로 이주했더라. 그후 남편 엘리멜렉과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이 죽고 두 며느리인 오르바와 룻이 남았더라.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너희는 각각 너희 어머니 집으로 돌아가라. 오르바, 맏며느리는 설득을 받고 친가로 돌아갔는데 둘째 며느리인 모합여인 룻은 자기 족속에게 돌아가지 않고 베들레헴으로 돌아가는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유대땅으로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것입니다.

룻기 1장 16절로 17절에 보면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야훼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엄청난 사랑의 고백인 것입니다.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이처럼 사랑하고 따르겠다는 것 나는 룻 이외에는 별로 본적이 없는것 같아요. 대단한 여자입니다. 어머니가 가시는 곳에 나도 간다. 어머니가 머무는 곳에 나도 머물겠습니다. 어머니 백성이 내 백성이 되고 어머니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고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 나도 죽고 어머니가 묻히는 곳에 나도 묻히리니 죽는 일 이외에 어머니를 떠나지 않으리라. 자기의 민족도 자기의 친족도 심지어 자기의 종교도 다 버리고 어머니를 따라 가겠다는 사랑의 고백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룻이 어머니를 따라서 모압 땅에서 고향땅으로 돌아와서 어머니를 섬기는 소문이 온 지역에 다 퍼져서 사람들마다 비록 이방인이었지만 룻을 칭찬하고 찬양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를 섬기기 위해서 룻이 보리밭에 가서 보리를 베는 사람들 뒤에 들어가서 이삭을 줍는데 그 보리밭이 보아스라는 아주 유능한 부잣집 보리밭이었습니다. 보아스는 부자일 뿐 아니라 나이 먹은 총각이에요. 허허허. 그래서 그 시어머니가 작전 계획을 짜서 보아스에게 룻이 나아가도록 잘 타일러서 룻하고 보아스하고 서로 사랑하게 되고 눈이 맞아서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보아스는 굉장한 부잣집이니까 부잣집 부인이 되었는데 그것이 보아스는 그 아들을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다윗의 조부 결국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룻은 시어머니를 잘 공경하여 믿음과 사랑으로 승리한 여인이었고 예수님의 조상이 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이방인이 유대인도 아닌데 예수님의 조상의 혈통으로 하나님이 선택한 것은 룻이 그 시어머니를 사랑한 그 절절한 사랑에 하나님조차 감동한 것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 제일이라고 한 것입니다.

폴란드의 바사 공작과 부인 카타리나 자겔로의 사랑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바사 공작은 반역죄의 누명을 쓰고 종신 징역을 선고 받았습니다. 그러자 부인인 카타리나가 왕을 찾아가서 애원했습니다.“저도 남편과 함께 복역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왕은 깜짝 놀라서 카타리나에게 물었습니다.“부인, 종신형이 무엇인지 압니까? 종신형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 같은데 종신형은 죽을 때까지 감옥에 있어서 나오지 못하는 무서운 형벌이오. 아무 죄도 없는 당신이 왜 그런 옥살이를 하려는 것입니까?”

카타리나는 손가락 끼어 있던 반지를 빼서 왕에게 보여주면서 애원했습니다. 그 반지에는 “모르스 솔라(Mors sola)”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모르스 솔라는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하나’라는 글자를 반지에 새겨 넣었습니다. “나는 결혼할 때 우리 남편에게 이 반지를 받고 나도 이런 반지를 주었는데 그것에는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하나라는 글이 있는 것처럼 내 남편이 종신형을 받았다 할지라도 그는 여전히 나의 남편이고 나와 한 몸입니다. 그러니 나도 남편과 같이 감옥에 있게 해 주십시오.” 결국 카타리나는 남편과 한 감방에 투옥되어 17년을 함께 복역했습니다. 그리고 왕권이 바뀌면서 새로운 왕이 들어와서 그 사랑에 감탄해서 석방시켜 주었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어려움이 올 때 기쁜 마음으로 고통을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요사이 이런 이야기를 하면 소설이라고 말하겠지만 구라파에서는 진정한 사랑을 말할 때는 꼭 폴란드의 바사 부인 카타리나 자겔로의 이야기를 하곤 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인간 사랑

셋째로, 하나님의 인간 사랑을 이에 비교해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드리는 것 또한 룻이 시어머니를 따라 자기 고향산천을 버리고 따라온 것은 큰 희생이요 위대한 사랑이지만 하나님이 우리에 대한 사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어떻게 해요? 독생자를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우주와 만물보다 더 중요한 것이 독생자 예수인 것입니다. 그 예수님을 우리에게 주신 것은 우리를 굉장히 사랑하고 가치있게 생각하시기 때문에 그 제물로 예수님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증거된 사랑이 독생자를 주신 것입니다.

로마서 8장 31절로 32절에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이 세상에 험하고 반역이 많고 참소가 많고 고통이 많은 곳에 과연 하나님이 나를 돌보아주시겠는가 과연 하나님이 나와 같이 계시겠는가 퀘스쳔이 생길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그러나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고 그 아들을 주신 하나님이 무엇을 선물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하나님이 우리를 이처럼 귀하게 여기시는데 이 귀한 대상을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장 귀한 것을 주고서 산 보화를 쉽게 내버리겠습니까? 안그러지요. 여러분은 하나님의 보화인 것입니다. 그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아 피흘려 그 대가로 값주고 산것이 여러분 자신인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비하할 때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마귀의 참소를 많이 받아서 마귀가 너같은 죄인, 너같은 허물 많은 녀석, 너같은 보잘것 없는 너가 무슨 가치가 있느냐. 너는 쓸모없는 인간이다. 자꾸 이렇게 마귀가 속삭이기 때문에 자기가 마음 속에 자기를 비하하고 마는 것인데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 아들을 제물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말하기를 아들을 제물로 주신 하나님께서 그 아들과 함께 무엇을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우리가 이런 확실한 믿음만 가지고 있으면 담대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보통 사랑입니까?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지금도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고 계신다. 내가 무엇이기에 날 위해서 기도하실까? 가짜말로 하나님께서 성경에 기록하셨겠습니까?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져도 일점일획도 변함이 없는 말씀이 말씀하기를 지금도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보좌 우편에서 기도하신다. 다른 기도는 안들어 주셔도 예수님의 기도는 하나님이 안 들어 주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동하여 선을 이룬다. 결국에 좋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예수님이 사랑한 그 사랑에서 끊을 수 있는 힘이 어디에 있는지 성경은 바울 선생이 나열하고 있는 것입니다.“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주님이 한없이 사랑해 주시고 있다는 믿음만 있으면 그 사랑에 의지해서 우리는 희망을 가지고 넉넉히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이 마음속에 있으면 언제나 희망이 떠오르는 것입니다. 꿈이 넘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믿으면 오늘은 어제보다 내일은 오늘보다 다음달은 금번달보다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좋게 만들어 줄 것을 믿고 꿈을 가지고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 고난을 능히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3-39)

그러니 한번 하나님이 여러분을 불러서 사랑하시면 하나님과 여러분 사이를 끊을 힘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죽을 때까지 버리지 않고 사랑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실한 지식을 가지고 신뢰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 오다가다 버림받은 여러분을 주워서 기른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을 하나님은 만세전에 태어나기 전에 보시고 아시고 친히 택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여러분을 택한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하나님이 택해 주셨다.

저는 아홉 형제간 중에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우리 애들이 형제간들이 자라면서 장난을 많이 했어요. 형제들이 그룹을 지어가지고서 저놈 우리 골탕 먹여 주자. 그러면 뭘 하느냐. 누나와 저와 동생 한 둘을 데리고 저 막내에게 가서 야, 너는 모르지? 뭐 몰라? 아버지 어머니가 너 다리밑에서 주워온 것 모르지? 비밀이야. 우리만 알고 있어. 틀림없이 웁니다. 엉엉 엄마 정말 나는 주워 왔어? 거짓말인줄 알면서도 우리가 재미가 있었는데 내가 당해보니까 거짓말이면서도 마음에 깊은 충격으로 왔습니다. 한번은 형제들이 오빠 오빠! 왜 그래! 아버지 어머니가 이야기하는데 가만히 내가 비밀로 들어보니까 오빠는 남의 집에서 버림받은 애를 아버지가 주워 왔다고 그러더라. 비밀이야. 절대 말하면 안돼. 굉장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나는 이 집안에서 버림받은 사람이구나. 주워온 사람이구나.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차별대우를 받는 것 같아요. 모든 일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차별하는 것이 생각이 나서 내가 울면서 어머니에게 가서 어머니, 진짜로 말해 달라고 내가 참 아들이요, 주워온 아들이요? 어머니가 날 낳았오? 주워 왔오? 그러면 어머니가 나를 끌어 안으면서 너희들 또 장난했구나. 내가 너를 낳았지. 내가 너를 왜 주워와? 내가 너를 배 아파서 낳은 자식인데 그런 말 믿지 말아라. 그러니까 마음에 안심이 되더라구요. 택함받은 사랑은 주워온 사랑보다 다르지 않습니까?

에베소서 1장 11절에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다.

하나님께서 그의 뜻의 결정하시는 일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소원하셔서 하나님을 통해서 나은 하나님의 자녀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수님까지 내어주신 희생적인 사랑으로 사랑하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되는 것입니다.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우리들을 얼마든지 쓰레기같이 내어 버릴수가 있는데 어찌하여 왠말인지 왠일인지 나를 구원해 주셨나. 은혜를 깊이 느낄수록 더욱 깊이 감동하고 이것을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를 택했다. 네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알기 전에 나는 너를 내 자식으로 예정하고 때가 따라 너를 불러서 하나님 자식으로 만들었다. 그러므로 너는 나의 사랑받는 자식이다. 내가 원해서 택한 자식이요, 내가 원해서 예수님의 성령을 통해서 거듭나게 만들었으니 너는 나의 사랑받는 자식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나는 하나님이 성령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성령은 보통 영이 아닙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입니다. 하나님의 영을 우리에게 부어 주실 때는 친히 자식이 아니고는 하나님의 영을 부어주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로 18절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오늘날 주님이 천국 올라가시고 난 다음에도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놓지 않겠다. 의지할 곳 없는 존재로 내버려 놓지 않겠다. 내가 성령을 보내서 너와 같이 있게 하겠다. 성령은 보혜사입니다. 보혜사라는 것은 파라클레토스라는 헬라어로써 하나님께로 보내심을 받아 우리를 돕기 위해서 항상 우리와 같이 계신 이인 것입니다. 성령은 프뉴마토스, 바람과 똑같은 말을 씁니다. 바람도 프뉴마토스요, 성령도 프뉴마토스인데 공기가 없는 곳에 우리가 살 수 있습니까? 한번 쉼호흡을 해보십시다. 휴... 바람이 어디 있습니까? 멀리 있습니까? 바로 나와 같이 있잖아요. 성령님이 어디 계신지 아세요? 바로 나와 같이 계신 것입니다. 이 자리에 여기 계세요. 여러분과 함께 계세요. 구만리장천 멀리 계시지 않아요.

그는 여러분을 돕기 위한 하나님의 영으로써 항상 같이 계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따라 말씀하세요. 성령님, 저는 성령님을 인정합니다. 환영합니다. 모셔드립니다. 의지합니다. 나를 붙들어 주시고 도와주시옵소서. 그렇게 하면 성령께서 인격적인 하나님이시라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무력하게 살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셔서 하나님의 영을 부어 주셨는데 하나님은 전지전능 무소부재하신 분이고 그분의 영은 전지전능 무소부재하신 능력으로 우리와 같이 있어서 도우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못받는 성도는 어리석은 성도인 것입니다.

저는 오래 전부터 어떤 사람들이 저에게 이렇게 공격하는 것을 당했습니다. “조용기 목사는 강단에서 언제나 영광의 주만 설교하고 고난의 주를 많이 말하지 않는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십자가를 짊어지고 이 땅에서 고난을 견디면서 살아야 하므로, 교회는 고난의 주를 강조해야지 조용기 목사처럼 언제나 그리스도를 통해 영광을 체험하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신학적으로 문제가 있다.” 그런 공격을 늘 저에게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랜 신앙생활 동안 많은 시련과 난관을 겪어 보았습니다. 폐병으로 죽다가도 살았고 살기가 힘들어서 먹고살 수 없는 고통 가운데서도 살아왔고 시련과 환난도 겪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무엇이냐.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광이 나의 삶속에 있을 때 어떠한 어려움이 다가와도 살아계신 하나님이 있는데 무슨 잔소리냐. 주여 믿습니다. 그리고 믿고 기도할 수 있지 하나님 영광을 체험하지 못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고난이 다가오면 쉽게 항복하고 고난에 무릎을 꿇고 마는 것입니다. 영광의 체험이 제 인생을 변화시키고 그 어떤 십자가의 고난도 능히 걸머질 수 있는 힘이 있은 것은 바로 영광의 체험 때문인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시험과 환난이 있습니다.

그러나 시험과 환난과 동시에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수많은 영광의 체험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광을 바라볼 때 지금 당하는 환난과 시험도 하나님이 좋게 만들어 주신다. 변화시켜 주신다.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을 믿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광에 대한 설교를 하는 것입니다. 영광 중에 제일 큰 영광이 성령충만의 영광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바울 선생도 제일먼저 물은 질문이 너희가 믿을 때 성령을 받았느냐. 그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영광의 하나님이 속에 계시기 때문에 성령의 감동으로 기도도 하고 찬송도 하고 성경도 읽고 하나님께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으므로 어떠한 시험이 다가와도 마음에 힘과 용기를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고 성령의 권능으로 기사와 이적을 체험할 수 있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앞에 나와서 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 속에 부은바 되는 체험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시어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게 하신 것이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거를 뚜렷하게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너는 내 자식이다. 내 딸이다. 내 아들이다. 그러므로 내가 같이하므로 두려워 말고 놀라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천국을 예비하신 사랑인 것입니다. 우리의 죽음은 영생의 시작일 뿐인 것입니다. 죽어서 없어진다면 우리처럼 예수 믿는 사람보다 불쌍한 사람이 없어요. 그러나 우리는 죽음이란 천국에 들어가는 시작에 불과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절로 3절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하나님 아버지도 너를 사랑하고 나도 너를 사랑한다. 아버지와 내가 합쳐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해 놓았다. 썩지 않고 쇠하지 않고 더럽지 않은 영원한 영광의 처소를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는다는 것은 우리가 천국이 있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영광스러운 천국에 생각이 죽음의 공포를 극복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분, 다 죽습니다. 사람이 한번 나서 죽는 것은 정한 이치요 죽고 난 다음에 천국 아니면 지옥으로 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제 나이를 먹어가면 어떤 때는 깜짝 놀랄 때가 많습니다. 내가 이렇게 나이를 먹었느냐. 저는 요사이 가만히 생각하면 어쩌다가 내가 70이 넘었느냐. 내 속으로 생각하기는 아직까지도 젊은 2,30대 같은데 나이는 속일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 친구들이 걔도 가고 걔도 가고 걔도 갔는데 그 다음은 너 갈 차례가 오지 않겠느냐. 정신 차리고 정리하고 잘 살아야지. 안그러면 낙오되면 큰일이다. 그런 생각이 안날 때가 없습니다. 종종 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에 겁나지 않고 평안한 것은 우리 집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살 때에도 우리가 집이 없고 올데 갈데가 없는 홈레스가 되면은 얼마나 불쌍합니까? 천국에 여러분 위한 확실한 집을 주님께서 예비해 놓으셨으니 두려워 말고 놀라지 마십시오.

4. 우리들의 하나님 사랑

그리고 우리는 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어떻게 보답하며 살아야 되겠습니까? 우리가 최후로 이 땅에 사는 생활은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면서 살아야 될 것인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산 제물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전체를 재단에 얹어 놓고 하나님께 산 제물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절로 2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제물이라는 것은 산 제물은 없습니다. 죽어서 제물로 드리지요. 제물은 짐승을 잡아서 각을 떠서 재단에 얹어서 불로 태워 제물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있으면서도 죽은 제물과 같이 하나님께 내어 맡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속에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온전하고 깊으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성령께 의지해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사는 것이 산 제물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사랑에 대한 보답인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에 보면은 마리아의 헌신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오라버니 나사로가 죽었을 때 예수님이 오셔서 무덤에서 살려 일으켜 주신 그 은혜 너무나 감격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제 십자가에 못박히기 전에 유월절에 마리아와 마르다와 나사로의 집에서 잡수시는데 마르다는 부지런히 음식준비한다고 바쁜데 마리아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님 앞에서 옥합을 던져서 탁 때리니까 바싹 깨집니다. 그 향료가 굉장히 비쌉니다. 옛날 유대 나라에서는 시집갈 때 가져간 보증물로써 이 옥합을 가져갔는데 이 옥합에 향료를 예수님 머리에다가 붓습니다. 그러니 향기가 방에 꽉 들어찼습니다.

그러니까 가룟 유다가 뭐라고 했냐면 이 무슨 낭비냐? 이 귀한 옥합의 기름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주었으면 얼마나 좋은 일 할 것인데 왜 이를 낭비하느냐? 그때 예수님께서 내버려 두어라. 그를 괴롭히지 말라. 그가 나를 위해서 참 좋은 일을 했다. 가난한 사람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므로 언제든지 하고 싶으면 한다. 그러나 나는 항상 너희와 같이 있지 않고 하늘나라에 간다. 이 여자가 한 일은 내 장사를 위해서 기름 부어 예비해 준 것이다. 주님께서 굉장히 흥분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올라가는데 위로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좋을 때는 전부 주님을 향해서 박수를 치고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고 웃옷을 벗어 깔고 감람나무를 꺾어서 길거리에 깔고 했는데 일주일 후에 예수님을 붙잡아서 빌라도의 법정에 섰을 때 모든 사람들이 저를 십자가에 못박으소서. 못박으소서. 고함을 친 것입니다. 인심 조석변인 것입니다.

이런데 주님은 죽음을 감당할 수 있는 위로가 필요했는데 이 마리아가 옥합을 깨뜨려 기름을 머리에 바르므로 위로가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 살면 어떤 위대한 사람도 위로가 필요합니다. 예수님도 위로가 필요했는데 우리라고 해서 위로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대통령도 위로가 필요하고 장관도 위로가 필요하고 사장님도 위로가 필요하고 교회 우리 장로님들도 위로가 필요하고 조용기도 위로가 필요합니다. 위로를 받을 때 모든 슬픔과 고통과 괴로움을 극복할 수 있고 살아나갈 수 있는 용기와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위로를 받지 못하고 멸시와 천대를 받으면 용기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헌신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위로를 받으면 이 사람들을 위해서 더욱더 일해야 되겠다는 마음에 헌신하는 마음이 생기는데 위로가 없으면 될대로 되라. 까짓것 내가 뭣 때문에 충성하느냐. 그런 막가는 생각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기를 온 천하에 어디에서든지 복음을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리아가 한 일을 오늘 이 자리에서 여러분에게 말하지 않습니까? 이것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해서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주님이 위로를 받았던지 천하에 복음이 증거되는 곳마다 이 여자가 내게 한 일을 전하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을 어떻게 하느냐하면 하나님이 시키시는 데로 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안시킨 일을 하지 말고 시키는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 15절로 17절에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정하신 뜻이 계십니다. 그 뜻을 우리가 알기를 원하면 말씀과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깨닫게 해주시는데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내 마음 내 뜻대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제물을 드릴 때 가인의 제물은 하나님이 물리치고 아벨의 제물은 받았는데 가인은 농사를 지은 농산물로써 제물을 드렸고 아벨은 어린양을 잡아 제물을 드렸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가인과 아벨에게 너희가 세상에 나가서 나중에 나에게 제사 드릴 때 어린양을 잡아서 피를 흘려 제물로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게 하나님의 뜻인데 가인은 내가 지은 농산물이 너무 좋다. 하나님 내 농산물을 받으소서.

자기에게 좋았지 하나님에게 좋은 것이 아닌데 하나님께 농산물을 바쳐서 하나님께 거부당하고 아벨은 하나님의 뜻대로 어린양을 잡아서 제물로 드려서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와 같이 나보기에 좋다고 해서 하나님 보기에 좋은 것 아닙니다. 나 보기에는 안 좋은것 같아도 하나님이 좋아하면 거기에 순종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에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 다음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는 것은 나의 삶의 의미와 가치와 기쁨과 행복이 하나님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제일주의인 것입니다. 나는 내 지위나 명예나 권세나 돈이나 부귀나 영화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한다. 삶의 의미보다 가치, 기쁨과 행복이 전적으로 하나님이 되어야 된다. 그것이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고 여러분의 사랑을 만끽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 19절로 20절에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모든 나의 삶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14장 8절에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살아도 주의 것이고 죽어도 주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온전히 우리를 받아 주옵소서.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크게 기뻐하실 것입니다.

최근 이민아 씨의 간증집 「땅 끝의 아이들」이 출간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큰 은혜와 감동을 주었습니다. 이민아 씨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한국의 지성 이어령 씨의 딸로 미국 로스쿨을 졸업하고 캘리포니아 주 검사로 임용되었습니다. 1989년부터는 LA 지역 부장 검사로 이 시대의 성공한 여성의 대표적인 한국 여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민아 씨의 성공적인 삶의 속내를 보면 많은 고통이 따랐었습니다. 결혼하여 미국으로 건너간 이후 이혼의 아픔을 겪어야 했고, 그 후 암이 발생하였으며 눈이 실명하는 위기까지 처했습니다. 게다가 둘째 아이가 유치원 무렵부터 자폐증 증세를 나타내며 장애를 보였고, 첫 아이는 느닷없이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민아 씨는 이러한 고통 가운데 1992년에 예수님을 영접하고 신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민아 씨는 어느 날 그 동안 믿어지지 않던 하나님 말씀을 읽고 있는데 갑자기 말씀이 커지면서 하나님의 얼굴이 그녀 앞에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고백합니다. 그러자 주님의 얼굴이 보이면서 세상이 보이지 않고, 나와 세상은 간 곳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예수님이 마음속에 뚜렷이 나타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진정으로 만나자 모든 좌절과 절망과 슬픔에서 자유와 해방을 얻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에게 복된 소식을 전해주고 포로된 자에게는 자유를 주시고 눈 먼 자는 다시 보게 해주시고 눌린 자는 자유케 하고 하나님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는 역사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이런 체험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마음에 부정적인 생각이 사라지고 긍정적인 복된 생각이 들어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어떤 꿈에서든지 자유를 얻습니다. 죄, 질병, 저주, 가난, 낭패와 실망의 포로된 자에서 해방이 된 체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영적인 새로운 지식, 새로운 꿈, 새로운 믿음, 새로운 인생 고백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마귀의 억압에서 해방과 자유를 얻고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 미움, 원한이 사라져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역사를 베풀고 은혜를 마음 속에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바로 이민아씨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사랑하며 그리스도에게 기도하다가 예수님이 뚜렷이 마음속에 성령으로 나타나 그리스도를 만나자 이혼한 슬픔, 암에 걸려서 좌절하고 절망하며 눈의 시력을 잃은 그 맏아들 죽고 둘째 자식 정신적으로 온전하지 못한 자식 데리고 모든 것이 캄캄한 것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슬픔도 사라지고 고통도 사라지고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도 사라지고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예수 믿는 것이 보통이 아닙니다. 예수 믿으면 이러한 변화와 역사를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조금 만나면 조금 체험하고 많이 만나면 많이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체험을 하는 것입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이 끝까지 모든 시험과 환난을 이기고 신앙을 유지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꾸 하나님과의 사이를 갈라 놓았던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하나님이 제거해 주셨습니다. 결국 완전히 섬마을 아줌마 같이 될 정도로 마지막 자존심, 교양, 고집, 내가 누군데 하는 마음 등을 내려 놓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치유의 손길이 임하기 시작했다고 간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나니까 세상의 자존심도 교양도 고집도 내가 그래도 검사인데... 그 마음도 다 내려놓고 완전히 빈손들고 주님을 향하니까 주님의 은혜가 그 자리를 메꿔서 풍성한 주님의 은혜를 받게 된 것입니다.

그녀는 그 다음에 암과 실명의 위기에서 완전히 치료 받고, 둘째 아이의 자폐 증상도 완전히 사라지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2009년에 목사 안수를 받고 이제는 온전히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간증하며 청소년 사역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산 제물이 되어 모든 것을 제단 위에 올려놓고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할 때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풍성한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놀라운 일들을 체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나와 세상은 간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일 때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와 해방의 놀라운 체험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 신앙이란 이론이 아닙니다. 체험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고 없는 자 가운데서 있게 되고 아픈 자 가운데서 치료받는 체험을 하는 것이 신앙인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남에게 생명을 증거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예수님은 성령으로 이 자리에 계셔서 여러분에게 손을 활짝 내밀고 나에게 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데도 죄지은 그대로 좋다. 못난 그대로도 좋다. 빈손든 그대로도 좋다. 나를 사랑해서 내게 맡겨라. 네 명예도 지위도 금전도 다 내게 내놓으라. 나에게 의지하라. 내가 책임져 주마. 주님께서 이와 같은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결론>

인간의 참 기쁨과 행복은 우리 하나님 앞에서 사랑하고 사랑받는데 있는 것이고 인간관계에도 사랑받고 사랑할 때 행복해지고 기뻐지는 것입니다. 돈 많다고 행복하지 않습니다. 지위나 명예가 있다고 행복하지 않습니다. 권세 있다고 행복하나요? 아닙니다. 내가 사랑할 수 있고 내가 사랑받을 수 있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사랑받고 이웃을 사랑하고 이웃에게 사랑받는 사랑 속에 있을 때 마음 속에 달콤한 행복을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사랑이란 항상 이기주의적이라 불완전한 사랑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완전한 사랑입니다. 그 사랑 안에서만 영원한 희망과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 2011. 9. 11.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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