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反) 월스트리트 시위에 기독교인이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이 문제가 미국 현지 기독교인들에게 진지한 고민이 되고 있다.
지난 달 17일 시작되어 한 달째를 넘어선 시위에는 이미 많은 기독교인들이 지지와 참여를 보태고 있다.
경제위기, 빈부격차, 실업률 상승이라는 배경 속에서 이와는 무관하게 부를 축적하는 데 몰두하는 1% 최고 부유층에 대한 분노가 가져온 반 월가 시위는 미국과 세계 경제 시스템의 부도덕성으로 비롯된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항의의 메시지로 이해되고 있다.
이같은 시위는 하나님의 경제 정의의 실현을 추구하는 기독교인들에게도 큰 공감대를 형성하며, 차츰 더 많은 기독교 단체와 교회, 교인들의 동참을 이끌어내고 있다.
반 월가 시위에 공개적으로 지지를 표명한 미국의 최대 기독교 사회정의 그룹인 소저너스(Sojourners)의 짐 월리스 회장은 “그들이 가난한 자의 편에, 굶주린 자의 편에 서 있다면 그들은 예수님의 편에 서 있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시위에 참여하고 있는 뉴욕 리버사이드처치 스테판 펠프스 목사는 “우리와 시위대의 목표는 동일하다. 그것은 바로 다수가 소수를 보호하는 세상으로의 변화다”라고 말했다.
신학도인 메레디스 캐딧 역시 “예수님은 언제나 가난한 자와 거절당한 자들의 편에 서서 말씀하셨다. 이것이 내가 여기에 온 이유이다. 예수님 또한 여기 계셨을 것”이라고 시위에 나서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의 이같은 공감과 참여에 우려를 표하는 기독교 내 목소리도 존재한다. 미국 종교와민주주의연구소(IRD) 마크 툴리 회장은 “기독교 진보주의자들의 반 월가 시위에 대한 평가는 과장된 경향이 있다”며 “채무 탕감, 건강보험과 학비의 국가 지원, 큰 정부로의 변화 등 시위대들의 요구는 경제에 대한 기독교의 전통적 가르침과는 반대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시위를 주도하는 젊은이들이 갖고 있는 고민들에 대해 공감한다면서도 툴리 회장은 “성경은 우리에게 어린 아이의 일을 버리라 하신다”며, “타락한 세상의 어떤 정부와 시스템도 지금보다 더 큰 불의 없이 부를 평등하게 분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혜롭고 분별력 있는 기독교인이라면 세속적 유토피아의 꿈을 버리고 다른 교인들과 더불어 공공선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내 유명 기독교 보수 블로거인 빌리 할로웰은 “기독교 진보주의자들이 성경의 가르침과 사회주의 어젠다를 혼동하고 있다”며 “시위대는 이 사회의 경제적 문제가 사원은 해고하면서 세금을 가로채는 금융기관이나 기업의 부패에서 비롯된다고 하지만, 성경은 분명 개인의 경제윤리 또한 가르친다. 자기가 갚을 수 있는 만큼만 빌리고 써야 하는 책임도 우리에게 있다. 예수님이라면 지금의 문제가 모두 은행과 기업의 잘못이라고 하셨을까? 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편 반 월가 시위는 마치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일어난 ‘아랍의 봄’을 연상케 하며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시위가 폭력 사태로 번질 수도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는 가운데 기독교인들이 시위 참여 여부를 떠나 시위대에 올바른 방향성을 제시해야 할 역할이 대두되고 있다.
PCUSA 총회 사역자로서 시위에 가담하고 있는 허버트 넬슨 목사는 “시위대 안에는 훈련이 부재한다. 바람직한 리더십과 방향성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시위는 튀니지나 이집트에서 우리가 봤듯이 폭력으로 바뀔 수도 있다.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권위를 가진 종교가 이들의 인도자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