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옥박사 기독문학세계] <어린왕자>의 아이들(2)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두번째 이야기… “길들여진다”에 대하여

▲송영옥 교수(기독문학 작가, 영문학 박사, 대신대 외래교수).

▲송영옥 교수(기독문학 작가, 영문학 박사, 대신대 외래교수).

여섯별의 순례를 마치고 지구로 돌아온 어린왕자는 어느날 우연히 아름다운 장미가 가득 펴있는 정원을 보게 된다. 그런데 그 순간 이제까지 단지 한 송이의 장미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늘 부자라 생각했던 자신이 갑자가 너무나 초라하게 느껴진다. 어린 왕자는 속상했다. 그래서 풀밭에 엎드려 울고 만다. 그는 너무나 외롭고 쓸쓸하여 여우에게 친구가 되어달라고 손을 내민다. 그러나 여우는 아직 ‘길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에 친구가 될 수 없다고 거절한다. “내겐 넌 아직 다른 아이들과 다를 바가 없는 한 아이에 불과해.” 여우의 말이다.

어린왕자가 초라함을 느끼고 상처를 받은 것은 자기 것보다 더 많은 장미꽃들을 보았음이다. 여우는 어린이라 할지라도 ‘길들여지기’ 전에는 어른들의 속성과 다를 바 없음을 알려준다. ‘길들여지지 못한’ 어린아이는 어른처럼 겉으로 드러난 것에 마음을 쓴다는 뜻이다. 무조건 외형적으로 보여지는 것에 영향을 받으며, 또 경쟁하여 남에게 군림하고자하는 속성도 내면에 자리잡고 있다.

그럼 ‘길들여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어린왕자에게 들려주는 여우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지금 너는 나에게 다른 한 아이와 다를 바 없지만 만약 너가 날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하게 되지. 내겐 너가 이 세상에서 오직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될꺼야. 너가 날 길들인다면 마치 태양이 떠 오르듯 내 세상은 환해질거야. 나는 다른 발자국 소리와 구별되는 네 발자국 소리를 알게 될거구. 저길 봐! 밀밭이 보이지? 난 빵을 먹지 않으니까 밀밭은 내게 아무 의미도 없어. 그건 슬픈 일이지. 그러나 넌 금빛 머리칼을 가졌어. 그러니까 너가 날 길들인다면 밀은 금빛이니 너를 생각나게 할 거야.” ‘길들여진다’는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독특한 의미를 지닌 존재로 다시 태어남이다.

그날 나는 학생들로 하여금 <어린왕자>에서 찾은 ‘길들여지다’는 의미를 정리하여 발표하게 했다. 그리고 자신이 길들여진 경험을 서로 나누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성경의 진리를 문학이라는 형식을 빌려 좀더 구체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아마 마태복음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어린 아이와 같이 되라’는 것은 보여지는 어린아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지 모르겠다. 어른이든 어린아아든 ‘예수에게 길들여지면’ 그가 바로 천국에 갈 수 있는 사람이란 뜻 아닐까.

물론 여우는 어린 왕자와 작별 인사를 할 때 ‘길들임’ 의 비밀을 알려준다. “제대로 보려면 마음으로 봐야 해.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에만 보이거든.” 이 비밀을 깨닫게 된 어린왕자는 떠나온 별에서 마음을 쏟아 ‘길들인’ 장미 한 송이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그래서 다시 자기 별로 돌아간다. 정원을 가득 메운 장미꽃들보다 자기와 관계를 맺은 장미꽃 한 송이가 더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마음의 눈을 열고 보니 떠나온 별에 두고 온 장미의 투정이 사랑인 것도 알게 된다. 사랑의 고백은 표현 방법이 달라도 서로 길들여진 사이에서만 가능한 것임을.

지구에 날아온 한 개의 씨앗 같은 존재인 우리가 처음에는 단지 먹고 자고 일어나는 일상을 거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의식의 세계가 커가면서 나를 키우고 먹인 존재에 대하여 알게 되고, 그 존재를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는 존재가 우리의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라게 된다. 그러면서 차츰 사랑하는 존재에게 ‘길들여지는’ 것이다. 일단 ‘길들여지면’ 우리는 변한다.

여우처럼 빵을 먹지 않아도 밀밭은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게 되는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분이 밀밭을 만드셨고 밀밭은 그분의 사랑의 선물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밀밭을 스치는 바람소리까지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사랑스러운 바람소리는 마음의 귀에만 들리고 마음의 눈으로밖에 볼 수 없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어린왕자의 아이들, 장미와 여우와 밀밭과 바람처럼, 그리고 별처럼 서로에게 사랑스런 존재가 되는 것 아닐까.

/송영옥 박사(영문학, 대신대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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