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무시했다. 청소년문학이라는 것에 관심도 없는 데다가 만화체의 표지에 촌스런 이름이라니……. 그러나 완득이가 영화화된 이후에 교회에 호의적이라는 풍문이 귀에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보고 싶어졌다. ‘도가니’도 그랬지만 정말 영화는 힘이 세다.
영화 ‘완득이’가 기독교에 호의적이라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다. 하나는 주인공 완득이가 교회에 가서 기도한다는 사실. 물론 그 내용이 바람직한 내용은 아니다만 완득이가 크게 악의를 가지고 하는 기도도 아니니 봐주도록 하자. 두 번째는 완득이 담임 똥주가 몸담고 있는 다문화가정 지원 프로그램을 교회가 운영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분당우리교회 교인이면서 영화에 출연한 박효주 씨가 ‘완득이는 하나님의 사랑이 풍성한 영화’라는 말도 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교회가 긍정적으로 표현된다는 사실에 주변에서 영화를 보라는 권유가 많이 들어왔다. 그러나 영화관에 가는 데는 마음의 결정이 필요하다. 그래서 원작소설을 손에 들었다. 단 하루 만에 읽힐 정도로 재미있었다.
다문화가정에 대해 비관적인 시선이 아닌 유쾌하고 밝은 톤으로 그린 이 작품에서 교회는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주요한 공간으로 나온다. 그러나 영화는 모르겠지만 소설에서의 교회는 신앙과는 거리가 먼 교회로 나온다. 그 이유는 똥주가 교회를 돈을 주고 구입하고 원래 그 자리에 있던 교회는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갔다는 설정 때문이다. 똥주는 교회 십자가는 달려있으나 예배는 드리지 않는 공간을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쉼터로 활용하고 있다(이 장소는 후에 십자가가 떼어지고 대신 댄스교습소 네온사인이 붙는다). 이래서는 서구의 교회가 술집으로 바뀌는 것과 별 차이가 없다. 그래서 좀 씁쓸했다. ‘오호 이것은 좋은 기독교소설이구만!’하는 참이었는데. 그러니까 소설 완득이에서 공간으로서의 교회는 있지만, 신앙으로서의 교회는 없다. 그 공간은 단지 쉼터로서 휴머니즘의 공간으로서 기능한다.
그러나 꼭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교회는 사실 이런 공간으로 기능해야 옳다. 스스럼없이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는 곳. 아무리 기도내용이 잘못되고 하나님을 의심하더라도 일단 사람들이 들어오는 문턱은 낮아야 하겠다. 그래야 나중에 회심할 가능성이 있으니까. 피부색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하더라도 모두가 함께 하나님께 예배하고, 세상사 어려운 문제를 함께 공유하고 풀어나가는, 그런 바람직한 교회의 모습을 밝게 표현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과연 피부색의 차이로 목욕탕 출입을 금지하는 세상과 다르게 우리 교회는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장애와 상처와 편견의 벽을 뛰어넘는 교회의 기능을 다하고 있는가?
인은수(칼럼니스트, ‘멀티플렉스에서 만나는 하나님’의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