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옥박사 기독문학세계] 나비의 힘 같은 가벼움으로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송영옥 교수(기독문학 작가, 영문학 박사, 영남신대 외래교수).

▲송영옥 교수(기독문학 작가, 영문학 박사, 영남신대 외래교수).

일을 마치고 들어오는 길에 카오야이 국립공원에 인접해 있는 힐스 리조트에서 한 열흘 머무르게 되었다. 한국에는 동지 한파가 밀어닥쳐 전국이 영하의 날씨로 꽁꽁 얼어 붙어있던 때여서 따뜻한 하늘 밑이 더없이 반가웠다. 방콕하면 한여름 더위가 생각나지만 카오야이는 해발 450m에 위치한 자연공원이어서 기후가 매우 쾌적한 편이다. 때문에 주위에는 골프장을 갖추고 있는 화려한 리조트들이 많이 들어서 있다.

내가 머무르게 된 힐스는 화려한 곳은 아니지만 그린이 꽤 괸찮은 골프장과 물이 좋은 숙박시설이 있다. 기온은 한 낮이 26도쯤으로 아침저녁은 가을날처럼 서늘하고 쾌적하다. 무엇보다 그 나름대로 열대 지방의 동식물의 보고로서 야생적인 기분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는 천혜의 힐이다. 이른 새벽이면 나는 나무 숲에서 들려오는 새들의 울음소리로 잠이 깨었고 숲에 이는 바람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조선족 아주머니가 주방장인 레스토랑에는 타이의 미소년 소녀들이 손님들의 식사 시중을 들었다. 깊은 눈에서 나오는 조용하고 다정한 미소가 손님들의 기분을 밝게 했다. 많이 드세요. 맛있게 드세요. 어색한 한국말 인사가 더없이 정겹다. 써브하는 아이들은 때때로 주머니에서 애니콜을 꺼내어 문자를 보내고 틈이 나면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었다. 스텝을 밟고 있는 한 소녀의 이어폰 한쪽을 받아 귀에 대니 원더걸스의 신곡이다. 소울 음악을 현대식 업템포로 재해석한 ‘비 마이 베비’에 소녀는 심취해서 몸으로 박자를 맞추며 빨갛게 상기된 볼로 미소를 짓는다. 이 소녀의 머릿속에서는 무수한 나비들이 촉수를 세우고 날개짓을 하고 있을 것이다. 꿈은 , 세상 모든 이의 꿈은 아름다운 것이다.

운동을 하는 시간, 티잉그라운드에 서면 날개에 청색 무뉘가 화려한 나비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푸른 빛이 어찌나 진한지 깊은 바닷속 같다. 티를 꽂으려고 하는데 나비가 내 머리 위를 맴돌며 앉을까 말까 망설이는 눈치이다. 나는 동작을 멈추고 잠시 일어서서 기다리는데 청색 나비는 주위를 한 바퀴 돌고 날아 오르면서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키 작은 꽃나무 사이에서 색색의 나비떼가 그라운드로 올라왔다. 빨강 분홍 노랑 날개 그리고 갖가지 색이 합쳐진 화려한 무늬의 날개들이 아침 햇살을 받아 휘황찬란하게 빛이 났다. 나는 스텐스했던 발을 풀고 한 마리 한 마리 눈 맞추며 맞이했다.

이곳에서는 나비를 찾아 화단 습지로 찾아가거나 나비떼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채집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사람이 서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까이 찾아온다. 그들을 만날 수 있고 잘 볼 수 있고 또 친할 수 있다. 내가 다시 연습 스윙을 하고 중심을 잡았을 때 청색 나비 한 마리가 날아와 나의 왼발등을 날개로 덮는다. 마치 자신의 무게로 나의 왼발에 힘을 보태어 고정시키려는 자세이다. 순간 나는 나비의 힘 같은 가벼움으로 드리이브샷을 날렸다. 볼은 윙 소리를 내며 페어웨이 한가운데로 날아가 무사히 안착했다.

나는 매일 아침 이 운동 시간이 정말 좋았다. 기다렸다는 듯이 내 주위에 모여드는 사랑스런 나비들 화려한 몸짓으로 말을 걸며 눈부신 색채로 나를 흔드는 그들이 정말 사랑스러웠다. 나의 어깨와 모자 위에 경계심 없이 앉아있는 이 작고 예쁜 신기한 생명들은 나의 아침을 에덴에서 살게 했다. 어쩌면 우리가 인간 속에 자연을 가두어 두지 않을 때 그 시간이 에덴인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내 머릿속에 한 그림이 스쳐갔다. 영국의 젊은 설치미술가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의 작품이다. 그는 살아있는 열대 지방의 나비들을 수백마리 채집해와서 모노크롬글로스가 듬뿍발라진 끈적한 켐퍼스에 나비들을 달라붙게 했다. 옴짝달싹 못하는 나비들은 그렇게 서서히 켄버스 위에서 죽어간다. 그 중에 산란에 임박한 나비도 있다. 그림에서 느꼈던 그 공포감이 순간 나를 휩싸고 지나갔다. 따지고 보면 아이들이 취미삼아 나비를 채집하는 것도 이와 다를바 없지 않을까. 작은 일이지만 자연을 자기 속에 가두려는 인간의 잔인성의 표출이 아닐까 싶다.

한날 오후에 헤져드에 빠뜨린 볼을 찾아 물가 숲을 뒤지고 있는데 쉬이쉬이 소리가 들렸다. 머리를 고추든 긴 뱀 한 마리가 헤져드 건너편 그린을 향하여 일직선으로 몸을 세우고 있었다. 내 키보다 크게 쭉 뻗은 긴 몸둥이는 너무나 화려했다. 쏟아지는 햇살을 받아 광채를 내뿜었다. 케디가 채를 잡고 뱀을 위협했지만 그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곳의 벰들은 사람을 피하지 않는다고했다. 나는 그때야 비로소 두려움에 휩쌓여서 우드를 집어던지고 도망쳤다. 케디의 웃음소리가 구름을 갈랐다.

잠시 후에 나는 공을 칠 자리로 다시 돌아왔는데 벰은 여전히 똑같은 포즈로 그린을 향해 고개를 들고 몸을 뻗고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연습장의 메드의 한 선처럼 뱀과 나란히 서서 눈을 딱 감고 그린을 향해 볼을 날렸다. 왠일^^ 볼은 놀랍게도 한가운데 핀 근처에 떨어졌다. 내 실력으로 는 어림도 없는 위치였다.

사실 따지고 보면 힐스에서의 시간도 삶의 일상성과 별로 다를 바 없었다. 식사하고 운동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음악을 듣고 멜을 주고받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리고 잠들고 그렇게 반복되는 하루 하루였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일상들이 독특한 향기를 지니고 형언할 수 없는 기쁨으로 춤을 추었다. 아마도 내가 자연 속으로 들어와서 그들과 친하고 자유로워진 때문이었던 것 같다. 자연을 내 속에 가두지 않고 어깨에 힘을 빼고 창조 세계에 대한 감사로 맘을 채우고 나비의 힘 같은 가벼움으로 살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송영옥 박사(영문학, 대신대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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