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을 다시 읽으며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송영옥박사 기독문학세계] 기독 작가란 무엇인가

▲송영옥 교수(기독문학 작가, 영문학 박사, 영남신대 외래교수).

▲송영옥 교수(기독문학 작가, 영문학 박사, 영남신대 외래교수).

“너 토마스 만 알지… 네 글을 읽다가 갑자기 생각나서.” 밤늦은 시간 친구가 보낸 메일이었다. 순간 어둠 속을 헤치며 말러의 5번 교향곡 아다지에토가 무겁게 깔렸다. 때론 고통스럽게, 때론 동경에 차 반복되면서 베네치아의 바다처럼 올라갔다 내려왔다 한다. 광대무변한 바다 위에 보잘것 없는 배 한 척, 음악은 계속 배를 따라온다. 음향 따라 내 언어는 감각적으로 흔들리고 무지개 색으로 반짝이며 겨울 햇살을 가르고 비상하고 있다.

“응 알아. 너 지금,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을 생각하고 있구나. 토마스 만은 독일 작가이지만 공부할 때 읽었어, 글구 많이 좋아했다.” 난 이렇게 답을 보냈다.

친구가 말러를 얘기한 것과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을 떠올려준 것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글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는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언어(송영옥, 북코리아)>를 읽으면서 프로렌스 ,피렌체를 지났다 했고 카잔차키스의 인생의 정의가 새삼 맘에 닿았다면서,

“인간은 어두운 곳(womb)에서 나와 어두운 곳으로 돌아간다(tomb)고했던 말 말이야. 맞아 우리는 그 반짝하는 사이를 인생이라고 부르지. 네 말처럼 너무나 짧은 찰나의 빛이기에 더 아쉽고 붙잡아둘 수 없는것이기에 깊이 깊이 아름답다” 라고 말했으니까.

어쨌거나 친구의 메일은 하나의 동기를 부여해 주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정신의 작품이, 보다 직접적인 인간의 감각을 통해 받아들여지고 재생되고 축하되고 찬양받는 것은 감동적인 경험이다. 더욱이 그 사람이 나와 함께 시간을 공유했고 가슴속 진동에 공감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이 일이 계기가 되어 나는 내친 김에 말러를 다시 듣고 학창 시절처럼 토마스 만을, 특히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을 다시 읽기로 했다.

외국 문학을 공부하던 시절 나의 큰 관심 중 하나는 작가들이 글을 쓰는 원동력이 무엇일까 하는 점에 있었다. 그 때문에 자연히 그들의 전기를 읽게 되었고 그들 사랑과 삶과 예술을 들여다보는 것을 즐기게 되었다. 단순한 호기심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공부하고 있는 작가들이 어떻게 보통 사람들과 비슷한 일상을 살면서 그와 같은 불후의 작품들을 쓸 수 있었을까. 글의 동력이 상상력에서 나오는 것일까, 관찰일까 기억력일까, 아님 이 모든 것의 총체인 그 어떤 것일까, 이런 것들에 대한 탐구심(?)이었다. 사실은 일생을 통해서 답을 찾으려 해도 얻을 수 없는 경우가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젊음의 속성은 그러한 주제를 즐겨 탐구한다.

특별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작가들은 우리처럼 한정된 시간의 길을 여행하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을 사랑하고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헤어지기도 하며 절망과 고독의 늪을 건너면서 병들고 쇠약해지고 그리고 죽음을 맞이한다. 이 비슷한 삶 가운데서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후세에 남을만한 작품을 쓰게 하였을 까. 어떻게 그들이 쓴 작품들은 작가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여전히 인간 정신을 풍요롭게 하며 향상시키고 나 같은 사람도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을 지니는 것일까. 그 순수성과 고상함을 빛내면서 말이다.

그 하나의 길을 나는 토마스 만 (Paul Thomas Mann (1875-1966)의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에서 찾을 수 있었다. 토마스 만은 독일 작가인데 고등학교 선배 한 분이 그의 소설에 매우 깊이 빠져 있었다. 고등학생 시절, 우리 학교의 제2외국어는 독일어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독어에 흥미를 느낀 여학생들은 자연히 독일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토마스 만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1922) 한 후 우리학교의 도서관에도 <마의 산> 번역본이 들어왔다. 그 선배는 작가가 타계하고 여러 해 지난 후 나에게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원제: Der Ted in Venceding, 영어: Death in Venice)>을 추천해주었고 나는 영문본으로 책을 읽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우선 작품의 개요를 먼저 얘기 해야할것 같다.

1911년 토마스 만은 베니스로 여행을 한다. 그곳에서 그는 타치오라라는 미소년을 보게 된다. 당시 36세였던 만은 이 단순한 사건을 토대로 사회적 지위와 명성을 갖춘 신고전주의 예술관의 권위있는 작가 구스타프 폰 아셴바하를 주인공으로 선정하고 그와 폴란드소년과의 사랑이야기로 줄거리를 꾸며 이듬해 로 작품을 발표한다. 아센바하가 열네살 소년과의 사랑의 도취 속에서 죽어가는 비극적 이야기를 ‘어느 늙은 예술가의 초상’으로 탁월하게 형상화해낸 것이다.

이 작품은 1971년에 이탈리아의 감독 루키노비스콘티(Luchino Visconti, 1906-1976)에 의해 영화로 제작된다. 그리고 이어 1973년에는 영국의 작곡가 벤자민 브리튼(Benjamin Britten, 1913-1976)에 의해 오페라로 초연되었다. 무엇보다 이 소설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은 영화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나 나의 경우는 한 화가 지망생의 판화 때문이었다. 이를 계기로 작가와 화가 사이에는 30년간의 우정이 지속되고 주고 받은 편지 가운데서 바로 내가 탐구(?) 했으나 얻지 못한 물음에 대한 답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만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소설이 허구의 개념이라고 하지만 내게는 허구란 예술적으로 높은 가치가 있는것이 아니었다. 항상 체험의 해석이 원래의 창조적 업적이었다. 예를 들어 의 전체 모양새는 여정의 실제 사건을 그대로 옮겨온 것이다.)

그러하니 그의 창작 원동력은 체험이었던 것이다. 이 사실은 후일 내가 글을 쓰는 것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작품이 기독교적 생명력을 지니려면 글쓴이에게는 기독교적 체험이 필수라는 신념을 갖게 된 것이다. 소설 의 인물들은 실재했던 사람들이다. 그들과의 관계 역시 작가가 직접 체험했던 일들을 기초로 했다.

그리고 그가 베니스 여행길에서 만났던 사람들, 늙음을 감추기 위하여 화장을 하고 치장을 한 남자, 곤도라 벳사공, 가발을 쓴 가짜 젊은이, 폴란드 가족과 미소년 정직한 영국 공무원 거리의 악사등은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부딪칠 수 있는 무어 그리 특별하달 것도 없는 사람들이다. 만의 아내 카티아의 말대로 그 우연한 만남들을 작품의 주제에 맞게 조합해낸 것은 만 이외엔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기독 작가는 누구인가. 하나님의 창조세계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을 작품의 주제에 맞게 조합해 내는 사람이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작가의 체험적 진정성과 친밀함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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