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건축, 패러다임을 바꾸다] 3-건축가 승효상
크리스천투데이는 [교회건축, 패러다임을 바꾸다]를 제목으로 한국교회 건축을 새롭게 논합니다. 오늘날 교회들의 ‘건물 짓기’가 본질에서 벗어나 교회 확장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문제의식에서 이 기사는 출발합니다. 과연 교회에서 ‘건물’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지 돌아보고, 교회건축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
예상치 못했는데, 그는 ‘장로’였다. 그것도 모태신앙의. 아버지는 부산 구덕교회 창립멤버 중 하나였고, 그 역시 어린 시절을 이 교회에서 보냈다. 시간이 흘러 구덕교회는 그의 손에서 다시 태어났다. ‘빈자(貧者)의 미학’ 건축가 승효상이다. ‘거장’ 김수근의 제자, 4·3그룹 참여, 미국 건축가협회 명예 펠로우, 건축가 최초 국립현대미술관 선정 ‘올해의 작가’, 2011 광주비엔날레 총감독…. 그를 수식하는 이 많은 말들 뒤에 ‘교회’가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교회당은 편의상 만든 것일 뿐 교회의 목적은 아니다
-교회에서 ‘건물’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성경적으로 예배당은, 그 자체로 큰 가치가 없다. 예수님이 주로 말씀하셨던 곳은 해변과 산 등이었지 예배당이 아니었다. 예배당, 혹은 교회당은 이후 사람들이 편의상 만든 도구일 뿐, 결코 교회의 목적이 될 수 없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이들에게 교회는 곧 건물이 되고 말았다. 교회와 건물을 동일시하는 것이다. 분명 착각이다.”
-그럼 건물은 왜 필요한가.
“교회를 위해서다. 교회를 뜻하는 그리스어 에클레시아는 불러냈다는 뜻인데, 즉 세상으로부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교회라는 것이다. 교회당은 이들이 정해진 시간에 모일 수 있는 구별된 장소다. 그러니까 교회를 ‘실천’하기 위해 건물인 교회당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 교회당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고.”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교회당이, 요즘엔 너무 많다고 비판받고 있다.
“좋은 건축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많은 교회들이 건축을 하지만, 무엇이 좋은 건축인지는 고민하지 않는 것 같다. 좋은 건축에는 크게 4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는 주변과의 조화다. 다른 건물들을 압도할 만큼 크다거나, 교통 흐름을 방해하는 등 공공성을 훼손하면 안 된다. 다음은 사용자 편의를 위한 기능이다. 지금 많은 교회들이 놓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교회당은 하나님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무소부재한 하나님은 교회당 안에만 계시지 않기 때문이다. 교회당은 사람들이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는 공간이다. 사람들이 즐거워야 할 곳이고, 그들이 거룩함을 느껴야 할 곳이기에 무엇보다 기능적으로 편리해야 한다.
세번째는 사람과 삶을 우선하는 건축이 좋은 건축이다. 과도한 장식을 사용하고 외형의 아름다움만 고려하면 정작 그 건물을 사용할 사람, 그리고 그들의 삶이 건물에 가려져 버린다. 건물은 그저 배경일 뿐이라는 게 건축가인 내 신념이다. 절제된 형태로 검박하게 서 있는 건물, 그래서 그곳의 주인인 사람을 돋보이게 하는 건물이 좋은 건물 아닐까. 끝으로 좋은 건축은 재료의 진정성이 묻어나는 건축이다. 재료가 가진 고유의 물성(物性)을 살리는 건축이야말로, 그 건물의 목적을 진정성 있게 드러내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좋은 건축의 4가지 요건을 충족하는 건물은 교회 말고도 많다. 이 외에 교회 건축에는 무엇이 더해지나.
“경건성이다. 사람이 교회당에 모이는 이유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함이고 그를 예배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교회당은 기본적으로 세상과 ‘구별’된 공간이어야 한다. 교회에 왔는데도 일상과 다른 것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건 이미 교회로서의 목적을 상실한 것이다.”
-지나치게 경건한 곳은 오히려 다가가기 어렵지 않나.
“편안함과 경건함은 서로 다른 의미가 아니다. 교회의 경건함이란, 사람들이 그곳을 찾았을 때 그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창조주 앞에 엎드릴 수 있는 신비함이다. 인간의 영혼은 그 때 비로소 편안함을 느낀다. 마치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예배 위해 집 나설 때 이미 종교의 시작…그 과정 담으려 노력
-지금 한국교회의 교회당 건축, 어떻게 보나.
“낙제다. 95% 이상 그렇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교회 건축 대부분이 일반적인 건물 위에 뾰족탑을 올려놓은 것이거나 과거 고딕, 로마네스크, 바로크 등의 양식을 모방한 것들이다. 이는 우리 땅의 풍토에 맞지 않는, 시대착오적 건축이다. 건축은 시대의 거울이다. 즉 건물은 그 시대의 양식을 반영해야 한다. 그럼에도 지금 교회건축은 시대와 장소를 무시하고 있다. 이런 것이 ‘교회 건축’은 될 수 있어도 ‘교회적 건축’은 될 수 없다.”
-교회 건축을 할 때 가장 염두에 두는 게 있다면.
“어떻게 하면 건물이 사람들의 종교성을 더욱 일깨울 수 있을까…, 항상 그것을 고민한다. 나는, 인간이 건물을 짓지만 결국 건물이 인간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래서 교회를 지을 때도 건물만 따로 떼어 생각하지 않고 사람들이 집을 나와 교회로 향하는 순간, 그리고 교회로 들어서 예배의 처소까지 가는 길 등 모든 과정을 고려한다. 어떻게 보면 예배를 드리러 집을 나설 때부터가 이미 종교적 의식의 시작 아닐까. 그리고 그것이 더 아름다운 것이라 생각한다.”
과정을 담은 건축…, 그가 대표로 있는 건축사무소 ‘이로재’ 역시 그와 같았다. 인터뷰를 위해 그의 작업실로 향하는 길, 좁고 가파른 계단을 딛고 내려가야 비로소 그의 공간에 닿을 수 있었다. 의외였던 계단, 적어도 기자에게 그것은 승효상이라는 인물을 한 번 더 생각하게 하는 휘파람과 같았다. 산만한 공간에 울려퍼져 이목을 집중시키는 휘파람. 계단을 내려간 기자는 그렇게 승효상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교회를 지을 때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었나.
“건축주, 교회로 치면 건축위원들과의 의견 조율이 가장 힘든 부분이다. 물론 이는 일반건축 때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생각과 건축가인 내 생각이 상충할 때가 많다. 성직자이면서도 세속적 가치에 따라 건축을 하려는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그럴 때면 건축주들을 설득하는데, 설득이 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하면 어쩔 수 없이 그 일에서 손을 뗀다. 그러면서 상처도 받고, 굉장히 안타까울 때가 많다. 교회건축일 경우 특히 그렇다. 일종의 책임감이랄까, 나 자신이 신앙인이기에 교회를 짓기로 했다가 일이 틀어지면 상처도 더 크게 받고, 하나님 앞에 죄송한 마음도 생긴다.”
-교회를 짓고 나면 어떤 생각이 드나.
“항상 후회가 막급하다. 더 잘할 수 있었는데 그렇게 못한 것 같아서. 하나님 앞에 부끄러울 때가 많다. 지금 다니는 동숭교회도 내게 건축을 의뢰했지만 정중히 거절했다. 내가 지은 교회에 당당히 다닐 용기가 없었다.(웃음)”
-‘신앙인 승효상’에게 ‘건축가 승효상’은 어떤 의미인가.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직업을 목수로 알고 있지만 알고 보면 그는 목수(木手)보다 석수(石手)에 더 가까웠다. 희랍성경에는 예수님의 직업을 ‘텍톤’으로 적고 있는데, 이는 ‘쌓다’는 의미다. 실제 예루살렘이나 나사렛, 베들레헴 같은 곳에 가보면 땅이 척박해 나무가 잘 자라지 않는다. 나무보다 오히려 돌이 더 흔하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돌을 쌓는 사람, 곧 건축가였을 것이다. 오늘날 건축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아키텍쳐’(architecture)도 ‘텍톤’에서 왔다. 이 사실을 알고 나니 내 직업에 대해 무한한 자부심이 생겼다. 예수님은 건축가셨고, 그는 자신의 직업을 확장해 하나님의 뜻으로 이 세상을 건축하셨다. 비록 예수님처럼은 아니나, 나 역시 건축을 통해 사람을 더 선하고 아름답게 바꾸는 일에 헌신하고 있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귀한 소명이다.”
승효상은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빈 공과대학에서 수학했다. 한국 건축계의 거장, 김수근 선생의 제자였고 1989년 건축사무소 이로재를 세워 지금까지 대표로 있다. 특히 스승과 함께 건축한 경동교회는 국내 교회건축사에 획을 긋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파주출판도시의 코디네이터, 2011년 광주 비엔날레 총감독을 역임한 바 있다. 2002년 건축가 최초로 국립현대미술관이 주관하는 ‘올해의 작가’로 선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