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어준의 그 당당함이 싫다
씨알재단(crlife.org)에서 지난달 13일 회원들에게 보낸 나꼼수 관련 논평이다. 다음은 전문.
막말을 곁들이며 걸쭉하게 정치풍자와 비판을 하고 비리를 까발리는 ‘나꼼수’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나꼼수의 일원인 정봉주 17대 국회의원이 감옥에 갇히자 한 젊은 여성이 비키니를 입고 가슴에 “가슴이 터지도록, 나와라 정봉주”란 문구를 써 놓은 사진을 올렸다. 나꼼수에 출연하는 사람들은 이 사진에 대해 성적인 언급을 하면서 격려했다. 여성인권단체와 일부 여성들은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 했다고 비난하고 나섰다.
나는 나꼼수의 도덕성 문제나 성희롱 논란에 끼어들고 싶지 않다. 나꼼수는 막말과 욕설의 자유를 맘껏 누리는 자유로운 방송이니까 도덕적인 시비를 하거나 품위를 따지는 것은 온당치 않아 보인다. 다만 나꼼수의 일원인 김어준이 한 말이 문제로 느껴져서 나도 말을 섞게 되었다.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했다는 비판에 대해서 김어준은 “인간이 자신 외 인간을 대상화하지 않는 경우도 있나”고 당당하게 되묻고 있다.
김어준의 당당함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의 당당함이 인문학적 무지에서 나온 것이라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의 말대로 사람은 자연적 욕망을 품고서 사람을 보고 만나고 관계한다. 그러나 사람은 욕망을 가진 존재이면서 이성과 영성을 가진 존재다. 철학이나 종교는 자연적 욕망을 넘어서 사람이나 사물을 보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칸트가 사람을 수단으로 대하지 말고 오직 목적으로 대하라고 한 것은 다른 사람을 대상으로 보지 말고 주체로 보라는 말이다. 선불교에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라고 한 것도 산이나 물을 대상화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보라는 것이다. 상대를 주체로서 있는 그대로 보자는 것이 모든 철학과 종교의 목적이다. 사람이 자연적 욕망을 넘어서는 차원을 갖지 못하면 사람다운 공동체를 이루며 살 수 없다. 자연적 욕망을 넘어서는 일이 어려운 일이지만 어려운 일을 하려고 애쓰는데서 사람은 사람답게 되는 것이다.
김어준의 당당함은 자신뿐 아니라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타인을 대상화할 뿐이라는 확신에서 나온 것으로 여겨진다. 김어준의 당당함이 사회적 근거를 가졌다고 여겼기 때문에 나는 섬뜩함을 느꼈다. 뼛속 깊이 산업자본주의에 물든 우리사회는 자연적, 사회적 욕망을 가지고 모든 것을 소비의 대상으로 생각한다. 문화도 종교도 철학도 다 소비의 대상일 뿐이다. 욕망과 허영에 따라 자신의 취미와 욕구에 따라 책을 읽고 강의를 듣고 교회를 다닌다. 지식도 사상도 진리도 자신의 취미와 욕구에 따라 소비되는 것 아닌가?
너를 너로서 보지 못하는 사회는 참된 사귐을 모르는 사회요 참된 사귐이 없는 사회는 불행하다. 산을 산으로 보지 못하고 꽃을 꽃으로 보지 못하는 사회는 시가 없는 사회요 시가 없는 사회는 삭막하다. 나는 나답게 너는 너답게 살려고 애쓰는 데서 사람은 사람 구실을 하게 된다.
모든 인간이 자기 이외의 사람을 대상화할 뿐 주체로 인식하고 주체로 대접할 수 없는 사회는 평면적이고 일차원적 삶에 빠져서 결국 해체되고 몰락할 것이다. 나는 김어준이 당당함을 잃었으면 좋겠다.
/박재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