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비상하는 언어들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송영옥박사 기독문학세계] 소설에서 영화로

▲송영옥 교수(기독문학 작가, 영문학 박사, 영남신대 외래교수).

▲송영옥 교수(기독문학 작가, 영문학 박사, 영남신대 외래교수).

소설 <베네치아에서의 죽음(Death in Venice)>, 한마디로 말하면 열병과도 같은 금기의 사랑 속에서 죽음을 불러오는 폴란드 미소년의 마력에 이끌리는 늙은 소설가를 다룬 소설이다. 그런데 왜 이 작품이 당시의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미쳤고 그 반향은 오래 지속되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일까. 동성애라는 이슈로 충분히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여기에서 영향력이라고 하는 내 말의 뜻은 소설 자체에 대한 분석이나 논리의 차원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했으면 좋겠다. 그것은 이 소설을 둘러싼 여러 매체들 간의 전환(영화, 오페라, 판화등)을, 그리고 소설을 탄생시켰던 실재 상황에 대한 연구와 담론을 의미한다. 하나의 작품은 모든 예술 영역의 총화 같다고 소신을 가진 나 같은 사람들에겐 더욱 그러하다. 때문에 언어가 사라지고 음향과 영상으로 전환된 는 오늘날도 끊임없이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새로운 전환을 시도하고있는 것이다.

특히 보른이 판화로 그린 이 색채 화첩은 여행의 환상, 유혹, 낯선 신, 죽음 등의 강렬한 인상들로 된 타이틀을 붙였는데 이는 예술들이 서로를 얼마나 격려하며 창작의 힘을 제공하고 있는지를 명백하게 나타내 준다. 릴케(Rainer Maria Rike, 1875-1926)의 색감적인 언어의 원동력이 세잔느(Paul Cezanne,1839-1906)에게서 왔던 것처럼 말이다. 토마스 만의 고백처럼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은 작가의 잠재의식이 음악과 조형, 예술의 덕을 보았고 그의 이야기가 끝난 곳에서 소설은 음악으로 영상으로 다시 살아났던 것이다.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소설과 영화의 다른 점을 두 가지를 먼저 얘기해야겠다. 하나는 소설 속의 작가인 아센바하는 영화에서는 음악가가 된다. 영화는 문인보다는 음악가를 그리는 것이 훨씬 수월함에서이다. 음악가로부터는 그의 음악을 듣게 할 수 있는 반면 문인은 다른 방법을 동원하여 간접적으로 표현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인공 아센바하가 작곡가로 등장하면서 음악이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두번째는 소설의 서사구조를 삭제하고 또 덧붙이는데 있다. 영화는 소설의 1, 2장을 삭제했고 3장에서 시작하여 소설 줄거리를 쫓아가면서 원작에는 없는 7번의 회상 장면을 삽입한다.

영화는 심장병을 앓고 있는 독일의 작곡가 구스타프 아센바하를 태운 배가 아침 안개 속에서 베니스로 입항하는데서 시작한다. 이 때 말러의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가 현과 하프로 반복되면서 배를 따라온다. 말러의 음악은 러닝타임 약 두 시간 동안 계속해서 반복된다. 구체적 내용을 지닌 대화는 회상 장면에서 나오고 전체의 1/4 정도쯤으로 기억된다.

영화는 아센바하가 오직 미소년을 보려는 감정의 격량속에 휘말릴 때마다 말은 사라지고 음악이 깔리면서 보고자 하는 시선의 욕망을 부각시킨다. 토마스만이 언어를 매개로 빼어난 산문 예술을 창조했다면 비스콘티는 시각과 음향(음악)을 매개로 탁월한 영상 예술을 만들어내었다.

음악은 이야기를 따라 빈번하게 사용되면서 후에 진행될 복잡하고 다의적인 표현을 암시한다. 아센바하가 타지오를 만나는 장면에서부터 소년에 대한 감정의 변화, 이별, 그리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음악이 그를 동반한다. 음악은 타치오에게 결코 대놓고 말할 수 없는 아센바하의 감정을 선취하여 알려준다. 이 순간부터 아센바하는 언제나 아름다운 소년을 보려고 한다.

무엇보다 음악에 깊이 압도되는 장면은 아센바하의 죽음에서이다. 그가 죽어가면서 쓰러지기 직전 관광객들이 거의 떠난 쓸쓸한 해변에서 아카펠라로 이어지는 자장가를 들으며 영원한 잠 속으로 들어갈 때 뒤이어 아다지에토가 비통한 시간의 파동이 되어 죽음의 길에까지 동반한다.

“너 토마스 만 알지, 네 글을 읽다가 갑자기 여행을 떠나고 싶어서.” 그날 밤 늦은 시간 친구에게서 날아온 메일은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을 영상으로 느끼게 했다. 토마스 만의 산문 예술이 아니라 비스콘티의 영상으로 왔던 것이다. 그가 소설이라 영화라 말하지 않았음에도 순간 말러의 음악이 어둠 속에 깔렸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 음악은 금세 고통과 동경을 반복하면서 베니스의 바다는 요동쳤고 그를 향한 내 언어는 무지개 빛깔로 조합되어 원형질로 살아났다.

나는 그가 유리 공예와 파스텔 톤 건물로 가득 찬 리도섬에 서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그의 내면이 선취되어 내 의식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광대무변한 베네치아의 바다에 떠 있는 보잘 것 없는 한척의 배처럼 어찌할 수 없는 우리의 노력의 부질없음을. 그리고 출렁이는 바다를 타고 오는 맞대어 말하지 못하는 동요를. 아아 그런 동기들 속에서 우리의 정신은 얼마나 싱그러워지는가. 때론 에메랄드빛을 띤 초록색의 봄으로 때론 은회색으로 변하는 여름의 대지로 소생하면서 말이야.

/송영옥 교수(기독문학 작가, 영문학 박사, 영남신대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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