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를 말하다 ⑧] 내수동교회 박희천 원로목사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목회자를 판단하는 가장 중요하고, 또 흔한 척도는 무엇일까. 옳고 그름의 당위성을 떠나 현실적으로 그것이 설교라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드물 것 같다. 목회자는 오직 설교로 말하고 설교로만 규정된다는 주장도 있으니, 이것에 기대자면 설교는 목회의 처음이자 끝이다. 크리스천투데이는 기획 인터뷰 ‘설교를 말하다’를 통해 설교라는, 그 끝없고 오묘한 세계를 엿본다.
“혼자 오셨소?” 굵직한 평안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그의 목소리는 쩌렁쩌렁했다. 올해로 86세라는 것이 목소리만으로는 구별하기 힘들었다. 총신대신대원에서 28년간 헬라어, 설교해석학, 설교학 등을 가르치고, 65년간 강단 위에서 복음을 설파한 그는, 아직까지 한 달에 한 번씩은 꼭 설교를 전하고 있었다. 매일 성경을 읽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으며 평생토록 바른 설교를 전하는 데 진력했던, ‘설교의 바이블’ 박희천 내수동교회 원로목사.
그런 그가 “성경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헷갈리고, 알 수 없었다. 이것이 솔직한 나의 고백”이라고 말했을 때는 어떤 경외심마저 들었다. 그는 “성경이 바로 이런 책”이라고 강조하면서 “목숨을 걸고 읽고, 바르게 전해야 한다”고 했다. “요즘 한국교회 설교를 들으면서 냉가슴을 앓는다”는 그를 한강의 밤섬이 내려다 보이는 자택에서 만나봤다.
-은퇴 후에도 설교를 하고 계시지요?
“내수동교회에서 한 달에 한 번씩 하고 있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설교가 20~25분 사이에 끝나더군요. 이유가 있습니까?
“제가 다른 사람 설교를 들을 때에 20분 정도가 듣기 좋더군요. 내가 듣기 좋으면 다른 사람도 그럴 거 아니겠습니까? ‘한국교회 박희천 목사 설교는 20분. 죽자꾸나 길어지면 25분’. 난 설교 길게 하는 것 딱 질색입니다. 나중에 알았는데 언어학적으로 20분까지 정신 차려 듣지 20분 넘어가면 안 된답니다. 거기하고도 맞더군요. 나중에 알았어요. 학생들에게 신신당부합니다. 길게 하지 마라. 고거 사람 죽이는 겁니다.”
-담임목사 때와 은퇴 후 설교, 어떻습니까?
“고 차이점이 무엇인가 하니 나도 그것을 몰랐는데 제가 은퇴하기 4~5년 전부터 한 제목 가지고 한번에 끝낸 설교가 없습니다. 최소한도 3~4주 연속으로 설교를 했어요. 재료가 그렇게 나오더군요. 말년에 나는 그것을 느꼈습니다. 내가 은퇴하기 4~5년 전부터 한 제목 가지고 3~4주 그렇게 양이 많이 나와요.”
은퇴하고 나서 한 달에 한 번 하니까 그 점이 괴로워요. 한번에 설교 끝나는 것이 별로 없어요. 3~4주를 해야 하는데, 죽으나 사나 한번에 설교를 해야 하니까 그런 어려움을 겪어요. 연속해서 하는 설교는 못하지요. 그런 어려움이 있어요. 한번에 끝낼 설교만 해야 하니까 제약을 받습니다.”
박 목사의 말에는 아쉬움이 묻어 나왔다. 설교를 더 전할 기회가 많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럴 만한 여력이 없다. 건강의 이유도 있지만 최근에 저술 작업에 매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7년 펴낸 강해서 ‘사무엘 상·하’와 ‘다윗과 솔로몬의 통일왕국’에 이은 책을 집필 중이라고 했다. “죽기 전에는 다 써야 하는데, 하나님께 떼를 쓰고 있죠. 이거 다 한 다음에 데려가시라고요.”
-설교를 잘 하는 비결이 있습니까?
“설교에 대해서 잘 아는 설교학의 대가들은 어마어마한 비결들을 말하겠지요. 난 좀 무식한 사람이라, 설교를 잘할 수 있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성경을 한없이 많이 읽으라는 겁니다. 성경을 한없이 많이 읽어요. 다른 목사님들에게 미안하지만 우리 목사님들이 성경을 적당히 읽어서는 안 됩니다. 목을 내놓고 죽을 힘을 다해서 읽어야 합니다. 성경을 너무 많이 읽어서 손해 보는 일은 없습니다.”
-진짜 설교는 언제부터였습니까?
“1945년 평양신학교 학생 시절에 저는 굉장한 기대를 가지고 설교학 공부를 했습니다. 그런데 설교 잘 하는 법을 한 마디도 못 들었어요. 그래서 죽을 고생을 했지요. 나름대로 설교를 잘 해보려고 노력했어요. 한 4~5년 동안 죽을 고생하다가 나름의 방법을 개발했지요. 이대로 하니까 되더랍니다. 설교의 재료를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 간단합니다. 성경을 한없이 많이 읽으라는 것입니다. 적당히 읽어서는 안 됩니다. 죽을 힘을 다해 읽어야 합니다.”
-이후로 설교가 잘 되었나요?
“그 방법을 터득한 때부터는 설교 때문에 어려움을 겪은 적은 없습니다. 내 설교 원고는 월요일에 나갔습니다. 그리고 다음주 설교 본문과 제목을 언제나 미리 예고해주고, 주일날 설교지만 월요일에 비서한테 보내요. 여유가 있으니까요. 건방지지만 성경 본 게 있으니까. 자동적으로 많이 나오니까요. 옛날에는 목사들이 토요일에 긴장하고 그렇지 않습니까? 저는 긴장도 안되고, 설교가 많이 여유가 있지요. 설교 준비 시간도 얼마 안 걸려요. 평소에 성경을 많이 읽어 놓으면 저절로 나오는 겁니다.”
-성경을 죽을 힘을 다해 읽으라고 하셨어요. 기준이 있습니까?
“예전에 신학교에서 학생들 가르칠 때 그걸 소개해 줬습니다. 내가 성경 본문을 얼마나 아는지 온도계가 있는데 그것으로 평생 재보라고 했습니다. 화씨, 섭씨 있듯이 온도계가 두 개다.
하나는 누가 옆에서 성경 한 구절을 읽을 때에 그 구절이 어느 성경 몇 장에 있는지 알아 맞힐 수 있느냐? 절 수까지는 필요도 없고, 장 수까지만 알아맞히면 돼. ‘하나님이 태초에 창조하시느니라’ 그거야 알겠지. 그와 같이 신구약 어디에서 누가 한 마디 읽어도 그 성경은 예레미야 39장, 이사야서 몇 장, 아무 성경 몇 장인지 알아맞힐 때까지 읽으라고 합니다.
화씨는 이사야 48장 할 때에 선 자리에서 아웃라인(요약)할 수 있느냐? 에스겔 18장 대략 무슨 말씀인지 아웃라인 할 수 있느냐? 창세기 1장이나 되겠지? 마태복음 1장이나 되겠지? 호세아 8장, 시편 48편, 아웃라인 할 수 있겠는가? 이 정도까지 읽어라. 이거 될 때까지 죽어라고 읽어라.”
-성경을 어느 정도까지 읽으신 건가요?
“내가 학생들에게 강조하지요. 이 성경책이 간단하게 증명되는 책으로 알지 말아라. 왜? 내 경험을 보아서 나는 다행히도 옛날에 1947년 5월말 어느 날 제가 가장 존경하는 최원초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일본에 계셨어요. 제 믿음의 스승이요. 아버지였지요. 그 분이 나에게 말하기를 네가 신학하고 목사되기 위해서는 성경 본문부터 많이 봐라. 말씀이 (당시에) 내게 받아지지 않았지만, 그 목사님 말씀을 액면 그대로 받았습니다.
21살이었어요. 그 때부터 이 나이까지 만 65년이 되는군요. 저 딴엔 죽을 힘을 다해 읽는다고 읽었습니다. 성경 몇 번 읽었는고 많이 묻는데, 하루에 성경 보면 4시간 본다는 말을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사실입니다. 사실인데, 이것은 참되게 말해야 되지요. 65년을 그렇게 읽은 게 아니고.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 68년도에서 91년까지 23년 동안은 문자 그대로 하루에 4시간. 구약 2시간, 신약 2시간 읽었습니다.”
-왜 91년까지만인가요?
“왜 91년까지냐? 부끄럽지만 눈이 좀 안 좋습니다. 백내장 수술해서요. 눈을 잘 보지 못해서 91년부터는 그렇게 못 읽었어요. 지금은 또 제가 저술하는 것이 있어요. 육신의 제한이 있어요. 현직에 있을 때는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11시간 반, 지금은 7시간 반 밖에 못 앉아 있어요. 시간적으로 제한받고, 저술 때문에 그렇게 못 읽어요.”
-성경 중에서 특히 많이 읽은 부분은요?
“제가 특별히 시편과 잠언은 약 7백 번 정도 읽었습니다. 제가 옛날에 50년도 1월 1일부터 하나님께서 어떻게 제게 그 마음을 주었는지. 구약의 역사적인 부분은 기억이 잘 되요. 그런데 시편과 잠언은 시니까. 사건이니 아니니까 기억이 잘 안 돼요. 시편과 잠언은 중요한 내용이에요. 그걸 알고 안 되겠다 그때부터 구약을 순서대로 읽는데, 시편 하루에 5편. 한 달에 한 권. 하루에 잠언 1장. 한 달에 한 권 읽죠. 그것을 이날까지 계속했습니다. 그래서 시편은 환합니다.
그런데 잠언은 환한데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요. 이게 성경이거든요. 시편은 문맥이 있지요. 잠언은 문맥이 없습니다. 시편 잠언을 660~70번 읽었는데 잠언은 지금도 헷갈려요. 이게 제 고백입니다. 시편, 잠언을 그 정도 읽었는데 이 꼴입니다. 이게 성경이더군요. 그래서 성경은 간단하게 증명될 책이 아니다. 65년을 쪼아대고 시편 잠언을 660~70번 정도 읽었는데도 이 꼴이니 얼마나 더 읽어야 되겠습니까? 성경이 이런 책이에요. 난 이걸 고백합니다.”
-요즘 한국교회 설교를 들어보면 어떻습니까?
“이건 좀 건방지지만은 여기저기서 말을 들어보면 내로라 하는 설교학 교수님들조차도 이것을 강조하지 않더군요. 들리는 말에 의하면, 심지어 한국교회 설교의 태양이라고 하는 그러한 목사님들조차 설교 잘하는 비결을 다른 사람의 설교집을 되도록이면 많이 읽으라고 합니다. 그 말 들을 때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그 교수님이 다른 사람의 설교집을 되도록이면 많이 읽으라고 했다는데 그 교수 밑에서 배우는 신학생들이 얼마나 불쌍한가 말이죠.
오늘 설교학 교수들조차 죽을 힘을 다해 보지 않으니까 그 세계를 모릅니다. 나는 다행이도, 최홍초 목사님 통해서 강한 도전 받았습니다. 나도 그 때 도전 못 받았으면 그렇게 됐겠지요. 설교 잘하는 데 방법이고 비결이고 없다. 성경 많이 봐라. 이거 내기한다고 해도 자신 있습니다.”
-목사님께서 최고로 꼽는 설교자는 누구입니까?
“고 백영희 목사님 말 못 들어봤지요? 저는 신학생들에게 백영희 목사 설교를 모르고 설교학을 논할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세상 뜬 지 20~30년 됐는가. 거창의 시골에서 자라신 분이고, 이 분은 초등학교도 못 나온 분입니다. 고려신학교 밖에 못했지요. 그런데 예수 믿고 나서 거창 산골짜기에서 한글 성경을 죽어라고 읽은 거에요. 나는 백영희 목사님 설교를 많이 들었는데, 백영희 목사님 설교는 전국적이 아니라 세계적입니다.
그분의 설교는 무엇인고 하니 오늘 목사들의 설교가 나는 그렇게 하지는 못하지만 제 소원은 ‘설교는 자살을 하러 가던 사람이 자살을 하러 가다가 마지막으로 예배당을 들려보고 가자. 예배당에 들렀다가 설교를 듣고 내가 왜 죽어? 이렇게 만들어야 된다’는 그겁니다. 백영희 목사님 설교가 바로 그런 설교였습니다. 설교는 약장사가 아니거든요. 인생을 살려야 하는 것이거든요.
백영희 목사님 설교마다가 그런 설교입니다. 그 분이 하도 유명해서 내가 53년도 7월 달에 물었어요. ‘설교 잘하는 비결이 뭡니까?’ ‘비결이고 목딱이고 뭐 있냐 말이야? 본문 많이 읽으면 다 해결된다’ 그 때 ‘아멘’하고 받았습니다. 그 말씀 듣고 60여년 지났는데 지날수록 백점 만점 대답이에요.
박 목사는 “고 백영희 목사의 설교를 들으면 다른 설교는 듣지 못할 정도”라며 백 목사의 설교를 높이 평가했다. 백 목사는 고신 교단 출신이지만, 1959년 6월 제명을 당하고, 이단 시비 등으로 한 차례 아픔을 겪었다. 백 목사가 부산서부교회 담임 시절이었던 1979년 한 일간지의 특종 보도로 ‘세계 최대 주일학교’로 소개되어 당시 10여년간 기독교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그러다 1989년 8월 27일 백 목사는 주일 새벽예배 설교 도중 괴한의 칼에 찔려 순교했다. 그의 명맥은 예수교장로회 한국총공회(백영희 목사 창립) 교단이 잇고 있다.
매서웠다. 한국교회 설교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얼음장이 되어 사방으로 튀었다. “건방지지만”으로 시작해 “맞아 죽을 각오로”로 끝나는 비판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분위기 전환을 위해 내수동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봤다.
-내수동교회 대학부는 대단했죠?
“80년 그 무렵에 저는 행정을 할 줄 몰라서, 사람 끌어 모으는 재간이 없었어요. 교인이 450명이었는데 그 중에 대학생이 150명이었죠. 당시 예장 합동 교단에서 대학생들이 가장 많이 모일 때였어요. 그 때는 왜 이렇게 많이 모이나 몰랐어요. 그런데 제가 은퇴하기 1년 전에 송인규 목사(합동신학대학원 교수)가 그러더군요. ‘설교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 그 때서야 그런가? 했어요. 어설프게 회상이 떠올라요.”
당시 내수동교회 대학부의 멤버들은 현재 한국교회를 이끌어가는 리더들이 됐다. 박 목사의 영향이었을까? 대부분 설교에 일가견이 있는 목사들이다. 오정현(사랑의교회), 김남준(열린교회), 오정호(대전새로남교회), 박성규(부산부전교회), 화종부(제자들교회), 송태근(강남교회) 목사 등이 내수동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며 박 목사의 영향을 받았다.
-지금 제자들을 생각하면 어떤 마음입니까?
“내사모라고, 내수동교회 사역자 모임을 1년에 한 차례씩 갖습니다. 같이 식사하고 교제 나누는데, 갈 때마다 하는 말이 ‘여러분 미안스럽다. 태평양을 누비는 고래들인데, 실개천에 가둬 놨으니 얼마나 미안한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무슨 뜻인가요?
“오정현, 김남준이 다 거물들 아닙니까? 나는 속이 좁은 사람인데, 나하고 일할 때 얼마나 답답했겠는가 말이야. 그 말을 해마다 합니다.”
-이런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예전에 (신대원에서) 신학생들에게 그런 말을 했지요. 호랑이를 설명할 때 그림 속 호랑이를 본 사람과 동물원에 가서 호랑이를 본 사람, 백두산에 올라가 호랑이를 본 사람은 다르다. 누가 실감나게 호랑이를 표현할 것이냐는 겁니다. 또 히말라야산에 대해서 정확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굽니까? 아인슈타인이 할 수 있습니까? 아니죠. 직접 정상에 올라간 사람이 실감나고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죠. 설교자도 그와 같은 것입니다. 한국의 설교자들이 모두 이런 설교자가 되면 좋은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