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금슬금 다시 고개 드는 이슬람채권(수쿠크) 도입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정부, ‘제2의 중동 특수’ 위해 ‘오일 머니’에 여전히 미련

지난해 경제계와 교계의 강력한 반대로 도입이 무산됐던 이슬람채권(수쿠크) 문제가 다시 부상하고 있다.

지난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전세계로 번진 경기침체로 ‘오일 머니’가 새로운 자금 조달처로 주목을 받았지만 이듬해 터진 두바이 채무위기 사태로 오래 가지 못했는데, 최근 회복세가 뚜렷해지면서 우리나라에서도 도입 열기가 뜨거운 것.

여기에 한국수출입은행이 첫 테이프를 끊었다. 지난 2일 수출입은행은 중동자금 활용을 위해 국내 최초로 이슬람채권(수쿠크) 발행에 보증을 서는 형식으로 참여하기로 했다. 명분은 자금조달 시장 다변화와 함께 해외 대형 프로젝트 시장에 진출하는 국내기업 지원이다. 수출입은행은 아람코가 자금조달을 위해 수쿠크를 발행하면 지급보증을 하는 형식으로 참여하며, 그 규모는 5-10억 달러로 예상된다.

수출입은행 관계자는 이에 대해 “하반기 사우디아라비아 국영기업인 세계 최대 석유회사 아람코와 함께, 건설중인 자산을 기초로 하는 이슬람 채권인 ‘프로젝트 수쿠크’ 발행을 추진한다”고 밝혔다고 언론들은 보도하고 있다. 이 ‘사다라 프로젝트’는 총 사업비 183억 달러가 투입되는 사우디아라비아 석유화학단지 건설사업이다.

그러나 수출입은행의 공식 입장은 “아람코와 금융협상을 진행하고는 있으나 아직 결정된 사항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지난해 8월 이 프로젝트에 대한 30억 달러 한도 내의 금융지원 의향서는 이미 발급했다”고 추진 사실 자체는 인정하고 있다.

수쿠크는 현재 국내 발행이 불가능하지만, 해외 발행 수쿠크로 생긴 자금을 해외에서 사용하는 것은 지금도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금융계는 이번 프로젝트를 기점으로 중동자금 활용이 더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수출입은행의 이같은 참여는 정부의 강력한 ‘오일 머니’ 유치 의지에 따른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8월부터 국내 금융회사의 외화차입선을 다변화하기 위해 외환보유액이 풍부한 중동 오일머니 유치를 독려해 왔다. 수출입은행은 지난해 11월 현지 대형 프로젝트 참여 한국 건설회사 지원을 명목으로 2억 달러 상당의 사우디아라비아 리얄화채권을 5년 만기로 발행하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지난 2월 중동 순방 당시 ‘제2의 중동 특수’를 노리자며 “‘오일 달러’ 확보는 우리 기업들에게 기회”라고 밝혔고, 3월에도 “경제가 어려운 때 중동 오일 머니를 활용할 방안을 검토해 보라”고도 했다. 현재 중동 지역에서는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가 급증해 투자자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전세계적으로도 수쿠크 발행 규모가 지난해 사상 최대인 326억 달러를 기록하는 등 수요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올해 들어서도 지난 3월 말까지 104억 달러가 발행됐는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의 두 배에 가깝다.

이에 따라 수쿠크에 관심을 갖는 국가들도 늘고 있다. 그동안에는 이슬람 국가들 중에서도 중동 지역과 말레이시아에서만 수쿠크가 발행됐으나, 최근 몇 년 사이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나이지리아가 관심을 표명했고 호주와 터키, 홍콩 등도 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처음으로 민간이 아닌 정부 차원에서 수쿠크를 발행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2009년 9월부터 이슬람채권 거래를 위한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제안했지만, 이슬람채권에만 세금을 면제해줄 수 없다는 ‘특혜’ 시비 때문에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이슬람 국가들은 ‘꾸란’에 위배된다며 이자 대신 실물 투자로 이윤을 창출하고 있는데, 현재 우리나라 법제상 해외 자금의 실물 투자에는 각종 세금이 붙어 이슬람 자금들이 들어와도 이들에게 이윤이 남질 않아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여기에 붙는 세금을 면제해주자는 게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인데, 다른 해외 투자자나 국내 차입자들과의 형평에 맞지 않는다는 반대에 부닥친 상태다. 수쿠크 일부 자금이 테러집단으로 흘러들어간다는 의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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