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기 목사 설교] 가인의 제사와 아벨의 제사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야훼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야훼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야훼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야훼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창 4:1~8)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가인의 제사와 아벨의 제사”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여러분 응접실 카펫이 더러워지면 임시로 다른 천으로 덮어서 가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를 해결하려면 카펫 전부를 씻어야지 일부분을 가려놓아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아담이 지은 죄는 사망의 죄입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기 때문에 사망의 죄를 지었는데 아담이 일시적으로 그 죄를 짐승의 피로써 덮을 수는 있으나. 영원히 그 피를 가지고서는 덮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항구적인 해법은 안되는 것입니다. 그 죄악을 임시로 덮는 것도 죄의 값은 사망이기 때문에 짐승의 피로써 덮어야 되는 것입니다.

죄지은 것은 죽어야 죄값을 청산합니다. 사람이 죽는 대신에 임시로 짐승을 잡아서 피를 흘려서 덮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에덴에서 쫓겨냈을 때 벌거 벗은 채로 내쫓지 아니하시고 짐승을 잡아서 가죽옷을 만들어 입혔는데 짐승을 잡기 위해서는 피를 쏟아야 되지 않습니까? 피흘림이 없이 가죽을 어떻게 벗깁니까? 피를 흘리고 임시로 가죽옷을 만들어서 입힌 것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임시로 죄에서 가리움을 받아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짐승의 피를 흘려야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인은 농산물을 가지고 제사를 지냈는데 하나님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농산물로써는 죄를 덮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나올 수가 없습니다.

아벨은 양의 새끼를 잡아서 피를 흘리고 기름을 태워서 하나님께 드림으로 하나님께 나올 수 있는 길을 열었습니다. 임시적이라도 죄를 덮어서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는 길을 열어줬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인의 제사는 받아들이지 않으시고 아벨의 제사는 받아들인 것입니다.

<본론>
1. 죄의 값은 사망

죄의 값이 사망이기 때문에 그렇게 죄가 무섭습니다. 원래 죄의 근원은 사람이 아닙니다. 마귀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는 사람이 생기기 전에 천사들이 있었는데 하나님은 천사장을 가브리엘, 미가엘, 루시퍼 세 천사장을 세우신 것입니다. 가브리엘은 기쁜 소식을 전하는 천사이고 그 다음 미가엘은 전쟁하는 천사이고 루시퍼는 찬양하는 천사입니다.

하나님 앞에 찬양을 드리는 천사인데 이 루시퍼가 마음이 교만해졌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찬양 드릴 것이 있느냐 하나님과 나도 이콜이 될 수 있겠다. 하나님과 똑같이 앉아서 우주를 통제하고 천사를 다스리는 자가 되겠다. 잘못된 생각을 가진 것입니다. 그래서 죄악이 거기에서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절대 믿음과 순종을 하지 않고 자기중심으로 서서 자기를 섬기고 하나님과 대등하게 행동하려고 하다가 그는 버림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사야 14장 12절로 15절에 하나님께서 루시퍼에 대한 심판을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계명성이 바로 루시퍼라는 것입니다.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별은 천사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뭇 천사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북극 집회는 하나님이 불러서 회의를 하는 곳인데 그곳의 상좌를 자기가 차지하겠다는 것입니다.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전지전능 무소부재하신 하나님과 함께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네가 스올 곧 구덩이 맨 밑에 떨어짐을 당하리로다” 스올이란 음부를 말합니다. 지옥을 말합니다. 바로 하늘에서 루시퍼는 그가 따르는 천사 1/3을 데리고 타락해서 공중에 권세를 잡고 진을 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 세상을 지을 때 빛이 있으라 하시고 보기에 뭐라고 했습니까? 좋았더라 했습니다. 그 다음에 궁창을 지으시고 좋았다는 말 안하셨습니다. 다른 것 지었을 때는 다 주님이 좋았다 했는데 궁창을 지었다는 것은 타락한 천사가 궁창을 점령하고 있기 때문에 그 궁창을 좋다고 말하지 않고 하나님은 나쁘게 본 것입니다. 오늘날도 반역의 흑암의 왕궁을 세운 공중권세 잡은 원수 마귀는 공중에 진을 치고 자기 나라를 가지고서 하나님을 참소하고 인류의 고통을 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2절에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공중의 권세를 잡고 거기에서 온 세상의 안 믿는 사람들을 손에 잡고 죄악을 짓도록 이끌어 가고 있는 원수마귀의 역사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담은 처음 지음을 받을 때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지위를 가졌기 때문에 타락도 언제나 그보다 더 무서운 비극을 가져온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을 받았던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왜 하나님이 구태여 아담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었나요? 여러분 형상과 모양을 어디서 봅니까? 거울보면 내 형상과 모양이 저렇구나. 알 수 있지요. 하나님은 누구를 봅니까? 여러분을 보면 하나님이 아, 저가 내 형상과 모양이구나. 그만큼 여러분은 하나님을 닮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닮은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천사처럼 만들지 않았나요? 왜 동물처럼 만들지 않았나요? 왜 다른 것과 같이 만들지 않고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만들었느냐.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랑할 대상으로 여러분을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할 대상으로 여러분을 만들었으니 얼마나 잘 만들었겠습니까? 우리도 아무나 사랑합니까? 길거리를 가다가 아무 여자나 있으면 남자가 너 나 사랑하자 그럽니까? 또 여자가 아무 남자나 지나가는 사람 만나서 당신 나 사랑합시다 그렇게 합니까?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을 택해서 사랑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탁 들고 좋아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 과학자들은 말하기를 3초내에 생긴답니다. 나는 안그렇지 싶은데... 여하간 자기가 좋아하는 남자와 좋아하는 여자를 교제하고 사랑하는 것처럼 하나님도 하나님이 좋아하는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 가장 좋아하는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사랑은 혼자로써 사랑은 못해요. 혼자서 어떻게 사랑합니까? 상대가 있어야 사랑하지요. 하나님의 상대가 바로 여러분인 것입니다. 가장 좋아하는 상대가 여러분인 것이므로 여러분을 엄청나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 무소부재하지 않습니까? 전지전능하시고 무한하기 때문에 여러분을 사랑하는데 이만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이만큼 사랑합니다. 어린아이 때 부모님이 애들 보고 너 나를 얼마나 사랑하느냐. 엄마, 아빠를 얼마나 사랑하느냐 하면은 이만큼 사랑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압니까? 이만큼 사랑합니까? 한없이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엄청나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영원한 하나님이 자기 사랑하는 대상으로 여러분을 만들어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었기 때문에 여러분의 영은 정말 영광스럽기 한이 없습니다. 그런 여러분이 하나님을 반역하고 타락했으니 그 반역과 타락에 대한 원한이 얼마나 깊습니까? 사랑해주는 것만큼 반역하면은 반역에 대한 원한이 커지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해야 되고 순종해야 될 것인데 하나님을 반역하고 하나님을 거역했을 때 대가는 죽음인 것입니다.

죽음이란 것은 영적으로 하나님과 분리되는 것이고 육체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절대 순종과 믿음으로 살아야 되겠는데 하나님이 선악과로 시험해 보셨어요.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죽으리라 했는데 먹으면 마귀를 따라가서 사망의 종이 되는 것이고 선악과를 거역하면 생명과를 따먹고 영원히 하나님과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생명과를 따먹지 아니하고 사망의 세력을 가진 원수 마귀의 꾐을 받아서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선악이라는 것은 좋다 나쁘다를 말하는 것입니다. 좋다 나쁘다를 내가 마음대로 결정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나쁘다고 해도 내가 좋으면 내가 내 마음대로 합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내가 나쁘면 나는 안따라갑니다. 좋다 나쁘다의 권리를 내가 가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집안에서도 자녀들이 부모들이 좋다는 것을 따라가야 되고 나쁘다는 것을 하지 말아야 가정이 평안한데 부모에게 반대해서 부모가 나쁘다는 것을 자기 좋은 대로 행하고 부모가 좋다는 것은 자기가 나쁘다고 안하고 하면 가정에 불순종이 들어와서 분쟁이 생기는 것입니다. 부부간에도 인정이 있는 집안에는 남편이 좋다면 아내도 따라가고 아내가 좋다면 남편도 따라가고 서로 좋다는 것에 일치하는 마음이 있는데 남편이 좋다면 아내가 싫다. 남편이 싫으면 아내가 좋다. 그러면 서로 상대가 대결이 되고 싸움이 되는 것입니다.

우주에는 하나님 한 분 밖에 절대주권자가 없는데 하나님이 좋다면 다 좋다고 따라가야 돼요. 하나님이 싫다면 다 싫어해야 해요. 어떠한 사람들은 말하기를 정의를 위해서 나는 이 세상에 정의를 실천한다. 여러분 정의가 뭡니까? 자기가 생각하기에 옳고 그런 것이 정의입니까? 아닙니다. 정의는 뭐냐,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이 정의인 것입니다. 이 세상의 정의는 하나님밖에 안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옳다면 옳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쁘다면 나쁜 것입니다. 사람 눈에 아무리 좋게 보여도 하나님이 좋지 않다 하면 좋지 않은 겁니다. 사람 눈에 아무리 나쁜 것 같아도 하나님이 좋다면 좋은 것입니다. 그게 바로 선악과의 시험인 것입니다.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하나님이 죽으리라고 했는데 마귀는 먹으면 너도 지혜를 얻어 하나님처럼 되니 좋다고 말하니까 하나님이 나쁘다는 것을 아담과 하와가 좋다고 따먹고 난 다음에 하나님과 대결되어서 하나님께 쫓겨나간 것입니다. 그래서 반역을 택한 아담의 죄의 문제는 사망입니다. 하나님께 쫓겨나간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 육은 죽어 흙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반역을 선포한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나가고 싶으면 이제는 그냥 못나가요. 죄의 값은 사망으로 죽음이 딱 기다리고 있는데 어떻게 나갑니까? 자기가 죽어서는 하나님 앞에 나갈 존재도 없어지니까 자기 대신해 짐승을 죽여서 임시로 죄를 덮고 임시로 덮은 그 보혈의 능력으로 하나님께 나가는 것입니다. 죽음밖에는 하나님 앞에 나갈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짐승의 대리 죽음과 피흘림을 통해서 우리는 일시적으로 죄를 덮고 하나님께 나가는 것입니다.

2. 가인과 아벨의 제사

가인의 제사와 아벨의 제사가 바로 거기에 다른 것입니다. 가인은 내 마음대로 제사 지냈으면 되었지 하나님이 무슨 잔소리가 많아. 내가 제사 드리면 받으십시오. 내 농사지어 가지고서 좋은 곡식으로 제사 드리면 고맙게 생각하고 받아 기뻐하십시오. 타락한 인의 지 마음대로 하는 것입니다. 아벨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벨은 하나님께서 피로써 죄를 덮어야 나에게 나온다. 그 말을 마음에 두고서 양을 잡아서 피를 흘려서 죄를 덮고 하나님께 나가니까 하나님이 아벨의 제사는 받아서 아벨하고는 대화를 해주시고 가인은 물리쳤습니다. 가인이 화가 났다 말입니다.

왜 하나님이 동생의 재물은 듣고 내 재물은 안받아 줍니까? 너는 너 중심으로 인생을 살고 네가 선악을 선택해서 살기 때문에 나와 관계가 없지 않느냐. 그러나 아벨은 자기가 선악과를 따먹은 인류의 죄를 통회 자복하고 그 대신 죽음으로써 피를 흘려서 그 죄를 덮고 믿음과 순종으로 나오기 때문에 내가 아벨과 대화하지 않느냐. 하나님은 아벨을 사랑하고 가인을 싫어했습니다. 가인이 화가 나서 아벨을 들에서 몰래 쳐 죽였습니다. 살인죄를 지은 것이 가인인 것입니다.

바로 가인은 창세기 4장 2절로 5절에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야훼께 드렸고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인본주의적인 반역의 제사, 선악과에 대한 회개가 없는 제사,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이 받아들이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아벨의 제사는 믿음과 순종의 제사입니다. 피 흘림이 없은즉 죄사함이 없다 했는데 창세기 4장 4절에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야훼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그는 선악과를 따먹은데 대한 철저한 회개를 했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기 때문에 그것을 순종해서 자기 대신해서 양을 잡아서 죽여서 피를 흘려서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진노를 일시간에 덮고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 구약을 보면 끊임없이 하나님께 나갈 때 제사가 있습니다.

3. 이스라엘 백성의 제사

하나님께 나갈 때 속죄제사를 드렸습니다. 속죄제사는 원죄를 덮지 않고는 하나님께 나갈 수가 없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지은 죄, 원죄를 덮어야 나가는데 그 속죄 제물없이 하나님께 아무도 못나갔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에 보면 언제나 하나님께 나가려면 속죄제사를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계명에 분명히 나타난 하나님의 죄를 속죄받기 위한 제사로 의무적인 제사인 것입니다. 속죄제사를 드리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는 무슨 제사를 드리냐면 속건제사를 드립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속건제사,

속건제사는 허물의 제사입니다. 속죄제사는 원죄입니다. 내가 안지은 죄인데 우리 조상 아담이 지은 죄로 말미암아 다 죽었으니까 그 원죄에 대한 제사를 드리고 피를 흘리고 나가야 되는데 속건제사는 내 개인의 제사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내가 이웃에 상처를 입히고 내가 율법을 어긴 죄, 내 개인의 죄를 덮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조상의 유전 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개인 죄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 나갈 때 우리 원죄도 있지만 내 자범죄가 있지 않습니까? 속건제사는 내 자범죄에 대한 제물을 또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내 죄를 자백하고 자범죄의 제사를 드려야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기쁘고 좋은 일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감사를 드릴 때 드리는 제사가 뭐냐면 번제입니다. 번제는 온전히 태워서 향기를 하나님께 드려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제사인 것입니다. 우리가 솔로몬이 산당에 가서 1천 제사를 드리고 난 다음에 하나님의 계시를 받지 않습니까? 그것 번제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제물은 많이 드릴수록 좋았습니다. 부자들은 백마리의 짐승을 천마리, 만마리도 드려도 좋은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사로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과거에 제사드릴 때 꼭 세가지는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제일 처음에 반드시 드려야 되는 것은 속죄제사인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속죄제사, 두 번째 제사는 내 개인의 죄를 청산하는 속건제사입니다. 속건제사. 셋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즐겁게 하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번제인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번제. 피흘림이 없는 제사는 하나님께 나갈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죄는 피를 흘려야 되는 것입니다. 원죄를 흘리는 데도 피를 흘려야 되고 자범죄를 내가 지은 것도 피를 흘려야 용서를 받고 하나님께 기쁘심을 주는 것도 피를 흘려서 제물을 드려야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입니다.

레위기 17장 11절에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많은 강수와 같은 짐승의 피도 인간의 죄악을 임시로 듣기는 하나 죄를 씻어 버릴 수는 없습니다. 카펫트가 더러워졌는데 임시로 작은 것으로 덮어 놓을 수는 있어도 그것을 완전히 카펫트를 빨지 않고는 카펫트가 깨끗해지지 않는 것처럼 여러분의 인생을 완전히 예수님의 보혈로 씻기 전에는 일시적으로 짐승의 피로써 덮어 놓는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1절로 9절에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하게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제사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그러나 이 제사들에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번제와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느니라”

이것은 예수님이 예언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위에 말씀하시기를 주께서는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는 원하지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율법 하에서 드리는 속죄제, 속건제, 번제는 할 수 없이 일시적으로 사람들과 하나님이 교제하기 위해서 드리기 위해 흘린 피지 영원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 제사를 원치 않습니다. 사람이 지은 죄를 짐승의 피로써 어떻게 청산할 수 있습니까? 사람의 죄는 사람이 씻어야 되는데 사람이 우리 죄를 위해서 죽어줄만한 깨끗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죄를 지었으니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데 그래서 죄 없는 사람이 태어나야 되므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이 세상에 오게 된 것입니다.

주여, 나를 위해서 한 몸을 예비하셨다고 성경은 말한 것입니다. 우리 제물이 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실 때부터 우리에게 무슨 훌륭한 선생이 되기 위해서 오신 목적이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이 세상에 병이나 고쳐주고 귀신이나 쫓아낼려고 오신 것이 아닙니다. 근본적인 목적은 우리에게 죄를 사하기 위한 재물이 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얼마나 여러분 놀라운 은총인지 모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태어나신 것은 우리를 위한 재물이 되기 위해서 오셔서 하나님의 뜻을 통해서 재물이 되신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나요. 하나님은 여러분을 너무나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은 여러분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을 지어 놓고 난 다음 또 새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사람을 지을 수가 없어요. 하나님은 한번 애인을 가졌으면 영원한 애인이지 중간에 갈아치우지 않습니다. 사람은 애인을 자꾸 갈아치우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아요. 여러분을 한번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았으면 영원입니다. 영원히 사랑하는 것입니다. 영원히 사랑한 여러분이 타락해서 마귀의 종이 되어 마귀하고 놀아나니 하나님의 가슴이 얼마나 아픕니까? 사람들이 타락해서 마귀와 바람을 피웁니다. 한없이 마귀와 바람을 피우고 돌아다니니 하나님 가슴이 얼마나 아픕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이 인간의 죄를 다시 용서하고 품에 품기 위해서 그 아들 예수 하나님을 보내셔서 십자가에 못박힌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을 어느정도 알려면 하나님이 여러분 위해서 당한 고생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자식을 사랑하는지 어떻게 압니까? 자식을 위해서 온갖 굳은 일도 싫지 않다고 다 일을 하고 고통을 당하는 것은 부모님이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고 그 고난을 통해서 사랑의 깊이와 넓이와 높이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했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고난당한 것 보십시오. 몸을 찢고 피를 흘리고 너무나 고통스러울 때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우주에서 버림을 당하는 고통을 당하면서도 그것을 참은 것은 여러분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바람 피우는 우리를 사랑해서 다시 하나님이 보혈로 씻고 하나님 백성으로 품에 품기 위해서 주님이 그 고난당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은 엄청난 사랑입니다. 여러분, 인간으로써 여러분 깨닫지 못할 거에요. 부모님이 자식을 사랑하는 것을 자식이 압니까? 못 깨닫습니다. 어제도 어떤 분이 한분 나에게 와서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어머니 살았을 때 어머니 사랑을 내가 몰랐는데 어머니 세상 뜨고 난 다음 내 나이가 이제 예순이 넘고 나니까 어머니 사랑을 깨닫는데 조금씩 어머니 사랑을 깨닫고 어머니 그리워져도 이제 어머니는 세상에 있지 않다고 눈물을 글썽 거렸습니다. 사람들도 부모가 세상을 뜨고 난 다음에 나중에야 자기가 그 고생을 하면은 부모 사랑을 깨닫는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인간으로써 도저히 측량할 수가 없습니다. 십자가의 그 사랑을 어떻게 측량할 수 있겠습니까?

여하간 하나님은 여러분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예수의 피로써 구원을 받게 됨은 잃어버린 자식을 다시 품에 품고 잃어버린 애인을 다시 품에 품었으므로 우리 하나님은 너무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여러분이 하나님을 경배하고 예배하고 찬송하면 하나님이 너무 좋아서 몸부림을 치시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 여기 하나님이 오셔서 여러분 가만 계시니까 귀에 안들리니까 모르지만 하나님이 너무나 좋아서 아이구 좋다. 참 좋다. 내 자식들, 내 애인들, 내 아내, 내 사랑 다시 돌아왔으니 참 기쁘다. 이렇게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만족하게 해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은 사랑할 대상이 있고 그 대상이 가까울수록 좋은데 하나님의 사랑하는 대상이 예수님의 보혈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얼마나 감사한 것입니까? 그러므로 예수님의 보혈을 우리는 감사해서 아버지 품에 자꾸 더 깊이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엄청나게 사랑했는데 이 하나님의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 육신의 남편, 육신의 아내, 육신의 부모, 육신의 자식 사랑하는 그 사랑은 견줄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끝없는 사랑으로 사랑하시기 때문에 여러분이 오히려 이 땅에 살면서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믿으면 그것 다 청산해 버리고 캐묻지 아니하시고 뛰어나와 얼싸안고 사랑으로 여러분을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은혜로 돌보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님께 얼마나 감사해야 될지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4.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님

예수님은 아담의 그 모든 죄악을 다 청산하고 아버지께로 돌아오게 하는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로마서 5장 10절로 11절 우리 다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해야 돼요. 하나님도 여러분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탕자가 아버지께로 돌아올 때 뛰어나가서 좋은 옷을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신발을 신기고 가락지를 끼우고 살찐 송아지를 잡아라. 우리 먹고 즐기자. 예수 믿는 신앙은 먹고 즐기자는 말씀대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즐거워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때문에 즐거워하시는데 우리도 하나님 때문에 즐거워해야 돼요. 예수 믿고 즐거워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슬픈일이 너무 많아도 너무나 하나님은 이젠 즐거워하기 때문에 우리도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요한일서 2장 2절에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온 세상 죄를 다 짊어지셨으니 다 주님께 돌아오기를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기독교와 타종교의 다른 점이 어디 있는 것입니까? 기독교는 아벨의 제사를 완성하신 것입니다. 짐승의 피를 흘려서 하나님께로 임시에 왔다갔다 할 수 있는 것을 예수님이 대신해서 우리를 위하여 피를 흘려 영원히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4절에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러나 타종교는 가인의 제사인 것입니다. 기독교 이외에 다른 종교는 자기 마음대로 하나님께 나가고 자기 마음대로 구원받겠다고 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 제물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9장 22절에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피흘림이 없이 오는 것은 가인의 제사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하나님은 죄사함을 주지 않습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에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아벨의 피를 완성한 예수 그리스도 이름 이외에 어떠한 이름도 우리 죄를 청산할 수 없습니다. 죄가 없는 자가 죄인을 대신해서 죄를 청산할 수 있는데 이 세상에 죄 없이 태어난 사람 한 사람도 없어요.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습니다. 예수님만이 죄 없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죄 없이 33년 동안 살다가 우리의 제물이 되어서 대신 십자가를 걸머지신 것입니다. 그리스도 이외에는 구원할 대속자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속죄제물, 속건제물, 번제물이 되셨습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예수님은 우리의 속죄제물이 되시고 또 개인적으로 지은 속건제물이 되시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번제물이 되셨다.

히브리서 10장 10절로 18절에 보면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십자가에서 한번 드림으로 우리를 영원히 거룩하게 하신 것입니다.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영원이라는 것은 무한한 과거와 무한한 미래를 합친 것이 영원인데 예수님의 한번 제사는 우리의 영원한 과거의 죄를 다 청산했습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살아봐서 영원히 사는 사람 아무도 없어요. 70년, 80년 살았지요. 그러나 그 죄는 아무것도 아니고 여러분 영원한 과거를 다 용서해 주시고 영원한 미래를 다 용서해 주시고 예수님의 죄의 용서의 보혈의 효과는 만점인 것입니다. 보혈의 효과가 얼마나 큰지 영원한 과거와 영원한 미래에 다 청산해버리고 다 씻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이 세상이 끝나고 마귀가 지옥으로 던져버림을 당하고 새하늘과 새땅이 될 때까지 주님은 기다리신다는 것입니다.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할렐루야~ 한번 제사로 여러분은 예수 믿으면 온전케 되었습니다. 나는 아직 온전하지 못한다. 아직도 거짓말도 하고 아직도 도둑질도 좀 하고... 혹시 세상을 따라가기도 하고 이런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보혈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온전하다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보았을 때 안경을 끼고 보세요. 예수님 보혈의 안경을 끼고 보기 때문에 죄가 안보이는 것입니다. 보혈의 안경을 벗으면 안되지요. 주님은 영원히 그 보혈의 안경을 끼고 예수님을 믿는 여러분을 바라보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여러분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으므로 성령이 와서 야~ 돌아서라. 아버지는 너를 온 유대인이 보는데 너 사실 온전하지 못하지 않느냐. 그러면 회개하라. 깨끗이하라. 성령이 우리를 변화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온전하다고 보시고 계신 것입니다. 온전히 의롭다고 하시고 온전히 거룩하다 하시고 온전히 거룩한데 보니까 성령이 그렇게 만들기 위해서 우리 속에서 계속해서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언하시되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로는 그들과 맺을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그들의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따라 말씀하세요. 그들이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시라. 주님이 여러분의 죄와 불법을 기억 안하겠다. 하나님은 기억만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안 기억하는 것도 하나님인 것입니다. 하나님도 한번 잊어버리면 영원히 잊어버려요. 여러분의 불법과 죄를 영원히 잊어버리고 다시 기억하지 앉습니다.

우리는 사람들 보면 옛날을 자꾸 따지잖아요. 너 옛날에 어떻게 했지. 저렇게 했지 따지는데 하나님은 한번 여러분 예수 믿고 회개하고 나온 죄는 한번 용서했으면 잊어버립니다. 하나님 그 과거에 내가 지은 죄를 용서해 주세요. 과거에 뭐 지었지? 하나님이 모르십니까? 전지전능하신데... 나는 과거는 다 잊어버린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과거는 다 하나님 앞에 청산하고 잊어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용서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웃을 대할 때도 자꾸 꼬지꼬지 옛날을 캐물어서 그를 상처 주어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이제는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 죄를 다 용서해 줘버렸기 때문에 제사 드릴 필요없다. 속죄제사나 속건제사 드릴 필요가 없다. 과거 없는데 무슨 죄를 짓느냐. 더럽지 않은데 왜 빨래를 해? 더러운 것이 없어졌으니까. 그러므로 여러분 예수 믿고 의롭다함을 얻었다는 것은 놀라운 것입니다. 의가 뭐냐. 예수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 하신 것은 죄를 한번도 안 지은 것처럼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일생에 죄를 한번도 안 지은 상태가 의로운 상태고 하나님 앞에 나올 때 가슴펴고 당당히 나올 수 있는 자격 부끄러워서 이렇게 움츠리고 나갈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나갈 수 있는 자격 이것이 의인 것입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의롭다함을 선물로 얻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말미암아 선악의 절망의 저주를 다 청산하시고 생명이신 예수님을 먹고 영생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제는 선악과를 따먹은 절망으로 인한 저주를 예수님의 보혈로 다 청산하신 것입니다. 땅은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내는 것도 다 청산하시고 죄를 지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병들었던 것도 주님 다 청산하시고 땅을 죄지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과 분리되었던 것도 다 청산하시고 삼중축복을 예수님을 통해서 얻게 된 것입니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도 이제는 잘되고 강건하게 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는 역사를 예수님 십자가 보혈로 다 덤으로 얻게 된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 55절로 58절에 주님께서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지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살을 떼서 주시고 피를 흘려 먹이실 것 같으면 얼마나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겠습니까? 여러분 보통 사랑을 해서 내 살을 베어서 주고 내 피를 뽑아서 마시게 하겠습니까?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몸찢고 피를 흘린 것은 그 살을 우리에게 먹이고 그 피를 우리에게 마신다는 것입니다. 그를 통해서 우리가 이 땅에 살때부터 벌써 천국이 임하여 천국의 은혜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천국에 올라갈 때 기다리는게 아니라 이땅에 사는 동안에 벌써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께 마음대로 감사하며 나가고 성령받고 병고침 받고 저주에서 해방되고 영생의 기쁨을 가지고 삼중축복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는 체험을 갖고 나갈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103편 1절로 5절에 시편기자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내 영혼아 야훼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내 영혼아 야훼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잊어버려야 될 것도 있고 잊지 말아야 될 것도 있는데 과거 용서받은 죄는 잊어버리지만 하나님의 주는 은택은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뭐냐.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죄는 이미 한번 용서했으면 씻어버렸으니 그 씻어버린 하나님의 은총을 잊지 말라. 그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한 두가지 병이 아니라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독수리는 회갑이 되면요 먼 산위에 올라가서 바위에 앉아서 날개를 바위에서 막 때립니다. 때리고 입 주둥위를 바위에 막 치면 주둥이가 빠져 버려요. 털이 다 빠집니다. 그러면 태양을 쳐다보고 반짝반짝 눈을 반짝 거리면서 쳐다보고 있으면 입부리가 새로 나와요. 그리고 난 다음 털이 새로 나와요. 그래서 새청춘을 얻어서 뾰루룽 날개치며 올라가는 것입니다. 독수리를 회갑을 당하면 재회춘합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바라면 여러분의 심신이 재회춘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내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내 모든 병을 고치시며 내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내 소원을 만족케 하사 따라 말씀하세요. 내 청춘을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믿고 난 다음에 살아갈수록 좋아지는 것입니다. 내일은 오늘보다 어떻게 된다구요? 좋아지고 모레는 더 좋아지고 다음달은 금번달보다 더 좋아지고 명년은 금년보다 좋아지고 죽고 난 이후는 살아있을 때보다 더 좋아지고 그러니 우리는 좋은 일만 남아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배로운 피로 얼마나 큰 축복을 주셨던지 좋은 일만 우리가 기대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기독교는 피의 종교입니다. 예수님의 피 흘림이 없으면 죄사함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의 죽으심을 통하여 흘리신 피의 절대적 승리는 희망입니다. 예수님이 절망을 다 청산해버렸기 때문에 십자가의 보혈을 통하여서 우리에게 남아온 것은 희망입니다. 죄에서 자유를, 허물에서 씻음을, 병에서 고침을, 저주에서 해방을, 죽음에서 영생을 주시는 희망인 것입니다. 그 변치 않는 희망이 우리의 기쁨이요 행복인 것입니다. 예수 믿는 신앙 즉 희망, 예수 안 믿는 것은 절망 즉 죽음인 것입니다. 우리는 희망찬 꿈을 가지고서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해야 됩니다.

어릴 때 생각이 지금 가끔 가다가 저는 납니다. 우리 할머니하고 저는 자랐기 때문에 추운 겨울날 이브자리를 자꾸 제가 차지요. 발로 차고서 배를 내놓으면 할머니가 자다가 몇 번이나 깨어 일어나서 내 이브자리를 목까지 이렇게 덮어 주면서 “야 이놈 자식아 배탈 나겠다. 왜 자꾸 이불을 차냐.” 그러면서 몇 번이나 이브자리를 끌어다가 목까지 덮어줘요.

어떤 때는 할머니가 여름철에 빨래를 해서 빨래를 개잖아요. 옆에 배를 다 내놓고 제가 쿨쿨 자면은 홑이불을 덮어주면서 이 배탈나려고 또 이런다. 배를 덮고 자야지. 그러면서 배를 덮어 주십니다. 그래서 할머니만 기억하면 겨울에도 이불을 덮어 주시고 여름에도 홑이불로 배를 덮어 주고 자고 배탈난다고 걱정하던 할머니가 기억하는데 오늘 하나님께서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여러분을 덮어 주시면서 배탈난다.

언제나 보혈 아래 있으라. 보혈을 떠나지 마라. 보혈 떠나면 배탈 난다. 그렇게 하시는 주님이 생각이 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은 여러분을 늘 덮어주시는 주님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은혜로 사랑으로 덮어서 이 세상에 상처입지 않고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장 8절 한번 따라 읽으십시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죄를 자꾸 들춰내면은 끝이 없어요. 이 세상에 죄가 없는 의인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나는 죄가 없다고 하는 사람은 위선의 죄를 하나 더 지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십자가에서 대신 짊어져서 용서한 것은 여러분 우리를 다시 들춰내면 하나님 권위에 대한 도전입니다. 하나님 용서한 것이 완전치 못합니다. 내가 완전케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도전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의롭다고 하셨으면 그대로 받아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 의롭지 않아도 이 세상에 정의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 정의지 사람이 행하는 것이 정의가 아닙니다. 우리가 단단히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내가 보기에 상당히 정의로운 하나님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이 정의롭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주의 정의로운 정의는 한분밖에 안계십니다. 하나님만이 정의가 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사, 우리의 죄와 허물을 덮으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님은 십자가 대속의 사랑으로 우리의 죄를 덮으시고 청산하시기 위해 얼마나 고난당하신 것을 기억해야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를 “피의 종교”라고 하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으로 우리와 하나님과의 사이가 온전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인 것입니다. 피의 종교, 예수 그리스도 보혈의 종교인 것입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우리 죄를 사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우리 죄를 사함 받고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그리스도의 보혈로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를 화목하게 하시고 화평을 누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5장 10절에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과 이제는 예수의 보혈로 화목이 되어서 언제나 아버지 하고 달려가면 빨리와 빨리와 빨리와. 주님은 언제나 여러분을 환영하시는 것입니다. 마음을 치료하시고 생활을 고쳐주시고 육체를 치료하시고 여러분의 짐을 져주시는 우리 아버지이신 것입니다. 셋째로,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으로 우리는 생명을 얻고 영생을 얻습니다.

요한복음 6장 47절로 48절에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을 먹은 것입니다. 영생을 죽어서 받는 것이 아니라 지금 영생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영생이란 무엇이냐. 하나님과 같은 생명을 영생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 말씀하세요. 영생은 하나님과 같은 생명이다. 세상 생명은 하나님께 버림받은 생명이요 하나님과 원수된 생명이요 지옥으로 떨어진 생명이지만 우리는 영생을 얻어 하나님과 같은 생명을 얻었으므로 하나님과 같이 되고 함께 있고 영원히 살 수 있는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보혈로 말미암아 선악과의 절망의 저주를 청산하고, 생명과이신 예수님을 먹고 구원받아 영생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선악과를 따먹은 인간교만은 다 청산되었습니다. 십자가에서 하나님 내놓고 내 마음대로 좋다 나쁘다를 결정하고 나가는 인간중심의 인본주의는 청산되었습니다. 사망은 다 철폐되었습니다. 이제는 생명과이신 예수님을 먹고 믿음과 순종으로 하나님과 동일하게 형상과 모양으로 닮아 하나님의 사랑을 한없이 받으면서 주님 품에서 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은 여러분을 내 사랑하는 자, 내 사랑하는 아내라고 말합니다. 주님께서는 여러분을 주님의 사랑하는 자식이요, 주님의 애인이요, 주님의 아내요, 주님 최고로 사랑하는 존재인 것입니다. 주님은 사랑이기 때문에 사랑은 사랑의 대상이 없이는 사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없이 하나님은 혼자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을 만드시고 난 다음 타락하니까 끝까지 따라와서 십자가에 몸찢고 피흘려서까지 여러분을 도로 구속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사랑하시고 또 사랑해주고 또 사랑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도 두손들고 하나님 믿고 순종하고 사랑하고 순종하고 사랑하고 순종하고 하나님과 우리가 하나되어 하나님 안에 우리가 우리 안에 하나님이 함께 사는 영원한 존재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2012. 5. 27. 성령강림주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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