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옥박사 기독문학세계] 깊이 만나고, 마음을 나누고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알아간다는 것, 어린왕자와 현대인

▲송영옥 교수(기독문학 작가, 영문학 박사, 영남신대 외래교수).

▲송영옥 교수(기독문학 작가, 영문학 박사, 영남신대 외래교수).

내가 속해 있는 한 봉사단체의 회원 수는 90명쯤 된다. 이렇게 많은 회원들이다 보니 한 달에 한번 모이는 정기회의 에서는 서로를 잘 알아갈 수 없는 여건이다. 서로의 직업과 자녀들에 대하여 기본적으로 정보를 교환하고 혹시 그 달에 미디어매체를 통해 알려지는 회원들이 있으면 홍보해줌으로서 그가 하는 일을 이해하곤 한다. 이는 아마도 대부분의 공식모임에서 서로를 알아가는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어른들이 서로를 안다고 생각하는 이러한 피상적인 만남을 두고, 프랑스의 작가 생텍쥐베리(Saint- Exupery, 1900-1944)는 <어린왕자>에서 이렇게 꼬집고 있다. 세계대전 때 비행기 추락사고로 행방불명이 된 젊은 작가 쥐베리의 말을 들어보자.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어른들에게 내 친구에 관해 얘기하면 그들은 중요한 것은 묻지 않는다. 친구의 목소리는 어떻니, 어떤 놀이를 좋아하니, 나비를 수집하니? 하는 말은 절대로 묻지 않는다. 그들은 나이가 몇이니? 형제가 몇이니? 그 애 아버지는 얼마나 버니? 하고 묻는다. 그래야만 어른들은 그 친구를 알게 된다고 믿는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서로를 알고 있다고 생각해온 우리 모임에서 어저께는 한 이벤트가 생겼다. 회원 가운데 기독교 상담을 전공하고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목사님이 서로를 한 인간으로 깊이 알아가기 위한 프로그램을 제공해 주었던 것이다. 그것은 정신분석학자 에릭 홈부르거 에릭슨(Erik Homburger Erikson, 1902-1994)의 심리사회적 이론에 기초한 것 중 하나였다. 에릭 에릭슨은 인간의 사회성 발달이론으로 유명한 덴마크계 미국인 발달심리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이다. 그는 ‘정체감 위기’라는 말을 만들어낸 것으로 유명하다.

목사님이 제공해준 프로그램은 집단 상담에서 사용되는 것으로, 주로 자신의 생애를 돌아 보면서 과거 자신의 삶을 객관적으로 조망하게 하여 미래의 삶까지 그려보게 하는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이다. 그 진행 과정은 먼저 대화자가 서로 생애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시작하고 그 과정을 통해 참 만남을 경험하기에 이른다. 즉 사회적으로 만난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서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는 뜻이다. 우리가 서로의 살아온 삶을 이야기하다 보면 오랜 친구처럼 친밀감을 느끼게 되지 않던가. 오랜 친구란 서로 어린 시절부터의 삶을 서로 나눌 때에 가능해지는 관계이다.

그 시간 나는 40대 중반의 성공한 젊은 사업가 Mr. 강과 메이트가 되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사회자의 지시에 따라 내가 Mr. 강과 함께 무릎을 가까이 하고 앉았을 때, 그동안 달마다 만나고 있으면서도 그에 대하여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 점이 참으로 미안했다. 이처럼 스마트하고 따스한 사람, 가까이 있는 그 사람과 마치 스쳐 지나가는 사람처럼 지내면서 같은 목적을 가지고 봉사하는 단체의 구성원이었다니…. 나는 그 사실을 큰 실수처럼 느끼고 있었다. 아마 그 시간 다른 사람들도 모두 나와 비슷한 느낌이었을 것이다.

그 때문에 우리들은 어쩌면 어린 왕자의 말처럼 “창가에는 제라늄이 있고 지붕 위에는 비둘기가 나는 아름다운 벽돌집”을 말했는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Mr. 강이 어떤 숫자도 얘기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가 사는 집과 그가 사랑하는 딸아이와 그가 사랑하는 아름다운 부인을 충분히 상상하고도 남았다. 그리고 삶에 대한 젊은 사업가의 진정성에 나는 감동이 컸다.

현대인들, 특히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나 사업에 성공하는 사람들은 보통 삶을 성찰하는 것과 무관하게 일상을 살고 있다고 나는 생각해 왔다. 이런 저런 이유로 내가 만난 많은 사람들은 앞만 보고 달려가기도 바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책을 읽는다거나 명상을 한다는것…. 그런 일들을 시간의 낭비처럼 느끼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Mr. 강은 그러한 나의 선입관을 완전히 없이해 주었다.

그는 인간의 내면에 마르지 아니하는 샘의 근원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 생명의 물줄기를 뿜어 올릴 수 있음이 하나님의 은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그의 언어는 마치 펌프질을 하듯 내면의 물줄기를 끌어올렸고 그 물줄기를 타고 수많은 물방울들이 빛에 굴절되고 되비치면서 의미의 무늬를 만들어 갔다.

지성과 감성이 어우러진 그 토록 다채롭고 아름다운 언어들을 구하다니… 나는 언어의 행간을 통해 그의 내면을 들여다 보았고 그의 눈부신 일상을 만날 수 있었다. 그 젊은 사업가는 정말 삶을 성찰하면서 삶을 사랑하고 삶을 즐기고 그리고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 밤 늦은 시간에 관계의 생명감을 고민했던 목사님께 감사의 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아름다운 만남을 보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친구처럼 얘기를 나눈 Mr. 강에게 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오랫동안 깨어 있으면서 내 삶이 스스로 에너지를 얻어 움직이며 풍부해지는 것을 경이로움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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