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 방학 내내 만남을 미루다 급기야 또 새 학기가 시작이 되니 우리는 미루었던 빚을 청산하는 기분으로 부랴부랴 만남을 가진 것이다. 이 친구와의 만남의 특징은 언제나 대화의 주제가 삶, 또는 삶의 생명력에 있다는 점이다. 아마 서로 삶을 바라보는 코드가 비슷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이러한 주제들이 매듭을 짓지 못한다는 것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삶이 정확한 균제의 법칙이 아니어서 그럴 것이다.
끝없는 대화의 미로를 빠져나온 후에도 그날은 계속 삶의 생명력이라는 언어에 매달려 있었고, 결국 이 글을 쓰게 된 것이다. 뭐랄까 내친김에 열정에 대하여 숙고해보자는 맘이 되었다고나 할까….
생각해 보면 삶의 생명력은 열정에 의해 충만한 상태에 이르는 것 같다. 열정은 열중하는 마음이다. 열렬한 애정이며 불타는 마음이다. 학창시절 본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미식축구를 소재로 다룬 영화였고, 제목도 스토리도 전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한 장면의 대사만은 선명하게 생각난다. 경기에 지고 있는 팀의 감독에게 어느 방송 기자가 인터뷰를 한다.
“승리를 위해 지금 당신의 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감독은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무한한 열정이다. 열정만 있으면 승리는 우리 것이다”라고. 감독의 팀은 계속 수세에 몰리고 있었는데도 그의 말에는 힘이 있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넘쳐나는 활력과 도전과 용기를 그에게서 보았다. 혹시 팀이 승리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승리 이상의 값진 가치라고 느꼈다.
어쩌면 열정을 가진 사람의 특성은 한 가지에 빠져 있어서 다른 것이 전혀 보이지 않는 상태인지도 모르겠다. 어떤 것에 미친 상태라 할까. 무대 위의 프리마돈나, 경기장의 선수, 오케스트라의 솔리스트는 말할 것도 없지만, 일상에서도 공부에 집중하고 있는 학생들, 게임에 세일즈에 몰입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각각 어떤 대상에 깊게 몰두하여 어느새 그 대상이 자기 자신으로 여겨지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이런 상태를 열정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때문에 열정이란 단순해지는 것이라 말 할 수 있다. 지금 자신의 앞에 서 있는 것 말고는 다른 것을 보지 않는 단순함이 바로 열정이다. 그 단순함은 자신이 선택한 것에 몰입하게 만들며, 몰입하였기 때문에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고 열정을 분산하는 사람들은 결과적으로 수많은 기회에서 힘을 쓰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열정은 어떤 일에 또는 어떤 대상에 자신을 온전히 맡기고 그와 함께 흐르는 상태를 말하는게 아닐까 싶다. 엔디 앤디루스가 쓴 <폰더씨의 위대한 하루>에는 이런 비유가 있다. 열정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건넌 자와 건너지 않은 자로 비유되고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강물에 몸을 던져 물살을 타고 먼 길을 떠난 자와 아직 채 강물에 발을 담그지 않은 자, 그 둘로 비유된다고 하였다.
그러하니 열정은 건너는 것이 아니라, 몸을 맡겨 흐르는 것이다. 마음과 정신과 영혼과 몸을 맡기는 것, 전체를 맡긴다는 뜻이다. 맡긴 자신을 받아준 자와 함께 더불어 끝까지 간다는 뜻이다. 파도치는 거센 바다 속으로 풍덩 들어가, 때로는 거칠고 때로는 고요한 물살을 따라 운명을 맡겨 흐르며 대양을 내 안에 품는 것을 말한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나도 모르게 A. B. Simpson 이 작곡한 ‘하나님의 넓은 은혜’라는 찬송이 생각났다. 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고 누가 먼저라 할것도 없이 그 찬송가를 이중창으로 불렀다. “내 주 하나님의 넓고 큰 은혜는 저 큰 바다보다 깊다. 언덕을 떠나서 창파에 배뛰워 내 주 예수 은혜의 바다로 맘껏 저어가자.” 아 그렇다, 바로 이것이 열정으로 사는 인생이다. 늘 인생의 얕은 물가에서 맘 졸이며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과 판단의 위대하심에 내 전부를 맡기고 그 분과 함께 인생의 바다를 항해하는 것이 열정을 가진 인생이다. 아하! 바로 여기에 친구와 나의 삶의 생명력이 있었구나.
뿐만 아니라 열정은 환경이 힘들고 어려울 때 더 눈부시게 빛나는지 모른다. 힘겹기 때문에 열정이 필요하고 어려움 속에서 지닌 열정이기 때문에 그로 인한 열매는 더 눈부시고 아름답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신다고 약속해 주셨으니 그 언약을 붙잡고 일어서는 것. 바로 이 순간 즉시 일어서는 그 힘이 열정이다.
우리의 인생은 어느 것도 우리가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인생이 없지 않은가. 우리가 지금 행복하다면 우리 스스로가 행복하기를 선택하였기 때문에 행복한것이다. 혹시 오늘 하루 불행하였다면 스스로가 그 불행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러하니 지금 이 순간 하나님의 은혜의 바다에 전부를 맡기고 그분과 함께 항해하기를 선택하자.
선택하고자 하는 열렬한 마음, 그것이 열정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것에 올인하려는 마음, 심플하게 그분을 의지하는 마음, 그것이 열정 아닌가.
/송영옥 교수(기독문학 작가, 영문학 박사, 영남신대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