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옥박사 기독문학세계] 은혜의 물방울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교무실에 날아들어온 새 한 마리에 주목한 한 여선생님을 추억하며

▲송영옥 교수(기독문학 작가, 영문학 박사, 영남신대 외래교수).

▲송영옥 교수(기독문학 작가, 영문학 박사, 영남신대 외래교수).

언젠가 학교 교무실에서 있었던 일이다. 낮에 정원으로 열려있는 창을 통하여 새 한 마리가 교무실로 들어왔다. 마침 노는 시간이었고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떠들어대는 야단스러운 시간이었기 때문에, 새가 넓은 교무실을 종횡무진으로 날며 짹짹거리는데도 주목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앞 좌석의 젊은 여선생님 한분이 그 소음 속에서도 새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새가 교무실 천정 모서리에 부딪칠 듯 머리를 곧추세우고 돌진하면서 목청을 높여 소릴 지르면 그녀의 눈빛이 불안해졌다. 다시 창쪽 나무숲을 바라보고 되돌아올 때는 그녀의 얼굴에 안도의 빛이 돌았다. 그러면서 그녀의 몸은 새소리에 리듬을 맞추고 있었다. 그 모습에 나는 매우 기분이 좋아졌다.

내가 새와 그녀를 번갈아 보면서 미소를 머금고 있을 때에 드디어 새는 크게 날개를 퍼덕이며 한바퀴 방을 선회하고는 창을 통해 숲으로 날아가 버렸다. 그 순간 그 젊은 여선생님이 박수를 쳤다. 그녀의 박수소리가 얼마나 크게 들렸는지… 교무실 식구들이 그 박수 소리 때문에 비로소 새의 존재를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 소음 속에서도 새의 노래를 듣고 새가 날아오른 푸른 숲의 싱그런 바람에 취해 있다가 폭발하는 듯이 손뼉을 치던 그녀의 모습은 그야말로 한 폭의 수채화였다.

나는 나무숲에 들어가면 새소리를 듣고 새가 나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산책하기를 즐긴다. 자연의 서식처에서 살아 움직이는 새를 느낀다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그런데 실험실의 생물학자가 보는 새는 전혀 다르다. 죽은 새를 실험대에 올려놓고 내장을 해부하고 학문적 용어를 동원하여 그 결과를 보고하는 생물학자, 이렇게 하여 그는 새의 생태를 실험과 분석을 통하여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가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따지고 보면 이 실험 결과는 새의 생명과 맞바꾼 것이다. 죽은 새는 더 이상 기쁨과 즐거움을 줄 수 없다.

어쩌면 은혜라는 것은 분석을 하고 설명을 하려면 그 생명을 죽여야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죽은 새보다는 한 마리의 새가 주는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고 싶다면, 결단코 새를 해부하거나 분석하지 말아야 한다. 비록 새의 생태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른다 하더라도 우리는 실험실의 새보다는 높이 날아 경쾌하게 노래부르는 새를 더 좋아한다. 빛으로서 날개를 퍼덕이는 새만이 우리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

이 여선생의 일화를 나는 종종 인용한다. 모임 같은 데서 이야기 해야 할 입장이 되었을 때, 나의 시선 속에는 은혜의 물방울로 생기를 찾길 원하는 사람들이 가득찬다. 그들은 기쁨과 희망을 격려받으며 유쾌한 기분으로 자신을 존중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교무실로 들어왔던 새의 이야기를 하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어쩌면 현대인들이 그토록 주제로 삼고 갈망하는 ‘삶의 비전’이라 하는 것은 결국 은혜를 찾아내려는 갈망과 열정에서 시작이 된다”고. 은혜로 인한 모든 울림을 느끼고 바라보며 혼자만의 독특하고 뛰어난 기법으로 연주해야 할 사명을 안고 삶을 통찰하는 능력, 그것이 삶의 비전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외부로 오는 값없는 선물의 이 신성한 아름다움, 그래서 금세기 가장 위대한 크리스쳔 작가인 루이스(C. S. Lewis)는 “만나보지 못한 꽃송이의 향기, 들어보지 못한 곡조의 메아리, 밟아보지 못한 나라의 소식을 향한 깊은 갈망을 일깨워 주는 것이 은혜의 물방울”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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