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대 비유럽 구도도 주목… 남미 출신 혹은 흑인도 거론돼
새 교황을 뽑는 콘클라베가 12일 시작된다. 전세계 추기경 중 80세 미만인 115명이 참석하는 이 회의에서 2/3 이상의 지지를 얻으면 교황으로 선출된다. 철저히 비밀에 부쳐진 비공개 회의이며, 또 추기경들이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며 합의점을 찾아가는 방식으로 진행되기에 그 경과는 밖에서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합의가 이뤄지는 데에 통상 5일을 넘긴 적은 없었기에, 이번 주 내로 새 교황이 선출될 가능성이 높다.
어떤 의미에서는 콘클라베 참석 추기경들이 동일한 한 표를 갖고 의견을 조율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 합의가 이뤄져 한 쪽으로 표가 몰리는 현상이 생기면 그 일정은 더욱 앞당겨진다.
다만 이번에는 지난 베네딕토 16세같은 막강한 후보가 없다는 점에서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베네딕토 16세는 가톨릭 최고의 교리 전문가로 일찌감치 명성을 얻었고, 인품 면에서도 높은 지지를 받았다. 보수적 성향과 나치 활동이 발목을 잡을 수도 있었지만, 가톨릭이 처한 대외적 위기를 극복할 거의 유일한 대안으로 꼽혔었다.
선출 당시 78세라는 고령은 장단점으로 작용했다. 전임자였던 요한 바오로 2세는 58세에 교황에 선출돼 무려 27년간 재임하며 85세에 선종했다. 장기간의 교황 재임이 가톨릭의 시대적 대응력과 교황 자신의 직무 수행 능력을 약화시킨다는 비판의 소리가 거셌다. 당시 78세였던 베네딕토 16세는 고령의 나이가 단점이면서도, 동시에 이런 비판을 해소하고 적어도 10여년 단위로 교황을 새롭게 선출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으로 부각되기도 했다.
물론 당시에는 교황이 사망하기 전에는 새 교황을 뽑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베네딕토 16세가 사망 전에 사임하면서 교황의 나이는 중요한 기준에서 밀려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객관적 기준 외에도 정치적 관계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교황청 내의 최고 행정기구인 쿠리아가 그 키를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쿠리아는 베네딕토 16세 당시 그를 지지해 선출에 기여한, 대표적 킹메이커다. 지금 쿠리아는 바티칸의 2인자인 국무원장 타르치시오 베르토네(79) 추기경 지지 세력과 오딜루 페드로 스체레르(64) 대주교 지지 세력으로 양분된 상태다.
최근 콘클라베의 주요 주제는 유럽 대 비유럽이었다. 올해 역시 유럽 외에 남미 출신 교황, 흑인 교황이 선출되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가 가톨릭 안에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요한 바오로 2세 전까지 무려 455년간 교황직을 독식해 온 이탈리아 추기경들이 이번에는 다시 교황직을 되찾겠다는 의지가 강해 어떤 카드를 내놓을지 미지수다.
여기서 유럽권 내지는 이탈리아 교황은 일종의 막강한 보수 세력으로 여겨도 무방하다. 그러나 진보 세력도 이번 콘클라베에서는 무시할 수 없다. 게다가 가톨릭 사제 성추문, 비밀 문건 유출 파문 등으로 인해 가톨릭 개혁을 부르짖는 이들의 목소리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이 개혁을 주도하고 있는 존재는 미국의 추기경들이다. 최근 미국 추기경들은 남미권 추기경들과 회동을 가진 것으로 관측됐다. 이들이 남미 내지는 아프리카 추기경들을 결집해 가톨릭 개혁을 이끌 교황을 지지한다면, 이는 유럽 대 비유럽의 대립이면서 동시에 보수 대 개혁의 대립이 되고 역사상 최초로 남미 내지는 흑인 교황이 탄생하는 역사가 일어날 수 있다.
현재 콘클라베에 참석하는 추기경 중 이탈리아는 28명, 미국은 11명으로 각각 1, 2위라서 서로의 세력 결집도 치열한 양상으로 벌어지고 있다. 다만 이탈리아의 경우 직접 교황직에 도전할 수 있지만, 미국은 관례상 세계 정치 경제를 주도하는 국가가 교황직까지 가져선 안 된다는 통념이 있어 남미나 아프리카를 내세울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교황이 선출되면 콘클라베가 열리는 시스티나 성당 지붕 꼭대기에서 흰색 연기가 피어 오른다. 반대로 선출에 실패하면 검은 연기가 피어 오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