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주의 관점에서 본, ‘WCC의 타종교 입장’에 대한 비평적 고찰 (2)
1961년 인도 뉴델리 WCC 총회(3차 총회)에서는 그 동안 선교단체들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IMC가 교회들을 회원으로 하는 WCC에 흡수되었다. 1910년 에딘버러 세계선교대회에서 시작된 현대 에큐메니칼 운동은 뉴델리 총회에서 IMC가 WCC 에 통합되면서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뉴델리 총회 때부터 ‘타 종교와의 대화’ 의제는 본격적으로 거론되었다. 서울 장신대 전 총장 이용원 교수는 기독교와 타 종교와의 심도있는 대화를 천명한 뉴델리 총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뉴델리 총회는 타 종교와의 대화를 선교신학의 중요한 주제로 삼았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하나님께서 타 종교를 믿는 사람들과 종교가 없는 사람들에게 주신 지혜, 사랑, 그리고 능력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위해서 교회는 그들을 계속 연구할 필요가 있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통하여 그들에게 하시는 말씀과 그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알기 위해서는 그들과 더불어 그리스도에 관하여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는 것이다(이용원, “빌링겐에서 나이로비까지-선교 신학적 고찰”, 85.).”
전통적인 종교가 강한 인도 땅에서 모인 뉴델리 총회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빛’(Jesus Chris-the Light of the World)이었는데 ‘빛’은 세상 모든 사람들 속에 있음을 시사했다.
뉴델리 총회 이후 WCC 에큐메니칼 진영은 ‘타 종교와의 대화’ 를 주요한 선교의 과업으로 정했다. 1963년 WCC의 산하 위원회로 새로 조직된 ‘세계선교와 전도분과위원회’(Commission and Division of World Mission and Evangelism)의 첫 대회가 멕시코시티에서 열렸는데 IMC 와 WCC 두 기관이 통합된 후 개최된 첫 에큐메니칼 대회였다. 대회의 주제는 ‘하나님의 선교와 우리의 과업’(God’s Mission and Our Task)이었고 타 종교와의 대화 문제가 진지하게 논의되었다. 이 대회에서 기독교가 타 종교와 어떻게 적극적으로 관련을 맺을 수 있을까를 논의하면서 뉴델리 총회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타 종교와의 대화 이슈를 더욱 심도있는 차원으로 다뤘다.
1975년 케냐 나이로비 총회(4차 총회)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는 자유롭게 하시며 하나되게 하신다’(Jesus Christ Frees and Unites)였다. 나이로비 총회에서 드디어 ‘교회 밖의 구원의 가능성’이 제기 되었는데, 이런 신학적 입장은 자연계시(general revelation)에 대한 적극적인 해석에서 비롯된 것이다(로마서 1장 18-23절과 2장 14-26절은 하나님을 알 만한 것들이 창조세계에 나타나 있다
고 말씀하고 있다. 하지만 이 구절들이 전하고자 하는 참 뜻은 인간이 자연계시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연 속에 계시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타락한 인간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구원받을 수 있는 특별계시로 한 발자국 더 나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통로가 됨을 말씀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세상에 있지만(in the world) 세상에 속하지 않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공동체로, 교회 밖의 사람은 하나님이 아닌 세상에 속한 자로 분류되어왔다. 하지만 에큐메니칼 진영은 “하나님은 누구도 편애하지 않으심”(God had no favorites)을 주장하며, 교회도 세상도 모두 하나님께 속하며 하나님은 교회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도 역사하고 계신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나이로비 총회는 하나님의 역사를 교회에만 국한시키지 않았고, 타 종교와의 대화를 적극 강조하였다. 총회는 “전 인류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기독교인들은 우리와 다른 신앙을 가진 이웃들과의 대화에 개방적이어야 하며 그들이 그 대화를 침해라고 여기지 않도록 해야 함”을 천명하면서 타 종교인들을 기독교인의 형제, 그리고 동지 수준으로 받아들이도록 촉구했다(권문상, “WCC의 사회구원적 기독론에 대한 비판적 분석”, 「개혁논총」 19 (2011): 122.).
1990년 1월15일 WCC 는 ‘바아르 선언: 다원성에 대한 신학적인 시각들’(Baar Statement: Theological Perspectives on Plurality)을 발표하였다. 이 성명은 WCC 내 ‘타 종교와의 대화 소위원회’(Dialogue sub-unit)가 기독교와 타 종교 간 만남의 이슈를 다루면서 21명의 신학자들로 하여금 ‘내 이웃의 신앙과 나의 신앙(Dialogue with people of living faiths)-종교 간의 대화를 통한 신학적 발견’을 주제로 4년간 연구케 하여 발표한 문서였다.
바아르 선언문은 로마 가톨릭교회의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 -1965)의 ‘교회와 비기독교와의 관계에 대한 선언’(Nostra aetate : Declaration on the Relationship of the Church to Non-Christian Religions)과 신학적으로 매우 유사한 입장을 담고 있는데, 1991년 캔버라 총회는 소위원회의 보고를 받았고 바아르 선언문은 타 종교에 대한 WCC의 공식문서로 채택되었다. 현재 WCC 공식 홈페이지에 게재되어 있는 바아르 선언의 핵심 내용을 여섯 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종교다원성에 대한 우리의 신학적 이해는, 태초부터 만물 가운데 임재하여 활동하시는 살아계신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우리들의 신앙에서 출발한다. …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나 그들 가운데 임재하여 활동하시는 하나님께 응답해왔으며, 그 만남을 그들의 고유한 방식으로 증언해오고 있다. … 사람인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과 활동영역을 제한할 수 없다(타종교인들도 그들의 신앙을 통해 기독교가 말하는 동일한 하나님을 만났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추구하는 ‘구원’도 발견했다는 의미로 해석되는데 여기서 기독교 외에 타종교에도 구원의 길이 열려 있다는 WCC의 종교 다원주의적 신학을 엿볼 수 있다).
둘째, 종교다원 현상은 극복되어야 할 장애가 아니라, 오히려 종교다원성은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있을 때’(고전 15:22)를 대망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과 이웃을 더 깊이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본다.
셋째, 타 종교인들의 삶과 전통 속에 성령이신 하나님께서 활동하심을 고백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매우 당연하다. …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와 다른 종교적 신념까지도 존중해주고,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그들 가운데서 성취하셨고 또 앞으로 성취하실 일들을 존경하는 자세를 지니는 것이 필요하다.
넷째, 따라서 종교 간의 대화란 일방통행이 아니고 쌍방통행인 것이다. … 진정한 대화란 대화 당사자들 쌍방의 지평을 넓혀주면서, 각자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향한 더 깊은 회심으로 인도할 것이다. 또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타 종교인들의 증언을 통하여 지금까지 접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신비를 다각도로 체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다섯째, 인류 종교사를 통하여 성령과 하나님의 임재 및 구원활동을 인정하지만, 동시에 인류 종교사 안에서 종교가 지니는 모호성과 인간 해방에 대한 역기능을 자행한 타락한 종교의 모습을 비판적 시각으로 분별해야 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전체 인류는 결속되어 있고, 언약 안에서 하나님과 결합되어 있으며, 모든 피조물과 인류사 안에서 현존하시는 하나님의 구속적 활동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명료하게 그 초점에 이르고 있다는 것을 고백하고 증언한다.
여섯째, 우리의 기존 신학방법이 실천을 통한 진리검증의 방식으로 개선되어야 할 것을 소명감을 갖고 절감한다.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신학적 태도는 대화적 신학이요, 인간해방과 생명의 창조적 보존을 위해 실천적으로 공동전선을 펼쳐가야 하는 것이다(http://www.oikoumene.org/en/resources/documents/wcc-programmes/interreligious-dialogue-andcooperation/christian-identity-in-pluralistic-societies/baar-statement-theological-perspectives-on-plurality.html).
바아르 선언의 핵심은 타 종교인들과의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 활동이 기독교에만 한정되지 않고 타 종교에도 있다는 것이다. 선언은 외형상 종교의 다원성(plurality)을 표명하는 것 같지만, 내용적으로는 종교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 입장을 취하고 있다. 바아르 선언문에서 종교 간의 대화를 통해 기존의 신학의 방법을 바꾸어야 한다는 에큐메니칼 입장은 복음주의자들의 주목을 끈다. <계속>
김승호 (한국성서대학교/선교신학)
*크리스천투데이는 세계교회협의회(WCC) 제10차 부산총회를 앞두고 WCC에 대한 복음주의적 비평을 시도한 김승호 교수의 논문을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