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학술원 영성포럼서 신학자들 찬반 공개토론
현재 한국교회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 중 하나인 ‘세계교회협의회(WCC)’를 두고 보수와 진보를 대표하는 신학자들이 서로의 입장을 나누고 토론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기독교학술원(원장 김영한 박사)은 3일 서울 연지동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 소강당에서 ‘WCC 영성과 한국교회’를 주제로 제19회 영성포럼을 개최했다.
이날 포럼에는 WCC 반대편에 선 이동주 박사(선교신학연구소 소장)를 비롯해 중립 내지 친 WCC 인사로 분류돼 온 이형기(장신대 명예교수)·박종화(경동교회 담임) 박사가 각각 발제자로 참여했다. 여기에 장훈태 박사(백석대 선교학), 채수일 박사(한신대 총장), 최덕성 박사(기독교사상연구원 원장) 등 보수와 진보 신학자들이 골고루 논평자로 나섰다.
주최측은 발제자가 보수 신학자일 경우 진보 신학자를, 발제자가 진보 신학자일 경우 보수 신학자를 논평자로 각각 배정하는 등 가능한 한 활발한 토론이 이뤄질 수 있도록 했다.
“WCC 반개종주의, 구원 위한 개종 요구하지 않아”
얼마 전 논란이 된 ‘WCC 공동선언문 사태’는 한국교회에 ‘개종전도’라는 이슈를 던진 바 있다. 당시 이 선언문은 ‘개종전도 금지를 반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는데, 이는 WCC가 활동 지침으로 삼고 있는 ‘개종전도 금지’를 의식한 것이었다. 이 때문에 WCC의 ‘개종전도 금지’에 이목이 집중됐고, 이는 격렬한 찬반 논란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날 이동주 박사의 발표 주제 역시 ‘WCC와 개종의 영성’이었다. 이 박사는 “개종이라는 단어는 WCC가 1960년대 초반부터 현대까지 WCC 산하 ‘세계선교와전도위원회(CWME)’의 공식선언문들을 통해 시종 결정적으로 거부한 중요한 개념”이라며 “두려운 사실은 WCC와 CWME의 ‘반개종주의’는 복음을 듣지 못한 수십억 잃은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한 개종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박사는 또 “WCC가 ‘개종선교를 하는 교회는 자기 자신을 구원의 중재자와 구원의 중심으로 이해하고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고 여긴다’고 비판했다”면서 “이는 WCC가 타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는 종교다원주의의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개종전도 금지는 개신교 선교사들이 로마가톨릭 교회와 정교회 지역에 가서 명목상 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활동과 교회를 세우는 일을 금지하라는 것”이라며 “이들은 위의 지역에 가서 복음을 전파하여 개종자를 얻는 행위를 ‘강제적이고 강압적인 개종’이자 화해를 목표로 한 ‘하나님의 선교’에 대한 ‘역증거’이고, 교회 연합을 깨뜨리는 가장 비난받아야 할 행위라 규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박사는 “WCC는 복음적인 개종선교를 크게 오해하고 있다. 사실 가톨릭이나 정교회권에서 전도한 결실로 일어난 개종은, 종파나 교회집단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임을 WCC는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진정한 회개와 개종은 오직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지 인간의 힘과 수단에 의해 이뤄질 수 없다는 점을 WCC는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박사의 이같은 발제에 논평한 채수일 박사는 “WCC가 개종강요 선교를 반대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해서 WCC가 비기독교인들에게 예수를 구주로 믿고 영접해야 구원을 받는다는 믿음도 요구하지 않는다는 판단은 지나치게 자의적인 해석”이라고 맞받았다.
채 박사는 또 “‘오직 믿음으로’라는 명제는 16세기 독일의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의 주장이다. 이른바 행위를 강조하는 가톨릭 교회에 대한 안티테제로 등장한 이 명제는 오랫동안 교회 분열의 교리적 전거가 되어 왔다”며 “그러나 우리 모두가 아는 것처럼 로마가톨릭 교회는 세계루터교연맹, 세계감리교회와 함께 ‘오직 믿음으로’라는 신학적 명제가 더 이상 교회 분열의 교리적 전거가 될 수 없다는 합의를 했다. 16세기 유럽, 그것도 독일의 종교개혁 사상이 수많은 개혁교회들에게 하나의 전통이 될 수는 있어도, 모든 교회들에게 보편적으로 타당하거나 강요될 수 있는 교리는 더 이상 아니라는 선언일 것”이라고 역설하기도 했다.
“기독교의 정체성과 고유성 포기한 것 아니다”
이형기 박사는 WCC의 공식문건들을 분석하면서 그 안에 나타난 ‘종교간 대화’ 문제를 분석했다. 이 박사는 “WCC ‘종교간 대화의 신학’은 각 종교가 자신의 고유하고 독특한 이야기를 지니면서 타종교들의 다원성과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며 “기독교 성경에 근거한 신학적 확신들의 정체성과 고유성, 특수성을 결코 포기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WCC의 공식) 문서들은 기독교의 고유하고 특수한 입장에서 타종교들을 본 것이지, 모든 종교들을 동질화시킨 게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기독교를 포함하는 종교들의 ‘다원주의’가 아니라 종교들의 ‘다원성’을 인정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논평한 장훈태·김홍만(국제신대 역사신학) 박사 모두 “종교들의 다원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이 박사의 주장에 물음표를 달았다. 먼저 장 박사는 “적어도 기독교인은 종교 현상을 인정하되, 복음의 유일성은 주장해야 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고 김 박사는 “(WCC가) 종교다원주의라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이렇게 서술한 것으로 여겨진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특히 장 박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외에는 우리를 살릴 수 있는 것이 그 무엇도 없다. 복 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이 온전히 전파되도록 해야 할 의무가 있다. 복음을 담대하게 선포하는 것은 우리들의 의무”라며 “이런 측면에서 ‘이형기 교수님은 신학적으로 어느 입장인지’ 애매한 부분이 있음을 발견했다”고도 덧붙였다.
“WCC ‘에큐메니칼 영성’, 교회 생명력 상실의 일등공신”
마지막 발제자였던 박종화 박사는 ‘에큐메니칼 영성’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WCC를 중심으로 한 에큐메니칼 운동 속에 담긴 영성은 시대적 상황의 다양한 울부짖음에 응답하는 방식으로 다양한 양태를 가져왔다”며 “오는 10월 제10차 WCC 총회를 부산에서 개최하는데, 이는 교회 공동체들이 교파전통과 역사적·문화적 상황의 다양성을 서로 인정하면서 동시에 공동의 영성적 실천, 곧 공동의 ‘제자직’을 위해 일치하자는 에큐메니칼 운동을 전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논평한 최덕성 박사는 “WCC의 에큐메니칼 성경관은 교회로 하여금 기독교 신앙의 정박지에서 떠나도록 만들었다”면서 “자유주의 성경관과 바르트주의 성경관, 급진주의 성경관을 결합한 이 성경관은 진리 상대주의에 뿌리를 둔 종교다원주의, 종교혼합주의를 낳았다. WCC의 ‘에큐메니칼 영성’은 유럽, 북미, 대양주 주류 교회들의 생명력 상실과 퇴락의 일등공신”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