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튤립’과 ‘관용’의 나라 네덜란드? 아브라함 카이퍼의 나라!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워키토키 유럽」 저자들과 떠나는 유럽 여행 (1)

변호사(황경태)와 농부(홍윤선), CEO(추광재)와 신학도(최규동) 등 네 명의 크리스천 남성 청년들이 유럽 곳곳을 탐방하며 ‘살아있는 공동체 영성’을 찾아나선 여행기, 「워키토키 유럽(Walkie Talkie Europe·이담북스)」의 저자들이 신앙의 ‘본류’를 찾아 떠났던 그 소중한 경험을 본지에 열 차례에 걸쳐 연재합니다. 그 첫번째는 최규동 대표(책 읽어주는 사람들)가 아브라함 카이퍼의 개혁주의 정신이 살아 숨쉬고 있는 네덜란드에서, ‘실천적 공동체 영성’을 찾아 나선 이야기입니다.

▲독일 베를린에 위치한 홀로코스트 공원 앞에 선 저자.
▲독일 베를린에 위치한 홀로코스트 공원 앞에 선 저자.

1. 실천적 공동체 영성을 찾아서

광재 형과 나는 이른 아침 전기자전거에 텐트와 각종 살림살이를 싣고 캠핑장을 나와 암스테르담 시내로 향했습니다. 자전거로 내달리는 동안 얼굴을 씻고 지나가는 바람은 시원했고, 앞길을 비춰주는 아침 햇살은 선명한 노랑빨강 튤립들을 더 환하게 비추는 화창한 날이었지요. 우리는 세상 모든 사람을 두 팔 크게 벌려 안아주고 싶을 만큼 넉넉한 마음으로 암스테르담 시내로 건너가는 통근 배에 자전거를 실었습니다. 하지만 네덜란드를 향한 우리의 기대감은 화려한 튤립축제도, 세계시민(cosmopolitan)의 자질인 관용도, 위대한 화가 렘브란트(Rembrandt)나 고흐(Gogh)도 아니었습니다.

우리 두 사람에게 네덜란드는 아브라함 카이퍼(A. Kuyper)의 나라였습니다. 그는 1901년부터 1905년까지 네덜란드 수상으로서 칼빈주의를 현실정치 속에 꽃피웠던 신학자이자 정치가였죠. 우주를 뒤흔들듯 ‘삶의 체계로서 칼빈주의’라고 쓰여 있던 <칼빈주의 강연>의 첫 페이지는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주말에, 그것도 교회에서만 열혈 크리스천 청년으로 살아가던 내게 ‘삶의 체계로서 칼빈주의’라는 표현은 그처럼 경천동지(驚天動地)할 만한 것이었지요.

과연 20세기를 열어젖힌 네덜란드의 역사는 달라도 뭔가 달랐습니다. 당시 네덜란드에서 ‘하나님의 통치’란 책 속에서 이론적으로 둥둥 떠다니는 것도, 기도의 골방 속에서 웅웅 맴도는 것도 아니었지요. 먹고 자고 경쟁하고 돈 버는 치열한 삶 속에서, 하나님의 법을 실천한 ‘역사적 사실’이었습니다.

이런 역사를 웅변하고 있는 네덜란드를 찾아가는데, 어찌 흥분되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 통치 역사의 부분이라도, 작은 흔적이라고 찾아 가슴에 담아두고 싶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선조 요나답의 명령에 순종해 다 무너져 껍질만 남은 유다 왕국 속에서도 포도주를 입에 대지 않은 레갑 족속처럼, 역사 속 탁월한 전통을 담지하고 있는 작은 공동체를 만나고 싶은 마음 간절했습니다. 그들을 만나 21세기를 살아갈 지혜와 용기를 얻고 싶었지요.

▲암스테르담에서 &lsquo;자전거 여행&rsquo; 중인 저자의 모습.
▲암스테르담에서 ‘자전거 여행’ 중인 저자의 모습.

물론 21세기의 지난한 현실 속에서 우리가 만난 네덜란드가 꼭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속이 훤히 비치는 통유리 쇼윈도 속에 몸을 파는 여자들이 반라로 누워있는 홍등가, 그 민망함을 뚫고 찾아간 고교회(high church)는 이미 기업에 팔려 십자가가 달린 그대로 컨퍼런스홀로 변해 버렸으며, 다시 물어 물어 찾아간 교회에서 만난 성도(聖徒)라는 이들로부터 이번 주에는 교회에, 다음 주에는 절에, 때로는 이슬람 사원에 가기도 한다는 ‘경천동지’할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16세기 종교개혁을 시작으로 경건운동, 대각성 대부흥, 선교의 시대를 지나 21세기 영성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영성이란 무엇일까요? 중세의 영성 도사들처럼 세상과 단절하고 산 속에서 기도수행을 하면서 신과의 깊은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일까요? 그렇지만 그들은 중세교회의 심각한 타락을 막지도 개혁하지도 못했습니다.

오히려 무릎으로 계단을 오르내리며 기도 수행하던 젊은 루터는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와 당시 교회 공동체에 대한 불타는 열정을 95개조로 압축해서 교회 문에 못 박았으며, 칼빈은 하나님의 통치가 삶의 전 영역을 포괄하고도 남는다는 확신 속에 신정정치(神政政治)까지도 주저하지 않았지요. 이들의 실천적 영성이 진짜가 아닐까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역.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역.

또 이 두 사람은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루터는 그를 정죄하고자 했던 보름스 회의에서 백년 전에 이단정죄를 받은 얀 후스(Jan Hus)에 대해 “나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그의 제자가 되었다!”고 선언했습니다. 루터 이후 그의 공동체는 멜랑히톤을 다음 지도자로 삼아 영성운동을 이어나갔지요. 칼빈의 공동체도 그의 제자 베자를 통해 이어져 나갔습니다. 종교개혁가들의 삶과 사상은 그들이 형성했던 공동체를 통해 역사 속에 실천되었지요.

이처럼 살아있는 ‘실천적 공동체 영성’을 찾아 유럽으로 여행을 떠난 네 남자의 이야기가 여기 있습니다. 변호사와 농부, CEO와 사회학도. 각자의 전문영역을 가지고 있는 네 남자는 기독교 후시대(Post-christianity era) 서유럽의 교회공동체들 가운데에도 루터와 칼빈의 정신과 삶의 실제를 든든히 이어가고 있는 공동체가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이제 여행하기 좋은 계절이 오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여행을 계획하시나요? 앞으로 만나보실 이야기는 ‘선교여행기’는 아닙니다. 문화여행기라고 해두는 편이 좋겠군요. 영성은 문화라는 삶의 행태로 구체화되는 것이니까요. 실천적 공동체 영성의 역사와 현재를 찾아나선 네 남자들의 여정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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