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하 교수, ‘자살자 유가족 위로예배’서 ‘자살=지옥’ 통설 반박
“자살한 사람이 지옥에 간다는 주장은 신학적인 근거가 없습니다.”
신원하 교수(고신대학원 기독교윤리학)가 “자살이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하는 큰 죄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자살한 사람이 이것으로 인해 영원한 저주에 처한다는 주장은 신학적으로 충분한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23일 서울 용산구 서빙고동 서호교회(담임 노용찬 목사)에서 라이프호프 기독교자살예방센터 주최로 열린 ‘제3회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 12:15), 자살자 유가족을 위한 위로예배’ 1부 순서인 자살예방세미나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신원하 교수는 먼저 “소위 ‘자살한 이들은 구원받지 못한다’는 통설은 과연 어디서 기원했는가. 이것에 대한 성경적 근거는 무엇인가. 한국교회 중에서 이런 교리를 만들거나 이와 관련된 신학적 입장을 표명하거나 지침서를 만든 교단이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신 교수는 “‘자살한 사람이 지옥 간다’는 통설이 아무 근거 없이 오랫동안 한국교회를 지배해왔다. 구원론은 기독교 신학의 중심에 속한 것인데, 신학적 검증이 되지 않은 통설이 군림한 것은 매우 기이한 일이다. 기독교 윤리학자들도 다른 윤리적 주제들에 비해 이 문제가 현저히 소홀하게 다뤄졌다고 밝히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신 교수는 “‘자살이 구원받지 못하는 죄’라는 과거 통설이 중세 교회와 로마 가톨릭 교회가 제정한 교회법과 교리에서 기원하고 있다”면서 “12세기 교회의 대 신학자인 아퀴나스가 ‘대죄’(mortal sin)로 가르쳤던 것이 그런 인식에 쐐기를 박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이러한 일련의 결정들과 교리들이 ‘자살하면 지옥가게 된다’는 생각을 굳게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신 교수는 “그런데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는 교회법이나 교리문답을 통해 자살에 대한 공적 입장을 거의 가르치지 않았다”며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자살에 대해 그의 편지와 대화편에서 언급한 바 있는데, 자살자들은 자기 의지가 아니라 사탄의 힘에 사로잡혀 목숨을 끊은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자살이 영원한 저주에 이르게 하는 죄가 아니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또 신 교수는 칼빈 역시 자살을 구원과 연결시켜 정죄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특히 신원하 교수는 ‘자살=지옥’이라는 주장의 근거를 하나씩 거론하며 그 근거가 잘못된 이유에 대해 다뤘다. 먼저 “자살은 다른 행위와 달리 그 죄를 회개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라는 이유에 대해서는, “구원은 하나님을 믿음으로 인한 은혜이며, 누군가가 중대한 죄를 짓는다고 해서 하나님의 택하심이 취소나 변경되지 않는다”고 했다.
또 신 교수는 “신자가 지은 모든 죄에 대해 낱낱이 회개해야 용서받고 구원 얻게 된다면 하면, 이것은 자칫 ‘행위로 인한 구원’ 또는 공로 사상으로 미끄러질 위험을 안게 되고 심각한 신학적 문제를 낳게 된다”고 밝혔다. 즉 하나님이 택한 자가 설령 중대한 죄(자살)을 짓고 회개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의 택함받은 바가 취소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자살이 성령훼방죄와 연관성 있는지도 거론했다. 신 교수는 “삶의 어느 순간에 약함 때문에, 삶의 절망적 구름 때문에, 스스로의 목숨을 끊는 것이 성령을 훼방한 죄로 간주될 수 있겠는가”라며 “그렇게 말하기엔 신학적 근거를 찾기가 쉽지 않다. 성령훼방죄의 핵심 성격은 성령의 내적 조명을 받고 있음에도 계속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대항하고 거부하는 것”이라고 했다.
신 교수는 “전통적으로 개혁교회는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에 따라 택자와 유기자를 정했다는 ‘예정 교리’와, 구원으로 택함받은 성도는 결코 그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성도의 견인 교리’를 견지해왔다”며 “이러한 견인 교리에 비춰 볼 때, ‘사망이나 생명이나 환란과 위험이나 칼과 마찬가지로…’ 등의 말씀처럼 자살이라 하더라도 결코 택한 자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떨어지게 할 수 없다고 교리적으로도 판단할 수 있다”고 했다. 즉 자살이 하나님의 자비와 주권에서 나오는 기쁘신 선택의 작정을 변경할 수 없고, 또 그리스도의 공로와 죄의 효력을 무효화시키는 힘이 없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7장 3항을 들어, “신자들도 사탄의 유혹과 육신의 약함 때문에 때로는 심각한 죄들을 범하기도 하지만, 그렇지만 성도들의 치명적인 악을 범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구원에서 배제된다고 말할 수 없다”고 덧붙여 말했다.
그러나 신 교수는 자살이 큰 죄임을 부인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목회자들이 자살과 구원이 무관하다는 내용을 공공연히 설교하는 것은 조심하고 삼갈 필요가 있다”고 상기시켰다. 마틴 루터의 권고처럼 자칫 이런 설교가 자살을 충동질하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자살예방사역에 한국교회와 기관 단체들이 역점을 두고 우리 사회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신 교수는 전했다. 또한 자살자 유가족을 돌보며 ‘자살한 이들의 장례예배’도 중점을 두고 한국교회에서 허용해줘야 한다고 신 교수는 밝혔다. 신원하 교수는 “교단과 노회, 연합기구 등의 관련 지침이 있다면 목회자들도 어렵지 않게 장례식을 인도할 수 있을 것”이라며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함께 이 문제에 대해 털어놓고 이야기해야 할 때”라고 밝혔다.
그리고 신 교수는 “교회에서의 자살자 장례예배는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권고와 위로의 기능이 있으며, 믿지 않는 유족과 친족들에게 전도의 기회가 된다. 또 유족들에게 교회에 대한 감사와 친밀감을 줄 수 있는 효과가 나타난다”고 덧붙였다.
이날 행사는 1부 세미나에 이어 2부 ‘자살자 유가족을 위한 위로예배’로 진행됐다. 3회째를 맞는 이 예배는 자살자 유가족을 위로하고 슬픔을 나누는 행사로, 자살 문제를 한국교회에 공론화하는 데 이바지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