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아일랜드 리조트’를 향한 대기업 SK의 야심?

김진영 기자  jykim@chtoday.co.kr   |  
▲서울 종로구 서린동에 있는 SK그룹 사옥. ⓒ김진영 기자
▲서울 종로구 서린동에 있는 SK그룹 사옥. ⓒ김진영 기자

칼바람이 불던 지난 1월, 서울 서초동 검찰청 앞에서 SK그룹 회장의 사과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던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경기도 안산시 대부도 소재 ‘아일랜드 리조트 골프장’(이하 아일랜드) 임·직원들이다. 이들은 왜 대부도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이곳에서, 그것도 국내 굴지의 대기업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일까. ‘을’에 대한 ‘갑’의 횡포가 사회적 공분을 사고 있는 이 때, 본지는 이 시위의 배경과 원인에 대해 지속적으로 심층 취재 보도할 계획이다.

지난 2006년 12월 대부도에 작은 골프장을 운영하던 ‘NCC 주식회사’(이하 NCC)와 SK그룹 계열사인 ‘SK 인천정유:SK 에너지’(이하 SK)는 보다 큰 규모의 골프장 사업을 함께하기 위해 향후 합작회사인 아일랜드를 설립, 건설과 운영을 함께하자는 내용의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당시 NCC는 사업을 키우기 위해 대부도 인근 부지를 매입하는 중이었고, SK의 양해각서는 바로 이런 과정에서 체결됐다.

NCC 권오영 회장(현 아일랜드 회장)의 기대는 컸다. 대기업과의 사업에 부담이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골프장에 대한 비전이 컸고, 합작을 통한 시너지 효과를 확신했기 때문이다. 또 마침 골프장 부지 매입 과정에서 자금도 필요했었기에 SK와의 ‘동업’은 그에게 매우 좋은 기회였다. 양해각서 체결 후 NCC와 SK는 ‘국내 최고의 골프장’이라는 청사진을 품고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두 회사는 새로운 합작회사인 아일랜드를 만들면서, 자본금 100억원 중 지분 50%의 자본금 50억원의 1.8배인 90억원을 SK가 납입한다. 또 NCC가 이미 취득했거나 계약 중인 토지를 아일랜드에 양도하고, 골프장 조성사업과 관련해 NCC가 취득했거나 신청 중인 각종 인·허가권 등을 아일랜드에 무상으로 이전하기로 합의했다. 그리고 SK는 추가적으로 필요한 인·허가권의 확보를 NCC에 의뢰했다.

지분을 공평하게 나눴음에도 SK가 더 많은 돈을 투자한 것에 대해 SK측 관계자는 “당시 NCC의 기업 사정이 넉넉지 못했고, 또 상대적으로 많이 투자했지만 향후 그 만큼의 이익 또한 기대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결국 NCC는 지금까지 골프장을 운영하고 이후 사업을 확장하며 얻은 노하우와 각종 인·허가권 등 사실상 아일랜드 사업에 핵심이 되는 ‘소프트웨어’를 제공했고, SK는 일종의 ‘하드웨어’라 할 수 있는 재정 조달의 역할을 한 셈이다. 이는 NCC로선 아일랜드라는 새 회사로 완전히 옷을 갈아입은, 그야말로 기업의 ‘명운’을 건 결정이었다.

SK는 NCC 배제 후 아일랜드 차지하려 했나?
법원서도 “SK의 태도 이해하기 어렵다” 지적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모범적 ‘상생’이 될 수 있었던 이 ‘아일랜드 프로젝트’는, 그러나 2008년 SK가 NCC 권오영 회장을 비롯한 임·직원들을 회령 및 배임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소하면서 급반전을 맞는다. 검찰은 SK의 고소를 받아들여, NCC에 징역 10년에 추징금 20억원을 구형하기에 이르렀고, 이 때부터 무려 3년여에 걸친 지루한 법정 공방이 이어진다.
 
검찰은 권 회장에게 ①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배임) ②사기 ③사문서 위조 ④위조사문서행사 ⑤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⑥업무상 배임 ⑦범죄수익은닉의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 등 모두 7가지의 혐의를 씌웠다. 대법원까지 간 이 재판은 지난 2011년 10월, 권 회장에게 1천만원의 벌금을 물리고 그의 조카 권모 씨를 징역 1년6월 집행유예 2년에 처하는 것으로 비로소 끝을 맺었다.

그런데 권 회장은 재판 중에도 그랬고 재판이 끝난 지금까지도 “SK가 아일랜드의 단독 경영을 확보하기 위해 NCC를 배제하고 NCC의 지분을 SK에 매각할 것을 요구했다”며 “그러나 내가 이에 응하지 않자 NCC를 압박하기 위해 나를 비롯한 임·직원들에게 사기 등의 혐의를 붙여 고소하게 된 것”이라고 주장하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법원이 그의 죄를 물어 1천만원의 벌금형을 내렸음에도 권 회장은 왜 여전히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일까. 이에 본지는 1심부터 3심까지의 판결문을 입수, 사건을 보다 세밀히 들여다봤다.

▲대부도 ‘아일랜드 리조트’ 골프장의 클럽하우스. ⓒ크리스천투데이 DB
▲대부도 ‘아일랜드 리조트’ 골프장의 클럽하우스. ⓒ크리스천투데이 DB

우선 법원은 권 회장과 그의 조카인 권모 씨가 아일랜드 골프장 부지 매입을 위해 땅을 사들이면서 이를 중개한 이들에게 평소보다 많은 용역수수료를 지급, 이후 약 7천여만원의 차액을 돌려받는 방식으로 아일랜드와 동업자인 SK에 피해를 입혔다고 최종 판단했다. 권 회장보다 그의 조카 권모 씨의 형이 더 무거운 것은 권 씨가 토지 매매 과정에서 사문서를 위조, 약 4천여만원을 편취했다는 것 때문이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권 회장의 호소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애초 SK의 고소로 기소가 결정되고 검찰이 재판에서 제기한 총 7가지 공소사실에 비춰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권 회장은 공소사실 중 단 한 건인 ‘엄무상 배임’에만 걸렸고, 그 죗값 역시 벌금 1천만원으로 검찰이 권 회장 등이 착복했다고 주장한 수십억원에 비하면 한참이나 적은 액수다. 이 부분조차 권 회장은 지금도 무죄를 주장하고 있는 상태다. 권 회장의 조카인 권모 씨 역시 비록 권 회장보다 형량이 크지만, 법원이 그가 가로챘다고 본 돈의 액수 역시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1심 재판에서 검찰은 그들이 제기한 공소사실 대부분이 무죄로 판결나자 항소를 제기한다. 하지만 항소심을 진행한 서울고등법원 제3형사부 역시 같은 판단을 내린다. 게다가 항소심 판결문을 보면 권 회장측보다 오히려 SK의 ‘모순된 행동’을 지적하는 부분을 여럿 발견할 수 있다.

이번 사건에서 검찰은 NCC 권 회장측이 골프장 부지 확보를 위해 A건설사로부터 땅을 매입했는데, 이 중 일부의 땅을 실제 평당 14만원에 사놓고 이를 아일랜드에 넘길 때는 취득원가를 평당 20만원으로 계산, SK를 속여 약 70억원 상당의 부당 이익을 챙겼다고 주장했다. 반면 NCC측은 “(SK와) 협상 당시 서류상 실제 지출된 것이 확인된 취득원가를 기준으로 해당 토지의 매매대금을 정한 것이 아니었다”며 “토지를 취득하는 과정에서 실제 지출했지만 회계처리 하기 어려운 금액까지 반영, 해당 토지의 적정 시세를 협상하며 절충해 정한 것”이라고 주장, 검찰측과 맞섰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취득원가 부분에 대해 “이 부분 공소사실은 피고인들이 A건설로부터 매수한 1, 2차 부지를 모두 (실제보다 부풀린) 평당 20만원으로 매입했다고 SK를 기망해 주주간 협약을 체결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라며 “그런데 NCC는 2007년 6월 4일 아일랜드에 A건설의 2차 부지를 21,734.18평과 860평으로 나누어 각각 3,042,785,200원과 120,400,000원에 매도했다는 바, 그 매매금액이 평당 20만원에 미달하는데도 위와 같은 매매계약의 체결 이후 상당한 기간 동안 SK에서는 A건설 명의 매매계약서의 위조에 대해 문제를 삼거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재판부는 또 “기업체 양도의 실질을 갖는 주주간 협약의 목적이나 그 내용에 의한 쌍방의 경제적 이해관계 등 거래의 상황, 거래 상대방인 SK의 지식, 경험의 정도 등 주주간 협약 및 이에 따른 매매계약의 체결 당시의 구체적 사정을 종합해 보면 …(중략)… 피고인들(권 회장측)이 NCC의 자산 가치나 수익성 등에 관해 다소 과장하는 등 일반 상거래의 관행과 신의칙에 비추어 시인될 수 있는 정도를 벗어난 위법한 기망행위로서 주주간 협약의 체결에 이르렀다고 단정하기에 부족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그 근거로 NCC가 해당 부지를 매입한 후 감정평가를 실시했는데, 그 결과 평가된 부지의 시가가 매입 당시 금액보다 상승했다는 점도 들었다. 그런데도 NCC가 SK와의 계약에 따라 매입 부지를 아일랜드로 넘기며 매입 당시의 취득원가만을 비용으로 청구했다면 “시가 상승분을 아무런 대가 없이 SK에 양도하는 결과”가 된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즉, 검찰의 주장처럼 애초 SK와 NCC가 서류상의 취득원가만을 기준으로 매매대금을 정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1심 재판부는 이 부분과 관련, 양측 공방의 대상이 되는 부지 매매대금이 수백억원에 달하고 검찰이 이 중 권 회장측이 불법으로 챙겼다고 주장하는 금액 역시 수십억원에 이름에도, 처음 SK가 검찰에 권 회장측을 고소할 때는 이 부분을 문제 삼지 않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다른 공소사실의 피해금액에 비해 (이 사건과 관련된 피해금액이) 현저하게 크므로 그와 같은 사정을 인식한 SK로서는 이 부분 공소사실을 먼저 고소함이 경험법칙상 상당하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SK가 보인 태도는 이해하기 어렵다”고까지 했다.

고소 취하했는데도 검찰이 단독으로 재판 진행?
대부분 무죄… SK는 재판 중 수천억 골프장 인수

상황을 종합해 보면 당초 검찰이 기소 당시 NCC측에 징역 10년 및 20억원의 추징금을 구형한 것에 비해 권 회장 등이 받은 벌금과 집행유예는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며, 오히려 “이번 송사는 SK가 NCC를 배재하고 아일랜드를 차지하기 위해 취한 압박용”이라는 권 회장의 주장에 무게를 더하는 부분이다.

권 회장은 또 “처음 동업을 제안한 쪽도 SK였다. 당시 SK 계열사 중 골프장이 없었는데, 이 때문에 아일랜드를 차지하기 위해 먼저 사업을 제안했던 게 아니겠느냐”고 주장하기도 했다. 게다가 이번 사건 판결문에 “NCC의 주식 2분의 1을 양도하는 방식이 아니라 SK의 요구대로 아일랜드를 신설하는 방식” “계열회사에서 직접 운영하는 골프장 확보를 원하던 SK”라는 언급이 있는 것도 이에 대한 의혹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하지만 SK측 관계자는 “어느 쪽이 먼저 사업을 제안했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NCC가 먼저 제안했다”고 했고, “권 회장측에 아일랜드 지분 전부를 달라고 한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그런 적이 없다”고 말했다.

특이한 점은 SK가 처음 검찰에 권 회장측을 고소하고 다시 이를 취하했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해 SK측 관계자는 “처음 우리가 투자한 90억원만 확보하면 손해 볼 것이 없었기에, NCC가 그 돈만 돌려준다면 고소를 취하하겠다고 NCC와 합의했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검찰이 단독으로 공소를 유지했다”고 답했다. 하지만 권오영 회장은 “SK측은 고소를 취하하고서도 더욱 거세게 몰아붙여 나를 불구속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권 회장은 현재 SK와의 동업 관계를 청산하고, 아일랜드를 세계적 골프장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론 SK와 겪었던 갈등들을 주변에 꾸준히 알리며 ‘갑’의 위치에 있는 대기업의 횡포를 고발하고 있다.

주위에선 SK가 이미 아일랜드에서 물러난 마당에 ‘계란으로 바위를 친다’고 그를 말리고 있다. 그러나 권 회장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SK로 인해 입은 피해를 반드시 보상받아야 한다며 나를 응원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대기업의 횡포를 고발하는 것은 단순히 사업상 입은 손해 때문이 아니라, 대기업이 마음만 먹으면 중소기업을 흔들 수 있다는 잘못된 사고를 바로잡기 위함”이라며 “계란으로 바위 치기일지 모르나, 하나님과 함께한 다윗은 골리앗을 쓰러뜨렸다. 이것이 내가 매일 하나님께 기도하는 이유이고 아일랜드 리조트에 가장 먼저 교회를 지은 이유”라고 말했다.

한편 SK그룹은 NCC와의 법정 분쟁이 진행되던 중인 지난 2010년 2,200억원에 제주도 핀크스골프장을 인수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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