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또는 큰 수풀을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거니와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냐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약 3:2~12)
<서론>
오늘 저는 “말의 창조적 힘”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가 보는 천지와 만물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다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구주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 오신 분이라고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눈에 보이는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을 받았다고 성경에 말씀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특이한 것이 말씀인 것입니다. 여러분과 나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우리도 말씀을 통해서 우리 주변을 다스리고 창조해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말씀으로써 자기 세계를 지어가는 것이 우리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 인간은 말하고 분리시킬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의 말하고 여러분의 환경하고 분리시킬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입술의 말이 여러분의 환경을 만들어갑니다. 여러분, 현재 일어나고 있던 것들이 과거에 자꾸 말하는 것이 현재 일어나는 것입니다. 현재 말하고 있는 것이 미래 일어나는 것입니다. 말하고 여러분과의 존재를 분리시킬 수가 없습니다. 말은 영적인 기와 공기의 진동입니다. 이 진동이 가까운데 있는 물의 분자를 변화시켜 놓는다는 실험을 일본 과학자 에모도 마사루가 말한 적이 있습니다. 말에 따라서 가로수에 담아 놓은 물이 파괴되기도 하고 분자가 아름답게 형성되기도 한다는 것은 과학자가 발명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말이 우리를 병들게 하기도 하고 건강하게 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병든 것은 우리말이 그렇게 할 때가 많습니다. 말이 건강하게 말을 하면 우리의 생각도 건강도 좋아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우리 몸의 60%가 물인데 물은 말에 따라서 변화가 되므로 우리의 건강도 말에 따라서 변화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말이 얼마나 힘이 있다는 것을 오늘 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알아보고자 합니다.
<본론>
1. 야고보가 정의하는 말의 영향력
첫째, 야고보가 정의하는 말의 영향력은 말이 온 몸을 다스린다. 나의 운명을 다스린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을 보면 입에다 재갈을 채워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우리 혀는 온 몸을 움직이는 재갈과 같다는 것입니다. 큰 배도 눈에 안 보이는 적은 키가 물 안에서 방향을 좌우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배가 폭풍우를 당해도 항구를 찾아갈 수 있는 것은 키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 입속에 있는 말이 적지만 여러분의 현재와 미래를 운전해간다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3장 2절로 4절에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그 다음 지옥 불로 태우는 듯한 그러한 역할도 말이 하는 것입니다. 지옥 불로 태우는 듯한 혀를 가진 사람이 우리 모임 가운데 있으면 모임을 완전히 파괴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작은 불이 많은 나무를 태우지요. 제일 처음에 불씨가 조그마한 것이라고 불씨로써 장난하다가 온 도시를 태우는 불행이 다가올 수 있는 것이 사람이 하는 말도 그와 같은 것입니다. 별볼일 없는 말 같지만 부정적인 말을 하고 흉보는 말을 하여서 온 사회와 국가가 들끓는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요사이 우리 국회에서 전대통령이 한 말이 북한의 김정일이가 한 말이 사실이 아니라 그 말 때문에 완전히 나라가 들끊는 이유도 바로 우리 눈에 보고 있는 것입니다. 지옥불로 태우는 듯한 흉한 일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혀의 부정적인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요. 불과 같은 불의의 세계,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지옥 불로 태우는 역사를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약 3:5~6) 우리 혀를 마귀가 사용하면 지옥불이 붙어 나오게 만들어 낸다는 것입니다. 혀를 길들여야지 우리가 혀를 길들이지 아니하면 쉬지 않는 악이요, 사망의 독이 가득한 혀요, 찬송과 저주, 단물과 쓴물을 내는 이중적인 요소가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밥 먹을 때 입속에 음식을 고루고루 섞으며 맛을 보여주는 혀로만 알고 있지 그 혀가 우리 운명을 좌우하는 일에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깨달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더구나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증거할 때 가만히 생각해보면 하나님 말씀을 증거해서 그 말씀을 통해서 다른 사람을 영원한 지옥불에서 건질 수도 있는데 똑같은 말로 세속적인 말을 하고 흉악한 말을 해서 상대의 영혼을 파괴하고 죽이는 일도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할 때 놀라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냐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약 3:8~12) 한 혀를 가지고 두 가지 영향을 나타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말은 우리 신체에도 영향을 미쳐서 질병의 원인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제가 세계에서 제일 잘 사는 나라 중의 하나인 스웨덴에 가서 성회를 인도하는데 사람들이 다 잘 살아요. 부족한 것이 없어요. 정부에서 여러 가지 보험을 잘해서 먹고 사는데 부족함이 없는 그들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교회 안 나올 것 같은데 사람들이 많이 와요. 어떤 사람이 내게 와서 질문을 합디다. 목사님, 이 사람들은 이렇게 잘 사는데 부족함이 없는데 이 집회에 사람들 안 나올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많이 나옵니까? 그래서 내가 왜 안 나올 것 같으냐고 하니까 뭐 필요해야 나오지요. 우리 한국 사람들은 아직까지 집회에 나와서 하나님께 복 받으려고 하는 기대가 있어서 많이 나오지만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 대신에 정부가 먹고 입고 살 곳을 다 마련해주지 않기 때문에 그 때문에 나오지 않지 않습니까? 그래서 제가 한 말이 있습니다. 자세히 한번 살펴보라. 이 사람들이 우리 한국 사람보다 못한 것이 무엇이 있는지 한번 알아보라. 그러더니 이 사람 하는 말이 병 안든 사람이 없네요. 잘 먹고 잘 입고 잘살고 그러니까 게을러서 운동도 안하고 병들었어요. 병이 걸려서 자녀들이 업고 안고 와서 자리에 눕혀 놓은 사람이 한 두 사람이 아니에요. 그러므로 사람들은 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말을 부정적으로 해서 병이 들기 때문에 우리가 말을 하나님 말씀으로 긍정적으로 말하면 병을 미리 물리칠 수 있습니다. 항상 일방적으로 말할 때라도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가 나음을 얻었다고 했으므로 나는 건강하다. 튼튼하다. 씩씩하다. 병들지 않는다. 그런 긍정적인 말을 자꾸하는 것은 그 말 자체가 위대한 치료의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조금만 아프면 아이고 아프다. 고통스럽다. 못하겠다 하면 몸에 있는 병이 얼씨구나 좋다. 내 있을 자리를 발견했다. 그리고 힘을 낼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조금이라도 몸에 고통이 다가오면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나음을 입은 사람이다. 나는 건강하다. 튼튼하다. 씩씩하다. 허약은 물러갈지어다. 그렇게 하면 곧장 나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제가 한국말이 어눌하고 혀가 잘 안 돌아가는데 오랫동안 안 쓰던 영어를 쓰고 설교를 하려고 하도 애를 썼더니만 혀가 벌써 영어에 익숙해져가지고서 한국말보다 영어해라. 영어해라. 자꾸 그렇게 혀가 말하는 것입니다. 혀란 그렇게 쉽게 환경에 좌우되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 속에 들어가면 긍정적인 말을 하기가 쉽고 세상적인 말, 부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과 같이 하면 부정적인 말을 하기가 쉬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중심이 딱 잡혀서 예수 그리스도의 갈보리 십자가 보혈의 은혜의 말을 늘 해야 되는 것입니다. 늘 그것을 생각해야 돼요.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가 나음을 입었다는 것도 십자가의 은혜의 말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죄 사함을 받았다. 죄는 나와 상관이 없다. 물러가라! 거룩함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으로 오는 은혜다. 나는 십자가를 통하여 거룩하다. 나는 건강하다. 나는 축복받았다. 나는 영원 천국을 얻었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다. 십자가를 중심으로 한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을 우리 마음속에 꽉 붙들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 내가 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이 필요한 대로 채워 주신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도 해를 안 받는 것은 주님께서 같이 계신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건강하게 하리라. 하나님 성령께서 붙들어 주신다. 십자가를 중심으로 한 말씀을 마음속에 외우고 그 말씀을 중심으로 해 나가면 이 세상에 들어오는 수많은 부정적인 말과 생각을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중심을 잡는다는 것 굉장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너무나 요란스럽고 흐트러진 일이 많아서 중심을 잡기가 힘들어요. 곧 세상으로 끌려 들어가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내 중심을 십자가로 꽉 붙잡아 놓고 세상이 나를 흔들지 못하게 해야 이기고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 따라서 영혼도 잘못되고 범사도 안 되고 병이 나서 몸도 건강하지 못하고 이렇게 되면 안 되는 것 아닙니까? 우리 중심은 우리가 잡아줘야지 남이 잡아주지 않습니다. 내 스스로가 하나님 말씀으로 중심을 잡아야 돼요. 십자가 튼튼히 붙잡고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2. 4차원의 영성과 말의 영향력
우리는 4차원의 영성과 말의 영향력을 깊이 깨달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성은 생각을 다스려야 되는 것입니다. 다윗이 위대한 인물이 된 것은 생각을 다스렸기 때문인 것입니다. 다윗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리는 못한다. 골리앗을 이길 수가 없다. 그는 장사다. 장군이다. 그렇게 말할 때 다윗은 초립동이었습니다. 17살쯤 되는 소년이었는데 그렇게 안했습니다. 다윗은 그는 몸집만 컸지 그는 하나님과 관계가 없는 사람이다. 우리는 하나님과 언약 맺은 백성이다.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신다. 우리는 골리앗을 이길 수가 있다.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신다. 하나님 보태기 다윗을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사울왕으로부터 시작해서 모든 군인들이 나 보태기 나입니다. 내가 나의 주인으로써 나 보태기 나로써 골리앗을 바라보니까 도저히 상대가 안 되게 크다 말입니다. 골리앗은 장군 같으면 우리는 메뚜기같이 보인다고 그렇게 말할 정도인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언제나 나 플러스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나와 하나님이 함께 계시므로 하나님의 눈으로 보니까 덩치만 컸지 저것은 고깃덩어리에 불과하다. 나는 덩치가 적지만 하나님이 같이 계신다. 그래서 골리앗을 보고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나오거니와 나는 너가 무시하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만군의 야훼 힘을 의지하고 나오느니라.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도 세상에 나가서 만물을 볼 때 나 플러스 나로써만 보면 여러분 뭐합니까? 뭘 잘합니까? 백만장자입니까? 권력이 있습니까? 청춘이 있습니까? 환경을 감당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 플러스 하나님으로 하면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 하나님이 같이 계시기 때문이다. 그렇게 말할 수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지금 이 자리에 앉아 계시는데 여러분 플러스 누구와 같이 계십니까? 진짜로 하나님 같이 계세요? 그러면 여러분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제 앞에서 아멘만 하지 말고 실제로 나 플러스 하나님을 말씀하십시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 하나님과 함께 인생을 바라보고 사물을 바라보고 환경을 바라보면 여러분은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생각을 다스려야 되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17장 34절로 35절에 보면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 사자와 곰도 내가 죽였는데 할례받지 못한 하나님과 언약이 없는 골리앗을 두려워할리 어디가 있습니까? 아예 바라보는 척도가 다르고 말이 다른 것입니다. 사무엘상 17장 45절에 보면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야훼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아~ 대장군이 엄청난 무장을 하고 기세 당당하게 다가오는데 조그마한 17살짜리 소년이 쳐다보고서 이 고깃덩어리야 너는 덩치만 컸지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만군의 야훼 이름을 가지고 나오너라. 그러니까 골리앗이 다윗을 보고 웃었습니다. 상대로 욕을 할 정도도 못돼요. 주먹만하니까. 그러니까 골리앗이 말하기를 야 이놈아, 내가 개인 줄 알고 부주깽이를 들고 나오느냐. 우리가 종종 시골에서 자랄 때 개가 자꾸 부엌에 들어와서 설렁거리면 어머니가 부주깽이를 들고 와서 때리면 개가 깨갱깨갱하면서 뛰어나갑니다. 그것이 기억에 남아 있거든... 그러니까 다윗이 나갈 때 지팡이 하나 들고 나가니까 이놈아, 내가 개인줄 알고 부주깽이 들고 나오느냐? 너를 당장 죽여서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의 밥으로 만들겠다. 그러나 골리앗은 자기 혼자 그렇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나는 소년이지만 만군의 야훼 이름을 가지고 나가노라. 하나님 이름을 가지고 나가니까 하나님 능력이 같이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아무것도 아니면 하나님께서 오늘 교회 초청해서 앉혀 놓지도 않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주님께서 여러분 사랑하고 구원하려고 합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대화를 하기 위해서 불러내어 빼어낸 사람들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별 수 없이 불렀는지 모르겠지만 하나님은 여러분을 대단하게 보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필요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신지라. 사랑은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하나님이 사랑하는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나 혼자 이 세상에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 다음에는 또 여러분 생각을 깊이 하게 되면 꿈을 꾸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돈 벌 생각을 자꾸 하면은 돈 벌 꿈을 꾸게 되지요. 건강한 생각을 자꾸 하게 되면 운동을 꿈꾸게 되는 것입니다. 먹을 것을 자꾸 생각하면 먹을 꿈을 꿉니다. 우리는 해외 선교 나가면 먹는 꿈을 잘 꾸게 됩니다. 왜냐하면 음식이 한국 음식이 없기 때문에 중국식을 먹을지, 일본식을 먹을지, 서양음식을 먹을지, 잘 먹어야 하나님 사역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음식을 꿈꿀 때가 많아요. 저도 한 사흘 동안 늘 아침, 점심, 저녁 음식 꿈만 꾸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여러분, 한류가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저 스웨덴의 중소도시에도 김치를 달라면 김치를 박스로 만들어서 팔아요. 이 김치 좋아하느냐고 하면 굉장히 좋다고 맛이 있다고 자기들 김치 먹어보라고 하는데 그 김치 먹어보니까 꽤 맛있더라구요. 그러니 우리 한국의 국력이 얼마나 뻗어나갔는지 옛날에는 김치 말을 해도 못 알아들었는데 김치 하니까 아주 부리나케 김치를 가지고 나오더라구요. 생각을 하게 되면 꿈을 꾸게 되는 것입니다. 밥 생각을 하게 되면 어떤 밥을 먹을지 꿈을 꾸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상과 꿈을 성경은 이끌어내서 성령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말했고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꿈을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마음에 꿈이 없으면 내일이 없습니다. 꿈이 있으면 내일을 계획하지만 꿈이 없는 사람은 내일을 계획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꿈이 없는 사람하고는 같이 안합니다. 해봤자 내일이 없는 것이 무엇을 합니까? 꿈이 없는 사람은 입만 딱 벌리고.. 꿈 있는 사람은 눈이 또렷또렷합니다. 눈알을 보면 눈이 또렷또렷합니다. 내일이 있은 사람인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열심히 읽고 기도하면 모두 다 꿈을 꾸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내일이 꿈꾸게 되고 그것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하간 여러분, 마음에 소원을 가지고 사십시오. 소원이 꿈입니다. 소원을 결정적으로 마음에 가지고 바라보고 있으면 그것이 꿈이요, 꿈이 있는 백성은 망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꿈을 이루어주시는 것입니다.
꿈을 계속해서 마음에 꾼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제가 이번에 만난 스웨덴의 목사님 한분, 스웨덴에서 가장 큰 교회 목사 한분이 제게 그런 이야기를 합디다. 내가 어떻게 스웨덴에서 이렇게 큰 교회를 세웠느냐고 그러니까 이것 다 당신 덕분이라고 그래서 아니 내가 당신에게 아무 도움도 안줬는데 무슨 내 덕분이냐고... 당신이 교회에 초청을 해주어서 내가 젊을 때 서울에 가서 여의도순복음교회를 보고 입이 딱 벌어집디다. 교회 안에서 예배를 보고서 입을 딱 벌리고 아 한국에 이런 교회를 세울 수 있으면 스웨덴에도 똑같은 교회를 못 세울 리가 있겠는가. 하나님 같이 계신데 안 믿기 때문에 그렇지 믿으면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그 꿈을 가지고 스웨덴에 왔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 꿈을 꿔서 하나님 사업을 한 결과에 오늘날 이 큰 교회가 됐습니다. 우리 교회를 보고서 꿈을 꾼 다른 많은 교회들이 이 구라파에 북구라파에 이루어졌습니다. 알마니아에 가도 그렇고 소련에 가도 그렇고 많은 큰 교회가 다 우리교회를 보고 꿈을 꾸고 가르쳐 그렇게 되었으니 세상으로 말하면 여의도순복음교회 아들뻘도 되고 손주뻘도 됩니다. 꿈을 전해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같은 영향력을 미치되 꿈을 꾸고 그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을 깨달아 알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큰 교회 와서 교회를 바라보고 그냥 나가는 것 같지만 주의 종들은 꿈을 얻어가지고 나가는 것입니다.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주님이 오늘날도 채우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마음속에 의심을 자꾸 하고 의심 때문에 하나님이 역사 안 할 줄로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 모든 사람에게 의심이 다 생깁니다. 의심이 없이 믿는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의심이 다 생겨요. 제가 강단에 서서 여러분에게 믿으라고 하면서 내 마음에 의심이 없는 것 같지만 저도 의심이 늘 들어옵니다. 또 여러분이 의심 없이 믿는다고 생각도 안합니다. 의심이 들어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의심이 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렇게 말했습니다.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 말 할 필요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항상 알아야 될 것은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만 있으면 그 말 하는 것은 다른 나무들은 씨가 많습니다. 그러나 겨자씨 하나를 보면 씨가 굉장히 적은데 믿음이 찾다 찾다 없어서 그만한 믿음만 있어도 하나님은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의심투성이 속에서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만 있어도 된다. 여러분 믿음에 마음속에 없이 의심 투성이라도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만 있으면 오케이입니다. 그것만 붙잡아도 하나님이 돌보아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스웨덴 청중들에게 여러분 의심이 있지요? 그러니까 다 있어요. 있지요. 그러면 믿음이 전혀 없네요? 믿음이 없습니다. 우리는 의심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런데 당신들 나에게 거짓말 한다고... 여러분에게 의심이 있는 중에 믿음이 조금씩은 있다고 하니까. 무슨 믿음이 있냐고 합니다.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은 있지 않느냐고. 너무 작아서 안보입니다. 나는 안 그랬습니다. 당신들 덩치가 큰데 겨자씨 하나가 덩치가 큼직큼직하게 보인다고... 왜냐, 여러분 자신이 오늘 놀러 안가고 휴가를 안가고 이 교회에 와서 앉아있는 것은 믿기 때문에 교회 왔지. 믿음이 없으면 이곳에 안 왔을 것 아닙니까? 한국의 조용기가 와서 말씀을 증거하니까 가서 말씀을 들어보고 은혜를 받자는 믿음을 가지고 왔는데 내가 보니까 여러분 전부다 믿음 투성이입니다.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은 다 있습니다 하니까 다 좋다고 박수를 치더니만 아닌게 아니라 병자 위한 기도를 하니까 병자가 많이 나아요. 그 믿음이 나타난 것 아닙니까?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여러분 없는 것을 보지 말고 있는 것을 보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아침에도 하나님 말씀에 대한 의심이 많이 생길 것입니다. 그러나 그중에도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만 있으면 그것을 붙잡고 매달리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겨자씨 한 알 보고도 산이 바다로 던지면 된다고 했으니까 보통 힘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힘이 굉장히 강합니다. 적은 겨자씨 믿음이 굉장히 힘이 강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상과 꿈을 가질 뿐 아니라 믿음을 마음속에 가지고 그로 행세하면 큰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환경의 변화의 씨앗이 바로 믿음인 것인데 그 믿음을 가졌으면 그 믿음을 가지고 말을 해야 돼요. 혀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말고 조그마한 믿음이라고 있으면 믿음을 자꾸 말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믿습니다. 됩니다. 발전이 있습니다.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그 믿음을 기초로 해서 자꾸 말을 하면 그 믿음이 승리의 바람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민수기 14장 2절과 28절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10명의 정탐꾼의 부정적인 보고를 듣고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야훼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하나님이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행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무도 안 듣는 것 같은데 지금 듣고 계시는 분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듣고 계세요. 하나님이 긍정적인 말을 들었으면 그대로 행하시고 부정적인 말을 들으시면 그것도 그대로 행하시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에는 더 쉽게 말했습니다.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 매이리라.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 풀리리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땅에서 매고 푸는데 뭘 가지고 매고 풉니까? 입술의 말로써 매고 푸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말을 듣도록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내 영혼이 잘됨같이 내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이 말씀을 자꾸 말하면 하나님이 오냐, 들었다. 들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말을 자꾸 하라구요. 그러면 그 말을 한 자체가 여러분 장난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겨자씨 만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전혀 안 믿으면 그런 말 안 해요. 하나님이 들으시고 그대로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3. 말의 창조적 힘
말은 창조적인 힘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정 도와주고 싶은 사람은 한 가지 말을 계속하게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여러분의 말을 계속하게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이름을 바꿈으로 그 한 가지 말을 계속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아브람을 하나님이 축복해 주셔서 아브라함, 많은 민족의 조상. 자식이 없는 집안이니까 자식이 많게 하기 위해서 너는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이름을 바꾼다. 많은 민족의 조상이다. 너의 아내는 사래가 아니라 사라다. 많은 자식의 여주인이다. 우리 한국에서는 집안에서 부부가 서로 이름을 안 부르잖아요. 우리 집사람이 날보고 용기야 안 그럽니다. 저도 우리 집사람 보고 성혜야 그렇게 말 안합니다. 그런데 서양 사람들은 그렇지 않아요. 자기 부부간에 서로 이름을 부릅니다. 내가 제일 처음에 미국 갔을 때 가정에 초청을 받아서 며칠 묶게 되었는데 부인이 자기 남편 이름을 그대로 자꾸 불러요. 내가 보기에 참 고약한 여자다. 교양이 없게 남편 이름을 저렇게 막 부르다니... 남편도 부인의 이름을 그대로 불러요. 그래서 나중에 내가 물었습니다. 우리 한국에서는 서로 이름을 안 부르는데 미국에서는 왜 서로 이름을 부르느냐. 그러니까 한국에는 결혼 안했느냐고 물어요. 결혼해서 산다고... 사는데 서로 이름에 존칭을 붙이느냐. 결혼해서 살면 친구니 서로 이름 부르지 친구가 누가 존칭을 붙이고 사느냐. 오히려 이상하게 여겨요. 아브라함도 사람들 안에서 살면서 이름을 바꿨으니까 많은 민족의 조상이요, 많은 자식의 여주요. 그렇게 불렀다 말입니다. 이웃 사람들이 듣고 자식이 없어 너무 애를 태우더니 기어코 미쳤구나. 자식이 없는 남편을 자식이 많은 아버지라고 부르고 자식이 없는 여자를 자식이 있는 부인으로 불렀구나. 그러나 하나님이 이름을 바꾸어 주었기 때문에 하루에도 수십번 이름을 그렇게 불렀다 말입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따라 말씀하세요.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는 것이 믿음이다. 없는 자식을 있는 자식같이 부르니까 나중에 이삭을 낳았고 야곱을 낳았고 열두 자녀들 낳았고 오늘날 이스라엘 백성이 두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것입니다. 그와 같이 이름을 바꾸는 것 이것이 하나님이 말을 계속해서 복을 받게 하는 길을 열어준 것입니다.
창세기 17장 5절, 15절로 16절에 보면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사라라 하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말을 종종하는 것이 효과가 없다면 하나님이 이름을 바꾸면서까지 이렇게 말을 종종하시도록 하실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반드시 효과가 없습니다. 야곱을 이스라엘로 만드신 하나님을 보십시오. 야곱이라는 말은 사기꾼이라는 말입니다. 꾀를 많이 부리고 사기를 치는 것이 야곱인데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씨름해서 이긴 자니까. 하나님과 씨름해서 이겼다면 엄청난 복을 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창세기 32장 24절로 28절에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축복을 이름을 바꾸어 주어서 내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름을 처음에 지을 때 잘 지어야 돼요. 이름을 잘못 지어 놓으면 사람들이 그 이름을 부르니까 그 이름이 그 사람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것입니다. 개똥이라고 이름을 지으면 내내 개똥이에요. 개똥, 소똥, 사람똥, 똥은 다 생각이 나거든요. 나는 내가 기억이 나는 것은 제가 초등학교 어릴 때 상급생이 오더니만 내 이름을 보더니만 책에만 있는 줄 알았더니 여기에도 있구나. 용기. 용기가 많겠다. 그냥 들었는데 그게 내 마음속에 남아 있어서 참 우리 아버님이 내게 좋은 이름을 주셨구나. 용기가 없을 때 내 이름만 부르면 용기가 생겨나거든요. 좋은 이름입니다. 그래서 이름을 여러분 용기가 있고 희망이 있고 축복을 받고 영광스러운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 부모의 책임인 것입니다. 이름은 우리 평생에 제일 많이 부르고 쓰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이 필요한 축복을 그 말을 계속하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는 것은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단순히 말해서 자꾸 말하도록 제가 만들었지 않습니까? 용서의 축복, 성결의 축복, 치료의 축복, 건강의 축복, 영생의 축복, 오중복음과 범사에 잘되며 강건한 것은 모르는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쉬우니까 기도할 때마다 늘 기도하게 된다 말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것이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말로써 축복을 하고 말로써 저주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 항상 축복의 말을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신약성경에도 예수님께서 갈대를 반석으로 변화시킬 때 시몬을 베드로로 이름을 바꾼 것입니다. 시몬이라는 것은 바람에 날리는 갈대와 같은 것입니다. 고기잡이를 하던 시몬은 동네 사람들이 시몬, 갈대라고 불렀는데 예수님이 그를 보고 너는 갈대가 아니라 시몬이 아니라 베드로다. 반석이다. 사람들이 다 비웃고 안 믿었습니다만 훗날에 성령 받고 난 다음 그 시몬이 반석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님이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시몬을 베드로로 부른 이상 그가 나중에 베드로가 된 것입니다. 바울선생이 얼마나 위대한 인물입니까? 그러나 굉장히 교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산헤드린 회원이요, 가장 좋은 대학을 나왔고 학위를 가졌고 존경을 받는 사람이어서 나는 사울이다. 사울은 제일이라는 말입니다. 잘났다. 유명하다. 그렇게 했는데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난 다음에 깨어져서 변화를 받게 되자 바울로 바꿨습니다. 바울은 겸손하다. 낮다. 순종하고 따른다. 겸비한 사람이다. 그 이름을 바꾸어서 사울로 부리지 않고 바울로 한 평생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행했던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잘난 자 사울이 낮은 자 바울로 변화된 것입니다.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미로 흠이 없는 자였으나 다멕섹 도상에서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회심한 후 복음을 전하는 겸손한 주의 일꾼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고 말한 것입니다. 항상 설교하고 난 다음 예수 믿을 사람, 처음 믿게 된 사람 일어나서 신앙고백을 따르라고 말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믿으면 의로움은 얻었지만 아직 구원은 받지 못했습니다. 내가 입술로 고백을 해야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입술로 고백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마가복음 7장 26절로 30절에도 수로보니게 여인이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내 주기를 간구할 때 주님께서 자녀로 배불리 먹게 해주지 개에게는 떡을 안준다고 말했습니다. 이방인 여자니까. 그러니까 수로보니게 여자가 뭐라고 말했습니까? 옳소이다. 그러나 개들도 밥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주워 먹습니다. 예수님이 네 믿음이 크도다. 이 말을 했으므로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말 한마디 잘해서 귀신이 딸에게서 나간 것입니다. 여자가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집에 돌아와 보니까 귀신이 나가고 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생각과 꿈을 생성하며 환경 창조에 기여하는 것이 말인 것입니다. 말을 통해서 생각이 밖으로 나타나며 꿈을 뚜렷이 나타나게 해서 환경이 그로 말미암아 형성되는 것입니다. 말을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내가 이번에 스웨덴에 가서도 굉장히 강조한 것은 말을 뚜렷이 하라. 말이 생각을 풀어놓고 꿈을 풀어 놓고 믿음을 풀어놓고 창조적인 능력을 풀어 놓는다. 그냥 보통 것이 아니다. 말이 씨를 맺는 것이기 때문에 서양 사람들이 그것을 잘 몰라요. 그래서 내가 그것을 굉장히 깨닫게 해주려고 애를 많이 썼는데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말이 생각을 풀어 놓는다. 꿈을 풀어 놓는다. 믿음을 풀어 놓는다. 창조적인 힘을 풀어 놓는다. 이런 것을 풀려 나가서 여러분이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하는 대로 생각이 나타나는 것이고 말하는 대로 꿈이 나타나는 것이고 말하는 대로 믿음이 나타나는 것이고 말하는 대로 창조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귀하고 싸우는데도 말로써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마귀를 그냥 딱 쳐다보고 있다고 해서 마귀가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내가 네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세력을 제어할 능력을 주었으니 너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고 했는데 마귀를 보고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사탄아 물러가라! 말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말을 안 하고 그냥 있으면 마귀는 안 나가요. 말로써 명령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매일같이 아침에 일어나서 사탄아 물러가라! 나에게 훼방하지 말라. 저녁에 주무시기 전에 원수 마귀야 물러가라! 나에게 붙은 마귀는 떠나갈지어다. 무슨 일을 할 때도 마음에 중심이 안 잡히면 원수 마귀야 훼방하지 말고 물러가라! 말로써 하면 떠나가는 것입니다. 말로써 마귀와 싸우는 무기가 되는 것입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 16:17~18) 그 모든 것이 말을 통해서 역사하기 때문에 말이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요즘 불리어지는 찬양 중에「십자가에서」라는 찬양이 있는데, 가사가 참 감동적이어서 여기 꺼내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안에서 우리를 그의 자녀로 삼으시고 복된 이름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십자가 이전에는 죄인인데 십자가를 통하고 난 후에는 나는 믿음으로써 용서받은 의인이 되었다. 여러분의 이름은 용서받은 의인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용서받은 거룩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치료받은 건강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축복받은 부자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천국 영생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볼 때 변화된 사람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이름이 이렇게 달라진 것을 꼭 이해해야 되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용서받은 의인이다. 거룩한 사람이다. 치료받은 사람이다. 축복받은 사람이다. 영생을 얻은 사람이다. 하나님이 볼 때 그렇게 달라진 여러분을 보시고 여러분 이름이 그렇게 달라진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믿고 그냥 종교를 가진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입니다.
<결론>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말은 마귀의 수족이 되는 것입니다.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말을 통하여 마귀가 여러분을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소리 내어 복창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말은 대화의 수단일 뿐 아니라 내 마음과 환경을 창조하는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말은 서로 대화하는데 필요하고 말은 창조하는데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만들어서 여러분과 대화를 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하나님이 만드신 만물을 다스리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말로써 여러분의 매일 생활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환경을 다스리고 가정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말이 그처럼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부터 시작해서 우리말을 다스리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말이 여러분이 생각을 풀어 놓고 꿈을 풀어놓고 믿음을 풀어놓고 창조적인 힘을 풀어놓는 것입니다. 말을 통하여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고 위에 있고 아래 내려가지 않고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승리의 말을 주신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 안 믿는 사람은 축복의 말을 할 수가 없어요. 꺼리가 없습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서 변화된 말을 할 수 있으니까 십자가를 안가진 사람들은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없습니다. 아멘.
2013. 7. 28. 주일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