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옥박사 기독문학세계] 낙원에 사는 사람들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잃어버린 낙원을 찾아서(12): 존 밀턴의 <실낙원>을 중심으로

▲송영옥 교수(기독문학 작가, 영문학 박사).
▲송영옥 교수(기독문학 작가, 영문학 박사).

연세가 많아서 허리를 바로 펴고 걸을 수 없는 할머니 한 분이, 보조기에 몸을 의지해 미용실 문을 힘겹게 열고 들어오셨습니다. 더운 한낮, 미용실 안은 손님들과 쉬고 있는 동네 사람들로 복잡했습니다. 실내를 살피던 할머니는 다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시더니, 건물 앞 빈 공간 구석 자리를 찾아 보조기를 세워놓고 다시 들어오셨습니다.

“할머니, 보조기를 안에 세워놓아도 되는데 힘들게 밖으로 나가셨어요.” 일을 하던 미용사가 할머니를 부축해 들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실내가 좁은데 사람들에게 불편을 줘서는 안 되잖아요. 고맙습니다.” 할머니의 대답이셨습니다. 그 광경에 나는 참으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90을 바라보는 할머니께서 저토록 다른 사람들을 배려할 수 있는 것일까.

미용사는 할머니에게 가운을 입혀주면서, “머리 어떻게 해 드릴까요” 라고 물었습니다. “예쁘게 해 주세요.” 할머니는 천진한 미소로 웃으시면서 거울을 보셨습니다. 그 광경은 나에게 또 한 번의 감동이었습니다. 저 연세가 되시도록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니…. 나는 미소 띤 얼굴로 할머니를 쳐다 보았습니다. 누군가가 그랬지요. “지금 사랑을 받고 있는 사람이어야, 자신을 사랑하고 또 남을 배려할 수 있다”고요.

나는 할머니를 사랑하고 있는 가족들이 매우 궁금했습니다. 90을 바라보는 할머니를 저토록 평화롭고 인자하게 행복한 미소를 잃지 않도록 돌보는 가족들이 어떤 사람일까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머리를 다 말고 캡을 쓰신 할머니가, 길 건너편에 있는 슈퍼마켓에 다녀오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힘겹게 문을 열고 나가면서 한 30-40분 걸릴 거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불안했습니다. 더운 한낮에 차들이 다니는 길을 지나 반 시간 이상 걸어 슈퍼에 가려는 할머니가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40분쯤 지난 후에 정말 할머니가 돌아오셨습니다. 나는 무척 반가워 얼른 문을 열고 보조의자를 세워드린 다음, 할머니를 모시고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할머니 손에는 검은 비닐봉지 한 개가 들려 있었습니다.

나 뿐 아니라 미용실에 있던 손님들이 모두 안도하며 할머니를 반겼습니다. 그러면서 그 봉지에 무엇이 들었을까 모두 궁금해 하는 눈치였습니다. 요구르트 10개 묶음 한 개와 서너 개가 더 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는 맨 먼저 미용실 원장에게, 그리고 한 개씩 모든 사람에게 일일이 나누어 주시는 게 아닙니까. “우리 미용사 수고했는데, 하나 더 먹어요.” 그리고 나에게도 하나 더 주셨습니다. 할머니는 우리에게 이것을 주려고 슈퍼에 다녀오신 것입니다.

나는 많이 놀랐고 감동이 컸습니다. 여러분, 이 아름다운 그림이 상상이 되시지요? 나는 할머니의 손을 잡고 눈을 맞추며, “할머니 교회에 나가시나요?”라고 물었지요. “내가 몸이 불편해서 예배 참석하는 것이 힘이 드니까 아들이 집에다 예배 처소를 만들어 주었어요. 그 곳에서 매일 기도하고 찬송하고 그러지요.” 나는 궁금한 것이 더 많아졌습니다. 자녀들은 어떤 사람인지, 함께 사는지, 생활은 어떻게 하시는지…, 나는 마음이 따뜻해졌고, 그래서 이토록 아름다운 할머니의 모든 것이 알고 싶어졌습니다.

할머니는 아들 네 식구와 이웃하고 살고 있다고 했고, 직장을 가지고 있는 며느리가 아침 저녁 들러 음식이며 의복이며 보살펴 준다고 하시면서, “우리 며느리… 세상에 그렇게 착하고 재능 있는 며느리는 없을 겁니다. 그 애만큼 음식 솜씨가 빼어난 여자는 드물 거예요. 손자 손녀도 이 할미를 얼마나 좋아하는지요….”

며느리가 출근하기 전에 들러 차려주는 아침밥을 잡수신다는 할머니의 행복한 얼굴을 보면서 나는 속으로 감탄하였습니다. 아아, 이것이 바로 지상의 낙원이구나. 나이가 들어도 저렇게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할머니, 남을 배려하고 남에게 베풀면서 행복할 수 있는 할머니, 그리고 할머니를 사랑하고 좋아하는 가족들…, 이들이 천국의 백성이구나. 나는 학기가 시작되면 우리 학생들에게, 그리고 다른 곳에서도 오늘 이 이야기를 할 마음이었습니다.

나는 미용실을 나오기 전, 할머니의 손을 잡고 정 깊은 눈으로 한 가지를 더 물었습니다. “아드님은, 아드님은 무슨 일을 하세요.” “아, 우리 아들, 제일감리교회 김태영 장로입니다. 며느리가 문현숙 권사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너무나 기뻐서 소리를 칠 뻔하였습니다.

아아, 그랬었구나. 그래서 김태영 장로님 내외가 그러한 사랑으로  교회를 섬기시는구나. 아아 그랬었구나….^^ 낙원에 사는 사람들, 지금도 이 일을 생각하면 제 맘이 참으로 따스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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