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옥박사 기독문학세계] 선악과 앞에선 이브를 보라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잃어버린 낙원을 찾아서(15): 존 밀턴의 <실낙원>을 중심으로

▲송영옥 교수(기독문학 작가, 영문학 박사, 영남신대 외래교수).
▲송영옥 교수(기독문학 작가, 영문학 박사, 영남신대 외래교수).

과일 중의 과일이여, 인간에게 금지된 것이긴 하지만
너의 힘이 위대하고 칭찬받을 만한 것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구나
(Great are thy virtues, doubtless, best of fruit,
Though kept from man, and worthy to be admired)

너무나 오랫동안 아무도 너를 맛보지 않았지만
맨 먼저 너를 시식한 동물이 입을 열고 말을 할 수 있게 되어
본래 말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던 그 혀가 너를 찬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밀턴은 이브의 범죄 순간과 범죄를 합리화시키고 있는 그녀의 심경 변화를 이렇게 묘사한다. 선악과를 먼저 따 맛을 본 뱀이 입을 열어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과, 선악과를 따 먹지 말라고 금지하시는 하나님 자신조차 그 과일 나무를 ‘지식의 나무, 선악을 판단하는 지식의 나무’라는 찬사를 인간에게 보이셨다는 점을 강조한다.

너를 따 먹지 말라고 금지하시는
하나님 자신조차도
너를 지식의 나무, 선악을 판단하는
지식의 나무라고 명명하여
너에 대한 찬사를 우리에게 숨기지 않으셨도다

(Conceal not from us, naming thee the tree
Of knowledge, knowladge both of good and evil,)

하나님의 섭리를 역설적으로 말하는 이브의 변은 참으로 매력 있어 보인다.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인간에게 금지시킴으로써 오히려 그 나무를 한층 더 높이 인간의 뇌리에 각인시키셨다는 것이다. 인간에게 알려지지 않은 선이 있다는 사실, 인간에게 금지된 지식, 금지된 지혜, … 왜 우리는 그러한 것에 속박되어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스스로에게 제기하면서 자신의 범죄 동기에 의미를 부여한다. 우리 내면의 속성을 매우 고상하게 포장하여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는 장면이다.

이브는 잠시 망설인다. 그렇더라도 선악과를 따먹는 날엔 정녕 죽으리라 하였으니, 만약 사실이라면 내가 받은 자유는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아름다운 과일을 먹는 날 우리가 죽어야 한다면 말이야.

그러나 곧 생각을 바꾼다. 뱀은 죽지 않았다. 그 실과를 따 먹고도 뱀은 살아있을 뿐 아니라 더 눈이 밝고 지혜로워져 우리에게 선악과의 비밀을 알려주고 있지 않은가. 그는 여전히 살아 숨쉬며, 사물을 알고 말을 하고 이성과 분별력을 가지고 있다. 이 지성적인 음식(this intellectual food)은 인간에게는 금지되고 짐승들에겐 허락된 것일까.

그러나 보라, 짐승은 얼마나 너그러운가? 질투심도 없이 자기에게 주어진 선물을 기쁜 마음으로 인간에게 나누어 주려 하지 않는가. 그는 간교한 자가 아니라 지극히 신뢰할 만한 인간의 친구이고, 신뢰할 만한 정보의 제공자이다. 그러하니 내가 무엇을 두려워 하랴. 믿을 만한 친구를 따라감이 지극히 마땅한 길 아닌가.

보기에 아름답고 입맛을 자극하며 사람을 지혜롭게 만드는
거룩한 과일이 여기 있도다. 이것이 모든 것을 치유해 줄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을 따서 먹고 몸과 마음을 살찌게 하는 일을 무엇이 방해할 것인가?

실락원 제9권 후반부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이브는 이 저주받은 시간에
지각 없이 손을 내어밀어 과일을 따서 먹었다.

(So saying her rash hand in evil hour
Forth reaching to the fruit, she plucked, she 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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