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같은 은혜, 중력 거슬러 우리를 끌고 올라가”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이어령 박사, 앙드레 지드의 <탕자, 돌아오다> 강연

▲이어령 박사가 강연하고 있다. ⓒ양화진문화원 제공
▲이어령 박사가 강연하고 있다. ⓒ양화진문화원 제공

이어령 박사(양화진문화원 명예원장)가 노벨문학상 수상자 앙드레 지드의 <탕자, 돌아오다>로 넉 달 만에 돌아왔다. 10월 31일 서울 합정동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내 선교기념관에서 열린 양화진문화원 목요강좌에서는 이 박사의 강연이 열렸다.

<좁은 문>, <지상의 양식>, <배덕자>, <전원교향곡>, <한 알의 밀이 죽지 않는다면> 등 종교적 의미가 담긴 작품들을 다수 썼던 앙드레 지드(1869-1951)는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비평가로, 나중에 개신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강연에 앞서, 사회자는 이어령 박사가 이렇듯 유명한 작품들 대신 잘 알려지지 않은 단편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이 박사는 이미 2년 전 ‘문화로 성경읽기-탕자의 비유’에서 <탕자, 돌아오다>을 언급하는 등 이 작품을 여러 차례 거론한 바 있다.

건강 문제로 모자를 쓴 채 강연한 이어령 박사는 “몸이 좋지 않지만, 수술을 무사히 끝낸 하나님 은총에 보답하는, 감사의 뜻을 담아서 이 자리에 왔다”며 “특히 저는 늘 (스스로를) 탕자라고 생각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제 심정을 담아 앙드레 지드의 <탕자, 돌아오다>를 함께 읽고자 한다”고 서두를 열었다. 이 박사는 “<탕자 돌아오다>를 읽으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등이 어떤 작품을 읽을 때보다 가슴에 와 닿을 것”이라고 했다.

예수님만의 탁월한 비유, 누구의 심정으로도 이해 가능
성경의 언어, 멋대로인 듯해도 빈틈없고 과학보다 정밀

이 박사는 “제가 수사학을 전공했지만, 성경에 나오는 탁월한 비유는 그야말로 예수님이 아니면 도저히 쓸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이성이나 감성으로 도달할 수도, 우리가 경험으로 파악할 수도 없는 ‘하나님 나라’를 비유를 통해 지상의 언어로 말씀하시고 있다”고 말했다. “의로운 열 사람, 백 사람보다 한 사람의 죄인, 소외된 사람이 회개해서 돌아오는 것을 더욱 즐거워하고 반기시는” 하나님 심정을 유목 생활을 하는 양치기나 가사노동을 하는 주부의 마음, 탕자를 맞는 아버지 입장으로 세 번이나 되풀이하고 계시다는 것.

“기독교가 오늘날 왜 세계적인 종교가 될 수 있었는가”라고 질문한 그는, “유교나 불교 등을 보면 자신이 사는 당시 그 지역의 것을 이야기하게 돼 있기 때문에, 동양이나 서양에서 신도들의 종교 문화와 민족 문화는 일치한다”며 “하지만 예수님 말씀은 유목민이나, 농경 생활을 시작해 정착하고 가족제도가 있는 사람, 심지어 그 시대에 신경쓰지 않던 여성의 심정으로도 이해가 가능하다”고 했다.

▲이어령 박사는 &ldquo;소설에서 탕자는 어머니의 정에 무조건적으로 무릎을 꿇는다&rdquo;고 설명했다. ⓒ양화진문화원 제공
▲이어령 박사는 “소설에서 탕자는 어머니의 정에 무조건적으로 무릎을 꿇는다”고 설명했다. ⓒ양화진문화원 제공

이 박사는 성경에 대해 “성경은 모든 언어들이 서로 부딪히고 나뉘고 멋대로 날아다니는 것 같아도, 빈틈이 없는 상상력을 보이고 어떤 면에서 수학이나 과학보다 굉장히 정밀하다”며 “저기 있는 이야기가 여기 와서 부딪치고, 이쪽 이야기가 저쪽에서 풀리는 등 전체가 그물망처럼 돼 있어, 마치 한 줄만 떼어내도 연주하지 못하는 가야금과도 같다”고 강조했다.

그는 “인간이 만든 소설과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성경의 차이를 보면서, 교회에서 전하시는 목사님 말씀 말고도 세속적·문학적인 지식과 성경 읽기가 훨씬 다른 측면이 될 수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탕자, 돌아오다>는 아버지와 형, 탕자만 나오는 성경 속 ‘탕자의 비유’와 달리, 어머니와 탕자의 동생까지 5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또 우화나 스토리텔링 방식의 ‘탕자의 비유’와 달리, 소설은 완전히 대화체를 사용하고, 묘사에 치중하고 있다.

탕자 시점에서 서술한 <탕자…>, ‘인간의 입장’ 보여줘
탕자는 ‘갈구하는 인간’, 형은 ‘율법주의’로 해석 가능

성경 ‘탕자의 비유’와 소설 ‘탕자, 돌아오다’는 시점(Point of View)도 다르다. 예수님은 죄인도 받아주시고 무한히 용서하시는 아버지(하나님)의 입장에서 말씀하신 반면, 소설은 ‘탕자의 입장’에서 쓰였다. 앙드레 지드는 탕자가 왜 집을 나갔으며, 나갔던 그가 왜 돌아왔는지 ‘인간의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

이어령 박사는 “방탕한 아들만이 집으로 돌아올 수 있지, 집을 떠나보지 못한 이는 절대 돌아올 수 없지 않느냐”며 “이런 말을 잘못 이해하면 한 번 집을 나가서 불효하다 돌아오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예수님은 실제로 세리나 창기 등 그 시대 ‘죄인’처럼 여겨진 이들과 가까이 하셨다”고 전했다. 이렇듯 심판이 아니라 ‘잃은 양 한 마리’를, 알곡이 아니라 ‘쭉정이’ 같은 이들을 찾으시는 예수님을 세례 요한조차 이해하지 못했지만, 예수님은 구약 속 ‘정의의 하나님’을 넘어섰고 신약은 그래서 구약과 차이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탕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 소설은 무언의 교회 비판을 하고 있는 것 같다”며 “탕자의 비유를 통해 하나님 마음을 알 수 있다면, 소설을 통해선 인간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고 전했다.

여기서 탕자는 유토피아를 거부하고 무언가를 갈구하는 인간을, ‘형’과 ‘집’은 율법주의, 형식주의, 기성세대, 바리새인, 율법에 매인 교회 지도자 등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아버지가 왜 자신의 곁을 떠났는지 질문했을 때 탕자는 ‘아버지 곁을 떠난 적이 없고, 아버지는 어디에나 계신 줄로 알았다’고 답하는데, 이에 대해 “아버지와 그 집은 다르다고 봐야 하고, 그곳은 아버지의 집이 아니라 형이 있는 곳, 언제나 자신을 가두고 있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형은 상속을 기다리면서 사랑 없이 형식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신자이고, 집은 그러한 교회이다.

탕자의 잘못 물은 형, 포용력 없는 ‘규범과 오만’

소설에서 아버지는 ‘그 집은 내가 너를 위해 지은 것’이라 반박하지만, 탕자는 ‘아버지는 제게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없고, 자신은 형에게 전해들었을 뿐’이라고 응수한다. 이 박사는 이에 대해 “앙드레 지드가 여기서 교회를 비판한 것 같지만, 사실 교회의 구조를 비판한 것”이라며 “니체처럼 하나님을 잘 믿은 사람이 없다는 말도 있는데, 여기서 보면 앙드레 지드처럼 하나님을 평생 갈구했던 사람도 없는 듯하다”고 말했다.

이후 탕자는 형을 만나게 되는데, 아버지와 달리 돌아온 탕자의 잘못을 묻는다. 그의 죄를 감싸주거나 끌어안을 포용력이 전혀 없었던 것. 이 박사는 “형이 아는 것은 규범과 오만이었고, 그래서 탕자는 형에게 반항하면서 일부러 불손한 태도로 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령 박사가 강연 전 대기하고 있는 모습. ⓒ양화진문화원 제공
▲이어령 박사가 강연 전 대기하고 있는 모습. ⓒ양화진문화원 제공

마지막 장면에서는 탕자의 아우가 ‘가출’을 꿈꾸는 장면이 나오는데, 탕자는 그에게 ‘나처럼 지쳐서 돌아오더라도 또다른 세계를 갈구하는, 말라 비틀어진 석류의 맛을 아는 사람’이 되라고 격려한다. 이 박사는 “문화와 문명에 찌든, 오늘날 농약과 비료를 먹고 자란 입맛 좋은 양식이 아니라, 들판에서 모랫바람을 맞고 추운 겨울을 견디면서 살아남은 석류 맛이 진짜 삶의 맛 아니겠나”며 “길들여지고 온실 같은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집이 아니고, 이것을 행복이나 번영이라 불러선 안 된다”고 했다.

세상 지배하는 건 중력이지만, 하나님 은총은 햇빛처럼…

이어령 박사는 “뉴턴으로 상징되는 과학과 이성은 사과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중력의 법칙을 발견했지만, 그 높은 나뭇가지에 왜 사과가 매달려 있는지, 씨 하나가 떨어져 어떻게 하늘로 올라가는지에 대해선 아무런 설명도 내놓지 못한다”며 “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중력이지만, 하나님의 은총은 햇빛처럼 우리를 끌고 올라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박사는 “우리는 문명이나 정치, 경제 같은 ‘중력’ 속에 살고 있고 이런 것 없이 죽을 것 같지만, 또다른 ‘하나님의 은총’이라는 빛이 있다”며 “많은 사람들이 맹목적으로 ‘할렐루야, 아멘’을 외칠 때, 앙드레 지드는 먹지 못할 정도로 쓰디쓴 야생의 석류 맛을 아는 시인이자 소설가였다”고 평가했다. 그는 “그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너그러운 사랑과 함께 집을 끊임없이 뛰쳐나가려는 탕자의 아픔, 인간의 그 처절한 슬픔을 배울 수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목사님이나 신학자가 아니라 문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줄 수 있는 것은 바로 보통 때는 먹을 수 없는 야생의 석류 맛, 아무 것도 없는 광야 속에서 느끼는 갈증을 통해 얻는 생명력을 그 작은 열매 속에서 발견하게 하는 일”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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