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지하철 ‘사랑의 편지’를 읽을 수 없게 된다면?

김진영 기자  jykim@chtoday.co.kr   |  

수십 년 시민들 마음 적셨지만 최근 위기… 교회 도움 절실

▲지하철 역 승강장에 걸린 . 약 30년의 세월 동안 시민들의 마음을 촉촉히 적셔 왔다. ⓒ크리스천투데이 DB
▲지하철 역 승강장에 걸린 . 약 30년의 세월 동안 시민들의 마음을 촉촉히 적셔 왔다. ⓒ크리스천투데이 DB

「삭막한 현대사회의 틈바구니 속에서 자신을 억제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은 우리를 한층 건강하고 여유롭게 만드는 철학입니다. 여유와 사랑으로 마음을 가꾸십시오. 외모 뿐만 아니라 인생 전체를 아름답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2013년 11월 두번째 편지 中, 류중현)

‘러시 아워’를 지난 한낮의 서울 지하철 승강장. 전철을 막 놓친 아쉬움과 뛰는 가슴을 달래고, 다시 밀려드는 조급함에 시간을 보챈다. 그러다 발견한 한 장의 편지는, 잠시나마 마음의 ‘공회전’을 멈추게 한다. <사랑의 편지>……. 비록 스치는 잠깐의 여유지만, 그 여운은 달리는 전철 안에서도 여전히 마음을 그곳, 편지 앞에 붙들어 놓는다. 그리고 다시 힘을 얻게 한다.

교통문화선교협의회(대포회장 함동근 목사, 이하 교선협)는 지난 1988년 처음 <사랑의 편지>를 서울 지하철 역 승강장에 내걸었다. 삶을 돌아보게 하는 글귀와 거기에 어울리는 그림을 더해, 지하철을 오가는 시민들의 마음을 촉촉하게 했다. 25년이 지난 지금은 서울·수도권을 포함한 전국 지하철 역 승강장에 약 8~9천개의 <사랑의 편지>가 걸려 있다. 그러니 누구나 한 번쯤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사랑의 편지>를 운영·관리하는 교선협은 현대인들의 문화의식을 함양하고 이를 통한 인간다운 사회 구현을 위해 <사랑의 편지>를 시작했다. 교선협 사무총장 류중현 목사는 “<사랑의 편지>에는 노골적인 전도 문구가 없다. 이 일을 시작했던 건 당장의 전도보다,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고 현대인들에게 삶의 의지를 심어주기 위함이었다”며 “이를 교회가 나서서 해보자는 것이었고, 또한 그게 교회의 중요한 사명 중 하나라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랑의 편지>는 교선협 활동의 가장 핵심적 부분이었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교선협은 지역 교회들과 함께 ‘지하철 역 질서 캠페인’ ‘차(茶) 봉사’ ‘에스컬레이터 두 줄 서기 운동’ ‘독서대 및 만남의 광장 설치’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그러면서 교선협은 지하철 운영에 없어선 안 될 존재가 됐고, 지하철의 든든한 ‘파트너’로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영적 집배원’이 되어 시민들에게 <사랑의 편지>를 전달하고 있다.

하지만 점점 삭막하고 복잡해져만 가는 세상은 <사랑의 편지>를 읽는 그 잠깐의 시간조차 허락하기 싫은 걸까. 류중현 목사에 따르면 지난 2010년부터 교선협은 지하철에서 그야말로 ‘눈칫밥’을 먹는 신세가 됐다. 지하철 역이 점점 상업화되면서 독서대나 만남의 광장은 카페나 상점에 그 자리를 내주게 됐고, 자연히 교선협의 ‘공익 활동’도 예전만큼 호응을 얻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교선협이 지하철 역에서 불필요한 존재가 됐다”고 류 목사는 안타까워했다.

그 여파는 급기야 <사랑의 편지>에까지 미쳤다. 지난해 서울시가 지하철 역 승강장에서 <사랑의 편지>를 모두 철거한다는 내용이 언론을 통해 보도된 것. 승강장 내 설치물이 지나치게 많고, 또 이 <사랑의 편지>가 ‘종교 편향’ 논란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게 그 이유였다. <사랑의 편지>에 종교색을 지워왔고, 여태껏 그와 같은 논란을 겪은 적도 없었던 교선협 입장에선 그야말로 황당한 소식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 같은 방침을 정한 적이 없다는 서울시의 해명과, <사랑의 편지>가 수 년 간 쌓아온 긍정적 이미지로 인해 다행히 철거까진 이뤄지지 않았지만, <사랑의 편지>가 위기에 있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류중현 목사는 “언제 다시 철거 이야기 나올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사랑의 편지>가 처음 지하철 역 승강장에 걸리던 1988년. 그 일을 가장 앞서 준비하며 동분서주했던 류중현 목사의 얼굴에도 이제 주름이 선하다.

“한계가 온 것 같아요. 교선협의 사무총장으로 처음부터 지금까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하겠다는 일념으로 달려왔는데 이젠 좀 힘에 부칩니다. <사랑의 편지>를 비롯한 교선협 활동은 전적으로 교회 후원에 의지하고 있는데, 그 동안 많은 교회들이 힘이 되어 주었지만 그래도 부족한 게 사실이죠. 앞으로 <사랑의 편지>가 계속 지하철 승강장에 걸리려면 무엇보다 교회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하루 1천만 명이 읽는 <사랑의 편지>는 알고보면 우리의 큰 자산인데, 한국교회가 이것을 잃지 말았으면 해요.”

「조금 시간이 걸릴 지라도 포기하지 말고 다가가십시오. 내가 먼저 사랑을 베풀 때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내 마음 속 상처도 아물게 하는 힘이 될 것입니다.」(2013년 9월 세 번째 편지 中, 류 완)

한편 본지는 <사랑의 편지>(www.loveletters.kr)를 보다 널리 알리기 위해, 매주 한 번 이를 온라인 홈페이지에 게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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