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환 목사 설교] 죽음의 순간, 믿음은 드러난다

김은애 기자  eakim@chtoday.co.kr   |  

본문: 사도행전 7:54~60

▲광교지구촌교회 김인환 담임목사ⓒ광교지구촌교회
▲광교지구촌교회 김인환 담임목사ⓒ광교지구촌교회

세계적인 심리학자이자 영성가인 헨리 나우웬이 ‘죽음, 가장 큰 선물’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제가 장례예배를 인도할 때마다 자주 인용하는 책이기도 합니다. 헨리 나우웬은 모우라고 불리는 사람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로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1992년 12월 31일 오후 3시, 모우라고 불리는 사람이 오랫동안 알츠하이머 질환, 즉 혈관성 치매와 싸우던 끝에 캐나다 토론토 근처 한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는 정신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돌보는 ‘라르슈 공동체’에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한 가족처럼 섬기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쾌활하고 친절하며 공동체를 사랑하기로 유명했습니다. 그를 만나보았던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에 대한 아주 깊은 애정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죽음을 맞이한 것입니다. 
 
당시 독일에 있었던 헨리 나우웬은 하루 빨리 모우의 가족들과 친구들 곁에 가서 쉰여덟 해를 채운 그의 삶을 함께 기뻐하는 동시에 그를 떠나보낸 슬픔을 함께 나누기 위해 비행기를 탑니다. 그리고 그 비행기 안에서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묵상에 빠져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죽음은 아예 생각하지도 말고 말하지도 않는 편이 더 나을 만큼 끔찍하고 터무니없는 일인가?’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람들은 죽어가고 있습니다. 죽음은 가장 일반적인 인간사이며 우리 모두가 반드시 겪게 될 가장 커다란 사건입니다. 그러기에 한 번뿐인 인생, 의미 있는 삶이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앞서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먼저 던져야 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질문을 던지지 않은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저 더 나은 인생, 더 좋은 집과 더 좋은 환경 속에서 살기 위해 몸부림치다가 운명적으로 죽음을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스데반은 달랐습니다. 그는 수동적인 태도로 운명적인 죽음을 맞이한 것이 아니라 죽음을 통해서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믿음의 성취를 이루어 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런 인생, 아니 이런 죽음을 맞이하고 싶지 않으세요? 죽음을 통해 자손들에게 허무와 절망을 남기는 인생이 아니라,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가장 감동적으로 보여주는 그런 믿음의 순간으로 남기고 싶지 않으세요? 만약 그렇게 인생을 마무리할 수 있다면 우리의 인생, 참으로 값진 삶이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가장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한 스데반을 통해서 인생의 가장 소중한 교훈을 얻어내야 합니다.
 
1. 그렇다면 스데반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소중한 교훈은 무엇일까요?

죽음의 순간은 신실한 사람에게도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진 우리는 영생을 얻었습니다. 이 말은 육체적인 죽음을 맞이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여기 모인 우리 중에 누구도 예외 없이 맞이하게 되는 분명한 현실은 바로 육체적인 죽음입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반드시 찾아오는 죽음을 애써 외면합니다. 마치 죽지 않고 이 땅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더 나은 내일을 위해서 몸부림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어느 날 이 땅에서 우리는 더 이상 내일을 맞이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스데반에게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본문 60절 보세요.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아직 젊은 나이, 그가 더 살았더라면 예루살렘교회는 물론 소외된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섬김을 통해서 복음을 듣고 희망을 찾았을 것입니다. 그는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사람들에게 칭찬 받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런데 그런 스데반이 죽었습니다. 하나님은 참 바보같은 분이세요. 악인들이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이려 할 때  악인을 심판하시고 스데반을 기적적으로 건져내셨더라면 악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믿지 않았겠습니까?

목회를 하다보면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을 만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내 짧은 생각으로는 하나님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요. 
 
‘하나님, 왜 제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십니까?’
 
사랑하는 믿음의 식구들을 위해 기도할 때 왜 하나님은 응답하지 않는 것일까요? 새벽에 깨어 한참을 따지고 있는데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김 목사, 내가 손이 짧아 스데반을 건져내지 않는 줄 아느냐? 천군천사를 보내어 그를 악인의 무리 속에서 구원할 수 없다고 생각하느냐? 스데반은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는 믿음으로 죽은 것이니라. 그러기에 그의 죽음은 죽음이 아니라 자는 것이니라’

깨어나서 본문을 다시 봤어요. ‘이 말을 하고 자니라.’ 그렇습니다. 스데반은 육체적으로는 죽었으나 그의 영혼은 하늘에서 영원히 살기에 그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중에 육체적인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중요한 질문은 어떻게 생명을 조금 더 연장할 것인가가 아니라 반드시 찾아오는 이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인 것입니다. 이 질문을 잊지 않고 살아, 스데반처럼 가장 아름다운 믿음의 유산을 남기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한발 더 나아가서 스데반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소중한 교훈은 무엇일까요? 믿음을 따라 죽을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000여명의 죽음을 직접 지켜본 호스피스 전문의인 오츠 슈이치가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가지”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사람은 후회가 적다.”

죽음을 준비해야 후회 없는 죽음을 맞이할 수 가 있습니다. 죽음을 맞이한 스데반의 임종순간을 보세요. 본문 55-56절입니다.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성령 충만하여’ 아니, 어떻게 죽음의 순간까지 성령 충만할 수 있을까요? 아니 어떻게 이렇게 죽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그가 죽음을 준비해온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스데반이 죽음을 미리 생각하지 않고 복음을 전할 수 있었을까요? 복음을 전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도들이 잡혀가 옥에 갇히고 매질을 당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스데반이 일사각오를 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사도들이 전한 복음을 들고 사람들 앞에 나설 수가 있었겠습니까? 스데반은 이미 죽을 각오를 하고 산헤드린 공회의 지도자들과 몰려든 사람들 앞에서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저는 스데반의 죽음에 대한 본문의 증언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만약 요즘 우리 주변에서 스데반과 같은 사람이 순교를 당했다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했을까? 아마 아까운 나이에 탁월한 인격과 능력을 가진 사람을 잃었다며 안타까워 할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스데반을 끝까지 보호하지 않으셨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게될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정작 스데반 자신은 죽음을 피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본문 59절 보세요.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죽기를 작정한 것입니다. 죽음의 때가 이른 것을 알고 자신의 영혼을 주 예수 그리스도께 의탁한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성경에서 믿음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명이 연장되기를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빌립보서 1장 21절의 사도 바울의 고백을 기억하십니까?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그렇습니다.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믿음으로 죽었습니다. 아니 믿음 때문에 죽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서 11장 13-14절에서 믿음으로 죽었던 사람들을 향해 이런 증언합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건강하게 더 풍요롭게 산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 그것은 믿음의 선진들이 그러했듯이 잠시 있다가 떠나야 하는 이 땅의 소망을 두지 아니하며 오직 본향에서의 영원한 삶을 준비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다가 죽어 우리의 장례식에 남겨지는 가족들과 친지들이 우리가 본향을 찾는 하나님의 백성임을 알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마지막으로 스데반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소중한 교훈은 무엇일까요? 내가 아닌 남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죽을 때 후회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을 위해 산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해서 산 사람이 왜 후회를 하게 되어 있습니까? 죽음이라는 것은 우리가 그토록 소중하게 여겼던 우리 자신이 별 것 아닌 흙으로 돌아가는 커다란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후회 없는 죽음,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남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에게 남을 위해 살아갈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죄인입니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자기를 위해서 살아갑니다. 산헤드린 공회원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고 읽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보다 하나님을 더 많이 예배한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죄를 깨닫게 하려고 주신 율법의 목적을 알지 못한 채 율법으로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내려 했습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안다고 말했지만 그들처럼 이기적이고 그들처럼 악한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인간의 힘으로 성경을 읽고 예배를 드린다고 해서 남을 위해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성경을 보면 스데반은 죽음의 순간까지도 남을 위해 사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본문 60절 보세요.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아니 어떻게 이런 기도가 나올 수 있다는 말입니까? 억울하게 자신을 돌로 쳐 죽이는 사람들을 위해 어떻게 그들에게 죄를 돌리지 말라고 기도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것은 바로 스데반이 성령충만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본문 55절 보세요.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마틴 로이드 존스는 이것이 바로 기독교의 진면목이라고 말합니다. “기독교는 다른 지각과 시각만 주는 것이 아니라 영과 본질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누가 이렇게 살 수 있습니까? 누가 죽음의 순간, 아니 자신을 죽이는 사람들을 위하여 이런 기도를 드릴 수가 있습니까? 육에 속한 사람은 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오직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사람, 육신의 힘이 아닌 성령의 힘에 이끌린 사람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성경은 그런 사람들을 가리켜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릅니다. 로마서 8장 9절을 읽어 보세요.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그렇습니다. 육신의 속한 사람이 아니라 성령에 속한 사람, 그래서 죽음의 순간까지도 남을 위해 살 수 있는 그 사람을 성경은 참된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오늘날 우리는 그런 그리스도인들을 볼 수 없는 것일까요? 그것은 교회 다니는 것만으로 자신이 그리스도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마치 산헤드린 공회에 몰려든 사람들처럼 말이죠.

산헤드린에 몰려든 그 사람들도 누구보다 자신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죽음 이후를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 나라도 복음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그들이 누리고 있는 기득권이요 세상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런 그들에게 세상을 떠나는 죽음보다 두려운 것은 없었습니다. 세상을 떠난다는 것은 그들이 모든 것을 잃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들이 어찌 복음을 들을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들이 귀를 막고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인 것,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가 아니었을까요? 
 
그들에겐 성경이 있었습니다. 아니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해준 스데반과 같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거하지 않는 그들은 영원하지 않는 것을 위해서 영원한 것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스데반은 그 영원한 나라,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우편에 서 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그 죽음의 순간까지도 예수님처럼 남을 위하여 온전히 자신을 내 주었습니다. 바로 이타적인 이 죽음이 그가 무엇을 믿고 살았는지, 그의 믿음을 더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매일 누군가 임종하는 임종실에서 하루는 여는 호스피스 의사인 김여환씨가 쓴 “죽기 전에 더 늦기 전에”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 나옵니다.
  
춘자 아주머니는 배가 남산만 했다. 말기 췌장암이 십이지장을 침범해서 장이 꽉 막혀버린 것이다. 서울 모 대학병원에서 우리 병동으로 전원해올 때 이미 장 폐색이 온 상태여서 통증이 심했다. 그녀에게는 남편과 세 딸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 미혼이었던 둘째딸은 유독 엄마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호스피스에 입원한 후 통증이 조절되고 부풀어 있던 배가 가라앉자 춘자 아주머니와 가족들은 한숨을 돌렸다. 몇 년 동안 완치를 위한 암 치료에 정신이 없었던 그들은 이제야 함께 웃고 울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이었다. 그들은 정말 행복해했다.

그런데 입원한 지 열흘쯤 되는 날 이른 아침, 일선 간호사에게 연락이 왔다. 사연을 알아보니, 둘째 딸이 알고 있는 대구의 모 대학병원 일반외과 교수님께 의뢰해서 수술을 받으러 간다는 것이었다. 말기 암 환자에게는 의미 없는 시도였다. 나를 비롯해서 춘자 아주머니의 남편도 모두 말렸지만 둘째딸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둘째딸은 고등학교 때 가출을 하는 등 춘자 아주머니의 속을 무던히도 썩이던 딸이었다고 했다. 불효를 저질러 한이 맺힌 그녀로서는 그런 식으로 어머니를 보낼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주치의로서 나는 그 모습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럴수록 어머니의 짧은 삶을 보살피는 데 더 힘을 기울여야 할 텐데….

첫딸과 막내딸이 내게 사정사정해서 2주일 후 춘자 아주머니를 다시 모셔오기는 했지만, 그녀는 이미 임종 단계에 이르러 있었다. 옮긴 병원에 가서 수술도 못하고 통증에만 시달리다가 이 지경이 되었다고 했다. 유언은커녕 의식불평 상태에 있다가 아주머니는 허무하게 눈을 감았다.

사랑하는 여러분, 만약 내 가족, 내 믿음의 식구들이 치유할 수 없는 병에 걸려 고통스러워 할 때, “저럴 바에는 하루라도 빨리 가시는 게 낫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우리 중에 누가 있을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 죽음은 하나님의 가장 큰 선물입니다. 우리는 죽음을 통해서만이 하나님이 예비하신 그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 아름다운 죽음을 예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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