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옥박사 기독문학세계] 하얀 태양과 함께한 그 밤에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문학의 숲을 하나님과 함께 거닐다(3)

▲송영옥 교수(기독문학 작가, 영문학 박사, 영남신대 외래교수).
▲송영옥 교수(기독문학 작가, 영문학 박사, 영남신대 외래교수).

덴마크, 이 나라는 내게 있어 안데르센(Hans Christian Andersen, 1805-1875)의 동화로 이해된다. 밤이어야 하는데도 낮 같이 환한 나라, 그래서 해가 진 후에도 반짝반짝 빛이 나는 뾰족 지붕의 집들과 하얀 고속도로, 그런 밤의 적갈색 하늘 밑에 누워있는 땅. 바다는 수레국화처럼 파랗다. 여러분도 한밤의 태양을 보았으리라. 그 첫 경험은 아마 러시아, 스웨덴, 핀란드 아니면 덴마크의 하늘 아래이었으리라. 당신은 낮처럼 환하게 밝아지는 밤에 잠못 이루며 음악을 듣고 책을 읽었다.

백야는 위도가 높은 지역에서 여름 동안 밤에 밝아지는 현상이다. 극권 안쪽으로는 24시간 이상 낮이 지속되고, 특히 극점에서는 186일 동안이 낮이다. 이는 지구 자천축이 기울어져 있어 생기는 자연 현상이다. 위도가 높은 지역에서 여름에 햇빛이 비치는 곳과 표준시가 일치하지 않아서 생긴다. 밤이 환하게 밝아져, 한밤중인데도 태양을 볼 수 있다 하여 러시아에서는 하얀 밤이라 하고, 북구의 다른 나라에선 한밤의 태양이라 부른다.

유년의 때에 교회학교에서 여호수아서의 설교를 들은 적이 있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병사를 이끌고 아모리 사람들과 전쟁을 하던 날, 이스라엘로 하여금 그 대적에게 원수를 갚기까지 태양이 멈추어섰다는 내용이었다. 달도 그 운행을 그치고 레위 지파의 분깃인 아얄론 골짜기에 머물렀다. 그 설교를 듣던 날, 나는 몹시 혼란스러웠다. 학교에서 배운 자연법칙에 의하면 해와 달이 운행을 멈추면 우주가 일대의 혼란을 겪어야 했다. 그런데 성경은 어떤 혼란이 있었는지에 대하여 말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그 이유가 매우 궁금했다. 그러나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혼돈 없이 해와 달의 운행을 중지시켰다고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 내가 처음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땅들을 밟고 한밤의 태양을 보던 날, 그 일이 기억났다. 여호수아의 기도를 하나님은 백야 현상으로 응답하신 건 아니었을까.

그 때 나의 마음을 새롭게 붙들어맨 구절은 여호수아서 10장 13절 끝 부분, 야살의 책에 기록된 시이다. ‘It is written in the book of Jashar: The sun stopped in the middle of the sky and delayed going dawn about a full day.’ 그랬구나. 여호와께서 태양의 운행을 전면 중단시킨 것이 아니고, 태양이 서서히 내려가도록 속도를 조정하신 거였구나. 그래서 태양은 중천에 머물러 거의 종일토록 속히 내려가지 아니하였다. 유년 시절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의 기도에 응답하신 것을 기적으로 받아들였던 만큼이나 나는 흥분되었다.

안데르센 동화의 세계는 그의 나라처럼 산이 없다. 그는 덴마크에서 태어나서 고향 마을을 떠나 도시 코펜하겐으로 올라온 14세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코펜하겐이 그의 생활 무대였다. 주인공들의 소박함과 순수는 신비한 백야의 선물이다. ‘맑다’라든가 '밝다’는 말이 덴마크에서처럼 감동을 주는 곳도 드물 것 같다. 그래서 낙엽 밟는 소리가 들리는 숲의 정적은 하얀 밤의 태양 아래 음악이 되고 춤이 된다. 왕과 여왕이 사는 도시에도 산이 없다.

어떤 평론가는 ‘왜 안데르센은 산에 대한 환상을 갖지 못했을까’라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밤의 태양은 눈부신 평원을 만들고 여행객들은 짧은 여름을 마음껏 즐긴다. 밤이어야 하는데도 동화처럼 거리도 집도 하이웨이도 쨍쨍 내리쬐는 햇볕을 받아 반짝반짝 빛난다.

자정이 넘어 티볼리 공원 인근의 내 호텔로 돌아왔다. 호텔의 명성답게 카페트는 물론 커튼까지도 금빛 은빛 무늬를 섞어 짠 융단이다. 태양빛을 차단하기 위해서이다. 융단의 눈부신 무늬 때문에 아일랜드의 시인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 시 ‘Had I the heaven’s embroidered cloths(하늘의 융단)’이 생각났다. 어느새 시의 운율이 방을 가득 메우고 백야의 하늘 아래로 퍼져 나간다. 나는 마치 청중 앞에 선 듯한 진정성을 가지고 시를 읽었다.

금빛 은빛 무늬 섞어 짠
하늘의 천이 내게 있다면
밤과 낮을 어스름으로 수놓은
파랗고 희뿌였고 검은 천이 내게 있다면
그의 발 밑에 그 천을 깔아드리련만

나 가난하여 오직 꿈 만을 가졌기에
그대 발 밑에 내 꿈을 깔았느니
사뿐히 밟으소서
그대 밟는 것 내 꿈이오니

예이츠가 1923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을 때 심사의는 이렇게 말했다. “고도의 예술적인 양식으로 전체 나라의 영혼을 표현한 영감의 시”라고. 그날 백야의 하늘 아래 ‘하늘의 융단’을  떠올렸던 것은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나라들과 아일랜드, 그리고 나의 영혼에 영감을 준 시인의 다정한 터치 때문이었으리라. 그리고 하나님의 발 아래 나의 꿈을 놓고 싶은 간절함 때문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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