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선생 “연말, 가장 어려웠던 순간 떠올리면…”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조선일보와 송년 인터뷰

▲이어령 박사. ⓒ양화진문화원 제공
▲이어령 박사. ⓒ양화진문화원 제공

이어령 박사(양화진문화원 명예원장·80)가 30일자 조선일보와의 송년 인터뷰에서 “내게 종교는 죽으면 어떻게 달라지고 천당에 가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며 “존재에 대해 고민하고 답을 얻는 과정일 뿐”이라고 밝혔다.

이어령 박사는 “기독교에 귀의한 것도 ‘노년의 순응이냐’”는 질문에 “내 지적(知的)인 힘이 흔들렸다느니, 독자들을 배신했다느니 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처음엔 순전히 딸(지난해 소천한 이민아 목사) 때문에 한 것”이라며 “실명 위기에 처해 아버지가 기독교를 믿는 게 소원이라는데, 그 딸 앞에 섰을 때 내가 예리한 지성으로 책을 수없이 썼고 명예와 재력을 가졌어도 아무 것도 아니었다. 말하자면 ‘헛되고 헛되니 헛되고 헛되도다’였다. 딸을 통해 나도 눈이 멀고 똑같은 죽음의 체험을 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 박사는 “젊어서부터 내 글에는 존재의 고민을 담고 있었는데, 사실 참여문학과 거리를 둔 것은 이런 고민 때문이었다”며 “절실한 정치·경제 문제를 해결해도 우리는 죽는다는 것, 죽음 앞에서는 그 어떤 문제도 굴복되고 만다는 것, 이런 실존에 대해 고민하면서 성경을 비판하고 절대자를 부정(否定)해 왔지만, 그 부정은 관심의 시작이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때가 되면 맞게 될 죽음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어둠을 모르면 빛을 모르듯, 이를 통해야만 생명이 보이기 때문”이라며 “중세 수도사들은 ‘메멘토 모리(죽음을 잊지 마라)’라고 서로 인사했는데, 요즘은 죽음을 잊어버린 시대로 ‘존재’가 아닌 ‘소유’에만 관심이 있다”고 했다. “우리가 죽는 존재임을 알면 결코 지금처럼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서로 극단적이 될 수 없다”고도 했다.

팔순을 맞은 자신에 대해서는 “그 전까지는 영원히 사는 것처럼 일을 했지만, 이제는 모든 게 ‘유언(遺言)’처럼 된다”며 “무슨 일을 해도 다음에 다시 해볼 기회가 없을 것 같으니 오늘이 마지막이고, 내일이 없으니 전념하게 된다”고 했다.

「생명이 자본이다」 출간을 기념해 가진 인터뷰에서 이어령 박사는 “이번 책의 키워드는 ‘생명’과 ‘사랑’”이라며 “이제 와서 이들 통속적인 단어에 우리 앞날이 달렸다고 하니 낯간지럽지만, 세월이 만들어낸 조화”라고 했다.

이 박사는 ‘연초에는 새해 결심을 하지만, 연말에는 무얼 해야 하는가’라는 마지막 질문에 “열대우림의 나무에는 나이테가 없듯, 나이테는 추위를 겪어야 생긴다”며 “가장 어려웠던 순간을 떠올리면 자신의 삶에 나이테가 하나 생기게 된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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