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옥박사 기독문학세계] 즉흥 시인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문학의 숲을 하나님과 함께 거닐다: 제1장 안데르센(5)

▲송영옥 교수(기독문학 작가, 영문학 박사, 영남신대 외래교수).
▲송영옥 교수(기독문학 작가, 영문학 박사, 영남신대 외래교수).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나는 그의 이름 앞에 즉흥시인이란 애칭을 붙인다. 물론 <즉흥 시인>은 덴마크의 문학의 황금기를 연 안데르센의 첫 소설 제목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안데르센을 동화 작가라는 틀에 가두지 않고, 더 큰 의미의 문학적 성취를 이룬 작가로서 세상에 알린 작품이기도하다.

소설 <즉흥 시인>은 오페라 여가수와 젊은 즉흥 시인의 사랑을 다룬다. 어머니가 마차에 치여 죽는 바람에 고아가 된 안토니오가, 볼게제가의 도움으로 학교에 다니면서 남몰래 탐독한 단테(Alighieri Dante, 1265-1321)의 <신곡>으로 인해 자신의 문학적 잠재력에 눈을 뜨고 희망을 품게 된다. 그가 품은 희망은 안토니오의 숨겨져 있던 시적 재능을 일깨워 주고, 가난과 고난과 역경을 견디면서 즉흥 시인으로서 첫 무대에 서게 만든다. 결국 마음 속에 품은 희망이 바로 소중한 보석이었던 것이다.

안데르센이 이 소설을 쓰게 된 때는 1833년, 그 자신 실연의 상처를 안고 이탈리아 여행길에 올랐을 때이다. 그는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풍물과 소박한 사람들의 생활에 흠뻑 빠지게 되었고, 새로운 희망을 품으면서 그 열정으로 소설을 구상한다. 로마와 나폴리, 베네치아와 캄파탸 평야의 빼어난 자연과 풍광과 유적이 스토리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안데르센 자신이 삽화를 넣어 만든 아름다운 작품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작가 자신의 인생을 투영시킨 자서전적 소설이기도 하다. 안토니오와 무희의 슬픈 사랑 이야기도 안데르센의 생애와 닮아 있다. 안데르센 역시 “이 소설에는 나의 체험 이외의 것은 하나도 묘사되어 있지 않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내가 안데르센의 이름 앞에 ‘즉흥 시인’이란 애칭을 붙이는 것은 소설 <즉흥 시인> 때문이 아니다. 안데르센이 누구인가 하고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그는 즉흥시인이다’고 말하고 싶다. 내 깊은 심정에서 나온 언어이다. 어두운 역사의 암울한 때를 살았던 내가 세 평 서가에서 만난 안데르센은 호기심이라는 지느러미를 내게 달아주었고, 나는 그 지느러미 덕분에 끝없는 심연의 바다를 헤엄쳐 다니는 한 마리의 물고기가 되었다. 상상이라는 날개를 달고 창공을 나르는 알바트로스이게 하였다.

나의 끝없는 호기심이 상상력의 보고가 되고 후일 창작의 샘으로 확장된 이러한 변화는 안데르센의 작품에 면면히 흐르는 작가의 즉흥성이 나에게 준 선물이었다. 안데르센을 통해 배운, ‘호기심과 상상력’이라는 이 두 낱말은 인생에는 마르지 않는 창조의 샘이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다. 창조의 샘의 근원은 자유하는 영혼에 있다.

문학이란 항상 정해진 구조와 즉흥성 사이의 균형을 필요로 하는 세계이다. 정해진 구조는 훈련에 의해 더 탄탄한 구조로 발전하고, 즉흥성은 자유에 의해 얻는 것이 아닐까 한다. 즉흥성과 정해진 구조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일은 비단 문학에서만 국한되지 않는다. 음악의 소리나 미술의 색깔과 형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삶의 열정이 작품에 반영되는 것은 훈련된 구조에 의해서라기보다 즉흥성에 의해서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안데르센의 이름 앞에 주저없이 ‘즉흥 시인’이라는 존칭을 쓴다.

하나의 작품과 같은 우리의 인생이다. 인생이라는 무대에 섰을 때도, 연출은 항상 정해진 구조와 즉흥성 사이의 균형을 필요로 한다. 정해진 구조는 반복되는 연습에 의해 더욱 탄탄해진다. 마치 믿음의 훈련을 통해 그리스도의 인격 구조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런데 즉흥성이란 오직 자유하는 영혼으로부터 오는 선물인 것 같다. 연출에 멋이 있고 맛이 나는 건 바로 즉흥성에 의해서이다. 무대에 향기가 있는 것은 관객의 반응을 의식하지 않는 자유로움 때문이다. 정해진 구조는 하나님의 자비를 체험하게 만들지만, 즉흥성은 하나님의 은혜의 바다 속으로 자신을 온전히 던지는 일이다. 그 분과 함께 헤엄쳐 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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