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만강 아래엔 성경 가득할 것… 그 고통 알리고자 했다”

신태진 기자  tjshin@chtoday.co.kr   |  

[인터뷰] 북한 지하교회 다룬 ‘신이 보낸 사람’ 김진무 감독

북한 지하교회 크리스천들의 실상과 절규를 다룬 영화 ‘신이 보낸 사람’(제작사 태풍코리아/대표 강명성)이 오는 2월 13일 개봉한다. 김진무 감독은 1년 간 탈북민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종교의 자유가 허락되지 않고 인권 유린이 자행되는 북한의 실상을 고스란히 영화에 담아냈다.

김 감독은 “북한의 크리스천들은 발각되면 사상범으로 즉결 처형되거나 정치범수용소에서 고된 노동과 학대 속에 평생을 살아야 한다. 이 영화는 공포체제 속에서 목숨 걸고 몰래 신앙을 지켜나가는 지하교회 크리스천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강압적 체제 속에서 신앙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처절한 것인지 느끼게 됐고, 탈북민들의 고백을 토대로 두만강 국경지대 시골 마을 크리스천들의 믿음, 사랑, 눈물, 감동의 이야기로 재구성했다”고 밝혔다. 김진무 감독을 만나 작품과 북한 인권문제에 관해 들었다. 다음은 김 감독과의 일문일답.

▲김진무 감독은 건장한 체구 만큼이나 탄탄한 신앙으로 ‘신이 보낸 사람’을 연출했다. ⓒ신태진 기자
▲김진무 감독은 건장한 체구 만큼이나 탄탄한 신앙으로 ‘신이 보낸 사람’을 연출했다. ⓒ신태진 기자

-북한 크리스천들의 고난을 담은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사실 북한 크리스천들의 삶과 인권 문제에 대해 평소에 관심이 많았던 것은 아니다. 사회적 시선이 강한 영화들에 심취해 있었는데, 어느 날 교회에서 예배 드리면서 북한 지하교회 크리스천들의 영상과 목사님 말씀을 통해 마음에 감동이 크게 일어나서 많이 울었다. 모태신앙인데도 그런 체험은 처음이었다. 단지 감정적 행위가 아니었다. 마음에 책임감과 사명감이 생겨서 이 영화를 만들게 됐다.”

-영화 제작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들었다.

“처음에 영화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별 관심도 없었다. 그래서 시간이 날 때마다 혼자 탈북민 교회를 방문해서 여러 탈북민들과 인터뷰를 했는데, 영혼의 울림이 있어서 여러 에피소드들을 토대로 시나리오를 썼다. 본격적으로 영화를 만들려고 하니까 투자에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제작사인 태풍코리아를 만나기 전까지는 ‘독립영화로 진행해야 되는가’라는 고민과 두려움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영화에서 김인권(주철호 역)은 기독 신앙 때문에 큰 고난을 겪으면서도, 따뜻한 신앙으로 마을 사람들을 보살피는 모습을 보여줬다. ⓒ태풍코리아 제공
▲영화에서 김인권(주철호 역)은 기독 신앙 때문에 큰 고난을 겪으면서도, 따뜻한 신앙으로 마을 사람들을 보살피는 모습을 보여줬다. ⓒ태풍코리아 제공

-김인권 씨를 주연에 캐스팅해 주목을 받은 측면이 있다. 그래도 김인권 씨는 ‘코믹한’ 이미지가 강한데, 연출에 고민이 되지는 않았나?

“반대나 두려움은 전혀 없었다. 김인권 씨는 원래 영화 ‘송어’에서 리얼리즘 연기를 하며 출발한 배우였다. 일반 대중에게 알려진 코믹한 이미지 외에 다채로운 부분이 훨씬 더 많다. 스팩트럼이 넓다. 고정된 하나의 스타일로 굳으면 그런 면들만을 기대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김인권 씨는 그것을 뛰어넘을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김인권 씨는 잘 해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북한인권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 이용당할 우려도 있을 것 같다.

“이 영화가 어떤 정치적인 진영에서의 수단이나 공격의 대상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북한인권 문제이기 때문에 보수와 진보가 이 영화를 바라보는 시각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휴머니즘의 관점에서 북한 크리스천의 처절한 신앙과 부서져가는 인간 군상의 모습을 통해, 한 인간으로서 한반도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던 것이지,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만든 것은 아니다.”

-그 ‘전하고 싶은 메시지’라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 믿으면 다 잘 된다는 생각들, 이를테면 예전에 ‘믿음의 승부’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지기만 하던 미식축구팀이 하나님을 믿고 기도해서 우승했다는 이야기다. 이 영화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계 안에 스며들어 있는 기복신앙과 자본주의의 한계에서 벗어나서, 어떤 교파와 교단이든지 이 영화를 봤을 때 반성과 성찰의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북한의 크리스천들이 낙후된 환경 가운데서 고난과 인권유린을 당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자본주의·물질만능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남한) 신앙인들의 모습과 비교했을 때 영혼에 부딪히는 부분이 많았다. 이 영화가 굉장히 불편할 수도 있다. 폐부를 찌르는 것이 의도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한국교회는 북한인권 문제와 탈북민 선교에 어떤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이 영화를 통해 일단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고, 또 북한인권 문제를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었다. 영화의 원제는 ‘사도’였다. 사실 사도들도 처음부터 완벽했던 사람들이 아니었고, 모두 성장통의 과정을 겪었다. 우리가 북한인권 문제를 막연하게 감상주의적인 시각이나 흑백논리로 바라보지 않기를 원했다. 북한인권 문제를 대하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반성적 성찰’이라고 생각한다.

한국교회가 탈북민들에게 돈을 지원해주고 물자를 보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후에는 훈련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 제가 알기로는 북한 내부에 잘못된 형태의 신앙적 토대가 있다. 북한은 각 지방 소도시마다 교통과 여행의 자유가 없다 보니 신앙이 고착화되어 변질될 우려가 있다. 토속신앙과의 결합이나 신비주의로 변질될 수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탈북민들이 정말 신앙적인 가치관을 뿌리내릴 수 있도록 교육적 제도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또 가장 가슴이 아팠던 것은 대부분의 대북선교단체들은 영세한 규모라는 점이었다. 이들에 대한 지원도 필요하다.”

▲‘신이 보낸 사람’ 포스터.
▲‘신이 보낸 사람’ 포스터.

-배우들이 북한 언어와 문화를 표현하는 것을 힘들어 하지는 않았나.

“배우들 모두 북한말 선생님에게 교육을 받았다. ‘은밀하게 위대하게’, ‘웰컴 투 동막골’, ‘동창생’ 등 영화에 북한말 선생님으로 참여했던 분이었다. 도움이 많이 됐다. 배우들이 배웠던 부분도 있고, 촬영 이후에는 검증절차도 거쳤다. 이 영화는 함경북도 작은 마을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를 담았는데, 대사 한 마디 한 마디에 북한의 사회상을 담고 그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블록버스터 영화에 참여했던 스태프들도 열성적으로 함께했다.”

-‘리얼리즘의 관점’에서 연출에 과장되는 부분은 잘라냈다고 들었다.

“배우들의 연기나 연출도 마찬가지고 영화적으로 허용되는 부분이 있다. 감독이 자신의 시각을 영화적으로 표현하는 신(scene)들이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 한정지어야 한다. 팩트를 왜곡할 수는 없는 것이다. 팩트를 잘 표현하기 위해서 상징과 은유가 있다. 그런 맥락에서 접근하다 보니 뭔가 팩트를 넘어 과장되는 부분은 절제하는 방향으로 갔다. 영화에서 절제는 응축으로 볼 수 있다. 응축시키고 응축시키다 보면, 마지막에 이야기를 터트렸을 때 그 폭발력과 파괴력은 더 강하다. 이런 부분에 연출자로서 매력을 느끼는 것이 있다.

탈북민들과의 인터뷰에서도 조심스러웠던 부분은 과장이 섞여 있는 부분이 많았다는 것이다. 군대 영웅담과 같은 맥락에서, 북한 사회상에 대한 주관적인 시각이 많이 섞인 부분이 있다. 저는 팩트를 확인하기 위해 노력했다. 팩트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검증된 자료를 확인하는 것도 있지만, 여러 사람을 인터뷰하는 방법도 있다. 이것은 미술에서 많은 선을 그을수록 구의 형태가 선명해지는 것과 같은 것이다. 나는 여러 사람을 만나서 팩트를 그리고자 했다.”

-북한 주민에 대한 인식에서 개선되어야 할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우리는 북한 주민들을 불쌍하다는 감상적 연민의 시각으로만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국경경비대의 사람들은 대부분 자본주의에 찌들어 있다. 국경경비대에 있으면 3억 벌어 나간다는 말도 있을 정도로, 도강하는 브로커들한테 뜯어내서 자기 부를 축적하기도 한다. 현실적인 체제주의자도 있지만 김정은을 찬양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여러 가지 모양의 사람들이 있다. 단순히 하나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인상에 남는 장면이 있나.

“감독이 연출을 하다 보면 때때로 마법 같은 순간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어떤 영화에서는 무사가 칼을 들고 자리를 잡고 있는데, 그 위로 구름이 지나가면서 음영이 생기고 그 무사의 심리묘사가 훨씬 더 잘 표현된다. 기다렸는데 우연히 얻어 걸린 것이다. 연출자는 프레임에 담아내려는 의도 이상의 것을 담아내게 될 때 큰 기쁨을 느낀다. 영화에서 김인권 씨와 의논해서 느낌만 가지고 연기한 화장실 신이 있다. 김인권 씨의 그 연기는 다시 표현하려고 해도 못할 것이다. 제 시나리오의 구상보다도 훨씬 더 좋았다.”

-칭찬하고 싶은 배우는 누구인가.

“지용석이라는 배우다. 이 영화에서는 바보로 나온다. 그 배우가 가진 에너지가 굉장하다. 내가 그 친구에게 말한 것은 ‘네가 이상해 보였으면 좋겠다’는 추상적인 것이었다. 그래서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지 연구해서 오라’고 했는데, 그 친구가 그것을 매우 잘 받아들였다. 한국에 그 어떤 연기자도 이 친구처럼은 못했을 것이다.”

▲결의를 다지는 배우들의 모습. ⓒ신태진 기자
▲결의를 다지는 배우들의 모습. ⓒ신태진 기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

“어떤 배우가 ‘감독님은 두만강 물이 마르면 그 아래 뭐가 있을 것 같은가’라고 물어봤는데, 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두만강 신을 찍을 때였는데, 그 배우가 ‘두만강 밑은 성경책으로 가득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책 한 권에 위대한 힘이 있다. 모두가 자유를 찾아서, 그리고 기쁜 소식 복음의 소망을 따라서 강을 건넌다. 이 영화는 북한 지하교회에 있는 크리스천들의 고통과 절망을 알리고, 그 담론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재조명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제작됐다. 작금의 한국 영화계는 이런 영화를 외면하는 추세다. 블록버스터 영화가 극장 대다수를 차지하는 틈 속에서 자생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제작했다. 결국에는 관객이 도와주는 수밖에는 없다. 저희 제작진 만큼이나 용기있는 관객들이 이 영화의 목격자가 돼 줬으면 좋겠다.”

김진무 감독은 상명대학교 영화학과를 졸업했고, 2000년도 ‘ We are 18 years old’라는 영화로 광주국제청소년 영화제에서 경쟁부문에 오르며 두각을 나타냈다. 이후 다큐멘터리와 장편 영화의 각본, 연출, 촬영을 모두 소화해내고 다수의 독립영화제에서 수상을 받으며 능력을 인정받았다. 태안 기름 유출사고 1년 후 우연히 태안을 방문했다가 사고 당시 아들을 잃은 할머니를 만나면서 탄생한 <휴일>로는 대전독립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받으며 평단의 인정을 받았다. 그 후, 탈북자들과 1년 넘는 인터뷰를 통해 북한 지하교회의 현실을 알고 나서 <신이 보낸 사람>을 탄생시켰다. 김진무 감독은 냉혹한 현실에 처한 북한 실상을 뜨거운 감동과 눈물로 담아내어 관객들과 함께 느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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