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옥박사 기독문학세계] 인생의 즉흥성, 그 한바탕 놀이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문학의 숲을 하나님과 함께 거닐다: 제1장 안데르센(6)

▲송영옥 교수(기독문학 작가, 영문학 박사).
▲송영옥 교수(기독문학 작가, 영문학 박사).

자유하는 영혼으로부터 오는 즉흥성, 그것은 내가 무엇인가를 의도하고 그것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닌 것 같다. 그보다는 무엇인가에 이끌려 가는 상태라고 해야 할까. 의식의 깊은 곳에서부터 누군가가 지시하고 나는 그냥 끌려가는 그런 상태가 된다고나 할까.

음악의 대가인 바흐(Johann Sebastian Bach)에게 한 제자가 질문하였다. 어떻게 그 많은 음정을 생각해낼 수 있는가 하고. “나에겐 전혀 힘든 일이 아니네. 오하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새로운 음정에 맞춰 덩실덩실 춤추고 싶은 욕망을 참는 것이 더 힘드네.” 바흐의 대답이었다. 바흐의 삶 자체인 예술은 그저 유쾌한 놀이였다. 그의 내면에 흐르는 감당할 수 없는 희열에 이끌려 작곡을 하고 연주를 하였다. 그래서 바흐는 자신의 연주를 한바탕 놀이라 하였다. 훌륭한 곡을 연주하려는 생각아나 청중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상태로 연주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선물인 삶 자체를 나는 늘 한바탕 즐거운 놀이로 즐기고 싶다. 굳이 천상병 시인의 ‘귀천’을 말하지 않겠지만, 하늘로 돌아갔을 때 이 세상에서 내가 얼마나 즐거웠는지를 하나님께 말하고 싶다. 하나님이 창조해 놓으신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사람들과의 사랑이 얼마나 따스한지, 우리 의식세계가 하나님을 닮고 있어 그 신비감에 내가 얼마나 황홀한 기쁨을 맛보았는지, 그런 이야기를 나는 그 분과 나누고 싶은 것이다.

이 작은 소망은 우리가 어린아이와 같이 단순해지기 전에는 이룰 수 없는 꿈이다. 그래서 내가 안데르센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안데르센의 내면에는 항상 어린아이가 살고 있었다. 어린아이처럼 자연의 소리에 몰입한 그는 기분이 좋으면 나를 유쾌하게 만들고, 우울하면 그 기분을 나와 함께 나누어 가졌다. 특히 그는 여행을 통해서 사람과 사물의 매력을 찾아내는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자유하는 영혼으로부터 오는 즉흥성과 상상력에 의해 그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환상적 아름다움으로 그려내었다.

어느 날 한밤중에 잠이 깨어 뒤척이다 커튼을 열었다. 순간 창가에 걸려 있던 달이 구름 속을 헤치고 급히 나오고 있었다.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한 잰걸음이다. 아마도 장시간 동안 구름 속에 얼굴을 묻고 숨죽이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미안한 맘으로 얼른 창을 열어주었다. 내 창가를 서성이며 두드리고 싶었을 달의 맘을 헤아리면서. 어쩌면 달은 저녁 어둠이 내릴 때부터 내 주위를 맴돌며 눈 맞추려고 기다렸을지도 모르겠다. 창문이 열리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얼른 내 서재로 들어온다.

그 순간 안데르센의 연작 단편집 <그림 없는 그림책>이 떠올랐다. 가난한 화가가 시골에서부터 큰 도회지 비좁은 골목길의 어느 방을 얻어 이사해 온다. 창 밖으로는 푸른 수풀과 언덕, 그리고 잔잔한 호수 대신 회색의 굴뚝 밖에 보이질 않고 누구 한 사람 말을 걸어오는 이도 없다. 화가는 몹시 외로웠다. 그러한 때 문득 낯익은 얼굴을 들이밀어 위로해 준 것이 있었다. 달이었다.

그날 이후 달은 매일 밤 화가의 좁디좁은 방 안을 찾아온다. 그리고 여러 곳에서 구경하고 온 것을 재미있게 들려주곤 한다. 이야기는 달이 화가를 방문했던 첫 날부터 시작하여 서른 세 밤 동안 이어진다. 시공을 초월하여 여행할 수 있는 달의 이야기는 지리적으로 전 세계에 걸쳐 있고, 소재상으로 무한한 내용이다. 머나먼 인도와 중국·그린란드의 이야기가 있다. 스웨덴·프랑스·독일·이탈리아 등 유럽 여러 나라 이야기들도 펼쳐진다. 빙산이 나오고 오로라도 그 속에 끼어 있고 아프리카의 사막이 나오는가 하면, 폼페이의 폐허나 아드리아해도 무대가 되어 있다.

한 순간 머나먼 나라들과 남쪽 나라에 대한 향수가 내 가슴에 절절했다. 어쩌면 우리는 때때로 동화 속의 사람들처럼 외로울 필요가 있고 동화 속의 세상처럼 단순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고독하고 단순해질 때 영혼은 더 아름답고 투명하게 빛을 발하고, 그 순간 상상은 날개를 단다. 외롭고 적막하면 어둠은 더 다정하다. 어둠 속으로 바람이 일면 나무숲은 더 뜨겁다. 상상은 열정이 있어야 날개를 단다. 그것은 무의식의 세계이다. 무의식 속에서의 한바탕 놀이, 나는 그렇게 안데르센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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