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옥박사 기독문학세계] 그림 없는 그림책의 세상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문학의 숲을 하나님과 함께 거닐다: 제1장 안데르센(7)

▲송영옥 교수(기독문학 작가, 영문학 박사).
▲송영옥 교수(기독문학 작가, 영문학 박사).

신비감이나 호기심 같은 것은 무엇인가에 결핍된 어린아이들이 갖는 복인지 모르겠다. 그들은 보호를 받지 못함으로 해서 두려움과 잔인함을 혼자 겪으며 때론 가슴 아픈 장면들까지 스스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극복해 가는 과정에서 스스로 터득한 사람과 환경에 대한 이해와 수용이 그들로 하여금 신비한 특질을 지니도록 만드는 것 같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도 이 과정을 통해 성숙되고 그것은 새로운 상상의 세계를 만든다.

안데르센 작품의 주인공들이 그렇다. 하나 같이 어려운 환경에 있는 맘씨 착하고 외로운 사람들, 그러나 <그림 없는 그림책>에서처럼 그들의 세계는 넓고 광활하다. 그곳은 언제나 인간이 지니는 모든 감정이 함께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세상, 상상으로 이룩한 낙원이다.

상상은 글자 그대로 ‘코끼리를 생각하다’이다. 고대 중국의 중원지대, 허난 지방에는 코끼리가 살았다. 중국 황제들은 코끼리를 좋아하고 코끼리 고기를 매우 즐겼다. 그러나 기후 변화로 코끼리들은 남쪽으로 이동하고 허난 지방에선 더 이상 코끼리를 볼 수 없게 되었다. 사람들은 코끼리를 상상했다. 화석으로 남은 코끼리의 뼈를 보고 좋은 동물, 맛나고 엄청나게 큰 코끼리를 그렸다. 상상은 이처럼 과거에 체험했던 이미지를 재생하는 능력이다.

잿빛의 어둡고 암울한 유년 시절에 환상의 세계에서 따뜻한 휴머니즘을 꿈꾸었던 안데르센, 그는 동화적인 상상력으로 <그림 없는 그림책> 속에서 수많은 그림들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어두운 도시에서 절망하고 좌절하는 사람들의 힘겨운 인생을 그려내면서도, 자연과 인간의 따뜻한 교감을 시적으로 그린 달님이 들려주는 33편의 짧은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야기 속에는 인도의 갠지스 강가에서 사랑하는 약혼자의 안전을 기도하는 아름다운 처녀가 있고, 파리의 루브르 궁전 왕좌에서 숨을 거둔 소년이 있다. 북극새와 고래가 헤엄치는 그린랜드 해안에서 벌어지는 축제의 모습이 있는가 하면, 폐허의 도시 폼페이의 원형무대에서 울려 퍼지는 열정적인 노래가 있다. 그리고 어린아이들의 사랑스런 모습과 행동이 있다.

이야기를 듣는 작품의 주인공은 친구도 없이 외롭게 생활하고 있는 가난한 화가이다. 회색의 굴뚝 밖에 보이지 않는 도회지의 한 골목길, 초라한 그의 방에는 아무도 찾아오는 이 없었지만 밤마다 어김없이 찾아주는 낯익은 얼굴인 달님을 맞아 친구가 된다. 달은 이 외로운 화가를 위하여 이야기를 들려주고, 친절하고 다정한 달님으로 인해 화가는 세상을 향하여 마음을 열게 되고, 세상 사람들 사는 모습에 애정을 가지게 된다. 갠지스강과 아프리카의 사막과 폼페이의 페허와 아드리아해를 만났을 때 세상에는 많은 나라들이 존재한다는 것과, 그곳에도 자신과 성정이 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고마운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안데르센은 독일과 이탈리아를 비롯하여 유럽의 각지를 29차례나 여행하고 전 생애에 걸쳐 9년 동안이나 국외에 머물렀다. 무엇보다 안데르센은 늘 남쪽 나라에 대한 절절한 향수를 품고 살았다. 내가 핀란드의 산타마을에서 북극의 오로라를 대했을 때에도, 괴테가 그리워 그의 고향마을 브로겐산에 올라갔을 때에도 안데르센은 그곳에서 환하게 불을 밝히고 나를 기다려 주었다. <그림없는 그림책>은 이러한 여행에서 경험한 모든 이미지가 글을 쓰는 동안 다른 이미지로 전환되고 하나의 생각이 다른 경험과 접촉함으로서 새로운 의미를 창출해 낸다.

나는 지금도 그의 작품을 대할 때마다 그의 상상력이 어떻게 시상을 발동시키고 사유를 발전시켜 구체적 작품으로 작가의 사유를 완성시켜 주는지 통찰하며 읽곤 하였다. 모든 시인에게 그러하듯, 안데르센 역시 상상이 그 창조의 원동력이었다. 상상은 영혼이 고양되는 곳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소망에 불을 지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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