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 기로의 한국교회, 시대 징조 바르게 해석해야”

류재광 기자  jgryoo@chtoday.co.kr   |  

은준관 박사, 강남포럼서 “부활 신앙으로 역사 변혁시킬 것” 강조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명예총장인 은준관 박사가 8일 서울 역삼동 감람교회에서 열린 강남포럼 강사로 나서, ‘오늘의 한국교회, 그 정체성은 무엇입니까’를 주제로 한국교회의 현 상황을 진단하고 해법을 모색했다.

감람교회 담임 이기우 목사가 회장으로 있는 강남포럼은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 소속 목회자들의 친목 모임에서 시작된 단체로, 기독교의 사회적 역할을 고민하고 있다. 1월 25일부터 격주로 ‘원로에게 길을 묻다’를 주제로 한 포럼을 진행 중이다. 강사로는 김상복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 총장(1월 25일), 김경동 서울대 사회학과 명예교수(2월 8일), 전가화 전 믿음의집교회 목사(2월 22일), 은준관 실천신학대학원대 명예총장(3월 8일), 손봉호 고신대 석좌교수(3월 22일) 등이 나서고 있다.

▲강연하고 있는 은준관 박사. ⓒ류재광 기자
▲강연하고 있는 은준관 박사. ⓒ류재광 기자

세계교회의 3가지 흐름: ‘소멸’, ‘세속화’, ‘뜨고 있는’

이날 은준관 박사는 먼저 릴리 케이스의 저서 「The end of Christianity in the West」의 내용을 인용해 세계교회의 3가지 흐름을 분석했다. 첫째는 ‘소멸’로, 오스트레일리아·오스트리아·체코 등이 해당된다. 은 박사는 “구라파의 기독교 왕국이 뿌리째 뽑혀서 소멸로 가고 있다”며 “뿌리조차 없어졌기에 이제 개혁이나 재생의 여지조차도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둘째는 ‘세속화’로, 영국·독일·프랑스 등이 해당된다. 은 박사는 “교회가 하나님 없이 왕국화되어 신앙의 역동성을 잃어버리고 무신론적인 문화로 가고 있다”며 “아직 뿌리는 조금 남아 있지만 방향을 상실했다”고 했다. 특히 그는 독일에 대해 “현지의 한 조직신학자가 말하기를 독일교회의 결정적 위기는 세금을 걷으면서 목회자와 신부가 준공무원화되고 교회가 준국가교회로 간 데 있었다고 했다”며 “독일교회의 미래는 나라의 지원을 받기보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신앙화시켜 그 신앙화된 사람들이 강력한 공동체를 이루는 것 뿐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셋째는 ‘뜨고 있는’ 곳으로, 케냐·남아프리카·중국 등이 해당된다. 남아프리카 지역 성공회 주일예배 인원이 전 세계 성공회 교인 수보다도 많고, 중국 내 기독교인 수가 유럽 전체의 기독교인 수보다 많을 정도다.

은준관 박사는 “릴리 케이스는 책의 결론에서 미국교회를 향해 ‘뜨고 있는’ 교회들에서 모형을 찾으라는 암시를 남기는 것 같았는데, 이는 별로 설득력 있게 느껴지지 않았다”며 “아프리카 등의 교회들은 열정적이지만 역사의식이 부족해, 역사를 변화시키는 힘으로 승화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했다

은 박사는 “교회가 할 일은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를 나누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신앙을 회복해 그것으로 역사를 변혁시키는 치유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이런 교회만이 역사를 바꿀 수 있다”며 “한국교회에 그런 기대를 했었는데, 유감스럽게도 한국교회는 ‘뜨고 있는’ 교회로 갈 뻔했다가 거꾸로 세속화를 거쳐, 구라파가 걸었던 멸망의 길을 가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수정교회의 몰락과 브룩힐즈교회의 시도가 주는 교훈

이어 은 박사는 미국의 상징적 두 교회를 예로 들고 그 교훈을 전했다. 하나는 로버트 슐러 목사가 설립한 수정교회로, 크고 아름다운 예배당과 기존의 형식을 깬 열린예배, 슐러 목사의 탁월한 설교와 경영기법, 세계적 영향력을 갖고 있던 TV 방송 등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교회 내 갈등과 그로 인한 교인·재정 감소로 최근 파산한 데 이어 가톨릭측에 교회 건물이 매각되는 굴욕을 겪었다.

다른 하나는 「래디컬」이라는 저서로 유명한 데이비드 플랫 목사의 브룩힐즈교회다. 플랫 목사는 기독교가 박해당하는 지역 지하교회를 방문한 뒤, 화려한 예배당에서 편하게 예배를 드리는 자신의 교회에 회의를 느낀다. 그래서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에어컨 등 모든 편의시설을 제거하고 지하에서 촛불을 켠 채 성경공부를 하는 등 ‘급진적’ 시도들을 시작했는데, 그 때부터 그의 교회에 성령의 불이 붙기 시작했다.

은 박사는 “이 두 교회가 한국교회 전반에 주는 중요한 메시지가 있다”며 “순수한 신앙에서 출발해 역사를 변혁시키려는 의식 없이 기독교 왕국화되면 그 교회는 죽는다. 그러나 거대한 조직이더라도 끊임없이 신앙으로 자신을 변혁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세계를 변화시키는 교회는 산다”고 했다. 그는 “한국교회는 지금 이 (죽고 사는) 기로에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목사님들의 탐욕 때문에, 성장주의·성공주의, 교회 건축 등이 지금 교회를 멍들게 하고 있다”며 “목사님들끼리니까 이런 말씀을 나누는 것이다. 목회자들부터 다시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은 박사는 시종 한국교회에 대한 강한 애착과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류재광 기자
▲은 박사는 시종 한국교회에 대한 강한 애착과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류재광 기자

은 박사는 “제가 이렇게 강하게 이야기하는 이유는, 한국교회라는 이 소중한 그루터기마저 소멸될까 봐”라며 “제 시대는 곧 끝난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21세기를 비출 만한 교회이고, 이 교회가 소멸되면 남미나 아프리카 교회에 기대하기 어렵다. 한국교회가 지구촌의 ‘마지막 남은 자’인지도 모른다”고 절박함을 이야기했다.

한국교회 트렌드: 성장, 성장 이후, ‘영적이지만 종교적이지 않은 세대’

은 박사는 시기별로 한국교회의 트렌드를 3가지로 분석했다. 보통 미국교회의 트렌드가 약 20년 뒤 한국교회에 그대로 나타나는 추세라고도 했다.

첫번째는 ‘교회 성장기’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시기를 거치며 개신교인이 무려 3천만명이 늘어 전체 인구의 무려 68%, 가톨릭은 23%에 육박했다. 강단에서는 반공주의와 기복주의 설교가 넘쳐났다. 기독교가 나라의 역사와 전통까지 바꿔버릴 만한 힘이 있었다. 한국도 1970~80년대 비슷한 현상을 겪고 개신교인이 1,200만에 육박하며 절정으로 치닫는다.

그런데 영원할 것만 같던 ‘교회 성장기’가 미국에서부터 무너지고, 두번째 트렌드인 ‘교회 성장 이후기’가 온다. ‘교회 성장 이후기’라는 말은 단순히 성장기 이후가 아니라, 이제 교회 성장이 끝나서 다시 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은 박사는 “히피·흑인·학생운동 등 60년대 ‘문화충격’으로 미국의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났는데, 성장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지도자들이 이를 ‘일시적 현상’이라고 오판하면서 미국교회가 수렁에 빠졌다”며 “한국교회도 100주년을 기념했던 1985년 이후 무너지기 시작했다. 민주화가 되면서 민주화운동가들이 교회를 떠났고, 기업가들도 교회 밖에서 기업을 하는 것이 더 좋으니 떠났고, 교회 안에서 집사·권사 시켜주니 좋아했던 사람들도 이제는 교회 밖 클럽 활동이 더 좋으니 떠났다. 그런데도 지도자들이 시대의 징조를 읽지 못하고 교회 성장 신드롬에 빠져 있다”고 했다.

세번째 트렌드는 ‘영적이지만 종교적이지는 않은 세대’의 등장이다. 이전까지는 한국교회가 20년 주기로 미국교회의 추세를 따라갔는데, 2010년경 한국과 미국에 동일한 현상으로 이 같은 세대가 나타났다. “교회도, 종교적 냄새가 나는 것도 싫다. 교회를 떠나서 나 혼자 영적으로 살겠다”는 것이다. 소위 ‘가나안 신자’(‘안 나가’를 거꾸로 읽은 것), ‘노마드 신자’(유목민처럼 교회를 옮겨다니는 이들), ‘스타벅스 신자’(교회 근처 카페에서 인터넷으로 예배 실황을 보는 이들) 등도 여기에 속한다.

미래학자들은 ‘이대로 가면’ 2050년경 한국교회 신자 수가 300~400만으로, 교회학교 학생 수가 40만으로 줄어들고, 베이비 붐 세대가 은퇴하는 2028년경 교회 재정이 현재의 50%로 줄어든다고 예측한다. 은 박사는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교회는 대답해야 한다”며 “이러한 흐름에서 교회는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코딩’과 ‘디코딩’ 맞지 않으면, 열심 낼수록 잘못될 수도

은 박사는 교회의 지도자들이 ‘코딩’(Coding)과 ‘디코딩’(Decoding), 즉 이러한 시대적 징조와 현상을 올바로 해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오히려 열심히 할수록 교회를 망치고 젊은이들을 떠나게 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은준관 박사는 이 같은 시대적 현상에 대해 오늘날 한국교회가 내놓고 있는 해법들로 ‘영성과 도덕성 회복’, ‘민족복음화’, ‘축복성회’, ‘지역사회 봉사’, ‘선교’, ‘문화유산 지키기’ 등을 꼽았다. 그러면서 “다 소중한 것들이다. 그런데 죄송한 말씀이지만 코딩과 디코딩이 서로 맞지 않다”며 “‘영적이지만 종교적이지 않은 세대’에게, 우리는 지금 그들이 제일 싫어하는 종교 이야기만 하고 있다”고 했다.

은 박사는 “교회가 집중해야 하는 방향은 무엇인가. CCM인가, 교회 건축인가, 사회사업인가. 미국교회와 한국교회의 문제는 신학·제도·시설의 부재가 아니라, ‘우민목회’로 ‘영적 문맹’들을 만든 것”이라며 “우리가 신자 하나하나를 ‘우리 교회 교인’으로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우지는 못했다”고 비판했다.

감소 추세 역행하는 美 동방정교회의 4가지 특징

그러면서 그는 미국의 동방정교회를 하나의 대안적 모델로 제시했다. 미국 동방정교회는 러시아 출신 예배학자인 알렉산더 슈메만의 영향을 크게 받았으며, 미국 감리교회가 교인 수 1200만명에서 800만명으로 감소하는 기간 동안 반대로 200만명에서 300만명으로 증가했다.

은 박사는 미국 동방정교회의 특징을 4가지로 요약했는데, 첫째는 ‘하나님나라를 순례하는 주일공동예배’(주일신학)다. 은 박사는 “개신교는 주일신학에 대한 관심이 너무 없는데, 주일은 안식일(토요일)이 아니라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이다. 이는 종말론적인 날이며 죽음을 꺾으신 하나님의 생명의 날”이라며 “즉 주일예배는 설교나 의식이 중심이 아니라, 주님과 만나 주님과 함께 죽고 다시 사는 종말론적 삶을 경험하는 것이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부활과 재림 사이에 종말론적 믿음으로 사는, 쉽게 말해 주님과 동행하는 시간”이라고 강조했다. 동방정교회는 매주 어린이를 포함한 모든 교인이 성만찬에 참여하는데, 이것이 엄청난 의미를 갖는다고 은 박사는 역설했다.

은 박사는 “그런데 한국교회는 시간 개념부터 잘못되어, 주일만 거룩하게 보내고 나머지 날들은 세속적으로 보낸다. 예배로 시작해서 예배로 끝나는 파편화된 신앙을 한다”며 “주일신학을 근본으로 하는 예배 회복, 그 바탕 위에 우리의 신앙을 회복해야 한다”고 했다.

둘째는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참여하는 성서연구(화요일)’다. 은 박사는 “온전한 사람은 주님을 믿을 뿐 아니라 배우는 자”라며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모든 것이 설교(케리그마) 중심이고 그 다음인 가르침(디다케)이 없다. 교인들이 듣기만 할 뿐 아니라 자신이 직접 말씀을 해석하고 말씀과 씨름하며 성장해야 한다”고 했다.

셋째는 구역·셀·속회 등과 같은 ‘신령한 교제’(교회 안의 작은 교회)로 단순히 교회 성장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님을 체험하고 이웃의 아픔을 나누는 것이며, 넷째는 ‘하나님나라 증언으로서의 일터와 삶(월-토)’으로 신자 하나하나가 하나님의 사역자가 된다는 것이다.

▲토요일 아침 7시 30분경 시작된 강연은 2시간 가까이 진행됐음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가득 채운 참석자들은 끝까지 진지한 자세로 경청했다. ⓒ류재광 기자
▲토요일 아침 7시 30분경 시작된 강연은 2시간 가까이 진행됐음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가득 채운 참석자들은 끝까지 진지한 자세로 경청했다. ⓒ류재광 기자

수평이동에서 ‘살아남은 작은 교회들’의 3가지 특징은

은 박사는 또 최근 대형교회로의 수평이동 때문에 수많은 작은 교회들이 문을 닫고 있는 가운데, ‘살아남은 작은 교회들’의 특징이 있었다고 했다. 첫째는 ‘코어 멤버(핵심 교인)’가 있었다는 것, 둘째는 지역의 아픔을 조명하고 (단순히 사회 사업이나 프로그램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 호흡하는 것이다. 셋째는 ‘미니멀 오퍼레이션’으로, 건축이나 리모델링을 하지 않고도 ‘거룩을 담아내는 것’이다.

그는 결론으로 한국교회가 시대의 징조를 정확히 읽는 눈을 키우고, 신자를 교인이 아닌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드는 데 예배·교육·교재 등의 모든 초점을 맞추며, 대형교회를 모방하지 말고 색깔 있는 교회를 만들라고 재차 강조했다. 특히 “지금의 추세대로면 앞으로 교인 수는 늘지 않는다”며 “문제는 교인 수가 줄어들더라도 그 소수의 교인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우느냐 아니냐”라고 말했다.

강연 이후 “현재 속회(감리교회에서 신도들이 구역을 나누어 모이는 기도회)가 다 형식화됐는데, 이를 개선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은 박사는 “속회를 ‘교회를 살찌게 하는 액세서리’로 만들지 말고, ‘교회 안의 작은 교회’로 분리시켜 속회 자체가 하나님나라를 경험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 헌금도 지역을 위해 쓸 수 있어야 한다. 속회의 가장 큰 장점은, 지역사회와 잘 호흡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속회가 잘 되려면 목사님들이 속회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하고, 속회를 인도하는 중간 지도자가 잘 훈련돼 있어야 한다. 그래야 속회가 살고, 속회가 살아야 교회가 산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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