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기 목사 설교] 아브라함이 가르쳐 주는 교훈

신태진 기자  tjshin@chtoday.co.kr   |  

“야훼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창 12:1~5)

 <서론>
“아브라함이 가르쳐 주는 교훈”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우리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말합니다. 육체의 조상은 아담과 하와였지만 영적인 조상인 아브라함이 우리의 조상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는 한없는 축복을 받은 사람이지만 그러나 그의 생활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불같은 시험을 당해서 그는 복과 함께 믿음과 순종을 배웠던 것입니다. 미국의 터너라는 유명한 화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교회에 열심히 나가면서 교회학교 애들을 가르치는데 즐거움을 가졌습니다. 하루는 큰 폭의 종이를 가지고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준비를 다 해서 교회학교 애들 앞에서 서서 “너희들이 와서 그리고 싶은 데로 그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애들이 나와서 막 그림을 그려 놓으니까 나중에는 그림책인지 낙서 책인지 알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더 이상 그림을 그려 넣을 곳이 없이 아주 낙서판이 되고 말았을 때 그분이 애들 보고 “너희 자세히 선생님이 하는 것을 보라.” 그리고 붓을 들고 애들이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은 그 도화지에 터너가 몇 번 붓을 놀려서 그림을 그려넣기 시작하니까 이것 굉장히 좋은 그림이 되고 만 것입니다. 이렇게 순진하고 더럽혀지지 아니하고 원시적인 기능을 발휘한 그림을 그린 사람이 도대체 누구냐. 그 그림을 내놓으니까 서로 사가겠다고 야단법석인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이 장난으로 그린 그 캠퍼스에 선생님이 몇 개 그려넣어서 위대한 그림이 된 것입니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면 여러분은 주일학교 학생과 같아서 인생에 다가오는 문제를 해결을 못한다고 온갖 그림을 다 그려놓고 눈물을 흘리는데 예수님이 한번 와서 그림을 넣어주면 걸작품이 될 수 있다고 그러니 여러분 그림 잘못 그린다고 탄식하지 말고 아무리 형편없는 그림을 그려놓아도 걸작품으로 만들어줄 주님이 계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친히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겠다고 말씀을 해주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 터너는 애들보고 하신 말씀이 “우리의 상처 받은 마음도 하나님께서 손을 대시면 이렇게 아름답게 변화가 된다.” 인생의 시련을 만났을 때, 이성과 감각과 인본주의와 물질주의 장막에서 나와서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새로운 꿈을 주시고, 망가진 인생의 화폭에 손을 대셔서 멋진 걸작품으로 완성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에 걸작품이 되도록 하나님이 내놓았지 걸작품이 되지 않은 형편없는 그림으로 인생을 내놓지는 아니한 것입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의 삶을 보면 똑같습니다.

 <본론>
1. 새 삶의 출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까지 하나님은 이 세상에 당신이 구주의 영광을 나타내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러나 75세까지 자기 멋대로 산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세기 12장 1절로 3절)고 새 출발을 명령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있는 둥지를 다 털어버리고 떠나서 그래서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는 하나님이 반드시 아브라함과 같은 순서를 주십니다. 떠날 때는 떠나라. 그리고 갈 때로 가라. 떠나고 가는 것이 분명해야 하나님 앞에 은혜와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살고 있던 전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네가 갈 곳 갈대아 우르로 가라고 한 것입니다. 창세기 12장 1절로 3절 여러분이 읽은 신대로 “야훼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엄청난 하나님이 축복을 주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복이 되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하는 자는 축복을 주고 저주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저주하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 약속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시련과 고난도 허락하신 것입니다. 떠나온 땅에서 완전히 손을 털고 오도록 만드시고 들어온 가나안 땅에 와서도 믿고 순종하는 사람이 되도록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것입니다.

2. 새 삶의 시련
 떠나온 땅에서 많이 아브라함은 갖고 데리고 이고 지고 가나안 땅으로 온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전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했는데 떠난 것이 힘듭니다. 더구나 75년 동안 살아온 고향산천을 떠난다는 것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 순종한다고 떠나는 왔지만 떠나올 때 친척들이 와서 “날 따라와! 봇짐 싸! 하나님이 나에게 복 주신다고 했으니 따라와!” 그리고 종들도 “너희들 다 계속 내게 고용되어 있으니 따라와! 월급 줄 테니까! 다 따라와!” 종들도 데리고 재산도 그가 모아놓은 재산을 나눠주고 올 수가 없어 아까워서 전부 꾸러미를 만들어서 걸머지고 그는 고향산천을 떠났습니다. 아마 하늘에서는 하나님이 내려다보시고 있는데 천사장이 와서 이런 말을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 저가 누굽니까? 아브라함이 나의 명령을 따라 고향 친척 있는 것을 떠나서 갈대아 땅으로 가는 길이다. 안 그런 것 같은데요? 보니까 온갖 일가친척이 다 따라오고 조카도 따라오고 그다음에 소, 짐승들도 다 데리고 친척과 종들도 다 데리고 일대 군단이 걸어가는데요? 그러니 아버지 하나님이 웃으시면서 시련을 톡톡히 당해야 저것 다 떨어져 나갈 것이다. 두고 봐라! 그런데 아브라함은 당장 가면 축복이 마구 떨어질 줄 기대했습니다. 그리고 가나안에 왔는데 아니 이럴 수가 있습니까? 비가 안 와서 전부 땅이 바짝 말랐습니다. 초목, 곤충이 다 타죽고 의지할 곳이 없고 농사지을 곳이 없습니다. 그러니 아브라함을 따라온 친척들이 모두 불평을 말하고 종들도 야반도주하고 엉망진창이 되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 복을 주신다고 해서 하나님 따라서 나왔는데 복은 안 와도 화가 이렇게 다가오니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 날 버렸습니까? 아무 대꾸가 없습니다.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라함이 도저히 견디지 못하므로 살러 가야 되겠다. 하나님이 하라는 데로만 했다가는 큰일 나겠다. 그저 적당히 믿어야지 100% 믿었다가는 신세 망치겠다. 지금 이런 기근이 가나안에는 왔어도 애굽 땅에는 물이 풍부하고 농사도 잘되고 사람들이 많이 와서 사니 우리 애굽으로 살러 가자. 이제는 하나님이 가라고 말하지 않은 곳에 마음대로 갑니다. 그리고 꾀를 자기 마음대로 부리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오랜 세월 동안 사라와 같이 살았으나 자식은 없었는데 아브라함은 자기가 보기에도 사라는 너무나 절세미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긴 세월동안 살아오면서 인생에 별 재미는 없었으나 자기 부인 얼굴 쳐다보는 재미로 살았습니다. 절세미인이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미스코리아 정도는 안 되고 아예 마음에 감탄할 정도로 예뻤습니다. 그렇기에 아브라함이 내려갈 때 그 아내에게 부탁을 한 것입니다. 여보, 당신하고 오래 살아서 당신이 굉장히 미인인 것을 내가 아는데 내가 미안해서 입으로는 그 말 못했지만, 오늘 시인한다고. 틀림없이 내려가면 애굽 사람들은 당신의 아름다움을 보고 기절초풍을 할 것이다. 그리고 나를 잡아서 죽이는 것은 간단한 문제다. 나는 당신을 뺏기고 목숨도 잃을 것인데 나를 좀 살려주시오. 그것을 어떻게 살려줘? 이제부터는 여보라고 말하지 말고 오빠라고 말하십시오. 요사이 같으면 아무것도 아니지요. 요사이는 다 오빠 하니까 누가 진짜 오빠인지 가짜 오빠인지 모르는데 ‘나를 오빠라고 하면 나는 동생, 동생이라고 할 테니까’ ‘그러다가 진짜 내가 동생인 줄 알고 장가 오겠다고 하면 어떻게 합니까?’ ‘그때는 그때 가서 보자.’ ‘좌우간 나를 보고 오빠라고 해달라고.’ 그래서 애굽에 도착하니까 뭐 새로운 사람이 오면 원래 다들 호기심을 가지지만 이번에는 그야말로 절단강산입니다. 사람들마다 다 아브라함의 여동생 구경한다고 떼를 지어서 모여오니 아브라함이 기가 막힙니다. 그런데 임금님이 그 소식을 들었습니다. 바로가 듣기로 가나안에서 한 가족이 왔는데 여자는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여자다. ‘빨리 데려오너라.’ 그래서 아브라함은 자기 아내를 데리고 왕궁이 들어가니까 왕궁에 들어가자마자 부인이 아브라함을 보고 오빠 여기 어디에요? 동생, 여기가 바로의 궁이란다. 바로에게 절을 하니까 너희 어떻게 되느냐?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내 부모가 일찍 세상을 뜨시고 내가 이 여동생 데리고 떠돌아다니는 나그네 같이 삽니다. 너 진짜 여동생이냐? 내 여동생입니다. 네 여동생은 이렇게 예쁜데 너는 왜 호박 같나? 나는 호박 같아도 내 여동생은 틀림이 없습니다. 자네, 정말 이것이 네 오빠냐? 네! 내 오빠입니다. 그럼 잘되었다. 나하고 결혼하자. 그날로 당장 결혼해서 바이바이하고 바로가 데리고 가 버리고 그 대가로써 소와 양과 짐승을 잔뜩 얻었습니다. 그런데 왕궁에 들어갈 때는 동생하고 같이 들어갔다가 만들어 놓은 동생하고 들어갔다가 나올 때는 짐승을 데리고 대신 나왔어요. 가만히 있으니 기가 막힙니다.

그때 비로소 아브라함이 기도를 많이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 살려 주십시오. 이 길만이 내가 살 길이라고 생각하고 꾀를 내었는데 내 꾀가 통과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바로의 궁전을 쳤습니다. 전에는 안 그렇더니 사래를 아내로 삼은 애굽의 바로가 여러 가지 병이 들리고 하는 일이 안되고 어려움이 많이 다가와서 틀림없이 저들이 점쟁이를 불러오고 사주팔자를 보는 관상쟁이를 데려오고 사건을 물으니까 이 여인이 동생이 아니라 그분 아내라고. 아내를 빼앗아 왔으니 그들이 섬기는 신이 화가 나서 이렇게 징벌을 내리는 것이니 빨리 돌려보내라고. 그래서 아브라함을 빨리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왕궁에 들어가니까 ‘네가 나에게 거짓말 했지? 네 아내를 왜 동생이라고 했느냐?’ ‘내 한 목숨 살라고 할 수 없이 그렇게 했습니다.’ ‘빨리 데리고 오라. 너 때문에 우리 왕궁이 망하겠다.’ 결국에는 하나님 없이 인위적으로 한 것이 다 실패로 돌아오고 구원은 하나님께 있다는 것이 증명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화를 주니까 다 회개하고 도로 내주어서 그 아내를 데리고 애굽땅에서 있지도 못하게 빨리 떠나라. 그래서 가나안 땅으로 왔습니다. 오니까 가나안 땅에는 그동안 비가 많이 와서 곡식이 잘되고 풀도 푸르고 좋습니다. 상당히 오랫동안 애굽에 있었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또다시 인위적으로 사니까 시련이 다가왔습니다. 그 시련이 뭐냐면 조카하고 싸움이 벌어진 것입니다. 조카도 삼촌 따라다니다가 삼촌에게 조금씩 도움을 받아서 큰 목장을 가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많은 양 떼와 소 떼와 짐승떼를 거느린 목장주가 되었는데 삼촌의 목장 목동들과 자기의 목장 목동들이 싸움이 붙어서 야단법석이 났습니다. 왜냐하면, 서로 좋은 초지를 얻기 위해서 삼촌이 가진 초지에 자기 짐승들이 와서 풀을 뜯어 먹이니 삼촌의 목장들이 쫓아내고 그래서 아재비와 싸움이 벌어지고 그곳에 있는 다른 이방 민족들도 손가락질하고 야단법석입니다. 하나님 뜻을 거역하면 언제고 문제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내 아비 집을 떠나라고 했는데 조카는 아버지 혈통에 이은 조카거든요. 조카를 떠나고 와야 되는데 조카를 데리고 왔기 때문에 그런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조카를 보고 ‘우리 헤어지자! 여기 타민족도 많은데 아재비와 조카가 싸워서 피투성이가 되고 소문이 자자하게 나는데 우리 헤어지자. 네가 동이라 하면 내가 서라고 하고 네가 남이라 하면 내가 북을 말하겠다.’ 아무리 일가친척 간이라도 물질 문제 가지고는 양보가 없습니다. 그렇게 하면 조카가 삼촌을 따라왔으니 ‘삼촌이 먼저 좋은 데를 택하십시오. 그러면 내가 다른 데를 택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얼씨구~ 내가 먼저 택하지 삼촌이 어떻게 되든지.’ 그래서 소돔과 고모라가 있는 요단강 쪽을 바라보니 풀도 많고 물도 많고 좋은지라. 나는 풀도 많은 저 고모라성이 있는 동쪽을 택하고 갈 테니 그러면 삼촌만 여기 계세요. 바이바이 그리고 떠나버렸습니다. 이제는 메마른 초지가 있는 한쪽 구석에 아브라함은 쪼그리고 앉아서 하나님 바라보고 있으니 하나님이 조카가 떠나고 나니 일어서라!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똑똑히 바라보라. 네 눈에 보이는 그 땅을 내가 네게 주리니 영원하리라. 가볼 필요 없이 바라봄의 법칙을 통해서 네가 바라볼 수 있는 그 땅을 내가 다 주겠다. 여러분께서도 성경을 읽어서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믿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을 다 바라보면 은혜로서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 창세기 13장 7절로 12절 제가 읽어 드릴 테니 한번 들어 보세요.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주하였는지라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야훼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야훼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고 롯은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하나님은 이제 아브람에게 믿음으로 사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살았으면 괜찮을 것인데 그는 자기의 계획과 자기의 지혜를 따라 애굽으로도 내려갔고 조카 롯에게 짐승들도 많이 나눠 주었고 자기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잘 살려고 했다가 실패를 많이 했습니다. 성경에는 주님께서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했는데 오늘날 우리도 이 세상살이를 떠나서 하나님을 따라서 나왔으면 믿음으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훈련을 통해서 배우는 것입니다. 장막에서 늘 엎드려서 기도할 때도 땅만 보고 기도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꿈을 마음속에 품고 기도해야 하나님이 축복을 해주시는 것입니다.

3. 장막에서 나와 하늘을 바라봄
이성과 감각, 인본주의, 물질주의의 장막에서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막을 치고 옛날 사람들은 살고 있지 않았어요? 천막 밑에서 자꾸 기도만 하면 천막과 흙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천막 밖에 나오면 하늘을 쳐다보면 수많은 별들이 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도를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부귀, 영화, 공명, 낭패, 실망만 생각하고 땅만 바라보고 기도하지 말고 천막 밖에 나와서 우리 말로 다 한다면 이성이라는 천막, 감각이라는 천막, 인본주의라는 천막, 물질주의적인 천막에서 나와서 하늘을 바라보라. 수많은 별들이 있지 않느냐. 그 별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아브람보고 네 자손이 저 별들처럼 많을 것을 생각하라. 마음에 꿈을 가지고 생각하고 바라보고 기도하라. 꿈을 가지고 무슨 꿈이냐. 별 하나가 내 한 자식이 된다는 것을 꿈을 꾸면 말로 다할 수 없는 많은 자식 아닙니까? 나는 저 많은 자손들의 아버지가 되고 할아버지가 되고 조상이 된다. 그것을 마음속에 그려라! 오늘 예수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으로 마음에 그림을 그려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늘을 쳐다보고 별들을 헤아리라는 것입니까? 우리의 하늘은 성경이 우리 하늘인 것입니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성경을 바라보고 읽고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별처럼 마음에 간직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고 말씀의 별을 가슴에 품고 기도하면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오랫동안 간직하고 바라보고 기도하는 그 목표의 별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목표를 마음속에 그림으로 그려놓고 꿈을 꾸면서 기도하지 아니하면 믿음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참 힘이 있되 꿈이 있어야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왜냐, 제가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무엇을 믿습니까? 몰라요. 그러면 믿음이 뭔지 모르지 않습니까? 무엇을 믿지요. 목적이 있어야 되지 않습니까? 몸이 아프니까 몸이 나으려고요. 그렇지요. 몸이 낫겠다고 꿈을 꾸면 그 꿈을 믿는 것입니다. 몸이 낫는 건강의 꿈을 꾸기 때문에 네 믿음대로 될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상속자를 준 것도 아브라함이 오랫동안 85세에 기도했으나 꿈이 없이 기도했습니다. 천막 아래서 불평을 해가면서 내 아내는 지금 75세가 되고 나는 85세인데 아들을 못 낳았으니 이제 아들을 낳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안 주므로 나는 종을 키워서 아들로, 후사를 삼겠습니다. 불평을 말하고 하나님을 공갈하고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이 사람아, 꿈을 갖고 기도해야지. 꿈이 없는 기도를 어떻게 하느냐. 저녁까지 기다려라! 저녁이 되니까 천막에서 나와라! 꿈을 가지고 기도하기 위해서 하늘 쳐다보라! 하늘을 쳐다보니까 뭐가 보이니? 별들이 보입니다. 헤아려 보아라! 아이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데요. 너의 자손이 저것처럼 많을 것이다. 아브람이 입을 딱 벌리고 별들을 바라보고 별들이 자기의 자손이 된 것 같은 느낌으로 가슴에 꽉 들어차니 하나님, 내가 믿습니다. 전에는 무엇을 믿을 줄 몰랐는데 저 별들이 내 자손인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람 보고 만족한다. 잘했다. 그것이 너의 의로움이 된다. 그래서 그는 서나 앉으나 이제는 아들이 가슴속에 별들처럼 꽉 있는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결과로 그 아내가 90이 되고 그의 나이가 100세가 되었을 때 아들을 낳으니 이름이 이삭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장막에서 나와서 하늘을 바라본 것이 그는 큰 계기가 되었습니다. 창세기 15장 3절로 6절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야훼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야훼를 믿으니 야훼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바라봄과 믿음, 그 법칙을 통해서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꿈이 생길 때 믿음이 생깁니다. 무엇을 믿느냐. 꿈을 믿는 것입니다. 현재 있는 것 보고 믿을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꿈이란 것은 장차 생겨날 것을 지금 믿는 것을 말합니다. 뭘 믿느냐. 건강을 믿습니다. 그것이 바로 꿈을 믿는 것입니다. 무엇을 믿느냐. 사업이 일어날 것을 믿습니다. 그것이 꿈입니다. 그것이 믿음이고. 그러므로 꿈은 마음속에 현재 그림으로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것이 내 것이 되었다는 믿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믿음이 생겨나면 믿음을 입술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내 것이라고 고백을 하면 현실적으로 날이 가고 달이 가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롬 14:17~18)

그러므로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전지전능, 영광스러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그가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바라보고 믿고 입술로 자백하면 하나님이 책임지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의 일이 이루어지도록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해리 리버만(Harry Lieberman, 1880-1983)은 폴란드 출신인데 젊은 나이의 청년이 단돈 6달러를 들고 미국에 가면 잘산다고 미국으로 건너가서 온갖 일을 다 했습니다. 심부름꾼도 하고 종살이도 하고 일꾼 노릇도 하고 그렇게 해서 열심히 일한 덕분으로 상당한 부자가 되어서 나이 77세에 은퇴를 하고 노인학교에 들어가서 친구들과 잡담을 나누고 체스를 두면서 이제 여생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체스를 둘 상대가 없어서 우두커니 앉아 있으니까 한 청년이 다가와 말했습니다. “어르신, 그냥 앉아 계시지 말고 이쪽으로 오세요. 이쪽 방에서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데 와서 그림을 한번 그려 보시지요?” 그러니까 “그림이요? 나는 붓도 잡을 줄 몰라요. 게다가 그림을 그리기엔 너무 늦었어요. 나이가 일흔이 훨씬 넘었는데 무슨 그림을 그린다는 말입니까?” 그 청년이 가만히 쳐다보더니만 “연세가 문제가 아닙니다. 어르신! 어르신에게 연세가 문제가 아니라 나이가 많다고 생각하는 그 생각이 문제인 것입니다. 77살이 되나 80살이 되나 나이는 상관없어요. 내가 나이가 많다고 생각하는 그 생각이 잘못이지. 그냥 재미로 하는 거예요. 재미로 하세요.” 그래서 그는 못 이기는 척 청년을 따라 미술실로 갔고, 여든 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22번 째 전시회를 열었을 때 그의 나이는 101살이었고, 평론가들로부터 ‘원시적 눈을 가진 미국의 샤갈’이라는 극찬을 받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몇 년이나 더 살 수 있을까 생각하지 말고 내가 어떤 일을 더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 나이를 잡수신 분 뭐를 하라고 하면 내가 몇 년이나 더 살지? 78, 79, 80 헤아립니다. 그런데 이분은 자기 체험에서 말하기를 몇 년이나 더 살까 헤아리지 말고 얼마나 더 많은 일을 할까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아직 우리는 다 팔팔합니다. 그렇잖아요? 저도 팔팔하고 여러분도 팔팔 하고. 그러므로 얼마나 더 살까를 생각하지 말고 얼마나 일을 더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는 우리들이 되십시다. 꿈은 이성과 감각을 초월합니다. 꿈을 꾸는 사람에게는 나이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꿈을 꾸는 사람은 이성이 한계 짓는 불가능의 벽을 얼마든지 뛰어넘을 수가 있습니다. 꿈을 꾸는 데는 이 세상 이성이 필요 없습니다. 할 수 있다. 할 수 없다. 그런 이성적으로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꿈은 얼토당토 않는 것을 그리는 그림입니다. 어린아이가 도화지에다가 그림을 그리라고 하면 얼토당토않은 그림 그리지 않습니까? 나는 우리 손녀가 오면 그림을 그리는데 어깨너머로 봅니다. 손녀가 그림을 좋아해서 그림을 그리는데 대개 그림을 그리면 할아버지를 그려 놓아요. 그런데 얼토당토않은 그림을 그립니다. 왜냐, 얼굴은 비슷한데 머리에 털이 수북이 있는 그림을 그립니다.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꿈이에요. 걔는 나를 위해서 꿈을 꾸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머리가 더부룩한 할아버지를 그려놓고 깔깔 웃고 이것이 할아버지라고 그러는데 내가 전혀 그것을 믿지 않았는데 요사이는 자꾸 믿음이 생긴다고요. 머리털을 한번 심어볼까? 꿈이라는 것은 현실에서 도저히 없는 것을 마음속에 그려보는 것이 꿈입니다. 그 꿈이 믿음으로 변화되고 그것을 믿으면 하나님이 바빠집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하셨기 때문에.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감각을 초월한 이 꿈을 꾸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꿈은 이성과 감각을 초월해야 되는 것입니다. 꿈꾸는 사람에게는 나이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꿈을 꾸는 사람은 이성도 나이도 다 뛰어넘어 훌륭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람에게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것은 믿음으로 위대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고 딸, 아들도 얻을 수 있고 큰 사업도 상속으로 받을 수 있는데 결국 사는 것이 뭐냐, 삶의 궁극적인 목표와 사랑을 깨달아 알라는 것입니다.

4. 삶의 궁극적인 목표와 사랑
 이 세상에 우리가 살면 무엇 때문에 사는 것입니까? 잘 사는 사람도 결국에 가서는 무엇 때문에 사느냐 회의가 들어오고 못사는 사람은 더 말할 필요 없이 마음에 회의가 들어오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사는가 인생은. 삶의 궁극적인 목표를 하나님은 깨닫고 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궁극적인 목표와 사랑을 갖고 살 수 있습니까?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라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제일 주문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도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라. 이 세상 부귀, 영화, 공명을 다 가졌어도 하나님 없이는 아무 소용도 없다. “야훼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시 127:1~2) 하나님 없이 무엇을 해도 결국에는 헛된 것입니다. 오늘날 철학자들이 말한 것은 사람들은 죄책으로 말미암아 절망에 빠져있고 허무와 무의미로 말미암아 절망에 빠져있고 죽음과 무의 공포에 부딪혀 절망에 빠진다고 말한 것입니다. 모두 다 허물을 마음속에 끌어안고 고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허무하지 않고 우리가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라는 것입니다. 신명기 30장 19절로 20절에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야훼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야훼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야훼 하나님이 내 생명이시오. 내 장수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면 그가 우리 속에 생명이 되니까 지치지 아니하고 피곤치 아니하고 또 장수가 된다는 것입니다. 시편 25장 12절로 14절에 “야훼를 경외하는 자 누구냐 그가 택할 길을 그에게 가르치시리로다 그의 영혼은 평안히 살고 그의 자손은 땅을 상속하리로다 야훼의 친밀하심이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있음이여 그의 언약을 그들에게 보이시리로다”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곳에 비로소 삶의 목표와 살아갈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삶의 목표로 삼지 않고는 지위나 명예나 돈이나 이런 것이 생활의 목표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읽고 듣고 성령님을 환영하고 모셔드리며 의지할 때 성령이 우리 마음속에 훈련시켜서 하나님을 제일주의로 만들어서 살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한편에는 복을 주시면서 다른 면에는 시험과 환난을 반드시 주십니다. 왜냐하면, 믿음을 가르쳐주고 사랑을 가르쳐 주는 데에는 시련이 필요한 것입니다. 학교 다닐 때 어린아이들이 공부하는데 공부 좋아하는 애들 보았습니까? 공부가 싫어요. 그래도 공부가 장차 그를 현명하게 만들고 더 놀라운 삶을 살게 만들어 주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공부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공부는 싫으나 해야 된다. 시험과 환난을 하나님이 못 지킬만한 것을 주지 않지만, 반드시 시련과 환난을 통해서 신앙이 자라고 사랑이 자라게 해서 이 세상을 훌륭하게 살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제가 순종이라는 말을 보면 언제나 마음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있습니다. 우리 시골에서 자랄 때 송아지가 어느 정도 자라면 송아지 코를 뚫습니다. 코뚜레를 박기 위해서. 송아지가 코뚜레를 하기 전에는 아주 귀엽습니다. 저는 아주 송아지를 사랑해서 송아지를 끌어안고 얼굴에 이렇게 뺨을 비비기도 하고 쓰다듬어 주기도 하고 끌고 다니기도 했는데 코뚜레 하는 날은 송아지 코를 뚫는 날 그 주인이 막걸리를 가지고 와서 서로 막걸리를 마시고 그다음에는 코를 뚫습니다. 시뻘겋게 쇠를 달구어서 송아지를 끌어안고 잡고서 송아지 코에 구멍을 뚫습니다. 그러면 내가 따라다니면서 뚫지 마! 뚫지 마! 불쌍하잖아. 뚫지 마! 그리고 울기도 하고 했는데 우리 아버님이 내 손을 잡고서 야, 송아지 코 뚫는 것 보고 울지 마라! 소는 힘이 세고 고집이 세기 때문에 저것이 어른 소가 되면 사람을 떠받아 버리고 쓰지 못한다. 밭도 못 갈고 물건도 싣고 다니지 못한다. 어릴 때 코를 뚫어 놓으면 거기에 코뚜레를 하고 당기면 순종을 한다. 순종하는 소를 만들려고 코뚜레를 하는데 울지 마라. 그래도 불쌍한데 송아지를 잡고 시꺼먼 쇠꼬챙이를 갖다가 넣으면 고함을 치고 음매~ 음매~ 눈물을 주르륵 흘립니다. 나도 같이 보고 눈물을 흘리곤 했는데 어른들 하는 말이 맞거든요. 소는 힘이 세고 고집이 아주 강한 짐승이라 그래서 코를 뚫지 않으면 주인이 쓸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코를 뚫어서 코뚜레를 걸어 놓으면 그때야 소는 주인이 끄는 데로 따라가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나에게 하나님이 안 됐지만 코뚜레를 좀 뚫어보자! 적게 고집이 센 사람은 조그마한 코뚜레를 뚫습니다. 그러나 고집이 센 저 같은 사람은 굵은 코뚜레로 뚫으니까 더 많이 아프지요. 그러나 이 세상에서 반드시 하나님이 우리에게 시험을 보내셔서 그 시험이 우리의 코뚜레가 되어서 우리를 끌어당기는 것입니다. 시험을 통해서 더 굳은 믿음을 갖게 되고 순종을 하고 사랑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고난을 준 것은 그를 통해서 하나님 순종하는 것을 배우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배운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이 대한 절대적인 사랑을 배운 것은 외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제물로 바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시험치고 그렇게 흉악한 시험이 어디 있습니까? 100살에 낳은 아들을 모리아산에 데리고 가서 죽여서 각을 떠서 제물로 드려라. 시험치고는 굉장히 어려운 시험입니다. 답을 써야 돼요. 무슨 답을 씁니까? 하나님 좀 시험을 쉽게 만들어 주시옵소서. 그렇게 하든지 나는 못해요. 그렇게 하든지. 내가 시험을 성심껏 응답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든지. 좌우간 시험을 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점수를 매기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엄청난 시험을 당했습니다. 축복을 많이 받은 이상 그 축복을 잘 간수할 수 있는가 시험을 치르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아내 사라에게 이야기도 아니 하고 자기 아들을 보고 ‘야! 하나님이 제사를 드리라고 하는데 모리아산에 나와 같이 가자.’ 한 사흘 걸릴 테니까 장작 매고 칼 들고 불씨 내가 가지고 가자! 사흘 길을 걸어서 모리아 산에 왔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 데리고 장작 걸머지고 불 횃불 들고서 모리아 산으로 올라가는데 “아버지, 장작은 내가 걸머지고 불도 손잡고 있는데 제사드릴 양은 어디에 있나이까?” 기가 막힌 질문 아닙니까? “얘야! 이것은 중요한 제사니까 제물은 하나님이 직접 준비한다고 하더라. 가자!” 그래서 가서 아들과 함께 제단을 쌓고 장작을 펴놓고 그 다음에 네 손발 내놓아라. 왜요? 하나님이 너를 잡아서 제물로 드리라고 한다. 어찌할 도리가 없다. 아마 그 아들이 아버지를 쳐다보고 눈물을 뚝뚝 흘렸을 것입니다. 아버지, 나이가 많으셔서 머리가 좀 어떻게 된 것 아닙니까? “백살에 낳은 아들이라고 그렇게 자랑하고 사랑하더니 나를 잡아서 제물로 드린다니요.” “그래도 너를 주신 이도 하나님이시오 너를 도로 데리고 갈 이도 하나님이시니 나는 하나님을 위해서 너를 낳고 기른 대리인에 불과하다.” 칼을 받아 잡고 그를 눕혀서 잡고 칼을 들었습니다. 그때 마지막 순간까지 가만히 있던 하나님께서 보좌에서 확 일어났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네 외독자 이삭에게 칼 대지 마라! 네가 네 외독자 이삭도 아끼지 아니하고 나에게 내놓았으니 내가 이제 안다. 너가 나를 사랑한 줄 안다.” 사랑은 증거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부부라도 여보, 당신 사랑해. 나도 당신 사랑해! 쉽습니다. 왜 대가가 지불 안 되니까. 말로써 사랑한다고 누가 못해요? 그러나 사랑에는 대가가 지불됩니다. 대가가 있어야 되요. “내가 너를 사랑한다.” 적은 대가가 있으면 적게 사랑하는구나. 많이 사랑하면 많은 대가를 지불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 여러분 보시고 “너 나를 사랑하느냐?” “사랑합니다. 그러면 네 생애를 내놓아라.” 선교사가 되고 주의 종이 되는 것은 생애를 내놓는 것입니다. 힘든 것입니다. 예, 내놓지요. 그렇게 할 수도 있지만 “아니요. 하나님 내가 다른 일을 하겠습니다. 선교사는 안 되겠습니다. 다른 것 시켜 주십시오.” 고집을 부릴 때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했습니까? 안했습니까? 이처럼 사랑하사. 어떻게 이처럼 입니까? 독생자를 주셨으니.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다는 것 구구이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사랑 안 했으면 여러분 독생자를 줄 수가 없습니다. 외아들입니다. 독생자를 나에게 주셔서 살아서 우리의 구주가 된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혀서 몸 찢고 피 흘려서 죽음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셨으니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 것이 얼마나 크게 증명 되었습니까? 얼마나 하나님이 너를 사랑하느냐? 설명할 수가 없어요. 하나님은 그 크신 사랑으로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죄지은 그대로 못난 그대로 빈손 든 그대로 여러분을 믿고 구원받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구원이 얼마나 값지고 비싼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비싼 대가를 선물로 여러분에게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비 오듯이 임하여서 선물로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들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천국이 여러분 속에 있는 분들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으로 말미암아 인생을 목표로 삼고 살면 비로소 삶에 가치를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삶의 가치가 내게 느껴져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오셔서 삶의 가치를 자꾸 마음속에 만들어 주셔서 행복하고 기쁘게 만들어 주셔야 여러분이 그 가치를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야훼께서 아브라함에게는 그 아들을 선물로 주신 것을 보시고 내 사랑과 순종이 절대적인 것을 알았다고 말했었습니다. 아브라함만 한 순종을 가지고 주님을 믿을 사람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약 2:21~23) 그가 그 아들을 내놓는다는 것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실제적으로 큰 사랑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아들을 내놓아서 하나님이 그 이후로 아브라함은 친구가 되고 하나님을 끝까지 사랑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 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히 6:14~15)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17세기 영국의 신학자 토마스 아담스는 “그대에게 시련을 주는 것은 무엇이나 그대의 유익으로 계산하라.”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하나님이 무엇이나 내게 시련을 주시면 그 시련은 내게 유익된다고 계산하라. 여러분을 유익되게 하기 위해서 시련을 준다는 것입니다. 시련을 통하여 믿음과 순종을 배울 수 있도록 주시기 때문에 유익으로 플러스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을 마이너스가 아니라 플러스로 계산해야 합니다. 고난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가르치시기 위한 것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레미야애가 3장 33절은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시련을 주시고 난 다음에 같이 찌푸리시고 여러분이 고함을 치면 하나님도 조금만 더 참아라. 된다. 괜찮다. 괜찮다. 그렇게 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빨이 아파서 치과에 치료하러 가신 적이 있지요? 의사 선생님이 치료를 할 때 주사 바늘을 찔러서 하실 때 “약간만 아픕니다. 약간만 따끔합니다. 다 되었습니다. 다 되었습니다.” 다 되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말합니다. 나는 치과에 많이 다녀봤기 때문에 막 찔러놓고 이제 다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뽑지 않고 이제 다 되었습니다. 다 되었습니다. 한참 있어야 다 되지요. 그와 같이 시련을 하나님이 주신 것은 여러분에게 유익을 주시기 위해서 그러시는데 시험 동안에 고통스럽다고 고함을 치면 “다 되었어. 다 되었어. 조금만 참아.” 그렇게 말하시는 것입니다. 실제로 조금만 참으면 시련은 끝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유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당할 때 불평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내게 유익이 될 것이라 믿고 더욱 하나님께 의지해서 견뎌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고난이 변하여 오히려 복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모든 것, 좋고 나쁜 것, 즐겁고 슬픈 것 다 합쳐서 유익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고 나가면 모두다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손해나는 것 하나도 없습니다. 중간에 포기해 버리면 그만큼 손해가 나지만 포기하지 않는 사람은 끝까지 가면 하나님이 끝에 유익이 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꿈도 주시고 믿음과 긍정적인 입술의 고백도 주시고 순종과 헌신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를 통하여 아브라함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번성하케 하고 번성케 하는 결과를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신앙생활하시면서 평생에 늘 잊지 말아야 될 것은 여러분의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과 같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은 생각인데 마음의 생각을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듣고 기도하므로 마음속에 언제나 꽉 들어차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의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과 같아서 긍정적으로 되어 있으면 어떤 일을 당해도 생각대로 되는 것이기 때문에 생각이 여러분을 붙들어 주시고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생각보다 더 높고 큰 것은 꿈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생각이 바탕이 되어서 꿈을 꾸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생활에는 계속해서 믿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 믿어라. 하나님이 좋으신 분이신 것을 믿어라. 하나님이 능치 못하심이 없음을 믿어라. 하나님이 너를 사랑하는 것을 믿어라. 하나님 믿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리고 늘 흥얼거리듯이 노래하듯이 말을 하는 것입니다. 용기야 너에게 좋은 일이 있다. 하나님, 나쁜 일이 있는데요? 그래도 좋은 일이 있다. 나쁜 일 자체가 좋은 일이 된다. 용기야, 튼튼해진다. 건강해진다. 두려워 말라. 오늘 기도응답이 온다. 두려워 말라. 될 수 있으면 자기 이름을 넣어야 되지. 자기 이름을 넣어야 실감이 더 오는 것입니다. 자기 이름을 부르고서 축복을 해주시면 여러분, 참 좋은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꿈을 주시고 믿음을 주시고 긍정적인 입술의 고백을 하게 하시고 그를 통해서 순종과 헌신을 가르치시고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이 다가와도 고난 그 자체가 원수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좋은 일이 일어날 수 있도록 토대를 닦아 놓고 가는 것입니다. 믿습니다. 꿈을 가지십시다. 감사한 기도를 늘 하십시다. 그리고 여러분 자신을 늘 축복하십시오. 여러분 축복한 축복이 여러분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같이하시므로 이 세상 사람과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아멘.  

2014년 3월 9일 주일설교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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