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박사, 소설 ‘장군의 수염’ 주제로 대담… “설교하지 말고 접속하라”
이어령 박사가 15일 양화진문화원 목요강좌 ‘인생 대담’ 세 번째 편에서 영화화된 자신의 소설 <장군의 수염>을 놓고 이야기했다. 함께 대담을 진행하던 이재철 목사(100주년기념교회)는 건강상 문제로 참석하지 못했으며, 지강유철 선임연구원이 이를 대신했다.
평론가로 유명세를 떨치던 그가 1966년 처음 발표한 소설인 <장군의 수염>은 액자소설 형식으로, 순수문학에 추리소설 형식을 도입하는 등 전위적이고 자의식적 요소가 강하다. 또 리얼리즘이 대부분인 우리 소설사에서 보기 드물게 상징적이고 우화적 이미지를 사용했다.
김철훈의 자살이 알려지면서 노련한 형사는 사인을 구명하기 위해 나서고, 피의자로 몰린 ‘나’는 소설 완성을 미뤄둔 채 그의 흔적을 추적한다. ‘내’가 알고 있던 것은 김철훈이 소설 <장군의 수염>을 쓰고 있었다는 사실과 그 간단한 줄거리 뿐이다. 그 내용은 쿠데타에 성공한 장군이 기르고 있던 수염을 전 국민이 따라 기르던 중, 유일하게 수염을 기르지 않던 주인공이 결국 사회로부터 은근한 냉대와 압력을 받게 된다는 것.
이 소설은 영화화돼 1968년 극장에서 개봉됐다. <무진기행>의 김승옥 작가가 각본을 맡고 유명 작곡가 김희조가 삽입곡을 전부 작곡했으며, <일월> <메밀꽃 필 무렵>의 이성구 감독이 만든 이 영화에는 신성일·윤정희 등 당대 최고의 배우들이 출연했다. 액자 소설 형식을 따라 신동헌 감독의 애니메이션이 ‘영화 속 영화’로 삽입됐다. 실험정신이 강했던 이 영화는 이듬해인 1969년 제5회 백상예술대상 작품상·감독상·음악상, 제7회 대종상 각본상, 제3회 백마상 감독상 등을 휩쓸었고, 제4회 시카고영화제에 출품되기도 했다.
소설과 현실, 꼭 일대일 관계여야 하나
한국 사람들, 현실 아픔에 획일·평면적
이날 대담에서는 이해를 위해 영화의 몇몇 장면을 보여주면서 작품의 의도와 자신의 소설론, 오늘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 등이 논의됐다. 이어령 박사는 먼저 영화에 대해 “요즘은 애니메이션이 기본이지만, 당시 액자 소설로 영화 속에 애니메이션이 나오는 등 다매체를 사용하면서 영화 기법상으로도 놀라움을 줬다”며 “무엇보다 흥행 위주의 대중 영화가 아니라 순수 예술가들이 각본과 음악, 무대 세트 등을 맡으면서 혁신을 가져왔다”고 평가했다.
이 박사는 지난달 대담에서 ‘이솝 우화’를 예를 들어 밝힌 것처럼, 소설과 현실의 일대일 대응 관계를 묻는 질문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드러냈다. 그는 “소설을 꼭 현실의 리포트처럼 생각해야 하느냐”며 “이솝 우화는 현실을 직접 거론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 세계로 퍼져 동·서양 어디서도 아직까지 읽히고 있지 않느냐”고 했다. 또 “검열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성경에서도 탕자의 비유나 잃은 양의 비유처럼 특정 역사가 아니라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 인생의 보편적인 언어를 만드는 것이 소설의 언어인 것”이라며 “소설은 원래 허구이고, 그렇지 않으면 에세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오스카 와일드는 ‘현대인들은 허구의 능력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살기 힘들다’고 했듯, 고통을 타고난 인간, 적어도 현실 속에 살 수 없는 인간들은 새로운 허구의 세계에서 끊임없이 살아야 한다”며 “<장군의 수염>에서 내놓고 ‘박정희’라고 썼더라면, 지금 우리가 여기서 이 소설에 대해 이야기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일갈했다. 또 “그때 그 서슬 퍼런 검열관은 지금 어디로 갔는가”라며 “폭풍이 지나가듯, 지나간 역사는 오늘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장군의 수염’의 모티브를 소개했다. 그는 “그 수염은 (쿠바 혁명을 일으킨) 카스트로의 그 수염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며 “5·16 혁명 직후 쓰여졌고 제가 ‘저항의 문학’을 했으니 물론 (당시 상황을) 의식하고 쓴 것은 맞지만, (현실과) 일대일의 관계가 아니라 서양의 여러 혁명이나 우리의 군사혁명에서 오는 관습, 아니면 전통의 유교 등에서 소외된 한 사람의 이야기를 다루고자 했다”고 했다.
‘수염’의 의미에 대해서는 “프로이트는 수염을 ‘아버지’, 즉 가부장제로 보았는데,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있어 아버지의 억압과 공포로 볼 수 있다”며 “또 얼굴을 덮는다는 점에서 위장, 권위주의, 개성을 뜻할 수도 있는데, 주인공 ‘철훈’에게 수염은 전쟁이나 정치, 억압 등에서 나타나는 획일주의를 거부하는 한 인간, 모두 ‘예스’라고 말할 때 ‘노’라고 말하는 깨어 있는 한 인간”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사람들은 현실의 아픔이 너무 커서 거기에 영향을 받아 1차원적 의미밖에 만들지 못하는데, 예술에서는 이를 복합적이고 다층적으로 쌓아 올려가야 한다”며 “우리는 사건이 터지든 무슨 일을 하든 모두 한쪽으로 쏠리는 경향이 있어 평면적이고 1차원적이지만, 입체적으로 보면 전혀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이어령 박사는 소설의 영화화에 대해 설명하면서 “성경을 읽어 보면 처절하게 그려져 있음에도 예수님의 십자가가 실감이 잘 안 나지만, 이를 영화로 만들어 리얼하게 보여주면 예수님을 전혀 모르는 불량 학생들도 눈물을 흘리더라”며 “제가 교회 목사님들께 설교하지 말고 ‘접속하라’고 한 말이 바로 그것”이라고 했다. 이 접속은 영상일 수도, 언어일 수도, 봉사활동일 수도 있는데, 특히 ‘영상’은 언어와 전혀 달라 똑같은 걸 보여줘도 제각각 보는 게 다를 정도로 그 의미가 복합적이다. 언어는 반대로 가장 메시지가 강하지만, 설명적이라 지겨울 수 있다.
이 박사는 “우리가 크리스천이지만, 크리스천의 언어만 갖고 있으면 안 된다”며 “예수님께서도 자신을 믿지 않던 세리와 창녀, 어부들 앞에 나타나셨지, 크리스천들만 모아놓고 이야기하셨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정해진 날짜에 정해진 교회를 가고, 성경을 읽고…, 대개 열렬한 크리스천일수록 딱 보면 티가 난다”며 “그러지 말고, 벗어나야 한다”고 당부했다.
인간이 낙원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휴머니즘’
인간 능력으론 낙원 만들 수 없다는 게 ‘기독교’
소설 속 ‘아까까지 우시던 어머니는 부의금을 세고 계셨던 것이다’를 설명하면서는 “영혼에 이를수록 역설적으로 물질적이 될 수 있다”며 “희랍어로 육체는 ‘무덤’과 비슷한데, 우리는 플라톤 이후 영혼과 육체를 분리시키면서 끊임없는 비극이 생겨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돈 세는 것까지 가지 않아도, 초상집 가 보면 짠 눈물이 넘어가던 슬픔의 목으로 맛있는 음식이 들어가지 않느냐”며 “예수님께서 육체를 가진 인간으로 태어나셨기 때문에 새로운 종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라고 했다.
이 박사는 “영혼과 육체가 때로는 갈등 관계가 되기도 하지만, 이것이 서로 만나서 부딪칠 때 생겨나는 불꽃이 바로 생명이고 이 둘이 떨어지는 것이 죽음”이라며 “육체나 영혼 중 어느 하나를 위해서만 기도하는 것은 틀린 것”이라고 했다. 그는 “예수님께서 육체에 묶여있으실 때 피를 토하시며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를 외치셨지만, 인간으로서 마지막에는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시면서 평안하게 돌아가신다”며 “그 몇 초 사이에 ‘사람의 아들’로서가 끝나고, 다음부터는 영육이 대립되지 않는 신격이 되신 것”이라고 풀이했다. “저는 예수님께서 부활 후 40일 동안 돌아다니셨던, 인간도 신도 아닌 그때가 인간으로서는 최고의 때라 생각한다”며 “하나님도 인간도 아닌 우리 또한 그 기간에 들어가기 위해 애쓰는 것 아니겠느냐”고도 했다.
이어령 박사는 “<장군의 수염>을 지금 보면서 놀라운 것은, 그때는 제가 ‘안티 기독교’에 가까웠는데 굉장히 그 속에 ‘크리스처니티’가 있다는 점”이라며 “그때부터 그런 마음이 있었나 하는 생각도 들고…, 왜 그렇게 썼는지 모르겠다”면서 웃었다. 그는 “사회주의든 자본주의든 인간이 낙원을 만들 수 있고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휴머니즘’이자 반기독교주의”라며 “당시 저는 휴머니스트였지, 기독교인이 아니었다”고 했다. 또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인간의 능력으로 낙원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이라며 “예수님은 돌덩이로 빵을 만들라는 사탄의 유혹에 ‘노’ 하셨지만, 우리는 그런데도 이 말에 ‘예스’를 외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박사는 “이렇게 생각해 보면, 인간이 인간의 역사로 지상에 왕국을 세울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사탄의 목소리”라며 “그런 점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기독교,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 한 번도 이뤄진 적이 없고, 이루기 위해 노력한 것일 뿐”이라고 했다. 그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말씀대로 살았구나, 바로 이거야’ 할 수 있는 교회나 사람이 있을까”라며 “그러니 최후 심판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고도 했다.
그는 “어쩌면 그래서 그때는 제가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 가망이 없음을 알았기 때문에 오히려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더 잘 알고 있는 거라고 오만하게 생각했다”면서 “하지만 우리 딸이 하는 걸 보니 ‘저렇게도 되는구나, 나의 권능을 100배로 해도 얘가 믿는 하나님만 못하는구나’ 하고 느꼈던 것”이라고 고백했다. 또 “제게는 하나님께서 어떤 계시도 주신 적이 없지만, 딸을 통해 느꼈을 뿐”이라며 “아직도 저는 어디 가서 신앙심이 있다거나 크리스천이라고 말하지 못한다”고 했다.
마르다와 마리아, 선택하는 문제 아니다
우리 안에 마르다와 마리아가 함께 있다
이어령 박사는 “10분이라도 좋으니, 오늘 돌아가셔서 자신이 하나님을 영접하는 데 있어 마르다형인지, 마리아형인지를 생각하시고, 그 갈등에 대해서도 따져보시라”고 했다. 그는 “마르다는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사람이고, 마리아는 얌체처럼 말씀만 듣고 있는 사람”이라며 “교회에서 마리아처럼 하면 당장 쫓겨나겠지만 예수님은 마리아 편을 드셨다. 그런데도 세상이 돌아가려면 마르다가 필요하다. 언사가 부지런한 사람이 필요하다는 걸 알지만, 또 그게 목적은 아니다”고 했다.
이 박사는 “마르다는 없고 마리아만 있다면 교회는 문을 닫게 될 텐데, 마르다는 또 음식을 차리느라 말씀을 잃어버린다”며 “둘이 ‘자매’ 관계라는 것이 중요한데, 이는 한 사람이다. 우리 안에 마르다적 요소와 마리아적 요소가 함께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가 마리아인가, 마르다인가’를 물으면 ‘마르다이며 마리아입니다’ 해야 정답이지만, 이는 어느 곳에서도 인정하지 않고 영과 육을 나누려 한다”며 “예수님이 고난 당하실 때 피 흘리시고 아픔을 느끼셨으니 그 죽음이 거룩했던 것이지, 하나님 아들이시라 괜찮다고 하면 그게 뭐가 절박한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사람이셨지만, 우리가 하지 못하는 전혀 다른 일을 하고 다른 말을 했으니 우리가 하나님은 몰라도 예수님은 알 수 있다”며 “그러니 ‘나도 예수님을 뒤쫓아 가면 부활 이후 예수님 저편까지 갈 수 있구나. 내가 부활할 수 있구나. 내 생명이 여기가 끝이 아니구나’ 이것이 희망이 되어 우리가 교회에 나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니 부활 이상의 가치가 없고, 부활의 가능성을 믿어야 크리스천이라는 것. 또 “구제하는 것, 착하게 사는 것은 다른 곳에서도 다 할 수 있지만 딱 하나, 부활만은 할 수 없다”며 “병 고치는 건 며칠 더 사는 것 뿐이지, 기적이 아니다. 진짜 기적은 바로 부활이다. 죽음이 마지막이 아님을 하나님을 통해 알았을 때 크리스천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령 박사는 “여러 가지 여건상 오늘이 마지막 대담이 될지 모르지만,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은 여러분이 크리스천이라는 생각까지 잃어버려야 진정한 크리스천이 된다는 것”이라며 “제도에 묶이면 예수님과 먼 곳에 있게 된다. 내가 크리스천화되어 예수님과 교회를 선전하기 위해 예수님을 믿은 게 아니다. 이는 잘못 믿는 예수님”이라고 전했다. 그는 “그 전까지는 잘못 믿는 사람들을 크리스천으로 알았고, 이들 때문에 크리스천들이 정말 많은 손해를 봤다”며 “종교를 위해 우리가 사는 게 아니고, 하루를 살더라도 어떻게 사는 게 진정 사는 것인가를 생각하고 이를 선택하는 사람이 바로 크리스천이다. 성경은 바리새인처럼 되면 안 되고, 이렇게 살아야 함을 끊임없이 말하고 있다”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