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스호프처럼… 160년 전 광저우를 누빈 선교선(船)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광저우 선교 200년] (4) 푸른 강물 위에 복음선을 띄우고…

▲주강에 떠 있는 복음선은 수로가 발달한 광저우만의 특별한 전도 방식이었다.
▲주강에 떠 있는 복음선은 수로가 발달한 광저우만의 특별한 전도 방식이었다.

전 세계를 돌며 복음을 전하던 선교선 둘로스(MV. Doulos)호가 몇 년 전 은퇴했다. 최근 한국에는 선교선 로고스호프(LogosHope)가 입항하기도 했다.

오래 전 광저우에도 배를 타고 다니며 복음을 전하던 ‘복음선’이 있었다. 처음 이 복음선을 강에 띄운 이는 미국 선교사 로버츠(lssachar Jacox Roberts, 1802~1871) 목사였다. 그는 1846년 광저우 주강에 빨간 돛을 단 배를 타고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전도를 하였다.

광저우에 가면 도시를 가로질러 흐르는 아름다운 강을 만난다. 이 강은 물결이 진주처럼 반짝인다 해서 주강(珠江)이라 부른다. 주강은 중국에서 세 번째 긴 강으로, 광저우 사람들은 어머니의 젖줄이라 자랑한다. 그들 삶의 터전이 이곳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청말 광저우는 주강 변 쪽으로 허름한 수상 가옥들이 늘어서 있었다. 강 위에는 삼판선이라는 부르는 작은 배들이 틈도 없이 서 있었다. 긴 수박처럼 생겼다 해서 수박선이라고도 한다. 강 위에 사는 수상 주민들을 단민(疍民)이라 부른다. 단민들은 명나라 때부터 주강 삼각주 일대에 큰 무리를 이루며 살았다. 전통적으로 용이나 뱀을 숭상하고, 물 위에 올라와 사는 것이 금지되었다. 이들은 작은 배에 살면서 화물선을 상대로 잡화나 음식 혹은 일상에 필요한 것들을 팔았다. 떠다니는 가게들이었다. 수선집 혹은 점을 보는 집들도 있었다. 복음선은 이렇게 물 위에 모여 살아가는 수상민들을 전도하기 위해 주강에 띄운 배였다.

화남 선교의 디딤돌이 된 복음선

로버츠 목사는 배의 몸체를 자주색으로 칠하고, 배 안을 활동하기 편하게 개조해 복음선 전도를 시작했다. 강을 따라 움직이는 예배당이 만들어졌다. 복음선은 물가에 사는 수상 주민들 뿐 아니라 강에서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전도에도 주력했다. 그들은 주로 진주 채집업, 수상 운수업, 어업 등의 일을 하였다.

▲주강 변에 밀집한 수박배는 수상 주민들의 집이자 일터였다.
▲주강 변에 밀집한 수박배는 수상 주민들의 집이자 일터였다.

복음선 교회가 알려지면서 미국의 각 교파와 해외 화교 출신 사역자들은 화남 수상전도회를 만들고 복음선을 이용해 전도를 펼쳤다. 사람들은 복음선이 보이면 손을 흔들며 반가워했다. 처음에는 배에서 전도하고 예배하는 모임을 열다가, 점차 수상학교나 수상의료원 등으로 영역을 넓혔다. 강변에 살던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선은 예배당이고 자녀들의 학교였으며 아플 땐 병원이 되었다. 지금의 광저우 초등학교들 중에도, 수상학교에서 출발한 학교들이 적지 않다. 복음선은 1911년 신해혁명 전후 손중산 선생이 기독교 인사들과 접촉할 때 많이 이용했고, 혁명 인사들의 교통선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복음선은 원인을 알 수 없는 공격으로 침몰되기도 하고, 1900년에 의화단 사건으로 일시 정지되는 등 많은 방해도 받았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노 젓는 배를 사용했지만, 점차 증기선이 등장했다. 증기 복음선은 수십 년 동안 광저우를 시작으로 광둥성 일대를 다니면서 선교활동에 불을 지폈다. 복음선은 광서성, 복건성까지 다니며 선교의 질과 폭을 넓혔다.

선교 사역이 무르익으면서 1911년 서양 선교사들에 의한 복음선 활동은 끝이 났다. 그러나 화교 출신 목사들은 1960년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복음선 사역을 이어갔다. 머물지 않고 옮겨 다니는 복음선 교회의 파급력은 컸다. 1백년 이상 광둥성을 중심으로 중국 화남 지방 선교의 디딤돌이 되었던 것이다.
 
아편전쟁 전후의 선교사들

▲우리나라에 상륙하기도 했던 귀츨라프 중국 선교사. 그는 많은 저서를 통해 독일인들에게 중국에 대한 관심을 일으켰다.
▲우리나라에 상륙하기도 했던 귀츨라프 중국 선교사. 그는 많은 저서를 통해 독일인들에게 중국에 대한 관심을 일으켰다.

아편전쟁 전부터 각국 선교사들이 중국으로 들어왔다. 이는 모리슨 선교사의 역할이 컸다. 그는 서구 기독교 여러 교단에 호소해 대규모 중국 선교를 유도했다. 1827년 모리슨 선교사의 도움을 받아 마티슨(J. Matheson)이 광저우 기록보(The Canton Register, 1827~1838)를 만들었다. 이 신문을 통해 모리슨 선교사는 각국 선교회에 중국 선교사 파견을 요청했다. 미국 해외 선교회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1830년 미국 회중파 교회 브리즈먼(Elijah C. Bridgman, 1801~1861) 목사가 광저우에 온 것을 시작으로, 미국 선교사들이 중국으로 들어왔다.

유럽 쪽에서 중국으로 들어온 선교사들 중 낯익은 이가 있다. 독일선교회 칼 귀츨라프(Karl Friedrich August Gützlaff, 1803~1851) 선교사이다. 그는 1832년 7월 우리나라 고대도에 이십일 정도 머물렀으나, 입국을 허락받지 못했다. 귀츨라프 선교사는 1832년부터 영국 동인도회사 상선 암허스트호의 의사 겸 통역관으로 일했다. 그 무렵 동인도 회사는 극동의 새로운 통상지를 개척하려 타이완을 거쳐 조선 서해안과 일본에 이르는 긴 항해를 했다. 그 항해 중 우리나라 고대도에 들른 것이다.

그가 1833년 광저우에서 창간한 동서양고매월통기전(东西洋考每月统记传, 1833~1838)은 중국 본토에서 발간된 최초의 중문 신문으로 유명하다. 그는 1844년 중국연합회(汉会, Chinese Union)를 조직, 광둥성을 중심으로 중국인에 의한 중국인 전도를 펼쳤다. 그의 사후에도 1만권의 성경이 인쇄돼 중국 내지에 배포됐다. 이런 전도 방식은 1862년 허드슨 테일러(James Hudson Taylor, 1832~1905)의 내지선교회에 영향을 미쳤다. 테일러는 귀츨라프를 내지선교회의 할아버지라고 불렀다.

반면 중국 문건에서는 귀츨라프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도 보인다. 그는 불평등 조약을 체결할 때 서구 국가의 이익을 대변하는 통역에 참여했고, 아편 무역을 했던 동인도회사의 직원으로 근무했기 때문이다.

▲광저우 기록보. 이를 통해 모리슨 이후 많은 선교사들이 중국으로 왔다.
▲광저우 기록보. 이를 통해 모리슨 이후 많은 선교사들이 중국으로 왔다.

미국 남부 침례회도 1834년부터 중국 선교사를 파견했다. 로버츠 목사는 1837년 자비량으로 화물선을 타고 마카오에 왔다. 그는 1802년 미국 테네시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지만 신실한 기독교 집안이었다. 26세에 침례회 목사가 되었고, 비교적 늦은 35세에 중국 선교사의 길로 들어섰다. 1841년 마카오에서 미국 남침례회 해외선교사회에 가입하고, 1842년 홍콩에서 선교사로서는 처음으로 영주권을 얻기도 했다.

아편전쟁 전 이미 선교단체 9곳에서 중국 선교를 개시했지만, 본토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중국인이 많이 사는 싱가포르나 말라카, 본토에 인접한 홍콩과 마카오에서 학교나 진료소를 운영했다. 로버츠 목사도 처음에는 마카오에서 나병 환자를 돌봤고, 1842년 홍콩의 작은 어촌에서 2년 정도 선교 활동을 했다. 광저우 13행에 들어온 선교사들은 신분을 숨긴 채 신문이나 잡지 혹은 번역된 성경을 수정·보완하는 문서 사역에 전념하고 있었다.

광둥성 최초의 동석각 교회

1842년 남경조약이 체결되자 중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교회 설립이 가능해졌다. 로버츠 목사는 중국인이 직접 전도하는 ‘귀츨라프 선교 방식’에 크게 고무된다. 1844년 로버츠 목사는 광저우로 들어와 2년 후인 1846년 교회를 세웠다. 다름 아닌 천자부두의 동석각 교회였다.

광저우에는 몇 개의 부두가 있다. 그중 가장 번화한 곳이 천자부두(天字码头)다. 이 부두 부근은 야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해서 광저우에 오면 반드시 찾는 곳이다. 부두는 13행과 가까워 무역을 하러 온 파란 눈의 서양 상인들로 붐볐고, 외국에서 온 물건들로 넘쳤다. 로버츠 목사는 바로 그곳에 교회를 세웠다. 그런 이유로 로버츠 목사는 외국인 전용구역인 13행을 벗어난 지역에서 최초로 사역한 선교사가 되었다.

부둣가 교회는 우리에게 낯설지만, 광저우 문화에서는 자연스러웠다. 19세기 광저우의 역세권은 배가 닿는 주강변 부두였다. 사람들은 배를 타고 이곳저곳 왕래하였다. 동석각 교회는 고딕 건축물이었다. 화려한 바깥의 조각, 뾰족한 첨탑과 십자가가 멀리서도 보였다. 이 교회는 원래 월동시잠성회(粤东施蘸圣会)라 불렀다. 시잠(施蘸)이라는 말은 침신 또는 침례를 의미한다. 그래서 월동시잠성회는 월동침례회당이라고도 한다. 후에 동석각(东石角)이라는 부두의 한 모퉁이 이름을 따 동석각 교회로 많이 불렸다. 동석각 교회는 광둥성 최초이자 중국에서 미국 남침례회 선교의 출발을 알리는 교회이기도 했다.

▲광저우 하남에서 바라본 13행 전경. 가운데 교회 건물이 보인다. 1825년 이전에 이미 외국인들을 위한 교회가 있었다.
▲광저우 하남에서 바라본 13행 전경. 가운데 교회 건물이 보인다. 1825년 이전에 이미 외국인들을 위한 교회가 있었다.

처음 동석각 교회의 예배는 순조롭지 못했다. 광저우의 습한 기후와 자주 오는 비 때문에 교회 벽들은 곰팡이가 자주 생겼다. 아편전쟁 여파로, 광저우의 민심은 교회에 대한 우호적 관심보다는 서양인에 대한 분노와 적대감이 앞섰다. 교회는 텅 비었고, 주변의 개나 돼지들이 빈 예배당에 들어와 놀았다. 민중들의 불만이 고조되어 동석각 교회는 두 차례나 공격을 받기도 했다. 예배를 드릴 수 없게 되자, 로버츠 목사는 보호를 요청해서 간신히 위기를 모면했다.

부둣가 예배당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오갔지만, 교회 안으로 들어오는 이는 없었다. 이에 로버츠 목사는 복음선을 타고 중국인들을 찾아갔다.

로버츠 목사와 ‘태평천국의 난’ 홍수전의 만남

로버츠 목사의 중국 이름은 나효전(罗孝全)이다. 이 이름은 태평천국의 난을 일으킨 홍수전과의 인연으로 중국학자들 사이에 꽤 유명하다. 동석각 교회 또한 중국 근대사에 자주 등장하게 된다. 1847년 봄 홍수전(洪秀全, 1814~1864)이 그의 사촌동생 홍인간과 함께 동석각 교회를 찾았다. 태평천국의 난은 1851년부터 14년에 걸친 농민혁명 전쟁으로, 중국을 뒤흔든 사건이었다.

홍수전은 양발의 <권세양언>을 읽고 감명을 받았다고 전편에서 언급한 바 있다. 로버츠 목사는 홍수전에게 두 달 정도 교리를 가르쳤다. 이 때 홍수전이 접한 성경은 1847년 모리슨의 아들을 비롯해 브리즈먼, 귀츨라프, 메더스트(W.H.Medhurst) 등 네 명이 보완한 신구약 완역본이다. 홍수전은 로버츠 목사의 기대와 달리, 기독교의 교리에 중국적 요소를 결합시켜 태평천국의 이념과 신앙, 조직에 대한 아이디어를 가다듬는 기회로 삼았다. 세례는 받지 못했다.

1851년 로버츠 목사는 신문을 보다 깜짝 놀랐다. 몇 년 전 자신과 성경공부를 한 홍수전이 기독교 혁명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접한 것이다. 로버츠 목사는 1860년 홍수전의 초청으로 난징에 갔다. 그는 15개월간 태평천국의 외교 일을 도왔다. 침례회의 많은 사역자들이 난징으로 모여들었다.

그러나 후에 로버츠 목사는 기독교 교리와 홍수전 정권이 내세우는 논리에 큰 차이가 있음을 알고 그곳을 떠났다. 홍수전은 로버츠 목사에게 자신이 예수의 동생임을 인정하라고 강요했다. 태평천국의 난은 실패로 끝났지만, 중국인들에게 성경이 중국을 변화시킬 중요한 경전이라는 인식을 심어준다. 로버츠 목사는 1866년 은퇴해 일리노이로 돌아갔다. 그리고 1871년 마카오 사역 때 얻은 나병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주강은 중국에서 3번째 긴 강으로, 광저우 시민들의 자랑이기도 하다. 옆으로 신 광저우의 상징, 해심탑과 아시안게임 스타디움이 보인다.
▲주강은 중국에서 3번째 긴 강으로, 광저우 시민들의 자랑이기도 하다. 옆으로 신 광저우의 상징, 해심탑과 아시안게임 스타디움이 보인다.

주강에 배들이 떠다닌다. 말없는 이 강은 오래된 도시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 여유롭다. 광둥 사람들에게 주강은 서울의 한강과도 같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개막식을 화려하게 펼쳤던 곳이 바로 주강의 작은 모래섬이다. 한 곳에 머물지 않고 떠다니는 복음선은, 영혼을 찾아 나선 한 선교사의 간절함과 수로가 발달한 광둥 지역의 특성을 합친 절묘한 전도법이었다.

선교 역사 여행은 시선을 찾는 것이기도 하다. 선교사의 눈으로 혹은 광저우 사람의 마음으로, 또 지금 있는 곳에서 1-2백여 년 전 그들의 삶을 돌아가 바라본다. 아, 모든 것이 새롭다. 그래서 이 여행을 그칠 수 없다.

/김현숙 집사(<시님의 빛>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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