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자비에’가 될 것인가, ‘매그니토’가 될 것인가
영화 <엑스맨> 시리즈는 단순히 ‘초능력’(super power)을 가진 ‘영웅’(hero)들의 액션활극이 아니다. 이 영화에서 ‘엑스맨’들이 긍정적 의미의 ‘수퍼 영웅’(super hero)이 아닌, 다소 부정적 의미를 가진 ‘돌연변이’(mutant)로 불리는 것은, 일종의 메시지를 던지기 위한 하나의 설정이다. 최근 개봉한 <엑스맨-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X-men: Days of Future Past, 이하 엑스맨4) 역시 마찬가지다.
제목에서도 보이듯, 이 영화는 시리즈 중 처음으로 ‘시간 여행’을 소재로 삼고 있다. 먼 미래, ‘정상적인’ 인간들(‘정상’이라는 단어에 어폐가 있지만, 돌연변이가 아니라는 점에서 그렇게 부르기로 한다. -편집자 주)은 엑스맨들과 싸우기 위해 엄청난 힘을 가진 로봇 ‘센티넬’을 만들고, 이로 인해 엑스맨은 멸종 위기에까지 처한다. 가치관의 차이로 다른 길을 걸었던 ‘매그니토’(or 에릭 렌쉐어, 이안 맥켈런)와 ‘찰스 자비에’(패트릭 스튜어트)조차 한 편이 되어 싸운다.
센티넬의 무자비한 살상 앞에 무력감을 느낀 엑스맨들은, 결국 센티넬의 탄생 자체를 막는 것만이 해결책임을 깨닫고 ‘로건’(or 울버린, 휴 잭맨)을 과거로 보낸다. 그리고 이 과거에서 로건은 미래의 키를 쥔 ‘젊은’ 엑스맨들을 만나게 되는데…….
<엑스맨> 시리즈에서 나타나는 ‘대결 구도’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얼핏 매그니토 파(派)와 찰스 자비에 파(派)의 싸움인 것 같지만, 가만히 보면 ‘정상인 VS 엑스맨(돌연변이)’이라는 큰 틀이 먼저 존재하고 있다. 여기서 정상인을 보는 시각과 대응 방식의 차이로 인해 엑스맨 진영이 앞서 언급한 두 파로 나뉘고, 정상인 그룹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이번 <엑스맨4>에선 엑스맨들의 가치관 차이가 더욱 뚜렷이 드러난다.
쉽게 이야기해, 정상인들과의 공존 내지 평화적 관계를 추구하는 이가 찰스 자비에라면,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믿는 이가 매그니토다. 매그니토가 이렇게 판단하는 건 자신들에 대한 정상인들의 혐오와 공격 때문인데, 찰스 자비에도 같은 상황에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의 차이는 일종의 ‘도전에 대한 응전 방식의 차이’라고도 할 수있다. 찰스 자비에는 끝까지 포용의 자세를 유지하고, 매그니토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다.
적어도 이 영화, 곧 <엑스맨4>는 찰스 자비에를 지지하는 듯하다. 어두운 미래를 바꾸는 핵심적인 인물은 명시적으로 ‘미스틱’(or 레이븐, 제니퍼 로렌스)이지만, 그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 찰스 자비에의 가치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애초의 어두운 미래도, 알고 보면 매그니토로부터 출발한 것이었다.
대부분 우리는 ‘강자가 약자를, 또는 다수가 소수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익숙하다. <엑스맨4>에서 엑스맨들은 약자(개체로 보면 엑스맨은 정상인에 비해 분명 강자지만, 센티넬의 존재에서 보듯 정상인들이 마음 먹기에 따라 생존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약자다)이자 소수로 그려진다. 그래서 이들을 짓밟은 정상인들은 자연스레 ‘악’(惡)이 되고, 이를 지켜보는 관객들은 자신들을 돌아보며 무엇이 과연 ‘정상’인지, 강자와 다수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지 등을 고민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인상적이었던 건, 이 영화가 그 반대의 길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이다. 즉, 약자 혹은 소수가, 강자 그리고 다수를 보는 시각이다.
이미 위에서 언급한 대로, 이는 찰스 자비에와 매그니토의 생각 차이로 나타난다. 구체적으로 자비에는, 엑스맨의 행동 여하에 따라 그들을 대하는 정상인들의 태도 또한 바뀔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특정 정상인들을 향한 분노로 극단적인 모습을 보이는 ‘미스틱’에게도 끊임없이 변화를 촉구한다. 그러면서 그는 “잠시 길을 잃었다고 해서, 영원히 길을 잃은 건 아니”라는 대사를 관객들에게 던진다. 이는 잠시 방황했던 자신과, 또 원래 여리고 착했던 ‘미스틱’을 향한 ‘믿음의 표현’이지만, 정상인들까지도 아우른다. 바로 변화에 대한 소망이다.
반면 매그니토는 전형적인 ‘저항하는 자’다. 살아남기 위해 맞서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죽어 없어질 수밖에 없다는, 소위 ‘적자생존’과도 같은 사고에 젖어 있다. 이런 사고의 명분 중에는 ‘동족 보호’가 크게 자리잡고 있지만, 모순적이게도 매그니토는 자신을 막으려는 ‘동족’ 로건까지 죽이려 한다. 이는 동족 보존을 내세우지만 사실은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그래서 ‘우두머리’가 되고 싶은 매그니토의 일그러진 욕망일까, 아니면 ‘정의’를 위해 희생을 감수한 것에 불과한 것일까. <엑스맨4>의 물음이자, 매그니토를 향한 의심이다.
교회를 포함해서, 우리나라처럼 ‘강자 대 약자’ ‘다수 대 소수’라는 대결구도가 뚜렷한 나라도 드물다. 그런데 이는 약자와 소수를 마치 ‘돌연변이’처럼 취급하는, 강자와 다수의 횡포가 크게 작용하고 있는 까닭이다. 당연히 이런 자세는 바뀌어야 한다. 다른 것이 반드시 틀린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약자와 소수들도 한 번쯤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나는 과연 찰스 자비에인지, 아니면 매그니토인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