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작품·문학·다양한 시대배경 속에서
탕자의 정신사(精神史)
미야타 미츠오 | 홍성사 | 176쪽 | 11,000원
성경 속 ‘탕자의 비유(눅 15:11-32)’는 2천년 기독교 역사상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수많은 성도들이 사랑한 ‘비유 중의 비유’이다. 수많은 목회자의 설교 소재였고, 문학가들과 미술가들의 작품 속 모티브가 됐으며, 자신들만의 해석을 덧붙이기도 한다.
몇몇 예만 들어보면 1백여년 전 앙드레 지드는 ‘탕자의 비유’에 동생(셋째)을 등장시켜 재해석한 단편 <탕자 돌아오다>를 썼고, 이는 지금 이어령 박사가 즐겨 인용하는 책이기도 하다. 렘브란트는 여러 장의 ‘탕자의 귀향’을 남겼고, 헨리 나우웬은 4백여년 후 이 그림을 분석하는 동명의 명저를 출간했다. 이처럼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이처럼 ‘뮤즈’와도 같은 이 ‘탕자의 비유’가 지난 2천년간 어떻게 읽혀 왔는지를 일본 도호쿠대 명예교수인 미야타 미츠오가 정리한 책이 <탕자의 정신사>이다.
‘정신사(精神史)’란 단어가 낯선데, 사전적으로는 ‘역사를 형성하는 근원적인 힘으로서 정신을 고찰하는 역사학’을 뜻한다. 책의 내용은 크게 중세부터 현대까지, 서양과 동양에서 각각 나타난 기독교 미술 속 ’돌아온 탕자’와 문학·정신분석학 등 다양한 방법으로 해석해 보는 ‘돌아온 탕자’ 등으로 나뉜다.
오랫동안 학생들과 성경을 연구하며 신앙을 바탕으로 한 공동생활을 해 온 저자는 예수님에 대해 “그 이전에도, 그리고 이후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회화적인 화법의 이야기꾼이었다”며 “예수께서 말씀하신 비유의 대다수는 커다란 매력과 풍요로움으로 가득하다”고 평가한다. 이런 회화적 비유를 통해, 예수님은 자신의 복음 선교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현실성을 깨닫게 하려 애쓰셨다는 것.
특히 (그의 표현대로) ‘돌아온 탕자’의 비유에 대해서는 “새롭게 ‘되돌아가는’ 것을 염원하는 ‘잃어버린’ 아들이나 딸에 대해 하나님이 ‘하나님 나라’라고 하는 새로운 현실의 한복판에서 어떻게 만나려고 하시는가를 나타내는 메시지”라며 “여기에는 잘 정리된 양식과 탁월한 내용에 의해 표현된 복음의 에센스가 내포되어 있고, 사실 성서 이야기 중 가장 잘 알려져 있는 비유이기도 하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탁월한 분석력과 해박한 지식을 동원해 중세부터 작품화된 ‘탕자의 비유’를 도상학적으로 풀어 나간다. 길게는 중세 성경과 교회 태피스트리 속 작품들부터 뒤러, 히에로니무스 보스를 거쳐 종교개혁자들, 렘브란트, 로댕 이후 바를라흐, 샤갈까지 서양에서 관통하는 정서와 시대별 차이점을 살핀다. 넓게는 중국의 전지(剪紙·전통 종이 오리기) 예술과 일본 와타나베 소이치의 ‘아들의 귀환’까지 훑으면서, 이를 통해 복음의 토착화(indigenization) 또는 문핵화(contexualization)까지 성찰한다.
저자는 2부 ‘돌아온 탕자의 정신사’를 통해 성경이 쓰였던 당시의 법과 문화를 토대로 동생과 형, 아버지의 입장을 살펴본 다음, “돌아온 아들의 아버지를 무작정 하나님과 동일시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생각으로는 지극히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사건을 이야기하는 이 비유 자체가 말하자면 암시적으로 하나님의 은유가 되어 있는 것”이라며 “이 비유가 이야기되는 곳에서 예수의 인격과의 만남이 생겨나고, 이 만남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사건이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예수의 비유는 결코 유일한 일회적 사건으로서 역사적·비판적으로만 해석돼야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반복적으로 하나님 말씀으로서 전해지고 들려야 한다. 동시에 새로운 상황 가운데서는 이전까지와는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는 면에서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비유 해석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비유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돌아온 탕자 이야기’를 다시 한 번 읽어 봄으로써 위기와 혼미의 시대 한복판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서 있는 위치를 재확인해 보고 싶었다”고 한다. 도움을 주는 많은 그림들이 수록돼 있는데, 컬러로 볼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우리나라 작품들은 거론되지 않았는데, 설명할 만한 작품이 없었거나 있더라도 국제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는 의미인 것 같아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