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지방선거를 통해 당선된 소위 진보 성향의 교육감들이 대거 취임하면서 일성(一聲)으로 내건 것은 ‘자율형사립고’(이하 자사고)의 ‘폐지’이다. 그 이유는 일반고를 황폐화 시킨다는 것과 교육 불평등과 학교 서열화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에 대한 반대 목소리도 높다. 즉, 전국의 2,280개 일반고에 비하여 자사고는 49개(2.1%)에 불과하며, 특히 이재정 경기교육감이 가장 먼저 ‘폐지’를 공언했던 안산 동산고가 있는 경기도에서는 일반고가 342곳인 데 비해서, 자사고는 안산동산고를 포함하여 2곳에 불과하다.
반면에 혁신학교는 전국에 470곳이 된다. 혁신학교는 일반고에 비하여 연간 1~2억 원의 재정지원을 더 받고 있으나 학력은 크게 향상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므로 일반고의 학력저하의 문제는 자사고 때문이 아닌, 오히려 혁신학교 때문(혁신학교가 많아지고, 특별 지원이 많아질수록 일반고 지원이 줄어듦)이라는 말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자사고는 이명박 정부에서 ‘고교 다양화 정책’의 일환으로, 자율형사립고, 기숙형공립고, 마이스터교, 특성화고교 등 학생들의 적성과 능력에 맞게 다양한 형태의 효율적 교육을 위해 만들어진 것 가운데 하나이다.
자사고는 정부에서 지원을 받지 않는 대신, 학생들의 등록금에서 교육비를 충당하여 일반고에 비해 3배 정도 비싸다. 그러다 보니, 돈이 없는 학생은 갈 수 없다는 말도 나돈다. 그러나 공교육의 내실화가 이뤄지지 않아 ‘사교육비’로 들어가는 비용을 감안하면, 교육비에서 자사고가 특별히 비싼 것도 아니라는 주장이다.
자사고 학생들은 특별히 사교육을 받지 않고 학교생활만으로도 ‘인성교육’ ‘성적 향상’등 학부모들로부터 호평을 받을 정도로 좋은 결과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진보교육감들은 ‘혁신학교’는 늘리려 하면서, 자사고 폐지를 유도하기 위해 자진하여 일반고(혁신학교)로 돌리면, 5년간 최대 14억 원을 지원해 주겠다는 ‘당근’을 제시 하면서까지 없애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는 혁신학교를 많이 만들려는데, 자사고가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진보 교육감들의 주요 정책은 ‘고교평준화와 경쟁교육 완화’ ‘혁신학교 확대’ ‘무상교육 확대’ ‘학생인권조례 강화’ ‘사학비리 해결’ 등이다. 그런데 자사고는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지 않는 대신, 우선 학생선발권과 ‘자율성’의 확보가 이뤄져, 교육감 통제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일반고 교육의 파행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고교평준화가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특목고, 자사고 등의 학교들이 생겨나 ‘평준화’가 깨졌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장 논란이 되는 외국어고교 같은 특목고는 그냥 놔두고 유독 몇 안 되는 자사고 폐지를 한다고 해결되는가?
또한 자사고보다 10배나 많고, 자기주도적인 학습능력 확대에 초점을 맞춘 ‘혁신학교’를 통해 교육적 효과가 더 크게 높아진 것이 검증된 것이라도 있는가?
셋째는 입시 위주의 교육을 해소하려는 것이다. 특목고는 특별한 목적을 위해서, 자사고는 교육의 다양성을 위해서였는데, 결국은 입시위주와 명문 학교화를 두고 볼 수 없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진보 교육감들에 의해 ‘폐지’가 언급된 자사고는 이제 시작한 지 길어야 5년밖에 되지 않았다. 그 숫자도 많지 않다. 혁신학교도 2009년부터 시작되었다. 서로 엇비슷한 시기에 시작된, 다양성을 위해 만들어진 교육에 대한 진보교육감들의 시선은 어찌하여 이다지도 상반된 것인가?
아직 그 효과에 대한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어느 일방만을 폐지의 대상으로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이다.
진보 교육감들이 일제히 자사고 폐지를 들고 나온 것은 백년대계가 되어야 할 교육이, 교육감의 정치적 성향과 이념에 따라 제멋대로 바뀐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자사고의 존폐문제는 교육감들이 좌지우지할 것이 아니라, 교육 수요자인 학생과 학부모와 교사, 학교재단과 교육 당국 등 교육공동체의 합의적 판단에 맡기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다.
우리는 ‘자율형’이라는 것에서도 우리 교육의 의도된 획일성을 엿볼 수 있다. 즉, 지금까지 매우 ‘타율적’이었다는 것의 반증이 아닌가? 특히 종교적 목적으로 설립한 종립학교에 대해서도 그 정체성을 묵살하고, 교육당국이 공립학교와 똑같이 취급하여 ‘이래라 저래라’ 강제하는 것은 ‘교육독재’와 다름없는 것이다.
학생들의 개성과 특성이 다르듯이 교육에도 다양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런 교육을 통해 우수한 인재를 길러야 함에도 불구하고, 시작한 지 3~4년밖에 안 된 자사고를 폐지하라고 강압하는 것은 교육 다원화의 포기이며, 교육 미래의 무책(無策)이라고 본다.
교육에 어찌, ‘진보’와 ‘보수’로 정치적, 이념적 대립을 대입시키려 하는가? 항간에서는 진보교육감들이 혁신학교는 지지하고, 자사고는 폐지하려는 것에 대하여 ‘민중혁명 전초기지를 만드는데, 자사고가 걸림돌이 되기 때문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자사고 폐지를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진보교육감들이 그런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좀 더 인내를 가지고 자사고의 교육 결과를 지켜보아야 한다.
2014년 7월 31일
한국교회언론회(대표 김승동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