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이나 폭약이 아닌, 성경 말씀으로 무장하라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광저우 선교 200년] (16) 노예스 가문의 선교 이야기

▲노예스 목사가 세운 방촌당의 교회. 이 교회는 원래 배영학교 내에 세워졌으나, 통폐합 과정에서 지금의 방촌 위치로 옮겨왔다.
▲노예스 목사가 세운 방촌당의 교회. 이 교회는 원래 배영학교 내에 세워졌으나, 통폐합 과정에서 지금의 방촌 위치로 옮겨왔다.

배영의 교훈인 믿음, 소망, 사랑

배영학교 취재를 위해 처음 찾은 곳은 현재 배영학교가 있는 백학동 캠퍼스였다. 학교 후문으로 들어서자 교우루라 부르는 시계탑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옛날 주강 물을 퍼와 정화를 했던 물탑이 있던 곳인데, 배영 학생들의 약속 장소로 많이 이용되던 곳이다. 학교 안으로 들어가 교우루를 다시 보니 내벽에 한자로 ‘信’ ‘望’ ‘愛’라는 글자가 적혀 있고, 그 밑에 독수리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배영학교의 교훈은 ‘믿음 소망 사랑’이다. 배영의 꿋꿋한 기상이 날개쳐 오르는 듯했다. 중국의 고등학교 입구에 이런 기독교 문양이 버젓이 새겨져 있다는 것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들어가는 화단에 노예스 목사의 2대손인 윌리엄 선교사의 부조상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단층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학교의 박물관이다. 노예스 목사의 사진을 비롯해 초기 학교의 여러 사진과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노예스 가문의 자료들은 기대보다 많지 않았다.

학교 안은 무척 잘 다듬어져 정갈했다. 노예스 목사는 학교 안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알뜰히 학생들을 살폈다고 한다. 여기 백학동은 사실 노예스 목사가 서거한 후 한참 지나서 옮겨온 터라, 이곳에서 설립자의 흔적을 찾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러나 그가 학교를 설립할 때 만든 교훈과 기본 정신은 전통과 분위기를 통해 면밀히 전해져 오고 있었다. 백학동으로 옮길 때 지은 초기 건물들은 북경 청화대 건축물들과 구조와 스타일이 같다. 같은 사람이 설계했기 때문이다.

행정동 뒤편에 있는 예지동은 청송원의 예지동을 본뜬 것이다. 원래 청송원의 예지동은 1906년에 완공된 건물인데, 노예스 목사의 둘째 아들이 역병으로 죽어 보험금을 받게 되었다. 그 돈으로 건물을 짓고 아들의 중국 이름인 예지를 건물 이름으로 했다. 청송원 예지동은 배영의 신학원 전문 건물로 사용되던 곳이다.

시공을 초월한 만남

▲현 백학동 교정 후문에 있는 교우루.
▲현 백학동 교정 후문에 있는 교우루.

옮긴 캠퍼스 때문에 생긴 일화가 있다. 배영학교의 역사를 살필 때마다 청송원의 옛 배영을 찾고 싶었다. 배영학교의 옛 흔적을 찾는다는 것은 외국인인 우리에게 쉽지 않았다. 청송원이라는 이름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청송원의 옛터를 기억하는 중국인들도 많지 않았다. 백학동 배영학교에 협조를 구하면 되지 않느냐고 간단히 생각할 수 있지만, 중국의 학교들은 외국인들이 접촉하기에 쉽지 않다.

관련 자료와 지도를 가지고 몇 번 답사를 갔지만 찾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배영항(培英巷)이라는 작은 골목을 찾았다. 배영학교가 있던 청송원 부근이 분명한데, 뒤섞여 있는 건물들에서 학교 옛터를 찾아낼 수가 없었다. 자료에서 본 운동장과 서양식 스타일의 건물들을 찾아 헤맸지만, 보이지 않았다. 그 즈음 필자는 노예스 목사의 3대손인 헨리가 쓴 ‘차이나 본(China Born)’이라는 책을 읽고 있었다. 그 책에는 1970년대 청송원을 찾아온 헨리의 모습이 나온다.

작가이자 교수인 헨리는 1975년에 광저우를 방문했다. 헨리는 할아버지인 노예스 목사가 설립했던 청송원의 배영을 찾았다. 손자 헨리는 청송원 배영학교 안에 있는 사택에서 태어나 아홉 살 때까지 광저우에서 살았다. 그러나 이미 학교를 백학동으로 옮긴 청송원은 변해 있었다. 헨리는 학교 운동장이던 곳은 해군 관련 부품 공장이 들어서고, 그가 태어났던 사택은 공장 사무실로 바뀌었음을 확인했다.

헨리는 학교가 백학동으로 옮겨간 줄 모른 채, 없어진 줄로만 알았다. 백학동으로 옮기기 훨씬 전에 중국을 떠난 노예스 후손들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동안 중국의 정책으로 학교 이름 또한 숫자로 바뀌었다. 배영학교는 광저우 8중학교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중국이 개방되고 난 후, 1984년 10월 헨리는 다시 아내를 데리고 광저우를 찾았다. 헨리는 배영학교가 없어졌지만 아내에게 자신이 태어난 곳과 조상들의 이야기를 알려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헨리가 방문하기 한 달 전 광저우에 큰 변화가 있었다. 이미 개방이 시작된 중국 당국이 숫자로 바뀐 학교 이름들을 다시 옛 이름으로 복원시켜 준 것이다. 배영은 8중학교라는 이름을 버리고, 그렇게도 그리던 원래 이름인 배영을 되찾았다.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던 헨리는 자신이 태어난 청송원 배영을 찾았다. 그러나 그를 태운 택시 기사는 복원된 이름인 백학동 배영으로 데려다 주었다.

▲백학동에 있는 배영학교 박물관.
▲백학동에 있는 배영학교 박물관.

백학동 배영에 도착한 헨리는 놀랐다. 없어진 줄 알았던 배영학교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를 맞이한 학교 관계자들 또한 놀랐다. 헨리의 아내인 손주며느리가 갖고 온 설립자 노예스 목사 사진을 본 후 배영학교는 바빠졌다. 설립자의 후손들이 60여년 역사의 소용돌이를 넘어 배영학교를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 다음날 배영학교 출신 할아버지들이 모였다. 가장 오래된 졸업생인 할아버지는, 헨리의 아버지인 윌리엄 선교사에게서 수학을 배웠던 제자였다. 그는 사택 앞마당에서 놀던 어린 헨리를 알아보았다. 감동적인 해후였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헨리가 없어진 줄 알았던 지금의 배영학교를 찾아왔듯, 우리 또한 청송원의 옛 배영학교를 찾을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이 생겼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며칠 후 배영학교의 진달권 선생님과 연결이 되었고, 그분의 가이드로 청송원의 옛터를 찾게 되었다. 진 선생은 1984년 헨리의 광저우 방문 때 옆에서 안내를 맡았던 선생님이다.

찾아간 배영의 옛터는 헨리가 그린 것처럼 어수선했다. 솔향기가 감돌았던 청송원의 고혹한 정경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옛 자료사진을 보면 청송원 배영은 근처에 인가도 없는 허허벌판에 세워진 모습들이었다. 넓은 운동장에 학생들이 운동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지금은 용도를 알 수 없는 빈 건물들이 주위를 틈도 없이 채우고 있었다. 시간은 말이 없지만 흔적을 남겼다.

작은 공장들 사이로 큰 건물이 보였다. 청송원 배영학교의 세브란스 홀이다. 미국 백만장자 세브란스가 배영학교에 기부한 돈으로 지은 건물이다. 당시 이 건물은 4층으로 체육관, 교실, 학생과 교사들의 기숙사가 있었다. 세브란스 홀은 1914년 완공된 종합 홀인데, 노예스 목사의 아들 윌리엄이 미국에 갔을 때 세브란스가 기부해 지은 건물이다. 이 건물이 준공된 해, 노예스 목사는 순교하고 장례식은 세브란스 홀에서 거행되었다. 세브란스 홀은 주변 환경 정비 작업으로 곧 철거된다고 했다. 말없는 건물이지만 누군가 자신의 마지막 모습을 기억해 주기를 바랐던 것 같다.

▲청송원 도서관은 아직도 옛날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청송원 도서관은 아직도 옛날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세브란스는 우리나라 언더우드 선교사를 통해 연세 세브란스병원에 기부했던 그 동일인이다. 노예스 가문은 언더우드(1859-1916) 가문보다 약 20년 일찍 중국으로 왔다. 같은 북미장로회 소속이었고 파견된 곳도 인접 국가였기 때문에, 노예스 목사의 여동생인 헤리어트 여사가 쓴 책의 참고 문헌에 언더우드 선교사가 보낸 보고서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조상의 과거를 거슬러 간 1984년의 헨리와, 그들의 가문을 좇아가는 2013년의 우리를 생각해 보았다. 우리는 지금의 백학동에서 예전 청송원을 찾아 배영학교를 보았고, 헨리는 그의 추억이 있는 청송원에서 오늘의 백학동에 와 뿌리를 찾았다. 만나지 못해도 오랜 벗을 대하듯 즐겁다.

성경 말씀으로 무장하라

▲노예스 목사의 둘째 아들이 역병으로 죽은 후, 보험금으로 지은 예지동은 신학 전문 동이었다.
▲노예스 목사의 둘째 아들이 역병으로 죽은 후, 보험금으로 지은 예지동은 신학 전문 동이었다.

노예스 목사는 중국 내 혁명 활동에 공감했다. 뒤에서 기독교인 혁명가 손중산 선생을 많이 도왔고, 학생들이 교내에서 혁명 활동과 군화를 보관하는 것도 허용했다. 노예스 목사는 청나라가 무너지는 것과 신해혁명을 목격했지만, 1914년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광저우에서 순교했다. 그리고 광저우 북쪽 이망강 기독교 묘지에 묻혔다. 1947년 배영학교 측은 관리가 힘들다며 묘지를 백학동 서북쪽 농장에 이장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문화혁명을 거치면서 지금은 그의 묘가 어디 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노예스 목사 장례식에서 배영학교의 우등 졸업생이었던 황욱승 목사는 다음과 같이 스승을 추모했다. “우리에게서 떠난 형제는 여기서 48년 동안 선교 사역을 같이 했습니다. 그는 109일 밤낮 동안 위험한 대양을 건너와 우리의 어둠을 걷어낼 기독교의 빛을 가져왔습니다. 그가 광저우에 도착했을 때 기독교인들은 20명도 되지 않았습니다. 지금 우리는 노예스 목사에 의해 지펴진 복음의 빛을 높이 올릴 수 있는 수천 명의 위대하고 강한 크리스천 군대입니다. 그는 우리에게 총이나 폭약이 아니라 성경 말씀으로 무장하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는 신약성경을 광둥말로 번역해 학자가 아닌 우리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우리는 그를 위대한 스승으로 기억합니다. 우리는 가까이서 그를 만났고, 수많은 중요한 교훈을 배웠습니다. 신은 영원한 평화로 그의 영혼을 쉬게 할 것입니다.”

노예스 목사로부터 시작된 배영학교는 중국 교육계에 굵직한 궤적을 남겼다. 노예스 목사의 생전에 오늘날 중산대학의 시작이 된 격치서원도 배영학교 내에서 관할했었고, 광둥 협화신학대학의 뿌리가 된 신학부도 배영학교에서 시작했다.

노예스 가문은 1919년 학교 운영에서 벗어났지만, 일본 침략과 내전을 거치면서 배영학교는 오히려 국제화되었다. 1980년대 이전에만 해도 광둥성과 홍콩에 배영이라는 이름을 가진 학교는 무려 6개나 되었다. 광저우에 서관배영중학, 광둥성 내 태산배영중학과 강문배영중학교, 홍콩에도 홍콩배영학교와 사전배영중학 등이 있다. 1992년에 홍콩의 배영은 캐나다 밴쿠버에도 학교를 세웠다. 이것을 기반으로 캐나다에 12개의 크고 작은 학교를 세웠다. 중국내 학교들도 유치원, 초등학교 등으로 배영학교는 계속 확장되고 있다.

▲배영학교의 산 증인 진달권 선생(왼쪽)과 청송원 교정에서 함께한 필자.
▲배영학교의 산 증인 진달권 선생(왼쪽)과 청송원 교정에서 함께한 필자.

배영에는 유난히 대를 이어 다니는 학생들이 많다. 배영학교는 현재 남녀공학으로 바뀌었다. 배영학교의 역사를 잘 설명해 준 진달권 선생은 열여덟 살에 배영을 졸업하고 44년간 이 학교에서 물리 선생님을 하다 퇴직했다. 퇴직 후 배영 교우회 비서를 맡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도 그리고 두 딸도 모두 배영을 졸업했다고 말했다. 3대째 배영 가족인 것이다. 노예스 가문이 대를 이어 중국을 사랑했듯이 배영 가족들은 대를 이어 학교 사랑을 키워가고 있었다.

/김현숙 집사(<시님의 빛>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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