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기 목사 설교] 전능하신 하나님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본문: 이사야 40장 12절

 
 

<서론>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은혜의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사야서는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하여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사야 40장 12절에 ‘누가 바닷물을 손바닥으로 떠서 헤아려 보았느냐’. 여러분, 세숫대야에 물 담아 놓고 손으로 퍼서 씻어봐도 얼마 안 되는 분량밖에 안됩니다. 저는 습관이 이상하게 들어서 밤에 자다가 깨어나면 반드시 세수를 해야 됩니다. 그러면 수돗물을 틀어놓고 손으로 이렇게 채워보면 별로 많이 손에 담기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바닷물을 손바닥으로 떠서 헤아려 보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손이 얼마나 크시겠습니까? 뼘으로 하늘을 재어 보았느냐? 여러분 이 뼘으로 하늘을 하나, 둘, 셋 재어볼 수 있어요? 하나님은 손바닥 뼘으로써 하늘을 재어볼 수 있는 것입니다. 누가 온 땅의 티끌을 되로 되어 보고, 산들을 어깨 저울로 달아 보고, 언덕들을 손저울로 달아 보았느냐? 이사야 40장 15절은 ‘그에게는 뭇 나라가, 고작해야, 두레박에서 떨어지는 한 방울 물이나, 저울 위의 티끌과 같을 뿐이다. 섬들도 먼지를 들어 올리듯 가볍게 들어 올리신다’. 상상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이사야 40장 26절에는 너희는 고개를 들어서, 저 위를 바라보아라. 누가 이 모든 별을 창조하였느냐? 바로 그분께서 천체를 수효를 세어 불러내신다. 그는 능력이 많으시고 힘이 세셔서, 하나하나, 이름을 불러 나오게 하시니, 하나도 빠지는 일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하나님이 하신 일을 바라보고 나면 어지럽습니다.

<본론>
1. 나는 누구인가?

아~ 이렇게 위대한 우주를 지으신 하나님 앞에 나는 누구인가? 도대체 나는 어떠한 사람인가,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를 질문하게 되는 것입니다. 진화론자들은 당신은 어디에서 왔습니까? 아메바에서부터 진화되었습니다. 눈에 안 보이는 벌레에서 진화되어서 여기까지 왔다고...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안 믿는 그들은 모든 것이 진화로써 이루어졌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메바 벌레에서 사람이 되었다면 기가 막힌 이유와 사람을 죽여도 아무런 양심가책이 없습니다. 벌레 한 마리 죽였는데 무슨 그런 야단법석이냐? 우리가 아메바 벌레 한 마리에 불과하지 않습니다.

유물론자들은 사람은 흙에서 나와서 흙으로 돌아간다.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람은 죽음에 대한 생각을 깊이 해야 올바르게 살게 되는데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면 마음을 가다듬어 집중할 수 없습니다. 두려움이 모든 사람의 마음에 다가오기 때문인 것입니다. 나는 어디서 왔는가, 이 질문은 우리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대단히 분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나는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가 거기에 대한 대답은 성경을 통해서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 27절로 28절에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나를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닮아서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아무 때나 온데간데없이 우연히 생겨난 존재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모습을 우리에게 담아서 만들어 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사람을 만들어 놓으시되 덩치는 적지만 그러나 이 사람이 하나님을 대변해서 땅을 정복하고 그리고 모든 산천초목을 다스려라. 그러므로 우리는 제사장으로 지음을 받고 왕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대신해서 만물을 발명하고 발견하고 개발하고 발전하고 산천초목을 다스리는 왕으로서 지음을 받은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4절로 5절에 보면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여러분, 이 자리에 앉아계시지만 여러분이 창세전에 하늘과 땅과 세계와 만물을 짓기 전에 하나님께서 이미 택했다는 것입니다. 어지럽지요. 어떻게 우주와 만물이 안 생겼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여러분을 택할 수 있을까요? 어머니가 자녀를 낳기 전에 뱃속에 있는 아기를 바라보고 상상하듯이 하나님은 창세전에 여러분을 품어서 여러분을 하나님과 형상과 모습대로 지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고 하나님이 기뻐서 여러분과 나를 만드셨으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와 허물을 사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기뻐서 만든 자식들이지 쓸데없이 장난으로 만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필요해서 여러분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필요한 존재요, 하나님이 기뻐해서 여러분을 만세전에 예정하시고 택하신 자녀들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께 사랑받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 주셨는데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되겠는가?

요한복음 4장 24절에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셨을 때 무엇 때문에 지으셨느냐? 무엇 하라고 지으셨겠느냐? 우리는 일생을 살면서 하나님을 예비하기 위해서 지은 것입니다. 우리는 옛날에는 죄를 짓기 전에는 죽지 않으니까 영세토록 하나님을 예배드려라. 하나님을 찬미하고 하나님 앞에서 기쁘게 뛰놀고 하나님 앞에 춤추며 하나님 이름을 높이는 예배하는 사람으로서 지음을 받은 것입니다.

이사야 43장 7절과 21절에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이 지으신 것입니다.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 지었고 하나님을 찬송하기 위해서 지었는데 여러분, 요사이 살면서 나는 무엇 때문에 사는가? 한잔 먹기 위해서 사는가. 잘살기 위해서 사는가. 좋은 집에 살기 위해서 사는가. 대답을 못합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을 찬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예배하기 위해서 지음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6장 33절에도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먹고 입고 마시고 사는 생활은 하나님이 다 돌보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것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고 하나님의 의로움과 영광을 구하고 찬양하고 하나님을 섬기면 그 다음 일은 우리 일상생활에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다 응답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실제로 믿음으로 살아보면 거짓이 없습니다.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우리가 악할 지라도 자식들이 좋은 것 달라고 구하면 좋은 것 주지 생선 달라고 하는데 뱀 주겠습니까? 악한자라도 자식이 좋은 것 가지기를 원하는데 하물며 하나님이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지 아니하시겠습니까? 주십니다. 우리는 마음속에 기도할 때 하나님이 안 주시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기도를 하기 때문에 응답을 못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넘치도록 주실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바라보고 기대하고 기도해 보십시오. 바라보고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서 기도하면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 지어서 하나님을 찬송케 하기를 원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우리가 죽지 않습니까? 사람은 한번 나서 죽는 것은 정한 이치요, 죽고 나면 심판이 있다고 말했는데 죽는다는 것은 가장 큰 신비인 것입니다. 어찌하여 여태까지 살다가 갑자기 죽습니까? 죽는 것도 병들지 않고 잘 죽으면 좋은데 병들어서 고통하고 죽으면 그 괴로움이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절로 3절에는 주님께서 죽음을 겁내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주님이 하늘에 올라가신 것은 여러분과 나의 거처를 위해서 올라가셨다는 것입니다. 2천년 전에 시작한 우리의 쓸 것을 지금은 주님이 다 완성해 놓으셨습니다. 주님이 때가 오면 우리를 데리고 가서 주님 계신 곳에 같이 있겠다고 말씀하셨으니 주님께서 예비하신 거처가 얼마나 멋있겠습니까?

제가 한국 부흥회를 많이 다녔을 때 대전에 가서 부흥회를 인도했는데 그 목사님이 교회를 잘 지었어요. 그때 어려운 경제상태에 그렇게 좋은 교회를 지은 것을 보고 내가 감탄을 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좋은 교회를 지었냐고 하니까 우리 교인들이 돈을 내어서 지었지 난 못했습니다. 교인들이 돈을 내나요? 우리교회 큰 부자가 있는데 이 부자가 혼자서 이 교회 비용을 다 냈습니다. 아이고 그런 좋은 장로가 어디 있습니까? 얼마나 신앙이 좋기에 혼자서 자기 재산을 팔아서 이 교회를 지었습니까 하니까 좋은 장로 아닙니다. 좋은 장로 아닌데 어떻게 돈을 내요? 내 물질 있는 곳에 내 마음이 있다고 하는데... 좋은 장로는 아닌데 죽었다가 살아나고 난 다음에 그렇게 되었습니다.

병이 들어서 죽게 되었는데 죽으면서도 교회 위해서 유언 하나 안하고 죽었어요. 그래서 영안실에 갖다 놓았는데 영안실에서 사흘 만에 부시시 일어났어요. 사람을 왜 영안실에 갖다 놓았냐고... 일어나더니만 자기 자녀들을 전부 불러 모아요. 너희들 내 말 단단히 들어라. 내 이름으로 된 재산 다 팔아라. 팔아서 그 돈 가지고서 이 목사님께 교회를 지으라고 해라. 이 자식들이 아버지, 좀 이렇게 된 것 아닙니까? 잔소리 말고 내가 시키는 대로 하라.

그리고 하는 말이 내가 죽어서 없어진 줄 알았는데 천사의 손에 끌려서 예수님 앞에 섰는데 그곳에 들어가서 영원히 살 집들을 전부 사진 찍듯이 열람해 놓았는데 우리 교회 소재부 할머니 집은 보니까 엄청나게 좋은 집이다. 그래서 내가 웃으면서 소재부 할머니 집이 이렇게 좋은 것 보니 나는 말할 수 없이 좋겠구나. 적어도 장로인데... 그래서 예수님이 오시더니만 따라오라고... 따라가 보니까 아주 화장실 같거든요 집이...

아이고 우리 소재부 할머니 집이 저렇게 좋은데 왜 내 집은 화장실 같습니까? 너는 내가 좋은 집을 마련할 수 있는 자본을 하나도 안 올려주지 않았느냐. 너 꼭 십일조 냈느냐? 내고 싶으면 내고 내기 싫으면 안냈습니다. 그 봐라. 십일조도 안내고 특별헌금도 안 내고 교회 건축헌금은 한 푼도 안내고 여기에 무엇이 있을 줄 아느냐. 여기는 돈의 액수를 보지 않고 마음의 정성을 보는데 그 정성이 담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했으면 여기서 다 갚아준다. 그러니까 너는 한평생 화장실보다 못한 이곳에서 살아야 한다. 아이고 주님, 한번만 기회를 줄 수 있습니까? 못주겠다. 나 가면 재산 다 팔아서 교회당 짓고 올테니까 기회를 주십시오. 내가 교회만 다 짓고 난 다음에 틀림없이 이곳에 올테니까 기회 주십시오. 참말이지? 참말이고 말고요. 내 깨자마자 이 일을 집행하겠습니다. 그러면 갔다오너라.

그래서 천국에서 이 지상에 다니러 왔습니다. 그 장로 때문에 그렇게 아름다운 교회를 지었어요. 다 짓고 난 다음에 이 장로가 기도하기를 하나님 날 빨리 불러 주십시오. 교회 다 짓고 나면 데리고 오겠다고 안하셨습니까? 나가고 싶어서 안 되겠습니다. 데려 가십시오. 진실로 데려가 달라고 기도하더니만 얼마 전에 주님이 데리고 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나를 위해서 거처를 예비해 놓았으나 이 땅에서 우리가 주를 어떻게 섬기는가를 반드시 시험해 보신다는 것을 알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 3절로 4절에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이 세상에 낭패와 실망과 저주와 고통이 득실거리는 곳에 있지 아니하고 주님이 지은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서 영원히 사는 저 세상이 있습니다. 우리가 육신의 장막집을 벗어버리면 다음 생애는 그 아름다운 영광으로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고 천사들이 여러분 손을 잡고 이끌어 가기 때문에 우리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낙심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가 이것을 잘 알지 못하면 마음에 허무와 무의미에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오랫동안 일하신 선교사님 가족을 잘 알고 있는데, 그 선교사님의 부인은 스페인계 미국여자로 굉장히 인물이 잘났습니다. 그런데 성격이 엄청나게 친절하고 상냥한 분이었습니다. 그 남편과 저는 함께 주의 사역을 했는데 그 부인은 남편을 엄청나게 사랑했어요. 그리고 외딸 하나를 키웠는데 그 딸을 위해서 목숨을 바칠 정도로 귀하게 여기고 딸을 돌보아 주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보니까 딸이 자라서 고등학교를 여기에서 졸업하고 난 다음에 미국으로 건너가서 미국대학에 입학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딸이 떠나고 난 다음 얼마 있지 아니하여 그 사모는 밥도 먹지 아니하고 집안 청소도 하지 아니하고 수면제를 먹고 그냥 자는 것입니다. 남편이 걱정을 해도 별 도리 없어요. 앉으나 서나 잠만 자고 합니다. 그래서 병원이라는 병원에 다 돌아다녀봐도 병은 없어요. 그런데 잠만 자고 사람이 멍하니 공중만 쳐다보고 있어요.

그러더니 하루 나에게 신앙상담을 왔습니다. 신앙상담을 하려면 자기 남편에게 가야지 왜 나에게 옵니까? 그런데 나에게 와서 뭐라고 말하냐면 목사님, 왜요? 날 좀 쳐다보세요. 내가 누구지요? 당신은 아무개 목사님의 부인 아닙니까? 아니에요. 내 다시 한 번 보십시오. 나를 찾아 주십시오. 나는 내가 누군지 모르고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전에는 어떻게 살았습니까? 전에는 내가 누군지 알았어요. 그런데 잃어버렸어요. 어떻게 잃어버렸습니까? 전에는 우리 남편의 아내였습니다. 나는 남편을 섬기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났고 결혼하고 난 다음 남편을 위해서 있는 힘을 다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우리 딸의 엄마였습니다. 나는 우리 딸을 위해서 밥 짓고 옷 만들고 이브자리 깔아주고 가르치고 하는데 열심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남편은 선교사로 와서 조 목사님하고 선교사역 한다고 바쁘다고 온 천하를 돌아다니면서 나는 혼자 남아있고 우리 딸은 날 버리고 미국으로 공부하러 가버리고 나는 우리 남편의 아내도 아니고 우리 딸의 엄마도 아니고 나는 누구입니까? 나는 누구를 위해서 삽니까? 나보고 나의 정체성을 찾아 주십시오.

그래서 내가 가만히 있다가 사모님말 들으니까 나도 그렇게 되려고 합니다. 나는 누굽니까? 그 자매님 하신 말씀이 당신이야 하나님을 잘 믿으니까 하나님 당신과 같이 계시지요. 사모님은요? 나는 하나님도 잘 못 믿습니다. 그러니 이래가지고 내가 어떻게 살겠습니까? 그래서 내가 아니 성령을 받고 하나님을 붙드십시오. 하나님이 당신을 찾아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말을 하고 위로하고 보냈는데 얼마 있지 아니하여 남편이 데리고 선교사 생활을 그만두고 미국으로 건너가서 지금 천국 가버리고 만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데 정체성이 굉장히 필요합니다. 내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굉장히 많아요.

미국에 20세기 중반 미국의 인디언 보호구역에서는 유난히 많은 인디언들이 마약과 알코올 중독으로 사회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인 에릭슨(E. H. Erikson) 교수가 그 보호구역에 들어가서 조사를 해보니까 보호구역에 사는 사람들이 정체성을 잃어버려서 내가 누군지를 몰라요. 왜냐, 인디언들을 위해서 특별한 구역을 만들어 놓고 특별한 문화를 유지하도록 정부가 만들어 놓았는데 거기에 학교를 세워서 교육을 시키는데 선생들이 전부 백인들이에요.

이 백인들이 가르치면서 인디언 애들에게 너희들 인디언 짓 하지 마라. 백인이 문명이니 백인을 배워라. 백인 따라 말하라. 인디언 말을 못하고 인디언의 행동을 못하게 합니다. 그러나 집에 가면 부모들은 야 이놈아 네가 인디언이지 왜 백인 노릇하고 백인처럼 말하고 행동하느냐. 그래서 교육 받을 때마다 자식들이 학교에 가서는 미국 사람처럼 행동해야 되고 집에 와서는 인디언 사람처럼 행동해야 되겠는데 미국 사람처럼 못하라고 부모들은 호통을 하고 인디언처럼 말하지 말라고 학교에서 선생은 호통을 하고 애들이 자기를 잃어버렸어요. 나는 미국 사람도 아니고 인디언도 아니니 누구냐. 자기를 잃어버리니 그때부터 마약을 하기 시작하고 술을 마시기 시작해서 인디언 촌이 마약중독과 술중독으로 황폐하게 되었습니다. 어떠한 사람도 인디언 종속들을 구해 줄 수가 없었어요. 정체성을 잃어버린 그들은 그대로 술중독과 마약중독으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자아 정체성을 잃어버린 사람은 무력감을 갖게 되고 좌절감에 빠지게 되고 절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서도 어디서 와서 내가 무엇 때문에 살며 어디로 가는지를 확실히 모르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예수 믿는 사람은 하나님이 여러분을 부르시기 때문에 온 세상 날 버려도 주 예수 안 버리기 때문에 하나님 품에서 태어났고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고 주 예수 그리스도가 예비하신 천당으로 가니까 여러분 정체성이 분명합니다.

정말로 우리는 좋은 사람들입니다. 누가 무엇을 말해도 나는 태어난 근거가 분명한 것입니다. 사생아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날 만드셨으니까. 천지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이 내 아버지가 되시고 그리고 하나님 예배하고 하나님 앞에 기뻐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니 우리가 세상에 잘 입고 잘 먹고 잘못 살아도 그것을 보고 손가락질 할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니 하나님이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를 다 돌보아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죽으면 천당 가지요. 예수님께서 천사를 보내셔서 우리를 천당을 데려가니 우리는 분명히 자기가 누군지를 알게 되어서 기쁘기 말로 다할 수 없는 것입니다.

2. 나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

그러므로 우리가 확실히 알아야 될 것은 나는 사랑받기 위해서 태어났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사랑받기 위해서 태어났다. 우리 성가대에서 이 노래 한번 불러주시겠습니까? 당신은 받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 내가 목소리가 좋으면 내가 막 바로 부르겠는데요.

♬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
태초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만남을 통해 열매를 맺고
당신이 이 세상에 존재함으로 인해 우리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 되는지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지금도 그 사랑 받고 있지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지금도 그 사랑 받고 있지요

여러분은 사랑받기 위해서 하나님이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신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기 때문에 교회당에 불러서 하나님 예배하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여러분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나는 사랑받고 있다.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자 부모님의 사랑을 받았지 않습니까? 그 부모 사랑을 주신 이가 바로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부모를 통해서 우리를 돌보게 해주시니 부모 사랑 모르는 사람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는 사랑을 받고 사랑을 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 낳으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요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 없어라.

나는 요사이에 제일 사랑을 갚지 못하고 후회하는 것이 어머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아버지도 물론 사랑했지만 간단히 사랑했고 어머니는 나를 뱃속에서 10달 동안 품고 다니고 낳을 때 목숨을 걸고 낳아서 그 다음 젖 먹이고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누이며 길러주시고 밭 맬 때 어머니 등허리에 업고 땀을 흘리면서 밭을 매는데 어머니는 밭을 매고 나는 어머니 머리카락을 매고 그렇게 키워주신 어머니의 사랑을 생각할 때 하나님의 사랑이 마음에 느껴지고 깨달아지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어머님 살아계신 분이 계시면 사랑을 흠뻑 하세요. 어버이 살아실 제 섬기기를 다하여라. 돌아간 후면 탄식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어머니를 통해서 하나님 사랑을 보여 주시고 하나님의 친사랑은 예수 그리스도 아들을 보내어서 몸 찢고 피 흘려 여러분과 나를 구원해 주셨으니 그 사랑이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사는 목적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다음 우리 이웃을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 것처럼 이웃을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는 종교는 소용이 없습니다. 사랑이 없는 의식은 필요 없습니다. 이 세상에 사랑이 제일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중에 한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서 얻어맞고 옷도 뺏기고 재산 다 뺏기고 먼지투성이에 피투성이가 되어서 죽어가고 있는데 그 옆에 제사장이 한 사람 지나가다가 혀를 차고 야 이놈아, 정신 차리고 살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느냐. 그리고 도와주지 않고 지나갔습니다. 제사장은 유대인의 종교를 주장하는 사람인데 종교는 사람을 살리지 못합니다. 그 다음에는 의식과 형식을 집행하는 레위인이 지나가다가 보고 고개를 흔들고 피해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방인인 사마리아인이 그곳에 갔다가 보고서 자기 말에서 내려서 기름과 포도주를 상처에 붓고 몸의 긴 옷을 찢어서 붕대를 만들어 감아주고 짐승에게 태어서 주막집에 데려다주고 돌보아 주고 주막 주인에게 내가 사업을 마치고 돌아올 때 다시 들릴 테니까 비용이 더 들면 청구하면 내가 비용을 갚아줄테니까 그렇게 해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누가 이 사람에게 강도 맞은 사람에게 이웃이 되겠느냐? 거기에 사람이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너희도 그렇게 하라.

우리 하나님이 우리가 종교인이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레위인이 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종교도 없고 의식도 없는 사람이라고 욕을 할지라도 사랑을 베풀면 가장 하나님이 알고 하나님이 인정하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사랑이 제일이고 사랑이 없는 종교는 종교가 아닙니다. 사랑이 없는 의식은 필요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꽹과리 소리에 불과한 것입니다. 아무리 말을 잘 해도 사랑이 없으면 소용이 없어요. 온갖 지식과 학박사 학위를 다 가지고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보다도 여러분을 사랑 속에서 태어나게 하시고 사랑을 느끼고 살게 하시고 사랑하게 하기 위해서 주님이 돌보시고 계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사랑을 하는 것을 여러분께서 잊지 마십시오. 이 세상 사람들은 상처 입은 사람들입니다. 마음속으로 상처 입었고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사회적으로 상처 입은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 상처는 사랑하므로 말미암아 고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기를 나는 상한 갈대도 꺾지 아니하고 꺼져가는 심지도 훅 불어서 끄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갈대가 꺾어져서 바람에 휘날리면 가서 쳐 매주고 불이 심지가 꺼지려면 심지를 바로해서 불이 붙게 하지 끄는 주님 아닙니다.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 신앙을 가졌다고 하면서도 자기 마음에 맞지 아니하면 가서 갈대 같은 사람을 탁 꺾어서 버리고 같은 믿는 사람이라도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은 가서 신앙의 불을 잘 돋구지 아니하고 꺼질 것 그냥 훅 꺼버리자. 이러한 사람은 종교인이라도 필요 없고 의식을 잘해도 필요 없습니다.

여러분은 내 이웃을 몸같이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대로 그렇게 하게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다음에 우리 인생을 살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것이요 사람의 것이 아닌 것이기 때문에 굉장히 귀중하게 여겨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귀중한 존재에요. 하나님이 여러분을 그렇게 귀중하게 여기는데 하나님의 소유를 여러분 마음대로 천하게 대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을 잘 돌봐야 하나님께 칭찬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귀한 이 성전을 파괴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3. 무엇보다 네 마음을 지키라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나를 지키시고 나를 걱정없게 하려고 애쓰는데 여러분 자신이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성경에는 시편 17편 8절에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사”. 하나님께서는 시편 121편 5절로 8절에 “야훼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야훼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야훼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야훼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하나님이 금지옥엽으로 여러분을 돌보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보배로운 존재인 여러분을 여러분 자신이 잘 돌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지킬 만한 것보다 여러분의 마음을 지키고 여러분의 생활을 지켜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 사랑이 여러분 스스로가 여러분을 받아서 잘 지키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40장 28절로 31절에 보면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야훼,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오직 야훼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하나님은 이렇게 여러분을 지켜서 독수리 같이 새롭게 날개치며 올라가고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고 걸어도 피곤치 않는 삶을 만들어 주기를 원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는 좋은 주인을 만나서 이 주인이 여러분을 절대로 버리지 않습니다. 하나님 이외에는 아무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 이 세상에 두려워하면 마귀가 쳐들어와서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준 것이 아니라 믿음과 의와 사랑을 주신 것입니다.

욥기에 보면 욥이 두려움을 가졌으므로 그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마귀에게 모두 빼앗겨 버렸습니다. 우스 땅의 욥은 동방 사람 중 가장 훌륭한 온전한 정직한 하나님을 경외하는 악에서 떠난 사람이었는데 아들 일곱, 딸 셋을 낳았는데 소유는 양이 칠천 마리요, 약대가 삼천 마리요, 소가 오백겨리요, 암나귀 오백마리와 종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 속에 마귀가 늘 와서 두려움을 넣어주었습니다. 너는 하나님과 상관없다. 하나님이 널 사랑하지 않는다. 너는 세상에서 하나님께 사랑받지 못한 사람이다. 너 자신도 훌륭하지 않다. 자꾸 자기를 천대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욥이 말하기를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내가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나에게는 평온도 없고 안일도 없고 휴식도 없고 다만 불안만이 있구나”(욥 3:25~26)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야훼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잠 29:25)고 했는데 자기를 잘 간수 못했습니다. 두려움이 있으면 하나님께 의지하고 두려움을 내어쫓고 평안을 가져야 하는데 마귀와 협조를 해서 자기가 두려워하고 자기가 자기를 싫어하고 무서워해서 마귀에게 잡혀서 패가망신한 것을 우리 성경에서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스스로를 잘 간수하는 것이 마귀를 이기고 하나님 주신 보화를 보존하는 중요한 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하나님과 가까이 살게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떠한 환경이라도 하나님께 감사하면 하나님이 같이 계셔서 여러분을 지켜주시고 붙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야훼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야훼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대상 29:11~13)

우리는 주님을 찬양하고 사랑하고 주님은 우리를 품어주시고 우리를 높여주시고 그래서 이 땅에 사는 동안 행복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을 사랑하며 감사가 마음에 가득한 사람은 복된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는 살다가 죽어야 되지 않습니까? 죽을 때 나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지위, 명예, 권세, 돈 등이 나를 도와줄까요? 아니요. 낡은 세계 저편이 영원한 천국이 열리고 천사들이 데리러 오는 것을 보고 보좌에 앉아있는 하나님이 두 손 내밀고 웃으십니다. 그 모습을 볼 때 그것이 영원한 기쁨이요 행복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 은혜로 어디서 온지를 알고 왜 사는 줄도 알고 어디로 가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결과 우리의 마음에 가지고 있을 것은 우리를 잘 보존하고 지켜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살다가 기쁨으로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스스로를 천시하지 마십시오. 멸시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을 잘 지키고 보존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 이 몸을 가지고 주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사십시오. 하나님은 천국을 예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태생이 하나님의 자녀들인 것입니다. 태생이 하나님 품에서 태어난 하나님보다 조금 못한 존재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목적이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목적이 천당가는 것인데 천당가기 전까지 이 몸을 잘 간수해서 하나님이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일을 이루도록 노력하게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2014. 11. 9. 주일설교
조용기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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