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저우 선교 200년] (29·끝) 광저우교회의 오늘, 그리고 내일
남아있는 교회들
2014년 현재 광저우에는 삼자교회만 14개가 있다. 종교 회복운동이 일어나면서 광저우 지역에서는 동산당 교회가 1979년 처음으로 회복예배를 드리는 것을 시작으로 1980년에는 석안당, 1981년에는 하남당, 1983년에는 십보당, 1985년에는 구주당, 1986년에는 방촌당, 1989년에는 광효당, 그리고 1991년에는 사면당이 연이어 문을 열었다.
사면당은 그 자리에 남아있는 교회로는 가장 오래된 교회이다. 사면 땅은 중국이 아편전쟁 패배로 1859년 영국과 프랑스에 내준 조계지(租界地)였다. 광저우 안의 유럽이라고 말할 정도로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각종 아름다운 동상들과 화초들로 가득 찬 사면 공원에 앉아있으면, 간간히 들려오는 광둥말 소리 외에는 중국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조계지가 중국으로 할양되면서 사면당은 1949년까지 정부 관공서로 이용되었다. 그 후 1991년부터 예배를 다시 드리게 되었다.
이 교회들은 현재 삼자교회로 예배당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예배가 있는 시간 외에는 아직도 교회문이 굳게 닫혀서 외부인의 출입을 허락하지 않고 있다. 지금 광저우에서 예배가 회복된 교회들은 방촌당·사면당을 빼고는 대부분 화교들, 혹은 중국인들이 개척한 교회들이다. 광저우교회들의 외관도 거의 중국 스타일이다. 개방이 되면서 토착화된 기독교를 지향하는 의지가 강해 보였다. 그리고 근래 광둥성에는 가장 큰 삼자교회인, 삼천 명 수용이 가능한 천하당교회가 준공되어, 광저우 성도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주고 있다. 천하당교회는 1949년 이래 세워진 최초의 개신교 예배당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한편 그 수를 알 수 없는 가정교회들이 있다. 광저우 따마잔에 있는 사무엘 램 목사가 이끄는 가정교회는, 중국 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유명하다. 이 교회를 이끈 램 목사는 중국 내 가정교회 지도자이며 광둥인들의 정신적 지주였다. 믿지 않는 이들도 램 목사에 대한 존경심을 자주 드러냈다. 그는 애석하게도 작년 8월 소천했다.
개방이 된 후 홍콩과 미국 등지의 화교 크리스천들이 들어와서 고국 교회의 재건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아게임을 전후로 교회마다 안내판과 문화재로 지정된 표지판이 설치되어 교회의 존재감이 살아났다. 그리고 부득이 철거가 된 곳도 옛 터임을 표시하는 안내판이 일제히 붙었다. 이름을 찾는 것은 제자리를 잡아간다는 표시이기도 하다.
1950년 선교사들이 철수한 지 30년 만에 다시 찾은 땅 중국은, 100여 년을 훌쩍 넘긴 교회들이 바랜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동안의 잃어버린 시간들을, 오래된 교회들을 둘러보면서 되새겨 보자.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 앞에 서 있는 교회들은 시간을 견디는 것에 대해 말해준다. 시간은 그냥 가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1백년
근대 19세기 초 중국에 들어온 개신교는, 파란만장한 중국의 역사에 동참하면서 200년 이상의 시간들을 보냈다. 19세기 100년 동안이 서구의 선교사들이 주도해서 복음의 씨앗을 뿌린 시기였다면, 20세기 100년은 그 복음이 중국인들에게 확산되고 중국인 스스로가 복음을 전하는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서구 선교사들이 세운 예배당 대부분은 100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기 때문에, 흔적의 일부만 남긴 채 역사의 기록으로만 남았다. 우리가 그동안 찾아다닌 여러 선교 관련 유적지들은 교회를 비롯해서 병원, 학교, 묘원, 강변, 부두, 마을도 있었다. 어디든 이 땅에서 예배하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게 중국인들에게 남겨진 복음이 20세기 100년 동안 어떻게 되었는지 다 알 수 없다.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중국인들이 서양의 기독교를 받아들이는 과정은 지금도 계속 전쟁 중이라는 느낌이 든다. 삼자교회와 가정교회의 대립도, 보이지 않는 정부의 탄압도 존재한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해외 선교사들이 또다시 중국에 들어가서 기독교의 부흥을 돕고 있다.
분명한 것은 복음의 씨앗이 이미 중국인들에게 뿌려졌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현존하는 어떤 삼자교회, 가정교회 혹은 기독교 단체들과 접촉하지 않았다. 어떤 공식적인 채널도 없어, 자유롭기도 했지만 균형감각을 잡기 어렵기도 했다.
그러나 잠자는 사자와 같았던 중국이 개혁개방 이후 거대한 잠재력을 국제사회에 발휘한 것처럼, 중국 기독교의 미래에는 우려보다 희망을 본다. 이미 주 하나님께서 그 과정을 주관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21세기 100년은 중국 기독교인의 비전인 ‘시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리라.
수천 년 동안 이 도시를 흐르는 주강은, 변함없는 하늘의 섭리처럼 오늘도 흘러간다. 광저우의 2천년 해상 실크로드의 주요 항구였던 황포에서 시작한 광저우 선교 역사 여행은, 백년교회에서 끝을 맺는다. 동행해 주셨던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드린다. 매주 원고를 묵묵히 읽어주신 독자들에게도 감사드린다.
/김현숙 집사(<시님의 빛>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