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크로율’ 기대에 못 미쳐… 전도·교육 소재로는 활용 가능할 듯
3일 개봉한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은 잘 알려진 대로 구약 출애굽기(엑소더스)의 주요 내용을 담고 있다. 400년간 애굽(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히브리 민족 2백만여명이, 모세의 지도 하에 그곳을 탈출하는 이야기이다(영화상으로는 40만여명이 탈출한다).
단숨에 잘나가던 <인터스텔라>를 제치고 예매율 1위에 오른 대작 영화 <엑소더스> 관람을 저울질하고 있다면, 출애굽기와의 ‘싱크로율’을 기대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감독과 제작사가 수많은 돈과 노력을 들여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것은, 대부분 ‘자신의 이야기’를 펼치고 수익을 얻기 위해서 아니겠는가. 순수한 ‘신앙적 동기’로 작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사실 순수한 신앙적 동기만으로 작품을 만든다면, 흥미와 몰입도 면에서 관객들의 외면을 받기 십상이다).
거기다 감독은 노장이자 <에일리언> <글래디에이터> 등을 연출한 거장 리들리 스콧(Ridley Scott)이다. ‘완벽한 필모그래피’를 완성하려는 듯 나이를 잊고 여러 편의 작품 연출에 매진하고 있는 가운데, 그가 왜 십자군 전쟁을 다룬 <킹덤 오브 헤븐>과, 이번 ‘출애굽기’에 이어, ‘다윗’을 소재로 한 영화를 구상 중인지 생각해 보는 것도 영화를 보는 재미일 것이다.
‘스포일러’에 대해서도 걱정할 것이 없다. 이미 원전이 있지 않은가. 기독교인들이라면, 출애굽기 20장까지 나온다고 생각하면 된다. 위기는 모세스의 요구에 람세스가 더욱 강하게 히브리인들을 핍박하면서 ‘10가지 재앙’으로 치닫기까지이고, 절정은 ‘홍해의 기적’이다.
감독은 거기다 초반부에 자신의 ‘장기’라 할 수 있는 ‘대규모 전투신’을 집어넣었다. 양자로 들어간 동생과 왕위를 계승할 장자 사이인 두 주인공 모세스(모세, 크리스찬 베일)와 람세스(조엘 에저튼)의 대립 구도를 설정하기 위해서이다.
유감스럽게도, 볼거리로는 성경에 없는 이 초반부 전투신이 가장 스펙터클하고 화끈하다. 3D로 보면 그 효과는 더욱 두드러진다. 기대를 모았던 ‘10가지 재앙’도 원전이 머릿속에 있지 않다면 놀랄 만한 스케일을 자랑한다.
그러나 내용들은 조금씩 부족하다. ‘신이 되려는 자’ 람세스가 ‘신을 전하는 자’ 모세스와 대립하려는 이유가 뚜렷하지 않다. 스스로 신이 되려는 자가 믿지도 않던 ‘신탁’을 이유로, 왕위를 물려받자마자 절친했던 동생 모세스를 몰아내고 사막에 자객까지 보내는 장면은, 마치 우리나라 프라임 시간대의 ‘막장 드라마’ 같다.
도망간 모세가 미디안에서 가정을 꾸린 후 ‘소명’을 깨닫기까지가 너무 긴 듯하기도 하다. 피곤한 몸으로 영화를 본다면 이 부분에서 꾸벅꾸벅 졸 수도 있다. 스토리를 대충 알고 있는 기독교인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영화사에서 지난 여름 공개했던, ‘말 탄 모세’의 멋진 스틸컷은 거의 ‘떡밥’ 수준이다.
가장 아쉬웠던 점은 성경과의 ‘싱크로율’이라기보다, 성경의 기록에 미치지 못하는 ‘스펙터클’이다. 감독은 21세기 ‘과학의 시대’에 영화를 보는 이들을 배려해 ‘10가지 재앙’에 나름의 설득력을 부여하려 애를 썼지만, 그 때문인지 압도적인 감동은 덜하다. 블록버스터답게 다양한 요소들을 가미했지만, 모든 재앙들을 설명 가능하도록 하려다 보니 생긴 결과가 아닐까.
실제로 나일강이 ‘피’가 되는 과정이 모든 재앙의 시작이 되고, 메뚜기와 개구리, 파리와 이, 독종, 암흑까지 속도감 있게 이어진다. 특수효과의 한계인지는 모르겠으나, 여러 재앙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너무 급히 지나가 버려 여운이든 아쉬움이든 뭔가를 남긴다. 이는 ‘홍해의 기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소명’을 받는 떨기나무 장면도 그렇다. 그저 ‘CG’ 느낌이었다. ‘신의 목소리’ 대신 동자승처럼 보이는 ‘신의 메신저’가 등장하는데, 마치 멜 깁슨의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 ‘사탄’을 대신해 등장하는 뱀을 보는 듯했다.
모세스는 인간적 면모를 갖춘 ‘영웅’이다. 아내 십보라와의 사랑이 그렇고, 신이 ‘10가지 재앙’을 내리기 전 소규모 ‘게릴라전’으로 자유를 쟁취하려는 모습도 그렇고, 애굽의 모든 장자를 죽이려는 신의 계획에 ‘항변’하는 모습이 그렇다. 대신 신(하나님)은 존재감이 거의 없다.
조금씩 부족한 발단과 전개, 위기와 절정이 이어지다 보니 결말과 엔딩도 다소 밋밋하다. 판타지적 볼거리로는 곧 개봉하는 ‘호빗’에, 철학적 생각거리로는 ‘인터스텔라’에 조금씩 밀릴 수도 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이 영화를 비토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본다. 주일학교 학생들과 교사가 함께 영화를 관람하고, 성경과 같고 다른 점, 하나님의 참 모습에 대해 서로 이야기할 거리로 삼을 수도 있고, 비기독교 지인들과 같이 보면서 대화의 소재나 접촉점으로 삼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물론 이 영화에 등장하는 ‘신’이 우리가 생각하는 하나님(구약임을 감안해도)과는 다른 면이 많다. 하지만 이왕 만들어진 영화이니, 최근 할리우드의 ‘성경 사랑’을 그런 식으로 지혜롭게 활용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할리우드 영화의 ‘성경 싱크로율’에 민감해지기보다, 우리에게는 ‘기독교 세계관을 담은 영화’들에 대한 성원과 적극적 관심이 더 시급하다. 당장 손양원 목사의 행적을 다룬 다큐멘터리 <그 사람 그 사랑 그 세상>은 상영관이 몇 남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몇 년 전 같은 제작사의 <울지 마 톤즈>의 선전을 생각할 때, 기독교인들의 응집력과 폭발력에 아쉬움이 남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3년 전 <완득이>처럼 별다른 종교성이 없음에도 기독교 세계관이나 ‘선한 기독교인들’을 담고 있는 작품들을 적극 관람하고 제작을 독려하며, 소재를 발굴해내는 일이 이어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