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삼 목사 설교] 주는 토기장이

김진영 기자  jykim@chtoday.co.kr   |  

날짜: 2015년 2월 22일
본문: 예레미야 18:1~6
설교: 김병삼 목사(만나교회 담임)
제목: 주는 토기장이

▲김병삼 목사(만나교회)
▲김병삼 목사(만나교회)

[예레미야 18장 1-6절]
1.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한 말씀에 이르시되
2. 너는 일어나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라 내가 거기에서 내 말을 네게 들려주리라 하시기로
3. 내가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서 본즉 그가 녹로로 일을 하는데
4.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터지매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좋은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 (so the potter formed it into another pot, shaping it as seemed best to him)
5. 그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6.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가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인도하심을 가로막는 것들…
오늘 우리는 이런 질문을 가지고 2015년 첫 번째 변화산을 열어가려고 합니다.
“정말 하나님께서는 나를 향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는가?”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 사실에 우리의 사활을 걸어야 할 것이며, 이것이 거짓이라면 빨리 다른 길을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세상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아무리 모든 원리를 찾아내려고 노력해도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이 많다는 것을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해 판교 테크노밸리 축제에서 있었던 사건으로 우리 교회 청년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지방에서 정신없이 올라온 부모님을 앞에 놓고 입관예배 설교를 하는데 뭐라고 위로할 말이 없었습니다. 35살의 나이가 너무 죽기에는 젊은 나이가 아닌가요? 게다가 청년부에서 리더로 섬기는 그 청년이 그렇게 죽기에는 너무나 아쉬운 것이 아닌가요? ‘서른다섯’이라는 나이는 저에게 잊히지 않는 아픈 추억이 있는 나이이기도 합니다. 초등학교 때 가장 친했던, 너무나 착했던 친구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던 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고 앞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도대체 무엇인가요? 다른 사람의 인생의 문제뿐 아니라, 우리의 인생에서 일어나는 수없이 많은 불가능한 대답. 그 가운데 정말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신다는 증거는 무엇인가요?

그런데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나요? 마태복음 10장 29~31절에 참 놀라운 말씀이 나오고 있습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그 하찮게 보이는 참새 한 마리까지도 하나님의 광대한 계획에 포함되어 있다면 우리의 삶이 어찌 우연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우리가 설명할 수 없는 그 죽음 가운데도 하나님이 인도하심이 있는 것인가요?
우리가 그 죽음에 대하여 설명할 수 없는 이유는 삶이 나의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은 아닐까요? 나의 삶이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있다면 죽음조차도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믿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내가 이해하거나 설명할 수 없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오류를 잘 지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흔히 우리가 알고 싶어 하는 것이 “청사진” 아닌가요? 그 계획대로 살아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 말입니다. 이미 우리를 향한 계획을 세우셨다면 우리가 하는 어떤 결정도 무의미하다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 말입니다.

오스왈드 샌더스의 [모든 인생은 하나님의 계획이다]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건축가는 집 설계를 의뢰한 고객 중 상당수가 막상 설계에 들어가면 자신이 이미 설계도를 그려놨으니 한번 봐달라고 도안을 내민다고 불평했다.
그들이 정말 원한 것은 전문가의 설계도가 아닌, 자신의 설계도를 전문가가 인정해주고 세심한 손길이 필요한 부분만 보완해주는 것뿐이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인생의 위대한 건축가를 찾아가지만, 그 분의 계획을 발견하고 받아들이는 대신 자기가 세운 계획을 인정받는 일에 치중한다. 실제로 그들은 주님의 인도하심과 지도가 아닌 동의를 구하고 있는 것이다.

한때 한국교회를 휩쓸고 지나간 “긍정적 사고”라는 흐름이 있었습니다.
참 좋은 이야기이고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조엘 오스틴의 ‘긍정의 힘’이라는 책이 무척 많이 팔렸습니다. 그 책을 보면 정말 긍정적인 생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생각하고 기대하라고, 하나님의 축복이 쓰나미처럼 몰려오고 있다고, 하나님의 축복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위대하고 크다고.
참 좋은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축복이 정말 하나님의 계획인지를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축복보다 중요한 것은 축복을 받을 자로 사는 것임을 잘 생각하지 않는 듯합니다.

이런 질문으로 말씀을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긍정적 생각으로 하나님의 계획을 앞서 갈 수 있는가?”

오스왈드 샌더스는 그의 책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오해를 9가지로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될 듯합니다.
1. 내 의지를 포기하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면, 내가 원하지 않는 힘든 일을 강요하실 것이라는 오해이다. 물론 그럴 때도 있지만, 하나님은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시다.
2. 비합리적인 일을 하도록 요구하신다는 오해이다. 그러나 합리적인 사고를 하도록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어찌 비합리적은 일을 강요하시겠는가, 물론 그분의 생각이 한없이 깊고 넓으셔서 이해 안 되는 일을 요구받는 것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그 일이 이성에 반하는 것은 아니다.
3. 우리가 바라는 일을 방해하실 것이라는 오해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소망이 타당하다면 기쁘게 들어주실 것이라고 거듭 밝히셨다.
시편 37편 4~5절입니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4. 하나님의 뜻을 간과하여 잘못된 선택을 하면, 영원히 ‘차선의 인생’만을 살게 될 것이라는 오해다. 이 오해에 대하여 오늘 본문은 가장 명확하게 답을 해 준다. 토기장이가 빚고 있던 그릇이 터져버려도 쓰레기통에 버리지 않는다. 토기장이는 다시 그릇을 만든다. 차선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최상의 용도로 만드시고 있음이 분명하다. 
5. 인도하심의 형태는 성령이 우리 생각이나 마음에 주시는 인상의 형태로서 강렬한 감정을 동반한다는 오해다.
6. 우리의 직감이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오해이다. 이것은 성경적인 근거가 전혀 없다. 어떤 경우이든 우리의 직관은 우리가 모은 정보보다 신뢰하기 어렵다.
7. 일이 잘 풀리는 것은 무조건 하나님의 신호이므로 그대로 밀고 나가야 한다는 오해다. 물론 이런 경우도 있지만, 하나님의 명령을 피해 도망가는 요나에게 때맞춰 배가 준비되어 있었음을 기억하라.
8. 기회의 문이 닫히면 다 끝났다는 오해이다. 그러나 때론 정문만 닫혔을 뿐 뒷문이나 창문이 열려 있을 수도 있다.
9. 머리를 비웠을 때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을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오해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을 권면하면서 마음을 비우라는 식의 조언을 하지 않았다. 대신 하나님께서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시도록 기도하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계획을 세우고 계시다는 의미가 결정된 미래를 살아간다는 의미가 아닌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드셨고, 우리에게 모든 것을 결정하고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우리의 결정과 선택은 우리의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정들이 하나님의 손에 들려지면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우리를 다시 빚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신다는 것은…
오늘 말씀의 배경을 좀 알아야겠지요. 너무나 타락하고 패역한 세대 이스라엘을 보며 예레미야는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 그 나라가 걸어왔던 발자취를 보니 도무지 희망이라는 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토기장이의 집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망가진 진흙을 다시 빚는 토기장이를 보게 하신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다시 빚은 그 토기가 ‘최고의 것’이었다는 말입니다.
문제는 망가진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의 선택을 토기장이의 손에 맡길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는 말은, 우리의 미래를 살아가는 우리의 계획을 아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토기장이에게 온전히 맡길 때 최고의 작품이 나올 수 있음을 믿는다는 고백입니다.

이사야 64장 8절입니다.
“그러나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

언젠가 국민일보 ‘겨자씨’란에 실렸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어느 날 교회 가족 찬송경연대회에서 한 집사님이 찬송을 부르다가 가사를 틀렸습니다. 교인들이 깔깔대고 웃었고, 그 집사님은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자리에 돌아와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이어 목사님 가정이 찬송을 불렀는데 목사님도 가사를 틀리게 불렀습니다. 교인들은 다시 깔깔대고 웃었고, 사모님과 자녀들은 왜 틀렸느냐고 핀잔을 주는 얼굴로 목사님을 힐끗 쳐다보았습니다. 그 목사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장례를 마치고 장로님들이 목사님의 유품을 정리하다 일기장을 발견했습니다. 일기를 쭉 읽는데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가족 찬송경연대회가 있었다. 김 집사가 찬송을 부르다 틀려서 교인들이 다 웃었는데, 김 집사가 너무 무안해 했다. 분위기가 이상해지는 것 같아 다음 차례로 우리 가족이 찬송을 부를 때 나도 일부러 틀려주었다. 다시 교인들은 깔깔대며 웃었다. 그때 슬쩍 김 집사를 보니 ‘목사님도 가사를 틀릴 수 있구나!’라고 생각하고 안도하는 것 같았다. 오늘도 작은 일로 한 영혼에 위로를 줄 수 있어서 기쁜 하루였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마음은 남의 허물을 가려주려고 나의 허물을 받아들이는 마음입니다.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잠 17:9)
인생을 살다 보면 수없이 많은 크고 작은 실수들이 일어납니다. 그런 것을 우리는 ‘허물’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런 허물 속에도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으셨나요?
허물에 대한 계획은, 우리의 허물을 덮으시는 하나님의 계획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부끄러움조차도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만들어 가시는 계획이라는 믿음이 어떻게 우리 속에 찾아올 수 있나요?

저는 적어도 여러분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 안에 많은 허물이 있기에, 그리고 제 삶의 가장 큰 가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에 말입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제가 해결할 수 없는 연약함은 저를 참 힘들게 합니다.
지난해, 그리고 올 초에 찾아온 제 몸의 연약함은 저를 참 우울하게 했습니다. 흔히 말하는 ‘우울증’ 증세가 저에게도 찾아온 것이죠. 매일 이렇게 아프게 살아야 하는가? 나 스스로 노력해도 나를 control 하지 못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릅니다.
그때 우울함을 극복하는 것이 말씀을 보는 일이고, 하나님의 계획을 생각하는 일이고, 열심히 노력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울함은 나 스스로 나를 어쩌지 못하는 절망감에서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내가 어쩌지 못하는 내 인생이 너무나 힘들고 버겁다고 생각할 때 말입니다. 그래서 아마 “토기장이의 꿈”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여러분과 함께 말씀을 나누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제 삶이 ‘긍정적인 생각’만을 가지고 해결될 수 있는 일이라면, 그것이 최선이었다고 생각했다면, 나를 지으신 하나님의 계획을 그렇게 진지하게 물었을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토기장이의 의견이 best라는 말입니다.
“Best”란 무엇일까요? 장인의 작품입니다. 작품은 복제되지 않습니다. 복제되는 순간 가치를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의도된 손길이라면 그 흠집조차도 흠이 아니라 ‘포인트’가 아닐까요?
우리의 삶이 망가졌다고 느껴지는 인생의 고난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서 고난의 시간을 지나가게 하셨다면, 그리고 그 시간 가운데 우리가 선택하고 결정하게 하셨다면 그 흔적이 작품이 아닐까요?
우리가 흔히 우리의 삶을 최고(best)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이유는 누군가의 삶을 부러워하면서 하는 말은 아닐까요? 너무나 세련되고 매끄러운 모습을 보면서 말입니다.
“위작”이 무엇인가요? 아무리 완벽하게 작품을 흉내 내도 가짜입니다. 중요한 것은 흉내가 아니고 누군가를 닮아가려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만든 작가의 손길이 맞느냐는 것입니다.

언젠가 TV 프로그램에서 어떤 사람이 그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프랑스 파리를 방문했을 때, 유명한 몽마르뜨 언덕에서 멋진 미술 작품을 발견했답니다. 그래서 기대를 하고 샀답니다. 몇 년 후에 저 화가가 유명한 사람이 될 것이고, 이 작품이 그 값을 하게 되리라는 기대를 하고 말입니다.
다음날 다시 그곳을 방문했답니다. 그림을 더 사면 좋겠다고, 그런데 너무도 실망할 일이 생겼는데, 자신이 산 그림과 똑같은 그림을 그 화가가 아주 빠르게 또 그리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멋져 보이던 그림이 가치를 상실하는 순간입니다.

세련되고 멋진 그림이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품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닐까요? 혹 우리는 아름다움과 세련됨으로 치장된 작품이 쉽게 마음이 쏠리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인생이란, 순간순간에 삶의 진지한 흔적이 묻어나는 토기장이의 숨결이 느껴질 때가 아닐까요?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살아가기로 하는 순간, 우리는 내가 생각하는 삶의 최고(best)가 아니라 토기장이의 의견이 best라는 것을 믿고 신뢰하게 됩니다. 본문 4절입니다.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터지매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좋은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 (so the potter formed it into another pot, shaping it as seemed best to him)
우리가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순종하기 시작했을 때 모든 것이 순조로우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진리 가운데 살 때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리라는 확신이 필요할 뿐입니다.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터지매 “자기 의견에 좋은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었습니다.
생각나는 말씀이 있죠?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에 처음으로 행하신 기적이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가나 혼인 잔치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잔칫집에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모든 이가 잔치는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포도주를 맛본 연회장의 말입니다. 이전의 포도주보다 새로 만든 포도주가 더 맛있다는 것입니다.
4절 말씀에 “자기 의견에 좋은 대로”를 영어 성경에는 “as seemed best to him”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누구일까요? 토기장이입니다.
‘베스트’는 그릇이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릇을 만드는 사람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릇을 만드는 사람에 의해 용도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었던 인생이 망가졌다고 하나님의 계획이 끝나지 않는 이유는, 우리의 인생의 최고의 계획을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55장 8~9절에서 이렇게 하나님의 생각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은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욥기는 우리 인간들이 이해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한 지혜자의 답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한 동방의 의인 욥에게 찾아온 고난의 문제였습니다. 이 고난의 문제는 인과응보의 법칙으로 도저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였습니다. 욥의 친구들은 고난을 겪은 욥을 찾아와 위로한다고 하면서 하나님께 회개하라고 촉구합니다.
그래서 욥은 답답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항변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의 고난을 죄의 문제로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욥에게 찾아온 고난은 그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하여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난 다음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욥기 23장 10절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너희도 “진흙처럼” “내 손 안에” 있느니라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토기장이의 집으로 인도하시고 보게 하신 것이 무엇인가요? 본문 3~4절입니다.
“3. 내가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서 본즉 그가 녹로로 일을 하는데 4.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터지매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좋은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
하나님의 일하심이 아닐까요? 우리가 간절히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만날 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보게 될 것입니다.
사도행전 22장 10절에 보면 사도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처음으로 만났을 때 물었던 물음이 있습니다.
“내가 이르되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 주계서 이르시기를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네가 해야 할 모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하시거늘.”
우리가 부르심을 받고 영적인 체험을 했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 우리의 인도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내 삶의 갈망을 가지고 하나님을 바라볼 때 실망하지 않을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유명한 인도의 선교사 E. 스탠리 박사는 “정말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해주시나요?”라는 질문을 받고 “그렇게 하시지 않는 게 더 이상할 겁니다. 혀를 만드시고 서로 대화할 능력을 주신 분이 우리와 말씀하시고 대화하려 하시지 않겠습니까?”라고 대답했습니다.
우리가 진흙이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분의 손안에서 빚으신다면 당연히 우리 삶의 기대가 있지 않겠습니까?
호기심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에서 끊임없는 물음은 신뢰와 기대를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향할 수 있는 마음, 나를 지으신 하나님에게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유명한 영성 신학자인 헨리 나우웬은 그의 책 [영혼의 양식]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은 우리의 행동이나 말 또는 외모나 지식, 그리고 우리의 성공이나 인기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고, 우리가 죽고 난 후에도 존재할 것입니다.
조건 없이 사랑한다는 것은 아무 관심 없이 사랑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관계 맺기를 원하시며 그것에 대한 응답으로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해 주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두려움 없이 하나님과 친숙한 관계를 맺으십시오. 우리는 흔히 조건 없는 사랑과 조건 없는 허용을 혼동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조건 없이 사랑하시지만, 배반, 폭력, 증오, 의심 그리고 그 밖의 다른 모든 악의 표현들을 허용하시지 않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하나님이 인간의 마음에 심으려 하시는 사랑과 모순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이란, 우리가 악한 것을 말하거나 생각할 때도 하나님은 계속해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실종된 자식의 귀환을 부모가 기다리듯 그렇게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우리가 하는 일로 인하여 하나님의 마음이 슬플 때도, 하나님은 우리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진리를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이 진리가 우리에게 항상 존재하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돌아가도록 도와줍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하시고 싶은 말씀이 무엇이었을까요? 본문 6절을 보세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가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토기장이가 망가진 그릇을 다시 만들었듯이, 내가 너희를 다시 만들리라는 말씀입니다. 너희가 깨어진 질그릇처럼 되었지만, 다시 만들어 사용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가장 놀라운 것은 “우리가 회복의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이번 변화산을 시작하면서 우리가 가져야 하는 가장 명확한 확신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빚으실 내 인생에 대한 기대입니다.
깨어진 질그릇과 같은 우리 인생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다시 안으신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토기장이이신 하나님 앞에서 내 인생에 소망과 기대가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살아 있는 한 “소망을 부끄럽게 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얼마나 대단한 말씀입니까?
소망을 부끄럽게 하지 않는다.

이번 변화산에서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보이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가로막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니 그 어둠의 장막 가운데서 어떻게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보게 될지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변화산에 오르기를 바랍니다.
우리 인생에는 특별한 시기가 필요합니다.
자동차를 타다가도 때가 되면 오일도 갈고 타이어도 바꾸어야 합니다. 엔진도 점검해야 합니다. 돈이 들고 시간이 들어도 필요한 시간입니다.
오늘 새벽에는 진지하게 이런 물음에 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내 인생에 깨어지거나 금이 간 것은 무엇인가?
2. 나를 가장 절망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바뀐 내 모습에 대한 청사진을 그려보시기 바랍니다.
그냥 백지를 놓고 “하나님 그려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 안에 기도하며 하나님께 나아가 담대하게 물으십시오!
그리고 믿음으로 고백하십시오!
그리고 하루하루를 통해 그 계획들이 하나님의 계획인지 확인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는 토기장이 나는 진흙,
날 빚으소서 기도하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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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윤리와 학생인권조례’

“학생 담뱃갑서 콘돔 나와도, 학생인권조례 때문에 훈계 못 해”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세미나가 ‘생명윤리와 학생인권조례’를 주제로 21일(목) 오후 2시 30분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진행됐다. 이상원 상임대표는 환영사에서 “학생인권조례는 그 내용이 반생명적 입장을 반영하고 있고, 초‧중‧고등학교에서 사실상 법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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